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오는 2017년 6월 영구정지된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07년 설계 수명을 마친 뒤 2017년까지 10년 가동이 연장됐다. 고리 1호기가 정지되면 국내 원전 역사상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된다.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 1호기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도 2012년 11월 설계 수명이 끝났지만 2022년까지 연장 가동되고 있다.
월성1호기·고리1호기 등 2020년부터 영구정지·해체 본격 시작
경주, 국내 원전 12기·한전기술·한수원·원자력환경공단 등 보유
다양한 유형의 원자로와 기술력·자금력 갖춰… 시너지 창출 강점
연장 가동이 끝나면 월성 1호기 역시 영구 정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국내 원전은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020년대부터 영구 정지와 해체가 본격 시작된다. 2029년에는 국내 원전 24기 중 12기가 수명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원자력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해체 대상이 되는 전 세계 원전도 2011~2020년 135기, 2021~2030년 202기, 2031~2040년 51기, 2041~2050년 32기로 분석된다. 세계적으로 이미 147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됐고, 이 중 18기는 이미 해체 완료됐지만 129기의 원전은 해체 중이거나 해체될 예정이다.
원전이 영구정지되고 해체되면 해당 용지는 원래대로 고스란히 복원된다. 원전 해체는 크게 △해체 준비 △제염 △해체 △폐기물 처리 △용지 복원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원전 1기당 해체 비용은 대략 6천억원이 소요된다. 일련의 모든 과정은 독자적인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해체 기술 및 장비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이 2030년까지 500조원, 2050년까지 약 1천조원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원자력해체시장 선점 치열
원전 해체 시장이 미래 블루오션 산업으로 주목받으면서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정부는 해외 원전 해체 시장 개척을 위해 2030년까지 6천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원전 해체 핵심 기반 기술 38개 가운데 아직 우리나라가 확보하지 못한 기술 17개를 개발하겠다는 각오다. 현재 38개 기술을 모두 갖춘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원전 해체 기술은 원전 선진국의 약 70%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해체 기술 개발을 위해 사업비 1천400억여원을 들여 `원자력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이하 원해연)` 설립도 구상하고 있다.
원해연은 원전 해체 핵심 기술 확보와 장비 개발, 인력 양성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역량 강화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원해연에서는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로봇 등 특수 장비 개발과 함께 전문 인력 양성 교육 과정도 운영하게 된다.
정부는 2021년까지 21개 핵심 기반기술 개발을 완료해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을 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원전 해체 시장이 블루오션 산업으로 부각되자 원해연 유치를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전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자체 공모로 진행된 원해연 유치에는 무려 8개 지자체가 신청해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원해연이 들어서는 용지로는 현재 국내 가동 원전 24기 중 12기가 몰려 있는 경북을 비롯해 부산, 울산이 유력 후보지로 거론된다.
독자적 기술확보를 위해서는 1분 1초가 아까운 실정이지만, 원해연 건립은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2012년 정부는 원전해체기술 개발 10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2019년까지 원해연을 완공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예비타당성 심사위원들이 원해연을 단순한 원천기술 연구기관이 아니라 실제 원전 해체작업을 맡게 될 산업계의 기술 수요까지 소화할 수 있는 기관으로 보완을 요구하면서 최종 결과 발표가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원해연은 올해 건립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오는 12월까지 착공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원해연 가동도 상당 기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예비타당성이 통과되더라도 원해연 용지 선정과 용지 매입, 실시 설계 등 다른 일정까지 고려하면 원해연 최소 1년 이상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원해연 건립 일정이 늦어지면 원전 해체를 위한 기술 개발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원전 해체기술 확보 계기로 삼는다는 전략으로 이를 통해 원전 해체기술을 축적하고 나아가 수출 산업화까지 가능하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고리1호기 자력 해체를 위한 기술 개발을 전담할 원해연의 건립 일정이 늦춰지면서 자력 해체 목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원해연 설립이 계속 지연되면 국내 기술로 고리 1호기를 해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결국 원전 선진국의 기술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경북도 원해연 유치에 총력
경북도가 원해연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 경북 동해안은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절반인 12기가 있는 원전 최대 집적지다. 경북도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있는 경주를 원해연의 최적지라고 강조한다.
경북 동해안은 1970년대 산업 발달의 기초가 돼 온 원전을 받아들였고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신규 원전 건설을 수용한 곳이다.
경주는 19년간 실패를 거듭하면서 국가 원자력 산업 발전에 큰 장애 요인이 됐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용지를 일거에 해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는 원자력 산업 발전에 디딤돌 역할을 해 왔다고 자평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주시는 2014년 `원해연 경주유치위원회`를 발족하며 일찌감치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북도는 원해연 유치에 대한 경주시민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고 경주 유치의 당위성을 알리면서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경주시는 전폭적으로 원자력 사업을 수용했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보답에서라도 원해연이 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북도는 효율성과 입지 조건에서도 경주가 최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원해연 유치에 가장 중요한 기술력, 자금력, 방폐장의 기본요건을 모두 갖춘 곳은 경주가 유일하다는 것.
경북도는 경주로 이전한 한수원과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전력기술, 경주로 이전한 원자력환경공단이 있어 기술력과 자금력, 방폐장을 두루 갖춘 강점을 갖고 있다고 내세운다.
경북도는 경주에 원해연이 들어서면 원자력 생산부터 방폐물 처분까지 원자력 안전 생태계를 모두 갖추는 만큼 동해안을 세계적인 원자력 클러스터로 조성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원자력인력양성원과 원자력기술표준원 경주 이전, 동국대, 포스텍,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등 우수 연구 인프라와 해체 관련 기술정보 확보 및 산업화도 매우 용이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또 경북도는 2030년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 12기 중 6기를 보유해 원전해체 우선 대상 및 노후원전 최다 보유지역이고 다양한 유형의 원자로를 보유해 효율적인 해체 연구 및 기술 개발에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원자력 인재가 꾸준히 배출되고 있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대구·경북권에는 경북대, 포스텍, 동국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영남대, 위덕대, 한동대 산학협력단, 포항폴리텍대학 등 각 대학과 나노융합기술원, 포항가속기연구소,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금속소재산업진흥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한국원전기자재진흥협회 등 18개 기관이 원해연 유치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전국에서 원전 제염 해체 분야 연구센터로 유일하게 지정된 경북도의 `제염해체 원자력선진기술연구센터(경북대학교)`는 △제염 해체 관련 논문 작성 43건(SCI급 28건, 비SCI급 15건) △제염 해체 전문인력 양성 79명(박사 18명, 석사 45명, 학사 16명) △국내외 특허 출원 및 등록 20건 등의 성과를 도출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원자력 해체 분야 선점을 위해 지자체들이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경주에 원해연을 설립하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