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지는 늦여름이면나는 연육교를 찾아갑니다여름 내 붉은 꽃으로 피어있다가 길 잃어버린내 희미한 사랑 거기 어디쯤 그대로 서 있을 것 같아서그대는 말했지요, 사랑했으므로언젠가는 잊을 수도 있을 거라고나는 말하지 않았지요, 사랑하기에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돌아서는 그대 걸음걸음 출렁대던연육교는 작은 섬 하나 꼭 부둥켜안아서육지로 가는 길 놓아주고 있는데어디쯤이었을까요, 당신을 놓아버린 그 자리는붉은 잎 열어 하늘을 그리다갈 길 잃은 접시꽃 가만히 담아서나는 연육교를 찾아갑니다, 거기 어디쯤꽃 지지 않는 이야기 하나 피어있을 것 같아서이뤄지지 않은 사랑은 더 아름다운 것일까. 옛사랑의 흔적이 스민 연육교를 찾아가는 시인의 가슴 속에는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꺼지지 않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접시꽃이 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접시 모양의 그 붉은 잎에 담아내지 못했던 사랑의 아픔이 짙게 깔린 작품이다. 이뤄지지 않는 애절한 사랑이 영원히 시인의 가슴 속에 한 송이 접시꽃으로 피어있을 것이다.시인
2013-08-12
진검을 지닌 이진검 그것 외엔 가진 거 없는 이는좀체 칼을 뽑지 않는다한 남자와 한 여자도사랑한다는 마음의 진검을평생 동안 아껴 말하지 않았다그러나모든 날에 서로알고 있었다.우리나라 중년이후의 부부 사이에 `사랑한다`라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뭔가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꺼리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리 표현하지 않아도 은근하고 깊은 사랑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리라.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슴에 칼 하나씩 품고 사는 것은 아닐까. 예리하게 벼르기도 하고 무딘 칼날을 일생동안 그냥 품고 살다 칼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숨을 놓기도 한다. 그 칼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진검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은밀히 빛나는 보검일 것이다. 평생 동안 비록 그 칼을 써보지 못한다할지라도(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표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히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칼이며 사랑일 것이다.시인
2013-08-09
누워서 생각하면 사람들 모두 순하게만 떠오른다그래서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소리지르게 된다지르는 소리는 다시 나의 가슴으로 지면서눈물 한 자락 좌르르 쏟는다눈물 한 자락은 또 눈물 한 자락으로 이어져나는 눈물에 잠겼다가 다시 떠오른다어서 일어나야지, 사랑해야지그러나 뻔히 나는 일어서지 못한다나의 눈물이 흐르는 동안만 사랑스러운 사람들일어나 흘러보면, 흘러서 맞닿으면 언제나 망가졌던 만남망가지는 것이 그저 까마득하여 누워서 키우는 그리움이 눈물의 결 위에 나의 몸은 오늘도 홀로 떠서홀로 문 열었다 다시 닫는다인간 근원의 슬픔, 그 비애를 잔잔히 펼쳐보이는 이 시는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사랑, 그 진실하고 절절함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고 부질없음을 동시에 내포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다. 우리 스스로를 따스하게 안아주고 어루만져 그 근원적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은 아침이다.시인
2013-08-08
제대로 묻지 않아 비만 오면 파헤쳐지는 과거를유해들을 수습해 검은 보자기에 싸서 다시 매장했다양지 바른 언덕에, 예의를 다해무덤 위에 고맙게도파릇파릇 잔디가 돋아어머니의 눈물을 덮어주었다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서 함께 했던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보자기에 싸서 양지바른 언덕에 다시 묻는 시인의 마음은 차라리 슬픔을 넘어선 편안한 평화를 느끼고 있다. 짧고 간명한 시 속에 삶에 대한 따스한 인식이 스며 있는 작품이다. 양지바른 언덕에 봄이 찾아와 어머니 무덤에 파릇파릇 돋는 잔디들은 고되고 서러웠던 어머니의 시간들을 따스하게 덮어주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3-08-07
소원 따위는 없고, 빈 하늘에 부끄럽다이 세상 누구에게도 그리움 되지 못한 몸여기 와 무슨 기도냐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끝없이 펼쳐진 남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남해 금산의 암자인 보리암에 오른 시인은 천지간 망망함을 느끼며 산사의 불상 앞에서 무슨 소원을 빌겠다는 것이냐고 자문하면서 자신의 한 생을 성찰하고 있다. 스스로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 소망을 뜨겁게 안으로 키우며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마음과 몸에 촉촉한 생기가 스며드는 아침이다. 시인
2013-08-06
새끼들을 끌고 헤엄치는 어미 쇠물닭, 유치원 선생님 같다. 삐롱삐롱 삑삑, 저들끼리 뭐라뭐라 쫑알거리며 한눈팔다가도 부리나케 따라가는 새끼들에겐 70만평 늪보다 어미 가슴이 더 넓다햇살도 실눈 뜨고 바라보는 저 소풍 길. 삐롱비롱 삑삑, 정다운 물장난에 간지러운 겨드랑이 겨우겨우 참아내는 우포늪 기슭에선 조팝꽃들이 톡톡 터지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나라 착한 아이들 입에선 이팝꽃들이 톡톡 터져 온 아침 환하게 술렁이는데유치원 선생님 같은 어미 쇠물닭, 짐짓 기차놀이하듯 새끼들을 끌고 파란 물풀만 헤쳐가고 있다쇠물닭 가족은 우포늪에 살고 있는 평화와 생명의 상징으로 읽혀지는 새이다. 우포늪은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습지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생성되고 성장하고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 생명의 보고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 평평한 수면의 수평성에서 시인은 억압과 불평등의 세계가 아닌 평등과 자유와 조화로움을 찾아내고 있다. 그 넉넉함과 고요함에서 작은 평화의 정경을 읽을 수 있는 아침이다.시인
2013-08-05
눈 밖에서 더 잘 크는 놈들모가지에 벌겋게 독 오른 놈들목젖 가득 차오는 폐단을 주체할 수 없어아무나 잡고 맞짱 뜨자는 놈들모래밭에 떼거리로 서서온몸을 긁고 있었다무서워서 아들놈을 재촉하며 돌아오는데야, 그냥 가냐, 그냥 가!아스팔트 산책로에 들어설 때까지등 뒤에서 감자를 먹였다중량천변 모래밭, 여뀌들중량천 모래밭에 넝쿨져 있는 풀, 여뀌들을 보면서 시인은 두려움을 느끼고 같이 산책나갔던 아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모습에서 우리는 시인의 사회인식의 중요한 한 면을 발견하게된다. 현실 속에서 떼거리를 지어 통속을 만드는 삶의 원리와 독기 오른 근성들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여뀌 무리들은 도처에 깔려 있으며, 다가오기도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런 두려움에서 그리 쉬 벗어날 수 없다는데 있는 것이다.시인
2013-08-02
한 숟가락 흙 속에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래!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바로 그 힘이었다는 걸!대지 속에는 무한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음을 밝히면서 우리 자신 또한 싱싱한 한 생명체로서 우주의 한 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봄엔 모든 생명들이 황성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우주의 전 방위에서 전해오는 생명의 탄력이며, 이 생명력이 가득한 탄력과 함께 숨쉬며 성장 성숙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다, 강한 생명의식을 느끼게 하는 시이다.시인
2013-08-01
오세요강이 있고산이 있는 곳길이 있습니다비어가는 가을 들녘 끝에 서 있으면가슴 깊이 밀려오는 그리움이 있는해 떨어지는그곳그 어느 곳에 우리가 털린 볏단처럼 서 있었지요오세요섬진강 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퇴역한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의 초대장이다. 거창한 축제나 파티로의 초대가 아니라, 강이 있고 산이 있고 면면히 흐르는 강물과 그 강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자연이 있는 평화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털린 볏단처럼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살이에서 이것 저것 다 털리고 살아가는 우리네 한 생 돌아보게 하며, 그래도 꿋꿋이 들판에 서있는 볏단처럼 서 있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사롭다.시인
2013-07-31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예순에 더 몇 해를 보아온 같은 풍경과 말들종착역에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복사꽃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소매 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쯤 술로 지새면서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반짝이는데우리 시단의 원로이신 시인의 인생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눈을 느낄 수 있다. 맞다, 저리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특급열차을 타고 어디까지 왜 그리 빨리 가야하는 것일까. 많은 시간들을 하늘과 햇살과 별과 바람과 대지의 생명들과 교감하면서 시를 써 온 시인의 그윽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감동적이다
2013-07-30
선인장 가시를 입에 물고 여인은 반 지하 방 창문을 노려본다창밖 수평으로 펼쳐진 마당에 어느덧 봄빛이 번져가고 있다두 손으로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여인은 낮게 웅얼거린다그 새낀 죽었어, 하지만나는 너를 꽃피우고 말거야……( 시의 일부분 인용 )……이 시는 시인의 상상력에서 시작되고 그 상상력으로 시를 끌어가고 마친다. 이 시의 근간은 여성적인 회임의 상상력이다. 사랑을 잃은 한 여인이 실연의 아픔과 상처를 품고 시들어간다. 사막같이 황폐해진 마음에 피어나는 것은 선인장이고 가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꽃피우고 말거야` 라는 부분처럼 이 세속도시의 사막에서 강한 생명력을 회복하려 마음 다잡고 있다. 그것이 그를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시인
2013-07-29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책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고양이는 고양이수염으로 포도씨 만한 주석을 달고비둘기는 비둘기똥으로 헌사를 남겼다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 고양이의 방문, 비둘기의 헌사 등을 채송화가 피어 있는 시골집 마당에 끌어들이는 시인의 상상력이 참 재밌다. 채송화나라라고 지칭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나라에 다녀가는 고양이 비둘기들의 방문을 축복과 사랑의 헌사로 표현한 시안이 맑고 깨끗하다.시인
2013-07-26
열일곱, 처음으로 손공구를 틀어쥐었다 차고 묵직하고 세상처럼 낯설었다 스물일곱, 서른일곱, 속맘으로 수없이 내팽개치며 따뜻한 밥을 찾아 손공구와 함께 떠돌았다 나는 ---천품은 못되었다 삶과 일이 모두 서툴렀다 그렇다 그렇다 삶과 일과 그리고 유희가 한 몸뚱이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나는 머리칼이 잔뜩 센 나이 마흔일곱에야 겨우 짐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주 오래 움켜쥐고 있으면 쇠도 손바닥처럼 따스해지고야 마는 듯초등학교 이학년 아이에게 공구세트를 선물했다 지퍼를 당기는 손이 가볍게 떨고 바로 그 때 아이의 탄성처럼 은백의 광채가 그곳에 떠도는 것을 나는 처음이듯 보았다시인에게 손공구는 생업의 도구를 넘어서 우화등선의 존재처럼 날개를 달고 시인과 함께 생을 건너는 반려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게 되었다. 직업이라는 도구와 자주 불화하며 갈등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깊고 크다.시인
2013-07-25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이 산 밖에는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또 다른 벌레였을까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어느 날 물푸레나무숲에서 잠들었던 시인이 문득 깨어나 새벽에 느낀 숲의 생명들과 작두날 같이 살벌한 세상의 일들을 대비시킨 체험이 묻어나는 시이다. 우주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 그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시퍼런 비수를 들이대는 시인의 시정신이 푸르고 단호하다.시인
2013-07-24
깊은 밤 술에 취해 택시를 타면 담배 생각이 나고 난 기사 옆 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말한다 담배 한 대만 피웁시다 그러세요 어떤 기사는 허락하고 에이 좀 참으세요 어떤 기사는 참으란다 깊은 밤엔 기사들이 담배를 허락하고 난 창문을 반쯤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가 떨어져 기사에게 담배를 빌릴 때도 있다 어느 해던가! 성냥을 켜던 나를 보고 기사가 말했지 선생님 이상하네요 아니 켜기 쉬운 라이터를 두고 왜 성냥을 넣고 다니십니까? 네 성냥이 좋아서요 라이터는 무겁고 성냥은 가볍잖아요? 그런 밤도 있었다깊은 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담배에 얽힌 얘기를 구수하게 피력하고 있는 시인의 언어들 속에는 담배연기 같은 가벼운 세상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라이터보다 가벼운 나무소재의 성냥, 담배연기, 이런 것은 번거롭거나 무거운 것이 아니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가벼워져서 시공을 유영하고 싶어하는 낭만과 정겨움이 깊게 스며있다.시인
2013-07-23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아니, 그도 저도 안 되면햇빛 벌레가 되어서라도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울어도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사람의 어두운 몸에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내 몸을 구부려 따뜻하게 감싸면서천년을 더 그렇게(시의 일부분 인용)사람의 몸은 늙고 병들기 마련이고 그것을 어둠의 상태가 도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시인은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고 말한다. 이 시에는 자기위주의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이타적(利他的)인, 남을 위한 배려에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는 시정신이 착하게 그려져 있다.시인
2013-07-22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우리의 한 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많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걷어지고 또 드리우고 하는 일들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생에 깃든 검은 그림자가 배려와 성찰 속에서 흰 그림자로 바뀌고, 무겁고 어둡게 드리워졌던 아픔과 상처의 그림자가 치유와 평화 행복의 그림자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 묻어나는 시이다.시인
2013-07-19
좁은 벼랑길을 돌아나올 때 맞은편에서 오던 노인에게길을 비켜주었습니다 노인은 지나갈 생각은 않고 내게문득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디가 아픈가나는 기침을 했습니다 열이 나서 몸을 떨었습니다안 아픈 데 없이 온몸이 쑤셔왔습니다노인의 소맷자락을 부여잡을 듯 대답했습니다 다 아픕니다노인은 지나갈 생각은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위로도 하지 않고뼈만 남은 손가락을 들어 내 가슴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그대는 어디가 아픈가그대는 어디가 아픈가이제까지 따라다닙니다 내게 회초리가 되었습니다몸이 아프냐고 묻는 노인의 물음은 몸이 쑤시고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육체적인 아픔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진정한 아픔은 육체가 아닌 마음과 영혼의 아픔이라는 전언이 시 속에 내재되어 있다. 맞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늘 결여, 결핍되어 있거나, 상처, 억압, 동요, 갈등, 분노 등으로 편치 않는 상태에 놓여있지 않는가. 오늘 아침 노인의 손가락 끝이 우리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
2013-07-18
예인선은둥근 빛을 흔들고누군가 동백잎에 물들어깊은 병을 가질 때여관집 늦은 가을비는창가에 온다밀물 드는 소리에취객은 마음을 빼앗기고여자들이 등을 달고바다처럼 조용히부풀어 오를 때한 폭의 정물화를 보는 느낌을 주는 시다. 바다는 늘 예상하지 못할 예감으로 깨어있다. 밀물이 밀려드는 모습과 여관집에서 술에 취해 바라보는 가을비, 동백꽃잎에 물들어 깊이 든 병, 낭만적인 풍경과 마음을 그려내는 시인의 마음에서 참 고요하고 낭만적이며 어떤 슬픔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예인선, 밀물, 부풀어 오르는 여자, 등(燈) 앞에서 취객은 서서히 부풀어 오는데 이런 존재의 확장은 차라리 병적이어서 못내 슬프기 짝이 없다.시인
2013-07-17
울지 마세요돌아갈 곳이 있겠지요당신이라고돌아갈 곳이 없겠어요구멍 숭숭 뚫린담벼락을 더듬으며몰래 울고 있는 당신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엉엉 울고 있는 당신섬 속에 숨은 당신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울지 마세요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당신이라고돌아갈 곳이 없겠어요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사람, 시인은 그를 향해 손과 팔과 마음을 펴서 따뜻하게 포용해주고 있다. 너무 울지 말라고, 그래도 갈 곳이 어딘가에는 있을거라고. 당신의 이해자이고 동반자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에 상처받고 울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합해지고 포개짐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시인
201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