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을 한 울음이 봉분을 뒤덮었다무덤가 멀리까지 범람한 울음 속에서절벽을 지고 살던옹이 박힌 한숨소리를 듣는다다닥다닥 매달린 입술 부르튼 울음들이찢어진 앞산 하늘을 조금씩 밀어낸다묶음으로 기워 입은 울음들당신과의 거리가 멀어질까 두려운지땅을 딛고 선 푸른 정강이엔 힘줄이 팽팽하다굴참나무 위에서 가끔씩 훌쩍대는 뻐꾸기그때마다 울음이 우우우 날리는 발밑엔찢긴 하늘이 수북하게 쌓인다갈말산허리엔 군데군데오래된 잠들의 납작한 등이 보인다하필이면 무덤 가에, 혹은 무덤에 이르는 길가에 다북다북 피어난 꽃,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삶은 계란을 반으로 쪼개놓은 것 같다해서 계란꽃이라고도 부르는 우리에게 퍽이나 친근한 꽃이 개망초꽃이다. 먼저 떠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과 눈물이 방울 방울 맺힌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다닥다닥 매달린 입술 부르튼 울음들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에 깊이 동의해보는 아침이다.시인
2013-10-16
일상.너마저떠나버린 끝그리움빛발치듯노을이 탄다내생명처럼은폐하던 사랑.끝내안타까이돌아 서는그대등살처럼노을이 탄다붉게 번지는 노을, `노을이 탄다`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가슴 속에서는 사랑의 아픔과 결별의 애절함이 타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생명처럼 아끼고 위해주며 은폐하던 사랑을 내려놓고 끝내 돌아선 안타까운 사랑을 붉게 타오르는 노을 속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애가가 아닐 수 없다.시인
2013-10-14
천장(天葬)이 끝나고일제히 날아오르는 독수리 떼허공에 무덤들이 떠간다쓰러진 육신의 집을 버리고휘발하는 영혼아또 어디로 깃들일 것인가삶은 마약과 같아서끊을 길이 없구나하늘의 구멍인 별들이 하나 둘 문을 닫을 때새들은 또 둥근 무덤을 닮은알을 낳으리인류의 역사는 삶과 죽음의 연속선에서 이루어진다. 영혼이 휘발하여 깃들일 곳이 없어도 인간의 삶은 끊을 길이 없이 이어진다. 주검을 포획하는 독수리는 또 죽음을 전제로 새로운 생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힘들다고 벗어 던져버릴 수도 없는 것이며 피할 수도 없는,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이고 업보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게는 무상감과 허무감이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또 오는 것이리라.시인
2013-10-11
갑과 을이 나란히 길을 걸었다노을을 향하거나 아니면 땡볕 아래가까워질 수 없는 간격을 두고 손을 잡았다세상 사람들은 갑이 아니면 을이다배부른 너는 갑이 되고배곯은 나는 을이 되어지극히 개인적 혹은 현실적인 입술로 탁자를 가운데 두고서로를 속셈하는 눈빛을 가늠해 보았다네 입가에 맺힌 미소는 엉킨 곁눈질에 들키지 않았다색이 상반되는 두 얼굴로 불평등 생존협약을 체결하지만흐르는 물결,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는 언제나반은 갑이고 나머지는 을이어서경계는 등거리에서 충돌했다틈이 많은 갑과 을 사이 발자국이 아프다최근 우리 사회에 이슈로 떠오른 말이 있다면 `갑과 을`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회학적인 의미가 깊이 깔린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과연 그 양분에 따른 경계는 이렇듯 냉혹하게 존재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등거리에서 수없이 충돌하는 그 가파른 관계들이 그 냉혹한 경계들이, 그 아픈 발자국들이 유화적으로 변하고 무너지고 치유되는 길은 없는걸까. 시인의 안타까움에 깊이 동의해보는 아침이다.시인
2013-10-10
세상의 그 어느 것인들두꺼운 자궁 속에 담겨 있던씨알맹이 아니었으랴그 아름답고 슬픈벗어나기뱀이 허물을 벗듯이자유는스스로와 우주를 파괴하는 자이면서도지금보다 더 드높이 날 수 있는 날개 아닌가세상 모든 근원이 자유에서가 아니라 구속에 있다라는 시인의 인식이 흥미롭다. 시인은 인간의 태어남 자체가 자유에서 구속이 아니라 그 역(逆)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란 그 근원적 묶임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지금보다 드높이 낡아오르기 위해서는 벗어나기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파괴라는 폭력적 과정을 그쳐야한다는 점에서 이 시의 제목이 `모순` 인 것이다.시인
2013-10-08
산그늘이 야윈 게 내 눈 흐린 탓인 줄 여겼더니 사실은 물소리가 저렇게 깊은 까닭이고, 물소리가 야윈 게 내 귀 성근 탓인 줄 믿었더니 과연 산그늘이 저렇게 깊은 까닭이네 날빛 다문다문 저물어서 산그늘이 물소리 되고 물소리가 산그늘 되니, 하염없어라 흰머리의 삭신일란 기껏 두어 모숨 남은 채, 데리고 갈 병(病)도 없이 후미진 조개무지처럼 으슥하네백담사 계곡, 설악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물소리와 그늘에 대해 깊이 바라보고 새기고 있다. 어느 것 때문이라 규정하기 힘든, 규정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는 인생을 깊이 관조하는 그윽한 눈이 있다. 자연스런 우주의 계율에 견주어 하염없이 흰머리만 늘어나고 늙어가는 삭신을 들어 생의 허망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시이다.시인
2013-10-07
잘못 든 길이다알아차렸을 때도 직진이다이정표와 상관없이 직진이다뒤돌아설 수 없다그러므로 직진 직진이다절벽의 길, 풍덩허공을 밟아 두 눈 질끈 감고악세레이터 밟아버린 호박 줄기자살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저도 식겁은 먹은 것이다가물어 마른 하천 바닥아, 애호박 하나한숨처럼 흘러나와 있다도로 위로 방향을 튼 환삼덩굴도 분명 초보초보운전자는 후진에서 진땀이 난다마른 하천 바닥에 나뒹구는 애호박 하나, 도로 위로 기어가는 환삼덩굴, 길을 잘못 든 경우다. 어설픈 초보운전 탓이다. 비록 그 잘못 든 길이라 할지라도 시인은 직진하라고, 되돌아서지 말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재밌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노련과 성숙에 이르는 길은 때로는 이러한 시련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터득되는 것이다. 두려움에 움츠리고 물러서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결행하는데 길이 열리는 것이다.시인
2013-10-04
산비탈 배밭에 배꽃 한창이다어쩌다 저녁때를 놓친공복의 노을이 가장 먼저 젖어드는 저 배밭그세 입술 빨갛다슬쩍, 배꽃 입술 훔치고 저도새빨개져 산등성이 넘어가는 도둑구름나는 또 막차를 놓친망연자실, 할 말 잃은 여행객이다산비탈 배밭, 하얗게 배꽃이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들추고 저녁노을이 들고 있다. 하얀 배꽃에 번지는 붉은 저녁노을을 입술이 빨갛다라고 표현하는 시안이 맑고 깨끗하다. 슬쩍 배꽃을 붉게 물들이고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도둑구름이 입술도둑인 것이다. 그 아름다운 평화경에 빠져 막차를 놓쳐버린 시인도 또 하나의 입술도둑이 아닐까.시인
2013-10-02
세월이 이처럼 흘렀으니그대를 잊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나는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강은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킵니다상처가 너무 깊은 까닭입니다상처가 너무 큰 까닭입니다돌 하나가 떠서 물 위에 꽃 한 송이 그립니다인제는 향기도 빛깔도 냄새도 없는 그것을물꽃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맺는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인간은 미망과 번뇌에 묶여 정말 많은 죄업을 쌓으며 한 생을 건너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물꽃`은 상처가 피워내는 꽃이다. 그러나 그 상처는 이제는 아물대로 아물어 흉터로 남은 삭혀진 상처이리라. 인간은 끝없이 이런 물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시인
2013-10-01
별들의 슬픔이여별들의 침묵이여별들은 눈물을 감추고별들은 슬픔을 말하지 않네땅에도 땅에도 슬픔이 있어옥창(獄窓)에 어리는 무기수의 눈물이여밤하늘에 수 놓여진 은하수를 별들의 슬픔으로 혹은 별들의 침묵으로 인식한 시인의 시선이 참 따스하다. 별들에게도 슬픔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별들은 그 슬픔을 말하지 않고 침묵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수많은 슬픔과 침묵이 존재한다. 우리의 현실이 그 연속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눈물의 정결함과 투명함을 통해 생명의지와 흐트러지지 않는 인간성을 옹호하고 있는 작품이다.시인
2013-09-30
중절모를 쓰고바다를 넘어온 달이 솔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간월도 저편달은 벌써 아편 먹은 몽유병자밀물과 썰물을 헛디디며나도 조금만 지체하면 섬이 되었겠다개심사쯤 가서 마음 비울까 했는데자꾸만 뻘밭으로 몸이 돌아간다물은 빠지고 서천을 덮던달그림자가 도요새를 물고 갔다캄캄한 뻘밭에 바람은 눕고굴 여무는 소리, 진주알 몸 굴리는 소리귀가 가렵다간월도 저편뻘밭에 차올랐던 물은 빠지고 서천을 덮던 달그림자가 도요새를 물고 간 간월도 바다의 고요한 평화경으로 우리를 끌어가는 시인은 거기에서 우리의 마음의 귀를 열라고 충동질하고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캄캄한 뻘밭에 바람이 눕고 굴 여무는 소리, 진주알 몸 굴리는 소리를 들어보라 한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달이 굴러가는 소리와 간월도 저편의 소리들에 우리의 귀를 대고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 보라는 것이리라.시인
2013-09-27
한 줄금 소낙비 쏟아진 뒤 십이선녀탕 계곡에 들었다 바위를 휘도는 물살은 한 장삼자락 뿌리며 너울너울, 쨍한 햇살 한 순배 돌자 나무들은 젖은 몸 말리느라 가지를 홰친홰친, 잎새 끝에 매달린 물방울은 똘랑똘랑, 환삼 덤불에 숨어들었던 산새들은 포록 포로록, 졸음에 겨운 물푸레나무 가는 코 골며 쐐르릉 쐐릉, 어느 새 그늘 한 치 늘인 까치박달나무 기재개켜며 아우훔, 썩은 굴참나무 둥치께를 넘는 칡넝쿨은 옴죽옴죽, 이낀 낀 바위 틈새로 두꺼비는 앙금앙금, 비에 씻긴 부들 위 다시 알 스는 실잠자리 꽁지는 조촘조촘, 숲 속 소리바다에서 무료로 다운받은 물소리 바람소리 왼갖 벌레소리에 멀미난 물봉선화, 마타리는 손사래 살래살래, 한결 짙어진 바람결에 부전나비, 외눈이사촌나비는 진진초록 여름을 펼쳤다 접으며 흠흠, 흠흠흠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푸르른 설악의 풍광을 그린 싱싱한 느낌의 시이다. 소낙비 지난 뒤에 쏟아지는 폭포수, 환삼 덤불에 숨어든 산새들, 물푸레나무, 까치박달나무, 굴참나무, 칡넝쿨, 두꺼비, 실잠자리, 물소리 바람소리 온갖 벌레소리, 물봉선화, 마타리 , 부전나비, 외눈이사촌나비…. 진진초록의 여름 산을 이루는 아름답게 빛나는 생명체다. 눈도 마음도 따라 시원해지는 느낌이다.시인
2013-09-26
입꼬리를 잡아당겨 귀에 걸치면내 몸은 한순간 날아가는 새가 된다입술이 펼치는 날개 속에 내 정신은 기울기를 높인다입술을 떼어 귀에 걸치고 세상을 본다는 건파 -- 하고 한세상 무심히 치고 들어가는 일대책 없이 내 속을 들추고 그 안에 쉬어가는 일머리가 보고 싶어 하는 걸눈이 거부한다면눈이 본 것을 머리가 받아들지 않는다면입술을 어찌 얇은 귀에다 올려놓을 수 있을까두 입 끝이 올라가서 눈가의 꼬리를 만난다면둥글게 둥글게 굴러가는 얼굴이 되겠다속절없이 네 마음속 온전히 들어앉는 마음 되겠다귀에다 입을 걸친 김에 한 말씀하겠는데내 흰 이빨 콱 박힌 세상 한 번 달다입꼬리를 올려 귀에 걸친다거나, 두 입 끝이 올라가서 눈가의 꼬리를 만난다는 것은 웃는 모양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거나 웃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우리의 표정도 행위도 따라가게 마련이다. 이게 순리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불구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고, 웃기 싫어도 웃어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시인
2013-09-25
멀리서 바라볼 땐담배 물고 어깨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더니어둠이 몰려드는 사랑방의 아버지더니강 머리 베고 잠들어보면쪽상에 우거짓국 하나 차려도분주하기는 똑같은한겨울에도 진땀 흘리시는 어머니더라물고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물새들에게지나는 객에게 숟가락 쥐어주던 어머니더라잠든 한밤에도 쉬지 않고빗장 지른 문을 열고 길 떠나는 기차나겨울나무 틈새를 비기고 들어서는 바람까지등 두들기며 배웅해주는 어머니더라강물에 빠진 하늘을 끌고천형의 푸른 동아줄을 끌고 가는 오리처럼자식들 다 떠난 뒤에도 집을 지켜내시는내 아버지 어머니더라천형(天刑)의 푸른 동아줄을 끌고 가는 오리 같은 분들이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자식들 다 떠난 뒤에도 집을 지켜내시는 분들이다. 강은 아버지처럼 역사와 상처를 가슴에 담고 흐르기도 하지만 어머니처럼 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주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하는 존재이다. 늘 푸르게 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일깨워주고, 우리와 함께 꿋꿋이, 청청하게 흐르는 것이 강이다.시인
2013-09-24
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나를 가두었던 것들을 저 안쪽에 두고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겠다지금도 먼 데서 오는 바람에내 몸은 뒤집히고, 밤은 무섭고, 달빛은면도(面刀)처럼 나를 긁는다나는 안다나를 여기로 이끈 생각은 먼 곳을 보게 하고어떤 생각은 몸을 굳게 하거나뒷걸음치게 한다아, 겹겹의 내 흔적을 깔고 떨고 있는여기까지는 수없이 왔었다담쟁이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가파른 직벽이라도 손을 뻗어가는, 끝없이 실천하는 존재의 상징이다. 우리는 시간과 중력에 지배받는 육신을 간직하고 있는 육체적 존재임과 동시에 이성을 가진 정신적 존재다. 시인은 사람도 관념적인 사랑을 경계하며서 실천이 따르지 않는 그 어떤 사랑도 공허한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시인
2013-09-23
꽃을 보다 잎을 본다잎을 보다 입술을 깨물다꽃 눈썹 바로 아래 잎을 갉아 먹는 침입자벌레를 잡아주다누렇게 마르는 잎을 보다마른 잎을 따주려 줄기를 만지다줄기는 가지를 흔들며흐릿한 그림자들 밀고 당기고마른 땅이 몸을 비틀다세상이 어지럽다땅을 거꾸로 받쳐 들고 헤엄치는 뿌리들까맣게 그을린 발밑의 씨앗들은온몸을 뒹굴어도 내일을 마중 가는낯선 길이 그립다삶은 계속 갈 길을 확인하는 일이기에 시간 맞춰 태엽을 감는 소리마른 잎을 끌고 가다우주의 만물은 끝없이 변한다. 새순이 돋았던 나무 가지엔 어느듯 그 순이 싱그러운 나뭇잎으로 자라고 가을이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 생명의 자연스런 순환이다. 우리네 삶도 늘 힘들고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힘든 시간들이 지나면 기쁨과 행복의 넘치는 때도 도래하는 것이다. 마른 잎들이 시간을 맞춰 태엽을 감듯이 다시 뿌리에 스며 새로운 에너지가 되는 것은 진리다. 자연의 순환, 그 흐름에서 인생의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한다. 시인
2013-09-17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내던졌다쨍그랑 소리가 들렸다조각나 뒹구는이마와 한쪽 눈또 한 눈과 코입술과 턱이 악문 미소가연기처럼 피어오르고뇌수가 바닥에 흥건하다잠시 후덩굴손처럼 바닥을 기며부서진 조각들을 모으는바쁜 몸뚱이완벽하게 복원된 내가문 앞에 서 있다현대인들은 이 시에서처럼 하루에도 수 없이 자기의 얼굴을 깨뜨리는지 모른다. 자신의 참모습을 가린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우리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리곤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환원 복원되는 것이다. 진정한 실존적 가치를 지켜가지 못하는 우리의 처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시인
2013-09-16
누나는 쇠비름 줄기를 눈에 끼워퉁방울 눈 만들어 두 눈 부릅뜨고어머니는 쇠비름을 통째 뜯어된장국 끓이러 장독대 뒤로 가고나는 하지 지나 왼종일 길어진여름해 넘어가는 서쪽하늘 보며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있었다돼지풀이었다 잡초였다쇠비름, 거칠기 짝이 없는 잡풀이다. 시인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 속에 피어난 잡풀을 떠올리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을 돌아보고 있다. 하지(夏至) 지나 왼종일 길어진 여름 해가 넘어가는 서쪽 하늘을 한번 떠올려보자. 우리에게도 가난과 더위에 지친 한 시절이 있었다. 돼지 풀 같은, 잡초 같은 가슴 아픈 한 시대가 있었다.시인
2013-09-13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핥는다병약하게 태어나 젖도 먹지 못하고태어난 지 이틀 만에 죽은 줄도 모르고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손수건에 고이 싸서손바닥 만한 언 땅에 묻어주었으나어미 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이튿날 아침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어미 개는 갓 낳았으나 이미 주검으로 변한 죽은 새끼를 혀로 핥고 또 핥으며 그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거룩한 본능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미물인 개도 그렇거늘 우리 인간의 모성애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는 어미개의 혀보다 더 따스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길고 긴 사랑과 정성의 혀로 평생 동안 자식들을 핥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시인
2013-09-12
아리고 쓰린 상처소금에 절여 두고슬픔 몰래곰삭은 젓갈 같은시나 한 수 지었으면짭짤하고 쌉싸름한황석어나 멸치젓갈노여움 몰래가시도 삭아 내린시나 한 수 지었으면평생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며 시를 써온 시인은 아직도 뭔가 곰삭지 않은 현실의 어중간하고 어정쩡함을 향해 말하고 있다. 아리고 쓰라린 상처를 깊이 묻어두고 그 아픔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맛을 내는 감동의 시를 쓰고 싶다고 토로하고 있다. 곰삭은 젓갈 같은 시를 말이다.시인
201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