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환
날빛 다문다문 저물어서 산그늘이 물소리 되고 물소리가 산그늘 되니, 하염없어라 흰머리의 삭신일란 기껏 두어 모숨 남은 채, 데리고 갈 병(病)도 없이 후미진 조개무지처럼 으슥하네
백담사 계곡, 설악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물소리와 그늘에 대해 깊이 바라보고 새기고 있다. 어느 것 때문이라 규정하기 힘든, 규정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는 인생을 깊이 관조하는 그윽한 눈이 있다. 자연스런 우주의 계율에 견주어 하염없이 흰머리만 늘어나고 늙어가는 삭신을 들어 생의 허망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시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