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한 봉
산비탈 배밭에 배꽃 한창이다
어쩌다 저녁때를 놓친
공복의 노을이 가장 먼저 젖어드는 저 배밭
그세 입술 빨갛다
슬쩍, 배꽃 입술 훔치고 저도
새빨개져 산등성이 넘어가는 도둑구름
나는 또 막차를 놓친
망연자실, 할 말 잃은 여행객이다
산비탈 배밭, 하얗게 배꽃이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들추고 저녁노을이 들고 있다. 하얀 배꽃에 번지는 붉은 저녁노을을 입술이 빨갛다라고 표현하는 시안이 맑고 깨끗하다. 슬쩍 배꽃을 붉게 물들이고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도둑구름이 입술도둑인 것이다. 그 아름다운 평화경에 빠져 막차를 놓쳐버린 시인도 또 하나의 입술도둑이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