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시인은 늘 삶의 뜨거운 현장에서 비켜서 있지 않았다. 그의 시 `담쟁이`, `흔들리면서 피는 꽃`에 그러한 시인의 치열한 현실인식이 잘 나타나있다.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에서 읽을 수 있듯이 부조화와 모순, 불구의 세상에 대해 조급하지 않고 목소리를 필요 이상으로 서둘러 높이지 않으면서 유장한 강물 같은 정신을 견지하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는 시다.시인
2014-10-15
공자 말하기를 거친 밥에 맹물 마시고 팔을 굽혀서 그것을 베개로 삼더라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으니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내게 뜬구름 같도다논어흑석동68-15번지에서 번영14길 8로 바뀌는순간나는 노숙자가 되었다자본주의적 일상에서 무색한 말장난이 된 `경전의 언어`와 그 경전의 언어에 흡사한 상황을 거론함으로써 시인은 이 시대가 경전이 존재할 수 없는 불구의 시대임을 비난하고 있다. 말장난이 돼버린 경전, 옳고 그름, 정의, 연대 등 한 사회의 윤리적 가치관이 총체적으로 흔들려 버린 것에 대한 시인의 비애가 바탕에 깔려있는 시다.시인
2014-10-14
이거 천 원에 다 디레 가소파장 무렵 비릿한 생선냄새 속에아들의 얼굴이 선해서덜컥 가슴이 젖는다장이 파할 무렵 지나가는 행인에게 손짓하며 남은 물건을 떨이로 팔려는 여인의 초조한 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짧은 이 시에는 시인의 삶에 대한 따스한 인식이 깊이 묻혀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겉으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나 어린 아들 생각에 눈과 가슴이 이미 젖어 있는 장터 여인의 굴곡 많은 한 생이 눈에 잡힐 듯이 다가오는 이 시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어떤 감동이 있다. 이게 이 땅의 거룩한 어미의 심정이 아닐까.시인
2014-10-13
광장에 선 소나무온몸에 전등불 켠다한겨울 잠에서 깨어나사방의 소음에 귀를 연다푸른 잎 잃은 자리마다밤마다 꽃피지만끊이지 않는 악몽이 실핏줄마다 박힌다예리한 빛에 쪼여안구가 충혈되고아픈 껍질 떨어져나간 자리찬란한 사슬로 얼얼하게 묶여 있다밤 없는 밤치명의 독인 빛을 게워내 보지만진정되지 않는 속굴레이거나 이미 관습이 되어버린 장식의 삶날마다 환한 빛이 온몸에 감긴다시인이 인식하는 현실은 사슬과 굴레에 묶여있는 구속의 차가운 현실이다. 도심에 심어진 소나무에 친친 감긴 반짝이는 색등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이런 소나무를 보면서 소나무만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도 어떤 굴레와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깊다. 관습이 돼버렸거나 장식의 삶으로 변해버린 것인지 모르는 우리를 친친 두르고 있는 사슬과 굴레를 보자.시인
2014-10-10
오존 강 말라서, 오존 강은 갈라져서아 우리들 살던 옛집 푸른 지구막무가내로 무너진다하늘로 쏘아 올린 화살 벼락처럼내려온다 불의 비, 질타의장대비, 섭리의쇠못 같은 비거침없이 퍼부어진다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해 다룬 시다, 더 이상 이러한 환경의 문제가 추억이 아니라 심각한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오존층에 구멍이 나서 푸른 지구가 심각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지구의 현실을 다룬 이 시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깊이 깔려있어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하다.시인
2014-10-08
어머니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와 살구요 아버지는 빨간 구두 아가씨와 살아요반평생을 그렇게 어머니는 간당간당 아버지를 노란 샤쓰 단춧구멍에 단단히 밀어넣은 채 말없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와 살았고요 아버지는 시름시름 어머니를 빨간 구두 굽에 박은 채 똑똑똑 빨간 구두 아가씨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우리 귀에 익숙한 두 곡의 대중가요를 통해 부모님의 삶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이다. 길고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오면서 아버지 어머니는 서로를 대중가요 속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살아오신 것이리라. 비록 착각이고 웃음거리가 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두 분은 늙은 서로에게서 젊은 서로를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낡고 늙은 모습에서 아름답고 멋진 젊은 시절의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14-10-07
아내 심부름으로두부 한 모 사러 가는 저녁이었다큰길을 놔두고아파트 뒤 공터 지나나무들 사이 소로(小路)를 고개 숙여 걸어가는데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좀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이 아름답고 좋은풍경이 보이지 않냐고이마와 가슴에 적황(赤黃)의단풍을 불붙이고그 아래 허리께는아직 푸른 이파리들을 매달고 섰는 한 나무 아래처음 보는 가을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새치가 많은시적 자아를 부른 것은 누구일까. 사람을 가을에 비유한 것일까 아니면 가을을 사람에 비유한 것일까. 어느 쪽으로 정하더라도 재미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다 어느 날 나무들 사이의 소로에서 가을을 만난 시인은 가을이 말 걸어오는 것을 마음으로 듣는다. 우리도 살아가느라 잊고 지냈던 계절을 갑작스레 느낄 때가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처음 보는 듯한 가을을 만날 때가 있다.시인
2014-10-06
나에겐 친구 같은 바다가 있습니다나보다 먼저 바다로 가 기다려주다먼저 뭍으로 돌아와 안아주는 동행신용불량의 거덜 난 내 속주머니에출항이라는 신권을 두둑이 채워주는행복이 가득 찬 선생이 바다였는지고귀한 동행의 전생이 물고기였는지지상에 머물 맘 없는 디아스포라바다로 떠나게 한 신께 감사합니다친구를 사랑하는 건 꿈을 꾼다는 것바다는 내 삶의 무한한 축복입니다평생을 선장으로 바다에서 보내고 있는 시인의 바다사랑이 대단하다. 이윤길시인에게 바다는 어쩌면 사랑의 대상이 아닌지 모른다. 사랑의 대상은 욕망하는 순간 그 대상은 공교롭게도 몸을 잃는 탓이다. 그러므로 바다를 사랑하는 순간, 바다는 갈취돼야하고 수탈될 위험에 처한다. 이것을 아는 시인은 바다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에 이르기 전에 우선 우정을 나누는 대상으로 바다를 인식해야하는 것이리라. 그의 고백에서 이런 말없는 그의 속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시인
2014-10-03
생선 눈알을 빼 먹었다가플라스틱녹슨 부속품을 잉태한처녀샴페인 거품이 넘치는흰잔 높이 들고어느 서정시의 한 구절을외운다플라스틱 녹슨 부속품을 잉태한 처녀와 서정시 한 구절을 외우는 처녀, 이 두 모습의 동시성은 충격적인 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충격적인 두 이미지의 대조는 생명의 원천, 고향을 상실한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질타이고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러한 재앙의 한 복판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시인
2014-10-02
나는 북쪽을 선호한다한가지 色에 깊이 들어앉은 다른 색을발견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에 대해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은 가능할까나약한 존재를 자극하는 섬세한 색의 변화를그 미묘한 느낌의 일렁임을문장은, 너를 낚아채고야 말았구나너를 지탱해주고 변화시키고 다른 세계로한 걸음 내딛게 하는 순간들한 번 겪고 나면 다시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 자리를풍경의 비밀이 북쪽에 있는 것 같아 북쪽을 선호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열어가고자 하는 시인으로써의 자세가 읽혀진다. 색에 대한 학습의 결과를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일이 가능할까 회의하면서도 도리없이 문장으로 이것을 낚아채고 마는 자신의 운명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풍경의 색깔을 고민하고 시의 후반부에서는 퇴고(推敲)의 고뇌가 비쳐지는 이 시는 진정한 시인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겨운가를 읽을 수 있다.시인
2014-10-01
우리들의 시간도 흘러갈거야늙은 노먼의 낚싯줄에 드리워진 은빛 포물선이허공에 그리고 가는 기억처럼 그렇게가물하게 멀어져가는 소실점처럼 그렇게네가 열두 살 적 옥상에서 며칠을 퉁탕거리며띄울 수 없는 큰 배를 꿈으로만 짓던그 무모하고 지루한 희망의 기억들처럼모두 그렇게흑백의 영상은 추억을 불러오기에 적절하다. 흑백영화는 어떤 지점의 잊혀졌던 추억과 기억들을 환원하고 복원하는데 적절한 지 모른다. 영화속의 시간들도 영화밖의 시간들도 속절없이 흘러가버렸다. 어릴 적 옥상에서 큰 배를 꿈으로만 짓던 그 무모하고 지루한 희망이 이제는 휘어진 기억의 저편에서 자꾸자꾸 더 멀어져가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시간도 쏜 살 같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9-30
온몸이 텅 빈종이코끼리를 타고 길을 걷는다아기부처님을 태우고 묵묵히연등행렬을 따라가던 종이코끼리 한 마리코가 잘려나간 채 종로 뒷골목에 버려져 있어코 없는 종이코끼리를 타고 길을 걷는다아직 남아 있는 살아가야할 날들을 위하여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새들이 집을 짓듯이폭풍우가 가장 강하게 몰아치는 날이 순간의 너와집 한 채 지어 불을 지핀다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버려야 하므로온몸이 텅 빈 흰 종이코끼리 한 마리 불태워한줌 재를 뿌린다인생이란 이처럼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리라. 미련없이 버리고 훌훌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지난 것을 미련없이 버리고 집착하지 말일이다. 지난 시간들이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아니면 화려하고 융성했더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또 버림에 인색하지 말아야한다는 시인의 인식이 시 전체에 스며있다. 이러한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봄직한 아침이다.시인
2014-09-26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철로가 있다화물기차만이 닿는 우암역붐비던 부두의 기억은 이미 오래 전에시커먼 바닷속에 묻어버리고거대한 컨테이너만이큰 입을 벌린 채역을 버티고 서 있다가끔씩군용 트럭, 얼룩무늬 탱크가화물기차에 실려 느리게 지나가고기차의 무게에 눌린 선로는저희들끼리 만나 얽히고 얽히어굽은 길을 연다반가이 찾아오는 사람 없어도침목과 철로 사이에버석이는 녹슨 햇살우암역이라는 어느 고즈넉한 바닷가 역의 풍경에서 시인은 시간과 사물과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본다. 기차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실어나른다. 그것이 군용트럭이든 생필품의 어떤 종류이건 별로 관계치 않지만 화물과 기차, 무게와 선로는 서로 만나 최선을 다해 굽은 길을 연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무심한 어울림 위로 녹슨 햇살은 내리고 있다. 이 무심한 시간과 사물의 어울림이 새기는 시간의 결을 시인은 가만히 만지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4-09-25
반골은 골의 반쪽이 아니나 골을 쪼개어 아무리 뜯어봐도노골적으로 말해서의식을 품은 골수의 뿌리다골 반을 버리고 골 반이 썩어도칠흙 같은 어둠 속에 저항하는 번개처럼피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화그르르 피 토하는 소리다뼈골로 덮인 반골은 두 눈을 번뜩이며불의에 꼼짝하지 않는다오직 넉넉한 한 길이요 꿋꿋한 외길뿐반골은 시절 따라 찾아오는죽음이 무섭지 않고휘잡는 총부리에 담담하다시대의 칼날에 날려골이 깨어지고 뭉개져도총명하게 남아 있는 부활의 혼이다강인한 선비정신과 투사의식이 시 전편에 깔려있다. 불의에 꼼짝하지 않고 꿋꿋한 외길을 걷는 반골 정신을 노래한 시다. 시인은 태평한 시대를 바라지 않을뿐더러, 더군다나 배 두드리며 따뜻한 방 책상머리에서 미사여구나 건져 올리거나 만화방창한 시절을 음풍농월해서는 안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시인의 길이라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시인
2014-09-24
밤하늘에 초록별 촘촘한 날팔베개를 하고 널평상에 누워보세요모깃불은 쑥부쟁이 한 움큼만으로도어머니 젖가슴처럼 아늑해요천상열차분야지도와 나침반 챙기지 말아요어둠을 업고 가고자 함이 곧 길이잖아요별님에게도 혈액형이 있다고 했죠K형, M형, A형, O형,F형 그리고 J형용봉산 연하계곡 단풍별을 하객으로영월 별마로천문대에서 결혼식 올려요동화적 발상에 기초해 시상을 전개하는 이 시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상상을 통해 만날 수 있도록 장치하고 있다. 단풍별을 하객으로 삼는 공통적인 세계를 노래하면서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우주적 가치를 닮아가고 싶어하는 시인정신이 참한 언어와 상상력으로 짜여진 재미난 동화적인 시다.시인
2014-09-23
나 하나 꽃 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나 하나 물들어산이 달라지겠냐고도말하지말아라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결국 온 산이 활활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하나는 수적으로 적고 고립돼 있어서 외롭고 단독자이거나 소수자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시인은 하나는 결코 무기력한 존재적 한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스스로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확산되어가고 확장되어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꽃 하나 피어나지만 나중에 보면 온 풀밭에 꽃이 가득하듯이, 단풍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인의 목소리가 분명함을 느낀다.시인
2014-09-22
60년 전의 현장에 와서전쟁터의 총소리를 듣는다여기를 거쳐 간 사람인민군도 있고 중공군도 있고아군과 적군이 한데 어울려총을 겨누고 싸우던 곳좌익이 있고 우익이 있고너가 있고 내가 있는 이 현장에서60년을 싸우고도 아직도 싸우고 있다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지난날의 아픔, 그 비극의 현장에서 시인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분단의 아픔을 다시 느끼고 있다. 민족 동질성을 뼈저리게 느끼며 평생 분단 극복, 민족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을 그날을 기다려온 노 시인의 가슴이 먹먹하고 서러움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본다. 하루 빨리 민족화해, 민족통일의 그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시인
2014-09-19
새살이 돋아나는 통증인가부서진 초침과 분침들부드러운 상처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들로또 하나의 성좌를 이룬다수평선의 빛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상처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들은 비단 밤의 현상만이 아니다. 아직 채 뿜어져 나오지 못한 별들이 몸 안에 고여 시인의 몸엔 피고름진 운석 덩어리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끊임없이 고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저녁 빛을 뚫고 들어서는 또 하나의 성좌가 수평선의 빛들을 뚫고 평화와 평안을 주는 대상으로 다가서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리라.시인
2014-09-18
이제 옛집 빈터에는 산수유꽃만 사태지고 있다버즘처럼 썩어가는 모과와꽃바람에도 꿈쩍 않는 늙은 감나무 옆부르튼 살결의 산수유 가지 끝에차마 떨구지 못했던 지난해 붉은 산수유 열매할머니 쪼그라든 젖꼭지 같다서둘러 골짜기로 찾아드는 저녁 햇살 붉다덩그마니 댓돌 위에 앉은 흰 고무신 바람 그늘 속그네 타는 노란 꽃 귀신들풍장으로 뼈만 남은 허물어진 담벼락감싸 안은 초록 넝쿨은금이 간장독 안에서새벽이슬을 낳는다유년세계가 가진 순수성이 잘 나타난 이 시는 퇴락해가는 옛집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옛집처럼 우리의 추억이나 기억이 고스란히 갈무리되어져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옛집이라는 장소의 혼을 기억하고 그 흔적에 매달리는 이 시의 전반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어느듯 우리의 옛집 마당에 덩그러니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록 낡고 헐어서 볼품없지만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다.시인
2014-09-17
죽은 이들이 흘리고 간 머리카락이연밥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늪이었네붙들고 싶은 것이 남아겨울이 와도 연밥은 푸르렀고아기들의 손톱은 쉬이 짓물렀네들어가 쉴 수 없네 아씨여나는 푸른 연밥은 질색이라오들어가 쉬라는 게 아니라 그만 구멍을 나오라구요이름도 가져보지 못한 채 눈 가려져 던져진아기들이 꽃 필 차례예요어서요, 이 밥을 따야겠어요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를 여행한 시인의 눈에 비친 한 풍경을 통해 밥에 대한 시인 의식이 깊이있게 표현된 시다. 밥은 목숨과 살림의 도구다. 수많은 목숨들이 엎어져 죽어간 연밭의 수렁에서 피어난 푸른 연밥이야말로 그 엄청난 비극과 아픔을 뛰어넘는 죽음을 넘어서는 살림의 도구인 밥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푸르른 연밥은 살림을 위한 기약의 한 매체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시인
2014-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