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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코끼리

등록일 2014-09-26 02:01 게재일 2014-09-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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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호 승
온몸이 텅 빈

종이코끼리를 타고 길을 걷는다

아기부처님을 태우고 묵묵히

연등행렬을 따라가던 종이코끼리 한 마리

코가 잘려나간 채 종로 뒷골목에 버려져 있어

코 없는 종이코끼리를 타고 길을 걷는다

아직 남아 있는 살아가야할 날들을 위하여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새들이 집을 짓듯이

폭풍우가 가장 강하게 몰아치는 날

이 순간의 너와집 한 채 지어 불을 지핀다

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버려야 하므로

온몸이 텅 빈 흰 종이코끼리 한 마리 불태워

한줌 재를 뿌린다

인생이란 이처럼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리라. 미련없이 버리고 훌훌 떠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지난 것을 미련없이 버리고 집착하지 말일이다. 지난 시간들이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아니면 화려하고 융성했더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또 버림에 인색하지 말아야한다는 시인의 인식이 시 전체에 스며있다. 이러한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봄직한 아침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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