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길 녀
버즘처럼 썩어가는 모과와
꽃바람에도 꿈쩍 않는 늙은 감나무 옆
부르튼 살결의 산수유 가지 끝에
차마 떨구지 못했던 지난해 붉은 산수유 열매
할머니 쪼그라든 젖꼭지 같다
서둘러 골짜기로 찾아드는 저녁 햇살 붉다
덩그마니 댓돌 위에 앉은 흰 고무신 바람 그늘 속
그네 타는 노란 꽃 귀신들
풍장으로 뼈만 남은 허물어진 담벼락
감싸 안은 초록 넝쿨은
금이 간장독 안에서
새벽이슬을 낳는다
유년세계가 가진 순수성이 잘 나타난 이 시는 퇴락해가는 옛집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옛집처럼 우리의 추억이나 기억이 고스란히 갈무리되어져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옛집이라는 장소의 혼을 기억하고 그 흔적에 매달리는 이 시의 전반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어느듯 우리의 옛집 마당에 덩그러니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록 낡고 헐어서 볼품없지만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