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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치가 많은 가을

등록일 2014-10-06 02:01 게재일 2014-10-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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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 균
아내 심부름으로

두부 한 모 사러 가는 저녁이었다

큰길을 놔두고

아파트 뒤 공터 지나

나무들 사이 소로(小路)를 고개 숙여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좀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이 아름답고 좋은

풍경이 보이지 않냐고

이마와 가슴에 적황(赤黃)의

단풍을 불붙이고

그 아래 허리께는

아직 푸른 이파리들을 매달고 섰는 한 나무 아래

처음 보는 가을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

새치가 많은

시적 자아를 부른 것은 누구일까. 사람을 가을에 비유한 것일까 아니면 가을을 사람에 비유한 것일까. 어느 쪽으로 정하더라도 재미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다 어느 날 나무들 사이의 소로에서 가을을 만난 시인은 가을이 말 걸어오는 것을 마음으로 듣는다. 우리도 살아가느라 잊고 지냈던 계절을 갑작스레 느낄 때가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처음 보는 듯한 가을을 만날 때가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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