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 균
두부 한 모 사러 가는 저녁이었다
큰길을 놔두고
아파트 뒤 공터 지나
나무들 사이 소로(小路)를 고개 숙여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좀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이 아름답고 좋은
풍경이 보이지 않냐고
이마와 가슴에 적황(赤黃)의
단풍을 불붙이고
그 아래 허리께는
아직 푸른 이파리들을 매달고 섰는 한 나무 아래
처음 보는 가을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
새치가 많은
시적 자아를 부른 것은 누구일까. 사람을 가을에 비유한 것일까 아니면 가을을 사람에 비유한 것일까. 어느 쪽으로 정하더라도 재미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다 어느 날 나무들 사이의 소로에서 가을을 만난 시인은 가을이 말 걸어오는 것을 마음으로 듣는다. 우리도 살아가느라 잊고 지냈던 계절을 갑작스레 느낄 때가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처음 보는 듯한 가을을 만날 때가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