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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근혜 대통령과 파랑새

▲ 김진호 편집국장경남 거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을 전격 개편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에 김기춘(74) 전 법무장관을 임명해 논란이 한창이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서 드물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모두 지냈다. 또 15,16,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의 특보단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국회 법사위원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의 이력을 쌓았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도와 온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서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인연이 남다르다는 점에서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냈고, 검사 시절인 1974년에는 육영수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 사건을 조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이번에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대를 이은 `부녀 대통령`을 모두 보좌하는 진기록까지 남기게 됐다.이처럼 화려한 이력과 인연에도 불구하고 신임 비서실장을 둘러싼 숙덕공론이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한 인물이자 지난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장본인이란 점 때문이다. 당시 12월11일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당시 법무장관이던 김 신임 실장은 경찰청장과 안기부 지부장 등 부산지역 관계 기관장들과 모여 김영삼 당시 여당 후보의 선거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이것이 야당 정주영 후보측 선거운동원들에 도청돼 공개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가 남이가”란 건배사가 바로 그때 유행했던 말이다.이번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대한 야당들의 반응은 비판일색이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비서실장일지 모르나 우리 국민에게는 가장 끔찍한 인선”이라고 비판했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신임 김 비서실장이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이자 친박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 19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에 근무했다”고 지적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도 “지지부진한 국정조사에 대해 이제 대통령이 나서라는 야당들의 목소리를 이번 인사로 깔고 뭉개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박 대통령 역시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하면서 이런 뒷담화가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으로 내다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기용한 것은 그만큼 그를 신뢰한다는 이유 이외에 항상 가까이에서 해답을 찾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때문일 것이다.로마 네로황제의 스승이자 유명한 철학자였던 세네카가 로마의 시인인 루시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바라는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내 주변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통해 욕망을 해소하십시오. 소망을 이루게 하는 것들은 우리의 주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세네카 역시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파랑새가 행복을 뜻하게 된 데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1906년에 발표한 아동극 `파랑새`에서 비롯된다. 작품속 주인공인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기 위해 꿈속에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실망과 공포를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꿈에서 깬 다음 그토록 찾아 헤맸던 파랑새를 바로 자신들의 집안에서 찾게된다는 내용이다.국정원 댓글의혹 사건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로 정국이 어지러운 이 때, 박 대통령이 등용한 `파랑새`가 어떤 꿈을 이뤄낼 지 궁금하다.

2013-08-06

휴가 단상(斷想)

▲ 김진호 편집국장휴가철이 시작되자 마자 고속도로가 붐빈다. 휴가를 떠나는 승용차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문득 휴가란 게 쉰다는 뜻인데, 왜 모두들 힘겨운 여행길에 나서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실제로 누구라도 집을 떠나 여행을 하다보면 모든 일이 마땅치 않게 마련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가슴을 찌른 게 한 두번인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휴가여행을 떠난다. 직장에 매인 샐러리맨으로서 일상의 탈출을 꿈꾸지 않는 자가 어디 있으랴. 여행은 삶에 있어 재충전의 기회인 것은 틀림없다. 이국에서 만나는 이방인의 얼굴과 삶의 모습들, 비좁은 한반도를 벗어난 대륙 어느곳의 장대한 자연경관이나 오랜 역사의 유적에서 우리들은 불현듯 자신의 본 모습을 찾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어제의 생각을 비우고,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으로 자신을 채우고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가여행일 수 있다.어쨌든 느긋한 초가을 휴가를 꿈꾸는 필자는 진땀나고 분주한 해수욕장이나 기념품 판매에만 열 올리는 유명 관광지 답사는 될수록 사양한다. 가능하다면 이웃 나라가 자랑하는 장대한 자연경관이나 문화유산, 아님 삶의 현장이 살아있는 전통시장들을 둘러보는 테마여행이라면 좋겠다.어떤 여행을 떠났든 돌아오는 장면을 연상할 때면 나는 언제나 미당 서정주 시인이 `국화꽃옆에서`에서 노래한 풍경을 동경한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란 구절이 뇌리를 맴돈다. 젊은 시절의 격정과 치기가 사그라든, 수굿한 모습의 누님이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이란 얼마나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인가. 난 그 모습을 떠올릴 때 마다 내 삶의 현 주소를 새롭게 추스리게 되는 나를 확인하곤 한다.잘 알려진 넌센스 퀴즈 가운데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금이 뭘까요?” 정답은 “지금”이다. 흔히 생각하듯 황금이나 소금이 아니다. 황금이나 소금이 귀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살아가는 삶 전체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깨달음이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그런 이유로 나는 내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자산은 지금, 즉 시간이라고 믿는다. 소중한 만큼 이 자산을 쓰는 결정은 무척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휴가여행을 떠나 (지금) 시간을 쓴다는 결정 역시 쉽지 않다. 게다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소중한 지금(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부모에게든, 연인에게든, 나의 신에게든 그저 마음만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찾아가고, 내 맘을 그 앞에서 전하고, 그 앞에 머무르며 대화하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이의 자세다.설령 조금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주기 불가능한 경우는 없다. 월남전에서 먼저 떠난 전우에게 30년 넘게 찾아와 해마다 인사를 전하는 이도 있다.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깊은 어둠이 가시기 전 시각에 가장 맑은 정신으로 새벽기도를 간다. 부모를 사랑하는 이 땅의 수많은 자녀들이 전화로 안부를 전해도 될 터지만 해마다 추석과 설이면 민족 대이동에 합류해 부모님을 찾아간다. 휴일의 달콤한 소파를 포기하고 아이와 배드민턴을 치는 아빠, 잠을 덜 자고라도 아내의 수다를 들어주다가 결국에 꾸벅꾸벅 조는 남편, 그런 모습들이 사랑이다.최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경남 밀양에서 휴가를 보내며 주민들과 소통에 노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새벽이나 밤에도, 다들 노는 주말에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고, 일에 대한 열정이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2013-07-30

불발된 판도라의 상자

▲ 김진호 편집국장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다. 제우스신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여인인 판도라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뒤 호기심도 함께 주었다. 그런 후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절대로 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상자 하나를 주는 데, 이 상자가 `판도라의 상자`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준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상자를 열게 된다. 제우스는 이 상자 안에 온갖 불행의 씨앗을 넣어두었는데, 그 씨앗들이 죄다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판도라가 서둘러 상자 뚜껑을 덮었지만 상자안에 남은 것은 `희망`하나뿐이었다고 한다. 바로 그 `판도라의 상자`로 여겨졌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른바 `사초(史草) 실종`사건이다.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취지의 발언이 있었느냐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대화록 열람·공개 논란`을 거쳐 `사초(史草) 폐기 논란`으로까지 번졌다가 끝내 `사초 실종`으로 결론나는 분위기다.여야에서 선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위원들은 22일 오전 최종 검색에서 대화록 원본을 찾는데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황진하 조명철, 민주당 박남춘 전해철 의원 등 열람위원 4명은 이날 오전 성남 국가기록원을 나흘째 방문해 최종 검색작업을 실시했으나 끝내 대화록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여야가 NLL 포기취지 발언의 진실공방을 마무리짓자며 대화록 열람이라는 `극약처방`에 합의하며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지만 당초의 논란을 불식시키기는커녕 대화록이 증발된 것을 발견하는 당황스런 국면으로 번지고 말았다.당초 NLL 진실공방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데서 촉발됐다. 민주당은 `허위사실`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정 의원을 포함해 관련 발언을 한 의원들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지난 2월 이들 전원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민주당은 이에 반발해 항고했으나 검찰이 이를 기각하자 재항고를 포기하면서`NLL 공방`은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하지만 6월 17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NLL 포기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주장했고, 이에 맞대응해 6월 20일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원의 자료 열람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고 공개해 다시 불붙었다. 결국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6월 21일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녹취자료 등을 전면 공개할 것을 주장했다.국정원은 사흘 뒤인 24일 2급 비밀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전격 공개하면서 NLL 공방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그러나 국정원이 공개한 전문에는 노 전 대통령이 “나는 (김정일) 위원장님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뀌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이 담겨 있었을뿐 `NLL 포기`라는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노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회의록 열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고, 대화록은 증발됐다.최근 여론조사에서 60대와 대구·경북, 새누리당 지지층을 제외한 다른 계층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발언을 했다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야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어한 이유는 뭘까. 인위적인 `역사 들여다보기`가 될 대화록 열람은 분란만 자초할 뿐이다. 정치를 위한 정치는 신물나고, 비판을 위한 비판은 시끄럽기만 하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정치문화를 목도할 그 날은 언제쯤일까.

2013-07-23

귀태(鬼胎) 논란을 보며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2010년 미국의 어느 주에서 오바마라고 이름이 적힌 검정색 인형이 3층짜리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발견돼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백악관 경호실에서 출동해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느라 현장조사를 벌였다. 지난 해 할로윈때는 미국의 어떤 사람이 흑인 인형을 장식품이라며 처마에 매달았다가 백악관 경호실이 출동하는 소란이 있었다. 인형의 얼굴이 오바마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경호실은 현직 대통령을 위해할 의사가 있었던 것인지 확인했고, 그 인형을 매달았던 사람은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를 해야했다.노무현 전 대통령때는 세간에 나도는`놈현스럽다`는 말이 국가원수 모독이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으로 쓰인 이 단어는 2003년 이라크전 파병에 실망한 노무현 반대파에 의해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2008년, 이른바 촛불시위때는 일부 부모들이 어린 자녀까지 거리에 데리고 나와 현직 대통령을 `쥐××`라 부르며 조롱하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대통령을 욕하는 구호를 외치자 주위 어른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쳤다는 보도가 나와 뜻있는 이들의 탄식을 샀다.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막말 역시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느 민중화가라는 사람이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낳는 출산장면을 그린 뒤 “예술”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혐오감을 느꼈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했고, 실제로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최근에는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鬼胎)의 후손`으로 표현해 시끄럽다. 귀태를 의역하면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니 인신공격성이요, 저주에 가까운 막말이다. 당사자인 홍 원내대변인이 책임을 지고 당직을 전격 사퇴하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대변인을 통해 유감의 뜻을 밝힘에 따라 가라앉는 듯 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친노핵심인 이해찬 전 대표가 “옛날 중앙정보부를 누가 만들었나. 박정희가 누구이고, 누구한테 죽었나”등의 발언을 하면서 막말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논란을 보면서 민주당이 여당과 정부를 상대로 `좋은 경찰·나쁜 경찰 전략`(good cop/bad cop)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두 사람의 형사가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의 역할을 맡아 효과적으로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심리적 심문기법이다. 먼저 나쁜 경찰의 임무를 띤 형사가 용의자에게 욕설과 함께 윽박지르면 좋은 경찰은 나쁜 경찰을 말리는 척 하며 젊은 용의자의 편을 든다. 그러다가 좋은 형사가 용의자를 향해 달콤한 말로 달랜다. 인지적 대조효과 때문에 욕설을 퍼붓던 나쁜 경찰과 비교해 좋은 경찰이 합리적이고 친절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또 용의자는 좋은 경찰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보답을 해야한다는 심리적 압력을 받게 된다. 다만 홍익표 의원의 경우 `나쁜 경찰`로서 을러대다가 너무 센 역풍을 맞은 것은 아닐까. 김한길 대표는 수습용 사과멘트 후 “이제는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차례”라고 요구하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권위주의 정권아래 대통령을 비판하는 행위 자체가 용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귄위주의가 사라진 지금 대통령에 대해 저주의 막말을 퍼붓는 것은 조금도 용감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잘한다”고 칭찬하는 이들이 용감하게 느껴지는 세상이 됐다.어쨌든 국가원수에 대해 야당이 명예훼손에 가까운 막말을 일삼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은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풍토는 국민들이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이 당연히 받아야 할 존경과 사랑은 현직 대통령 자신ㅇ 챙겨야 할 몫이다.

2013-07-16

초심을 지키는 법

▲ 김진호 편집국장정치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 아래와 정치 너머의 변화가 없다면 정치도 더는 바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직업정치를 떠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바로 정치인 유시민이다. 그가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을 통해 지식인 유시민으로 돌아왔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핵심적인 네가지 요소를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로 정리했다. 그는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그러면서 그는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연대라고 부르고, 연대가 이뤄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했다. 그는 사회적 연대에 대한 욕망은 일, 놀이, 사랑에 대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인간에게 준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연대라고 불렀다.유시민이 던진 `어떻게 살 것인가`란 화두는 필자에게도 작지않은 울림을 던져주었다. 필자 역시 언론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 언론에 뛰어 들었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더구나 필자 역시 벌써 25년이 넘도록 언론에 종사하면서도 아직도 언론의 본령을 지키는 일이 어떤 것일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모양새니 동병상련의 정이 인다. 입사당시의 초심을 지키는 일이 이처럼 힘겨울 지 알지 못했다. 더구나 편집국장으로서 신문편집을 책임지게 되면서부터 고민은 더 깊어졌다. 매일 기자들이 취재해온 기사들을 들춰보며 어떤 기사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 기사일까 자문해본다.사실 이전까지 만들던 대로 신문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기존 신문이 매일같이 쏟아내는 관주도의 홍보성 기사와 약간의 읽을 거리 기사들로 채울 것이었다면 그리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리 없다. 하지만 초심을 지키려니 `세상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속 잣대가 걸려 쉽지않다.그러려면 그런 잣대로 발굴한, 남다른 기사가 필요하다. 사건 사고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진솔한 뒷얘기들, 소외된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는 따뜻한 온정의 손길들,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 새로운 움직임이나 사회개혁운동에 대한 얘기, 우리 아이들의 밥상머리 교육을 대신할 만한 교육적인 소재 등을 발굴·보도해야 겠다는 꿈과 희망이 가슴 가득하다. 정말로 어떤 기사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어떤 신문이어야 성공한 신문일까 하는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그러다 미국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랄프 발도 에머슨이 생을 마감하면서 성공이란 무엇일까.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 정의를 내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이곳에 살아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진정한 성공을 말하는 이 구절에서 주체를 사람이 아닌 신문으로 대입해보았다. 내 초심을 지키는 법이 그 안에 있었다.

2013-07-09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 김진호 편집국장나이 마흔이 넘은 필자가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을 읽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새로 읽는 손자병법의 정신에 들어맞는 지 어떤 지 가늠해 보는 게 제법 흥미롭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시립승마장 건립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도 그랬다. 양덕동 주민들이 새누리당 서울당사 상경 시위와 야간 촛불집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포항시는 강경모드였다. 7월 완공을 앞두고 55억여원을 들인 승마장을 폐쇄하라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이냐며 말이다. 그러다가 주민들이 초등학교 자녀들의 등교거부로 맞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1천500여명의 학생 가운데 1천여명의 학생이 등교거부를 했으니 지역사회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불도저라 할만한 추진력을 가진 박승호 포항시장인들 별수 있을 리 없다. 박 시장은 결국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마무리공사가 한창인 승마장 공사를 잠정중단한다고 밝힌 뒤 뒤늦게 주민설득 작업에 나섰다. 지난 28일에는 포항MBC 시사토론회에 참석했고, 승마장 건립 반대 주민 시위 현장도 직접 찾아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군의 전력이 열세일 때 손자는 고민하지 말고 도망가라고 했다. 병법 36계 최후의 계책인 주위상(走爲上), 즉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 했다. 꼬리 내려야 마땅한 상황에서 남의 눈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용기다. 박 시장의 36계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시가 주도하는 사업과 관련한 민원을 대화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 시장은 “승마공원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국민체육시설이고, 친환경적으로 건설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걱정하는 악취 등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타지역 승마시설 견학 등 지역 주민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설득하고 있다.이런 와중에 포항시의회는 포항시 행정감사에서 시의 행태를 질타하고 나섰다. 특히 시의회가 승마장 건립안을 동의하면서 반드시 충분한 주민설명회 절차를 거쳐 주민 동의를 얻고 난 뒤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단서도 붙였지만, 집행부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 의회로서는 당연한 지적이지만 의회가 진작 집행부의 독주를 견제했다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은 어쩔 것인가. 시 의회도 때늦은 남탓일 뿐, 그리 잘한 것은 없는 셈이다.박승호 시장은 재선시장으로서 의욕적으로 공약사업을 추진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포항운하 프로젝트이고, 2020년까지 완공될 포항-영덕-삼척, 포항-울산-부산간 고속도로와 동해남부선(울산-포항)과 동해중부선(포항-삼척), 영일만항 인입철도 등 환동해권 철도건설사업, 그리고 영일만대교 건설사업 등이다. 2014년말에 개통될 포항~서울을 잇는 KTX 직결선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강한 추진력은 자칫 소통 부재나 독선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래선지 포항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주민이나 관계자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게 적지않다. 승마장 외에도 동빈내항 크루즈선 사업이나 효자동 빗물펌프장 등도 논란이 되고 있다.진퇴양난에 빠진 포항시를 보면서 “가장 좋은 승리는 좋게 타일러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란 말이 와 닿았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걸 최고라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라 한다`는 것이다. 구경꾼 입장에서는 싱거운 싸움일 수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실속있다. 어떤 일이든 서로 뜻대로 안되기 때문에 싸우게 마련이다. 과연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를 보아야 하나 피해야 하나. 해법은 상대와 나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게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의 정신이다. 서로를 더 잘 헤아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찾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2013-07-02

생명의 다리를 아시나요?

▲ 김진호 편집국장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서 한강을 지나는 다리는 모두 3개다. 밤섬을 지나 마포를 잇는 서강대교, 마포 공덕동으로 향하는 마포대교, 용산전자상가로 가는 원효대교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마포대교는 지난 2008년부터 5년간 85명이나 자살시도를 해 일명 `자살대교`로 불린다. 그러던 마포대교에 지난해 9월 새 이름이 생겼다. 바로 `생명의 다리`다. 세계 최초의 스토리텔링 `생명의 다리`는 국내 언론 및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미국, 일본 등 해외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는 등 위로와 희망을 주는 힐링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마포대교 난간에는 이런 문구들이 줄지어 쓰여있다.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세월 참 빠르다. 그치? 아무튼 다 그런거지 뭐.` `생각도 너무 많으면 안좋아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까.` `자, 당신의 얘기 한번, 해봐요. 어떤 말이라도 괜찮으니까 들어줄게.`죽을 생각을 하고 다리에 오른 이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이런 글들이 이어진다. 그런 뒤 다리 중간에는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119 생명의 전화도 설치돼 있다. 전화기를 지나면 다시 글이 시작된다. `다음엔 꼭 같이 걸어요.` `아직,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그… 나이들어봐 젊었을 때 고민같은 거 암것도 아니여` 등 다시 설득이 시작되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아이디어를 내고 서울시가 구체화한 `생명의 다리`프로젝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롭게 보행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살 낌새가 보이면 다리에 각종 조명과 문자메시지를 띄워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구상으로 발전하고 있다.그 생명의 다리를 서울시가 26일 새롭게 단장해 공개한다고 한다. 생명의 다리에 삽입할 새 문구는 8천여명의 시민들이 응모한 글을 심사해 48명의 당첨자를 선정했다고 했다. 새 메시지로는 단문 및 에피소드, 유머글을 포함한 희망메시지 분야 35명, 가족이나 친구, 연인간의 일상과 사랑을 담은 이미지 분야 13명으로 구성됐다. `바람 참 좋다` `조금 늦는다고 속상해 하지마..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래` `오늘은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고 당신은 아이들이 손을 쓰다듬으며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당신의 인생을` `힘들 때도 일주일을 굶었을 때도 눈물이 안 났는데 일주일을 굶고 누가 고기를 사줬는데 그때 눈물 나더라 고기 집이 천국인줄 알았다` 등이 선정됐다고 한다. 시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문구와 이미지는 응모자의 이름과 함께 다리에 새겨질 예정이라니, 맘이 울적하거나 삶이 고달플 때면 한번쯤 유유자적 거닐어 봄직하다.이렇든 저렇든 누군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할 때면 필자는 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떠올리곤 한다.“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 시인은 일본 효고의 히메이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상과를 중퇴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혹독한 고문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실종됐다가 행려병자 시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평생 고문 후유증과 가난, 병마에 시달렸지만 어린애와 같은 순수함과 욕심없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시를 썼다. 특히 이 시는 누구보다 힘겨웠을 자신의 삶을 “아름다웠다”고 노래해 놀랍다. 우리 모두 삶이 다하는 그 날, 세상 소풍 끝내고 “아름다웠다”고 한 마디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삶인가?

2013-06-25

자제와 용서의 힘

▲ 김진호 편집국장최근 남북대화 무산으로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북미회담을 제의해 남북문제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통해 최근 남북대화 무산과 북한의 북미회담제의 등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북핵현안 등을 놓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떻든 남북문제는 끝없이 순환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의 함정속에 빠진 양상이다. 그러나 멀지않은 역사속에서도 남북문제를 해결할 지혜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1975년, 남부 베트남과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잇따라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간 직후 공산화 위기에 빠진 태국정부의 대처사례다. 서양열강들은 도미노이론에 의해 태국이 무너질 차례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수많은 태국 대학생들이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태국 북동부의 정글로 몰려갔다. 무기는 태국 국경밖에서 공급됐고, 훈련도 그곳에서 이뤄졌다. 지역 주민들도 그들에게 음식과 필수품들을 자발적으로 제공했다.그들에 맞서 태국 군부와 정부는 세 가지 전략을 폈다. 첫번째는 `자제`였다. 공산주의자들의 활동기지가 어느 곳에 있는 지 모든 병사가 알고 있어도 군부는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용서`였다. 내란시기 동안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무조건적 사면을 실시했다. 공산주의 반란군 중 누구라도 그때까지의 주장을 버리고 전향하기를 원하면 무기를 버리고 고향이나 대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그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세번째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었다. 이 기간 동안 공산 게릴라지역에는 새 도로가 건설되고, 낡은 길들이 재포장됐다. 시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확물을 도시에 내다팔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태국왕이 직접 나서서 수백개의 작은 저수지들과 관개수로들을 건설하고 그 비용을 댔다. 그 결과 북동부 지역의 농부들은 해마다 쌀농사를 이모작할 수 있었다. 외딴 마을까지 전기가 들어가고, 학교와 진료소가 세워졌다. 태국의 가장 빈곤한 지역이 정부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사람들의 형편이 피었다.당시 태국 정부군 순찰병들이 한 얘기는 들어보자.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을 겨눌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의 형제인 태국인들입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거나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가다가 나와 마주치면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새로 산 손목시계를 보여주거나, 신형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사회주의자의 길을 포기합니다.”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정부에 대해 화가 나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정부측의 인내와 자제 덕분에 분노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사면을 통한 용서는 그들이 안전하고 명예롭게 사회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줬다. 개발을 통한 문제해결은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공산주의자들도 밀림으로 뒤덮인 산골짜기에서 험난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회의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총을 버리고, 그들의 마을로, 대학으로 돌아갔다. 1980년대초에는 이미 반란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됐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반란군 지도자들에 대한 태국정부의 처우였다. 그들은 처벌받지도, 추방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태국 정부의 주요 요직이 제공됐다. 정부는 그들의 지도력, 힘든 환경을 견디는 능력,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높이 샀다. 그토록 용기있고 헌신적인 젊은이들을 쓸모없이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이같은 자제와 용서의 힘을, 그리고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전략이 허리잘린 한반도에 적용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13-06-18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6일, 갑작스런 북한의 남북당국간 회담 제의 뉴스를 보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는 현충일인지라 별다른 핫이슈가 없는 가운데 나온 충격적인 뉴스에 `갑자기 또 왜 저러나?`하는 의구심이 구름처럼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닌 `원칙과 신뢰`라는 정치적 자산, 그리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앞세운 대북 강경책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었다.어떻든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북측의 도발로 경색국면에 빠졌던 남북관계가 지난 2011년 2월 남북군사 실무회담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 새 국면을 맞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남북한은 10일 새벽 판문점에서 끝난 실무접촉을 통해 12·13일 1박2일간 서울에서 `남북당국회담`을 열기로 함에 따라 급격한 해빙무드로 돌아섰다.그렇다 해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리게 된 이번 고위급 남북회담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비롯한 남북간 현안 타개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실제로 그동안 남북관계는 변화무쌍하게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많은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관광이 그랬고, 최근에는 개성공단 문제가 그랬다. 발전적인 변화가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꼬여온 남북문제를 시원하게 풀 수 있는 묘수는 없는 것일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이뤄 다함께 오손도손 살아갈 날은 없는걸까.일제치하에서 독립한 후 남북으로 갈라선지 반세기 넘는 기간동안 서로 다른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각각의 체제를 추스려 온 남북한이 이제와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쉽지않다.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으며,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는 이 시점에서 남북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묘수를 찾아보자. 우리처럼 전쟁의 와중에 나라가 쪼개졌던, 독일의 베를린왕궁 복원운동에서의 얘기다. 베를린왕궁은 프로이센 제국시대를 대표하는 궁이었다. 2차대전때 연합군은 이 건물에 폭격을 퍼부어 처참한 폐허로 만들었고, 동독정부는 흔적마저 지워버렸다. 1976년에는 그 자리에 동독 정부청사를 지어 공화국궁전이라 이름붙였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베를린궁을 복원하자는 논쟁이 일어났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할 때의 논쟁같은 것이었다. 농기구회사를 운영하던 빌헬름 폰 보딘이란 한 독일인이 1991년 베를린왕궁복원협회를 결성했고, 점차 독일사회에 큰 이슈가 됐다.2002년 독일의회는 마침내 베를린왕국 복원사업에 손을 들어주었다. 복원사업은 국가가 아닌 민간 차원의 베를린왕국복원협회가 맡았다. 복원에는 8천만유로(한화 약 1천200억원)가 필요하고, 주로 민간인 기부로 이뤄진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 협회 총괄이사 보딘은 그 많은 재원을 과연 기부금으로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베를린 왕국 복원 지지율이 20년전에는 5%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5%까지 올라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우리 협회의 모토는 생떽쥐뻬리의 다음과 같은 말 한 마디에 들어있습니다.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그렇다.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 왕궁은 그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정통성에 대한 상징이기에 소중하고,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베를린왕궁을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이 오래 고착된 남북분단을 해결하는 해법 역시 마찬가지다. 바로 통일의 염원을 더욱 키우는 것이다. 모든 해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에 있다.

2013-06-11

정치판에 부는 새바람

▲ 김진호 편집국장정치판에 새 바람이 불고있다. 계파정치를 근간으로 보수와 진보의 정치로 한국정치를 가름해온 정치권이 앞다퉈 변화와 혁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새 바람은 여야를 가리지않고 정치판의 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먼저 야당의 변화가 눈에 띈다. 김한길 대표체제가 출범 한달을 맞은 민주당은 요즘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연패한 당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밖으로는 안철수 바람을 차단해 제1야당의 위상을 세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김 대표는 취임 후 당직 인선 등을 통해 내부 화합과 결속에 속도를 내면서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그의 모토는 “민주당의 영혼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꿔야 살 수 있다”는 것. 경제민주화를 위해 `을(乙)을 위한 민주당`을 주창하면서 정책정당으로 변신도 시도하고, 대여관계도 강경일변도에서 벗어나 유연함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사건으로 드러난 청와대의 위기관리시스템 문제에 대해선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4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예산안 처리에 협조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북문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들며 비판하는 북한에 대해 “대한민국의 국민을 모욕한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비판한 것도 종전과는 달라진 민주당의 모습이다.4월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한 안철수 의원도 정치판에 새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소속 상임위인 보건복지위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미니 간담회`를 열어 핵심 현안을 챙기는 한편 장애인, 노인, 보육 분야 간담회에도 적극 참여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안 의원은 조만간 세력화를 통해 오는 10월 있을 재·보선에서 민주당과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기존의 정치엘리트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열망을 안 의원이 담아낸다면 야권의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지만 단순히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대안 갈구가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민주당이 환골탈태하는 정도에 따라, 안철수 정치인 개인의 부침에 따라 야권의 변화는 가변적이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야권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물론 변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야권이 갈 길은 아직 멀다. 그게 현실이다. 민주당은 당직 인선을 놓고`돌려막기 인사`논란이 불거졌다. 새로운 인물 영입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 고육지책으로 지명직 최고위원 2명을 당내 인사로 채웠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병폐인 계파정치 청산이나 계파간 갈등 해소 역시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달 31일 의원워크숍에서 “더디긴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사람으로 치면 화장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정치판에 새 바람을 일으킬 실험적인 움직임이 화제다. 바로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협동조합 모델이 정치 분야에 출현했다. 새로운 시도에 나선 인물은 여당의 책사로 꼽혀온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그는 지난달 중순 서울시로부터 정치 소비자 협동조합 `울림`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울림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협동조합과 달리 시민의 정치적 주권을 찾아가기 위한 새로운 실험으로서 정치협동조합이라고 했다. 평범한 40대와 50대 초반 직장인이 주축으로, 전국적으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1만원을 내면 울림의 조합원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울림은 한국정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아카데미 운영과 정치적 담론을 만드는 캠페인도 할 수 있고, 정치인의 약속이 이행되는지 추적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정치인들의 말잔치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정치권의 새 바람은 그저 싱그럽기만 하다. 이런 새 바람들이 이 땅의 정치를 쿨하게, 산뜻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게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2013-06-04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 김진호 편집국장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침탈 야욕, 중국의 동북공정 움직임 등을 보면서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새기게되는 요즘이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역사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학교현장에서는 한국사 교육의 파행이 심각하다. 한국사 과목의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서울대만 필수로 지정해 이 대학을 지원하려는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 1학년 때 집중이수제로 한국사 수업을 마친 뒤로는 아예 책을 덮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모 언론사가 학교정보 공시사이트인 학교알리미에 올라온 서울시내 일반계고와 자율형 사립·공립고 218개교(자료가 공시되지 않은 10개교 제외)의 2013학년도 교육과정 운영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178개교(81.7%)가 두 학기에, 40개교(18.3%)는 한 학기에 한국사를 몰아서 편성했다고 한다. 특히 197개교(90.4%)는 1학년 때 한국사 수업을 모두 끝내는 파행적인 한국사 교육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이러다보니 우리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는 한마디로 형편없다. 고교생들에게 `4·19(혁명)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아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들어 봤지만 정확히 모른다” “4·19는 박정희, 5·18은 전두환 때가 아니냐”고 답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3·1절과 8·15광복절을 `빨간 날(휴일)`이나 `노는 날`로 아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는 게 학생들의 얘기다.아이돌 사이에 역사공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화제다. 계기는 이른바 `민주화` 발언 논란이 일면서부터다. 4인조 걸그룹 `시크릿`의 전효성(24)은 14일 SBS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았다. 민주화를 `획일화시키다` `억압하다`라는 뜻으로 잘못 사용한 것. 전효성은 “민주화의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잘못 사용해 죄송하다”며 세 번이나 공식 사과했지만 `어떻게 민주화의 뜻을 모를 수 있느냐`며 여론이 더욱 싸늘해졌다고 한다.더구나 지난 11, 18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한국사 TV 특강`편은 아이돌의 한심한 한국사 실력을 드러내면서 이들의 한국사 열공 붐을 부추겼다. 골든벨 형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에서 아이돌들은 △안중근 의사와 관련 있는 독립운동단체(신민회)를 묻는 질문에 `칠공주파`라고 답했고, △일본에 한국 문물을 전파한 조선 외교사절단(조선통신사)을 `조선무역팀`이라고 답해 망신을 당했다. 인피니트 멤버 이성열은 `정신`이라고 답을 적은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마지막 단어가 가려졌지만 사람들은 `정신대`를 떠올리며 어이없어 했다.신세대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는 기성세대들에게 우려를 던져준다. 역사에는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란 게시물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선생님과 학생의 대화다. 먼저 학생이 “역사는 왜 배우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선생님은 꿀밤을 때리며 “배워야지.”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학생이 “아, 왜 때려요?”라고 항의했다. 선생님은 다시 꿀밤을 때리려다 피하자 이렇게 말했다. “아쭈, 이것봐라. 피했네.”학생은 대답은 않고 꿀밤만 때리려는 선생님을 째려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 왜 자꾸 때려요? 역사는 왜 배우냐니까요.” 그때서야 비로소 선생님이 답한다. “네가 나한테 맞았던 걸 기억하지 못했다면 두 번째로 때렸을 때 피할 수 있었을까?”그렇다. 이 짧은 대화속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깨우침이 들어있다. 이 나라가 겪은 수난의 역사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공부는 꼭 필요하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위기를 피할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2013-05-28

`위기의 부부` 탈출법

▲ 김진호 편집국장부부의 날을 맞아 결혼과 부부생활에 대한 상념들이 어지럽다. 지난 50년 동안 결혼비율이 낮아지고, 결혼연령도 점차 늦어지고 있다. 결혼은 가혹한 관습이고, 자유로운 삶을 구속하는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서 비롯된 현상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부부 두쌍 중 한쌍이 이혼할 만큼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다. 결혼전 계약동거를 하는 커플이 늘고, 미혼모 역시 늘고 있다. 결혼제도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결혼은 가장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삶의 형태란 데 이설이 없다. 스테파니 쿤츠는 `결혼의 역사`에서 “오늘날 결혼한 부부는 동거하는 커플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경기후퇴나 심리적 우울증에도 더 잘 견딘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어떤 사람은 결혼이 파탄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지 궁금해진다. 이 문제는 어떤 이를 배우자로 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결혼적령기의 딸을 둔 내게도 딸이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 또 어떻게 결혼생활을 영위해나가야 할까` 하는 문제는 고민스런 화두였다. 그러던 중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인간생태학의 권위자인 코넬 대학교 칼 필레머 교수가 쓴 책 `내가 알고있는 걸 당신도 알게된다면`에서 몇 가지 도움말을 찾았다. 칼 교수는 5년에 걸쳐 1천명이 넘는 70세 이상 `인생의 산증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육성인터뷰를 정리해 이 책을 엮었다.먼저 핵심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상대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문제든, 자녀교육에 대한 문제든 근본적인 생각에서 공감하는 상대와 결혼해야 한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복잡한 문제에 부딪힐 확률이 높아진다. 주의할 것은 변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 상대라면 결혼 전 숙고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둘째, 제일 친한 친구와 결혼하라는 권고다.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은 “우린 연인으로서는 좋았지만 친구가 되는 법은 알지 못했어요.”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부부는 결혼생활을 통해 처음 서로에게 끌리던 설렘과 온통 마음을 사로잡던 성적 욕망이 차츰 사그라지고,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로 변한다. 상대에게 친구가 되어주면 자연히 서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셋째,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항상 100%를 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자유롭게 줄 수 있어야지 50퍼센트를 주었으니 50퍼센트를 받아야 한다고 계산하면 안된다고 했다. 내가 베풀어야 할 때도 있고, 상대가 베풀어야 할 때도 있다. 넷째, 결혼생활에서 싸움은 피할 수 없는 만큼 싸우는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 또 싸웠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라서 다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만나 한집에 사는 게 결혼이다. 싸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한다. `뭐 어때, 고작 싸웠을 뿐인데.`하고 말이다.다섯째, 결혼을 단순히 서로 사랑하는 두사람의 결합으로만 보지 않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함께 하기로 한 서약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끝으로 하나 더 보탠다면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부부생활에 중요하다며 내게 당부하신 교훈으로, “화난 채 잠자리에 들지말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말다툼을 한 후라도 부부가 가장 친밀하게 지내는 공간에서까지 실망, 적개심, 분노를 경험하면 부부사이의 골은 깊어지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되면 싸움을 멈춰야 한다.이에 덧붙여 부부의 날을 맞은 모든 이들에게 서로를 위한 보석같은 팁을 소개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떻게 하면 아내 혹은 남편의 하루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부부관계는 물론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세상 부부들이여, 서로에게 선물같은 하루를 선사하자.

2013-05-21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 김진호 논설위원지난 주에는 한국신문협회 주최로 전국의 주요 일간신문사 직원 30여명과 함께 3박4일간 중국 서안을 둘러보고 돌아올 기회가 있었다. 모처럼의 외유인지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접했다. 우리 일행의 반응이 특이했다. 거의 예외없이 “결국 사고 한번 크게 쳤네”였다. 일행 대부분이 언젠가 사고칠 줄 알고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칼럼니스트로서 특유의 독설과 극우편향적인 논평으로 언론의 우려를 사왔다. 특히 그는 포항 남·울릉 지역구의 무소속 김형태 의원의 새누리당 탈당과 관련, “요즘 대한민국 국민은 눈만 뜨면 성폭행, 성추행하는 `미친놈`들에 관한 뉴스 때문에 스트레스 정말 팍팍 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정말 많은 국민들이 스트레스 팍팍 받고있으니 탁월한 예언(?)이라고 해야 할까.그나마 치솟아오르는 분기를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첫 출근한 날, 책상위에 놓인 편지 한 통 덕분이었다. 지난 달말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의 문상에 대한 답례인사가 한 통의 편지로 와 있었다.“○○○ 아우님 덕분에 어머니 양지 바른 곳에 편안하게 잘 모시고 왔습니다.// 평소 늘 건강하셨던 어머니셨기에/ 앞으로도 다른 걱정없이 가까이 모시며/ 귀한 가르침 받들어 든든해 할 것으로 믿었는 데,/ 이제 그 자애롭던 목소리 더 들을 수 없고,/ 참 따뜻했던 어머니 손, 더 이상 느낄 수 없어/ 깊은 슬픔속에 이런 저런 후회가 쌓입니다.// 이렇듯 사랑하고 존경했던 어머니를 여의고,/ 어찌할 바 몰라 넋놓은 채 빈소를 지키고 있을 때/ 아우님께서 찾아주셔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고마움 두고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선배의 마음에 가득한, 어머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선배는 좀 더 곁에 계시지 않고 세상을 떠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짧은 글로 토해내며, 후배인 내게 깍듯이 인사를 전했다. 편지를 읽으며, 2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어머님께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당시의 애통한 심정이 가슴을 쳤다.옛말에 악수귀천(樂殊貴賤) 예별존비(禮別尊卑)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예와 악이 꼭 필요하며, 관혼상제에 있어서 예는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임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 전통의 예법은 그대로 따라 지키기엔 너무 엄하고,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편에서 우리 전통 상례(喪禮)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부친이 돌아갔을 때 외사촌형이 문상와 빈소에서 3분 가량 곡을 한 뒤 영정에 재배를 하고, 상주에게 큰 절을 한 연후 “얼마나 망극하십니까”하고 인사했을 때 무어라 답해야 할 지 몰랐다고 했다. 삼우제를 지낸 뒤 형님께 물었더니 문상때 인사말로 그 말외에 “당고(當故) 당한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하면 상주는 “제 말씀이 무슨 말씀이겠습니까”하고 답한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풀이하면 “돌아가셨다는 말이 웬 말씀입니까”하면 “저는 죄인이라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라는 뜻이란다.`대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바르게 된다. 집안이 바르게 된 후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것이다. 예로써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지 못한 자에게 주어진 분에 넘치는 관직은 자신은 물론 나라에도 큰 폐해를 끼칠 뿐이다. 많은 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변인을 중용한 박 대통령의 때늦은 사과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기 때문이다.

2013-05-14

경제민주화가 필요한 이유

▲ 김진호 논설위원우리나라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1987년 개정된 헌법에 도입된 제119조 2항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뜻하는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확고히 자리잡은 것은 지난 대선부터다.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중도나 진보성향의 국민들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였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진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현재 국회에서 처리를 앞둔 경제민주화 주요법안은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적발시 명확한 증거없어도 처벌이 가능토록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재벌 소유 금융회사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강화를 규정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 금산분리 원칙을 제2금융권에 확대적용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유해물질 배출 기업에 매출의 10% 과징금 부과를 규정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 등이다.이중 대기업 총수일가 지분이 30%이상인 계열사에서 부당내부거래가 적발되면 총수가 관여하거나 지시한 것으로 추정하고 규제를 가하는 `총수 지분 30% 룰`은 이미 공정거래위가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혀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후 경제민주화 정책은 재계의 반발에 부딪쳐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내에서도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이 흘러나오고 있다.이 와중에 재벌 총수 일가들이 비상장 계열사에서 거액의 배당잔치를 벌인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일파만파가 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은 2009년 이후 매년 약 100억원씩 4년간 390억원을 챙겼으며, 허창수 회장의 5촌인 허서홍 씨 등 GS그룹 4세들과 친인척들도 삼양인터내셔날 등 비상장사 4곳에서 58억원을 배당받았다. 해운·항공화물 운송업체인 범한판토스 대주주인 조원희 회장과 구본호 씨가 받은 배당금도 97억원에 달했다. 구 씨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 동생이며, 범한판토스의 매출 상당 부분은 LG그룹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아이콘트롤스, 아이서비스, 아이앤콘스 등 비상장사 3곳에서 14억원을 배당받았으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성이씨가 고문으로 있는 이노션은 정 씨에게 29억원을 배당했다. 정 회장의 사돈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삼표로부터 당기순이익(24억원)의 153.4%에 해당하는 37억원을 배당받았다. 파격적일 뿐 아니라 도를 넘는 배당이다. 또 정몽구 회장과 사돈 관계인 신용인 삼우 대표는 삼우로부터 19억5천만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삼우의 배당성향 역시 49.6%로 순이익의 거의 절반을 배당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자동차용 강판 등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인 삼우는 현대차 그룹의 사돈기업이 된 지 10여년만에 매출액이 50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이처럼 재벌 총수 일가들에 대한 비상장계열사의 고액배당은 일감 몰아주기로 상장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비상장사로 옮겨 챙기는 것과 다름없다.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피땀을 착복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말이 없는 것이다.앞으로 논의해야 할 경제민주화 법안 가운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금산 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재벌 총수의 횡령 및 배임에 대한 형량 강화 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문제의 해법을 경제 민주화에서 찾고 있는 것은 이 사회에 만연한 경제 양극화가 경제 권력의 불평등에서 초래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상장계열사 고액배당은 바로 그 증거가 되고 있다.

2013-05-07

불 꺼져가는 개성공단

▲ 김진호 논설위원개성공단에 불이 꺼져가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정상회담 합의사항으로, 남북간 교류와 화해의 장이자 대북햇볕정책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29일 남한측 인원 철수 결정으로 잠정폐쇄됐다.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현대아산과 북측간에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체결로 시작됐다. 2003년 6월 착공된 개성공단에서는 2004년 12월 첫 제품이 생산됐으며, 당시 255명 수준이던 북측 근로자 수는 2006년 11월 1만명을 돌파한 뒤 지난해말 현재 5만3천여명이 근무해왔다. 수년동안 빠르게 성장하던 개성공단은 남북 갈등 속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은 2008년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우리측 인원과 통행 시간·인원을 제한하는 12·1 조치를 발표했고, 2009년 3월에는 `키 리졸브` 한미연합연습에 반발해 3차례 통행을 차단해 긴장이 높아지기도 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직후 신규투자를 금지한 정부의 5·24 조치에 더해 3통(상시통행, 인터넷·무선전화, 선별통관) 문제 해결 지연, 노동력 부족 등으로 개성공단 개발은 당초 계획보다 정체돼 왔다. 그동안 공단에는 9천억 원대의 남측 자본이 투자됐다.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된 200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임금 누적 총액(임금 및 사회보험료 포함)은 2억4천570만달러에 이른다.개성공단이 이대로 폐쇄되면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가 예상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 등에 따르면 공단내 123개 회사의 투자 총액이 9천495억원, 정부와 공공부문 투자가 3천900억원이다. 도로·상하수도·정배수장·변전소·북한 노동자들의 출·퇴근용 통근버스 276대 등은 물론이고, 여기에 원·부자재와 완제품 등을 반출하지 못해 발생하는 피해가 5천억원, 가동 중단으로 납품하지 못해 발생한 매출 손실 및 거래상 배상청구(클레임) 등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5천억원 등 당장 피해액만 따져도 총 2조원 규모이다.개성공단이 제2의 금강산관광 사업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야구에서 나오는 얘기다. 자존심 강한 투수들은 승부수로 던진 공을 타자가 파울로 쳐내면 오기가 발동해 다시 같은 공을 던진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는 같은 공을 두 번씩이나 놓치는 타자는 거의 없다. 따라서 같은 공을 두번 던지는 행동은 아마추어에서 오기지만 프로에서는 객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개성공단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같은 공을 두번 던진 `아마추어`투수처럼 반응한 것은 아닌가.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 11월 첫발을 뗀 금강산 관광사업도 한때 국민들 사이에 인기를 끌다가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중단됐다. 우리 정부가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북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태가 장기화한 것이다.강경일변도와 벼랑끝 전술로 일관하는 북한을 요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노승과 사미승이 함께 길을 가던 중 시냇물을 건너게 됐다. 마침 예쁜 처녀도 물을 건너려했지만 물살이 무서워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사미승은 여인을 애써 못본체 하고 지나치는 데, 노승이 처녀를 번쩍 들쳐 업고는 건너편에 내려줬다. 다시 길을 재촉하는 데, 사미승이 노승에게 따져 물었다. “스님, 수도승이 어찌 여인에게 손을 댄다는 말입니까? 하물며 등에 업다니요.” 그랬더니 노승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놈아, 난 벌써 그 처자를 냇가에 내려놨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구나.”경지에 오른 사람에게 정해진 틀에 박힌 생각은 의미가 없다. 눈높이를 바꾸고,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해법이 보인다.

2013-04-30

학원폭력과 엘 시스테마

▲ 김진호 논설위원지난 1975년 오르간 연주자이자 베네수엘라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창시한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몇년 전 영화화되면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마약과 범죄에 노출된 베네수엘라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는 어린 학생들이 현실의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과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공부해나가도록 돕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돼 이제는 전 세계적인 사회개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마법같은 프로젝트다. 캐나다에서 가난한 이민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엘 시스테마`와 같은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포 음악인들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김애령(48·여) 씨를 비롯한 몇몇 한인들이 치안불안 지역으로 꼽히는 인근 제인 핀치 지역에서 지난 2009년부터 지역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음악교육프로그램인 `리칭업`(Reaching up)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2년 이민한 후 소수민족과 만나는 기회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인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제인 핀치 지역의 교회를 다니던 김 씨가 주도했다. 주민의 90% 이상이 흑인이고 교육수준이나 교육열이 높지 않은데다 학교 안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 우범지역이었던 이 곳에서 김 씨는 먼저 방과 후 공부방 형식의 `홈워크 스쿨`을 시작했고, 음악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 뮤직스쿨을 열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한인인 13명의 자원봉사 교사가 일주일에 다섯번씩 41명의 학생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색소폰, 트럼펫, 기타,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가르쳐 주고 있다. 아이들은 배우는 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다들 정말 즐겁게 수업에 나오고, 지역 사회의 반응도 뜨겁다는 게 김 씨의 얘기다.이처럼 음악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빛과 희망을 던져주는 것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유효한 교육수단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합주하는 동안 홀로 하되 함께 하는 세상을 경험하며, 함께 하되 홀로 하는 연주를 통해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듯 하다.음악교육을 통해 일어나는 기적같은 효과를 보며 나는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은 온 우주 전체가 아니라 오직 우리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한정된 세상이라는 걸 발견한다. 사람이 살면서 온 세상을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온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일일이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우리 마음에 비치는 세상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의 눈을 어느 방향으로 돌리느냐가 중요하다. 또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기쁘면 세상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외로우면 세상 역시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엘 시스테마는 우리 마음의 눈을 기쁨, 축복, 아름다움으로 채우도록 만드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한국판 `엘 시스테마`프로젝트인 `꿈의 오케스트라`사업이 시작됐다. 2012년 2월에는 베네수엘라의 시몬 블리바르 음악재단(엘 시스테마)과의 업무협약을 맺어 국내 유일한 공식파트너로서 엘시스테마의 정신과 가치, 비전을 공유하고, 강사 연수, 합동 연주 등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이 대목에서 해답없는 학원폭력으로 고심하는 우리 교육당국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전세계적인 사회개혁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를 우리 교육현장에 전면도입, 학원폭력 문제해결에 적극 활용하는 건 어떤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2013-04-23

포항시 도심공동화 대책없나

▲ 김진호 논설위원일전에 이명박 정부에서 국토해양부 차관을 지낸 김희국 의원을 만났다가 세종시의 실상을 듣고 깜짝 놀랐다. 건국이래 최대 역사라 할만한 세종시 이전사업이 너무도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불편한 진실을 접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최근 점심시간에 세종시에 들렀다가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청사 구내식당앞에 장사진을 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청사설계 당시에 청사근무 공무원들이 점심을 3교대로 먹도록 설계하는 바람에 1시간 남짓한 점심 시간에 몰린 공무원들을 수용할 수 없어서 상당수 공무원들이 1시간 이상 걸리는 인근 도시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그려야 할 정부 공무원이 해놓은 도시계획이란 게 너무 터무니없다는 탄식과 함께 공무원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김 의원의 자성론에 크게 공감했다. 세종시에 대한 또 다른 뉴스가 뒤를 이었다. 세종시 근무 공무원 가운데 57% 만이 세종권에 거주하고, 나머지 43%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퇴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이 지난 14일 공개한 국무총리실 자료에 따르면 총리실과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지금까지 세종시로 이전한 6개 부처 공무원 4천973명 가운데 2천837명 만이 세종·대전·충남·충북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2천136명은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 중이라는 얘기다. 세종권 거주 공무원들이 장거리에서 출퇴근하느라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성 의원은 또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국무조정실이 주거상황 등에 대해 실태조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앞으로 정부기관의 이주가 진행됨에 따라 추가로 6천명 이상의 공무원이 세종시로 이주해야 하는 만큼 이주 공무원에 대한 정주 여건 확보 방안을 제대로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시 이전과 관련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 놀랍고 걱정스러웠다.포항지역은 어떤가. 포항시청이 북구에서 남구 대잠동으로 옮기고 난 뒤 도심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육거리 주변상가의 상당수가 비워지고, CGV영화관이 내부수리중이란 현수막만 내건채 수개월째 영업을 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도심공동화로 인한 도심상권침체는 심각하다. 시청이전 지역이 기존 도심과 너무 멀어 도시활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시청이전설이 나도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다만 박승호 포항시장 공약사업으로 포항시가 총 사업비 1천600억원을 들여 인근의 동빈내항과 형산강을 연결, 끊어진 물길을 다시 잇는 포항운하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도심 활성화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포항운하가 완공되면 형산강 물이 동빈내항으로 흘러들어 예전 모습을 되찻게 되고, 운하주변에는 도시형 친수공원 등이 들어서 포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고 보면 관광객이나 유동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도시의 발전은 풍선효과가 있는 것이어서 한쪽으로 유동인구가 몰리면 다른 쪽에는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 결국 포항운하나 친수공간조성만으로 포항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포항시가 장기적인 발전을 꾀하려면 포항운하나 영일만대교 등과 같은 SOC건설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묘수는 무엇일까. 포항의 경제발전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우선 철강산업 위주로 편향적으로 발달된 산업구조를 로봇이나 신재생에너지산업, 선박·자동차부품 산업 같은 신성장동력으로 개선하는 노력과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도심공동화로 활력을 잃은 도심과 주변지역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도시활력을 불러올 수 있는 재개발 추진이 시급하다고 본다.

2013-04-16

북핵 위기와 핵 주권론

▲ 김진호 논설위원지난 1993년 김진명이 발표한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줄거리를 요약하면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인 이용후가 한국으로 귀국해 대통령의 명에 따라 핵 개발에 착수하고, 한국의 군사력과 국가적 위상을 뒤바꿀 수 있는 지하 핵실험이 계획된다. 한반도의 핵개발을 결코 용인할 수 없었던 미국은 최후의 수단을 동원, 핵 개발 성공을 눈앞에 둔 이용후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독자적인 군사력을 구축하기 위해 핵개발에 나섰던 대통령마저 정보부장 손에 죽음을 당한다. 이 소설은 냉전시대 논리에 따라 한국이 독자적인 핵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대통령과 핵 개발을 주도한 핵물리학자의 만남, 그리고 미국이라는 거대 군사력의 방해공작 등이 진실과 허구로 엮이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KBS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에서도 핵무기가 등장한다. 지난 4일 방송된 `아이리스2`에서는 백산(김영철 분)으로부터 받은 4개의 핵무기를 놓고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최민(오연수 분)과 보유를 주장하는 하승진(조성하 분) 대통령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하지만 핵은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 아닌 공멸의 시작이라고 강조하는 최민의 노력에도 불구, 하승진 대통령은 강철환(김일우 분) 국장과 손을 잡고 핵무장을 강행하기로 결단을 내려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디로 달려가게 될 지 모를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극적 긴장감이 고조되자 드라마 시청율도 높았다. 이날 방송된 `아이리스2`는 11.1%(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로 MBC `남자가 사랑할 때(10.1%)`, SBS `내 연애의 모든 것(7.4%)`을 제치고 같은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국민들의 핵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적지 않은 셈이다.이처럼 소설과 드라마에서 나타나듯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핵 주권론에 대한 관심은 간단치 않다. 소설에서 작가는 한국이 자주국가로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쪽에 힘을 싣고있다. 드라마에서는 핵 개발이 아니라 핵 무장으로 바뀌었지만 핵무장을 터부시하는 것은 이미 핵을 보유한 강대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며, 우리의 핵무장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과연 핵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혼란스러운 것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핵 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을 위해 핵 비확산을 지지하는 주장이 엇갈리며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딜레머에 빠져있기 때문이다.그런 측면에서 한국핵정책학회가 8일 국립외교원에서 개최한 북핵·비확산 세미나는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요긴한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재처리·농축 권한을 확보하려면 핵 주권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제기됐다.핵 무장을 지지하는 측은 미국이 나토(NATO) 회원국 중 핵 비보유국이자 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한 5개국에 240기의 핵무기를 배치했다는 사실을 들면서 북한의 핵무기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국의 핵무기 재배치라고 주장했다. 반면 핵 주권론을 경계하는 측은 한국의 핵무장론은 비현실적이며,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이라는 한국의 순수한 노력을 미국이 오해할 수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무력도발을 위협하는 안보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한시빨리 핵주권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안보를 확고히 할 수 있는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제일책무가 아닌가. 그게 핵 무장이든, 핵 개발이든 말이다.

2013-04-09

창조경제의 허와 실

▲ 김진호 논설위원고대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의 36계에는 `무중유생(無中有生)`이란 전술이 나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쉽게 말하면 `없으면서 있는 척 하기`이다. 이 전술이 실제 전쟁에서 쓰인 것은 불과 12척의 배로 130척의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서였다. 이순신은 좁은 물길인 명량에서 배 12척으로 길목을 막아 차례차례 들어오는 왜선을 하나씩 격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조선군은 밀려드는 적과 싸우느라 지쳤고, 왜군은 아직도 피해를 입지않은 배가 너무 많았다. 다행히 이순신은 사전에 피난선 100여척을 12척의 전투선단 뒤에 배치해 짐짓 아군의 배가 많아 보이게 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왜군의 눈에는 전투 현장 너머로 보이는 피난선단이 조선군의 대기선단으로 보여 더 이상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손자병법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론`이 바로 `무중유생`전술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은 지난달 30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으면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마디로 `창조경제론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여당 내부에서 정면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창조적 발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창조경제의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의미가 모호하다며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했다.첫 발표자로 나선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창조경제론을 중심으로 새정부의 국정철학을 보고하자, 소관 상임위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선교 위원장은 “너무 학구적이다.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슨 말이냐”고 따져물었고, 유 수석이 “창조경제는 결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교과서적 답변을 계속하자 한 위원장은 “됐습니다. 그만하세요”라고 말을 잘랐다. 이어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이 `창조경제`를 부연설명했으나 한 위원장은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고 했고, 이군현 윤리특위 위원장은 “누가 어떤 산업을 어떻게 일으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지 우리도 국민을 설득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청와대 측이 의원들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론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자 이한구 원내대표까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당장 서류로 준비해서 제출하라”고 나무랐다.여당 중진의원들과 청와대 참모간에 벌어진 논쟁을 보면서 `창조경제론`은 아직 개념조차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허장성세 전략의 부산물이란 혐의가 짙어보인다.그래선지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따라 경영계획과 투자규모 등을 결정해야 할 기업들도 창조경제 개념을 파악하지 못해 갈팡질팡이다. 통일된 개념이 없다보니 `창조경제는 융합이다`(A기업), `동반성장과 상생이 바로 창조경제의 근간`(B기업), `창조경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C기업) 등으로 해석이 제각각이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은 창조경제의 개념이 확실히 드러날 때까지는 섣부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정부 움직임을 지켜보고 투자판단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애매모호한 창조경제론이 기업의 투자 마저 늦추고 있는 셈이다.대선과정에서 창조경제론이 `약발`먹혔다고 해서 계속 같은 방식을 구사해선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애매모호한 창조경제론을 탈피해 명확한 정책목표를 설정, 정치권과 재계의 혼란을 없애줘야 한다. 중국의 또 다른 병법서인 `사마법`에는 `무부선술(無先術)`, `앞서 써 먹었던 전술은 다시 쓰지 말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하루빨리 `창조경제론`의 뼈대와 살점들을 창조해 국민앞에 펼쳐 보여주고, 정치권과 재계의 혼란을 종식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2013-04-02

솔로몬 왕자의 지혜

▲ 김진호 논설위원명심보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복이 있다해서 다 누리지 말라. 복이 다하면 몸이 빈궁에 처하게 된다. 권세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다 부리지 말라. 권세가 다하면 원수를 만나게 된다.`복이 있을 때 복을 아끼고, 권세가 있을 때 더 공손하고 겸손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말이 필요없는 이들은 이 말을 이미 잘 알고있고, 정작 필요한 이들은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권세가 있다고 그것을 있는대로 부리다 패가 망신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최근의 성접대 의혹 사건이 바로 실제 사례다.한 건설업자가 우리 사회의 고위층 인사들에게 골프회동에 이어 성접대를 하고, 동영상을 찍어 청탁에 이용하려 한 것이 성접대 의혹사건의 골자다. 한 마디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만한 스캔들이다. 이들은 성접대가 이뤄진 별장에서 수천만~수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였다는 의혹과 함께 마약성 약물을 복용한 채 환각파티를 벌였다는 정황까지 드러났다고 한다. 비리와 타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특히 퇴폐적인 향응접대를 받은 이들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사정기관과 검찰, 경찰 고위간부였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나라의 기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 취임한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터진 이 희대의 스캔들은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한편 일반 국민에게는 공직자 윤리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뇌물비리 스캔들에 우리 사회의 고위공직자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문제가 된 고위공직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앞에 고개숙인 업자들의 아부성 발언에 현혹되거나 자신이 거머쥔 권력의 향기에 취해 헤어나올 수 없는 비리의 사슬에 얽매이고 말았다. 그 결과 평생 쌓아올린 명예와 권세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게 될 처지에 놓였다. 달이 차면 기울듯, 보름달도 하루만 지나면 기울기 시작하고, 저 아름다운 꽃도 열흘이 가기전에 질 것이란 사실을 잊고 살았기 때문일게다.다윗왕이 세공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주 교만할 때도 지혜가 되고, 아주 절망할 때도 힘이 되는 말을 반지에 새기도록 하라.” 큰 고민에 빠진 세공사는 솔로몬 왕자에게 지혜를 구했다. 그러자 솔로몬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그렇다. 세상 사는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사실을 알면 우리는 교만하지도, 실의에 빠져 우울해 하지도 않으면서 더욱 늠름하게 담담하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 또한 지나갈텐데 무엇에 연연해하고, 무엇에 더 욕심을 낼까.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에 감사하며, 내 주어진 본분에 성실할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거나 망설여질까.새 정부들어 장·차관을 꿈꾸는 이들에게나, 지금 잘나간다고 어깨를 들썩이며 우쭐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좋은 시절이 지나도 민망하지 않게 지금이라도 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고개를 숙여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이다. 내 잘 났다 떠드는 일은 그만두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아 가까운 산과 숲을 찾아보길 권한다. 길가에 핀 꽃,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소리, 새소리, 숲 속의 신령스런 기운까지도 오감으로 받아들여보자. 산과 바람과 이야기 하고, 눈을 감고,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나무를 껴안고 나무의 숨쉬는 소리를 들어보자. 자연과 산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보자. 그러면서 자신이 뭘하고 있는 지, 이대로 가면 되는지, 진정 바라는 인생에 이르렀는지 생각해보자.그래도 뭔가 모자란 게 있다 여겨진다면 이렇게 되뇌어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201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