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서 한강을 지나는 다리는 모두 3개다. 밤섬을 지나 마포를 잇는 서강대교, 마포 공덕동으로 향하는 마포대교, 용산전자상가로 가는 원효대교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마포대교는 지난 2008년부터 5년간 85명이나 자살시도를 해 일명 `자살대교`로 불린다.
그러던 마포대교에 지난해 9월 새 이름이 생겼다. 바로 `생명의 다리`다. 세계 최초의 스토리텔링 `생명의 다리`는 국내 언론 및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미국, 일본 등 해외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는 등 위로와 희망을 주는 힐링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포대교 난간에는 이런 문구들이 줄지어 쓰여있다.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세월 참 빠르다. 그치? 아무튼 다 그런거지 뭐.` `생각도 너무 많으면 안좋아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까.` `자, 당신의 얘기 한번, 해봐요. 어떤 말이라도 괜찮으니까 들어줄게.`죽을 생각을 하고 다리에 오른 이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이런 글들이 이어진다. 그런 뒤 다리 중간에는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119 생명의 전화도 설치돼 있다. 전화기를 지나면 다시 글이 시작된다. `다음엔 꼭 같이 걸어요.` `아직,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그… 나이들어봐 젊었을 때 고민같은 거 암것도 아니여` 등 다시 설득이 시작되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아이디어를 내고 서울시가 구체화한 `생명의 다리`프로젝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롭게 보행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살 낌새가 보이면 다리에 각종 조명과 문자메시지를 띄워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구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 생명의 다리를 서울시가 26일 새롭게 단장해 공개한다고 한다. 생명의 다리에 삽입할 새 문구는 8천여명의 시민들이 응모한 글을 심사해 48명의 당첨자를 선정했다고 했다. 새 메시지로는 단문 및 에피소드, 유머글을 포함한 희망메시지 분야 35명, 가족이나 친구, 연인간의 일상과 사랑을 담은 이미지 분야 13명으로 구성됐다. `바람 참 좋다` `조금 늦는다고 속상해 하지마..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래` `오늘은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고 당신은 아이들이 손을 쓰다듬으며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당신의 인생을` `힘들 때도 일주일을 굶었을 때도 눈물이 안 났는데 일주일을 굶고 누가 고기를 사줬는데 그때 눈물 나더라 고기 집이 천국인줄 알았다` 등이 선정됐다고 한다. 시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문구와 이미지는 응모자의 이름과 함께 다리에 새겨질 예정이라니, 맘이 울적하거나 삶이 고달플 때면 한번쯤 유유자적 거닐어 봄직하다.
이렇든 저렇든 누군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할 때면 필자는 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떠올리곤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 시인은 일본 효고의 히메이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상과를 중퇴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혹독한 고문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실종됐다가 행려병자 시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평생 고문 후유증과 가난, 병마에 시달렸지만 어린애와 같은 순수함과 욕심없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시를 썼다. 특히 이 시는 누구보다 힘겨웠을 자신의 삶을 “아름다웠다”고 노래해 놀랍다. 우리 모두 삶이 다하는 그 날, 세상 소풍 끝내고 “아름다웠다”고 한 마디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삶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