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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와 용서의 힘

등록일 2013-06-18 00:42 게재일 2013-06-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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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최근 남북대화 무산으로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북미회담을 제의해 남북문제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통해 최근 남북대화 무산과 북한의 북미회담제의 등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북핵현안 등을 놓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떻든 남북문제는 끝없이 순환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의 함정속에 빠진 양상이다.

그러나 멀지않은 역사속에서도 남북문제를 해결할 지혜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1975년, 남부 베트남과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잇따라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간 직후 공산화 위기에 빠진 태국정부의 대처사례다. 서양열강들은 도미노이론에 의해 태국이 무너질 차례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수많은 태국 대학생들이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태국 북동부의 정글로 몰려갔다. 무기는 태국 국경밖에서 공급됐고, 훈련도 그곳에서 이뤄졌다. 지역 주민들도 그들에게 음식과 필수품들을 자발적으로 제공했다.

그들에 맞서 태국 군부와 정부는 세 가지 전략을 폈다. 첫번째는 `자제`였다. 공산주의자들의 활동기지가 어느 곳에 있는 지 모든 병사가 알고 있어도 군부는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용서`였다. 내란시기 동안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무조건적 사면을 실시했다. 공산주의 반란군 중 누구라도 그때까지의 주장을 버리고 전향하기를 원하면 무기를 버리고 고향이나 대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그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세번째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었다. 이 기간 동안 공산 게릴라지역에는 새 도로가 건설되고, 낡은 길들이 재포장됐다. 시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확물을 도시에 내다팔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태국왕이 직접 나서서 수백개의 작은 저수지들과 관개수로들을 건설하고 그 비용을 댔다. 그 결과 북동부 지역의 농부들은 해마다 쌀농사를 이모작할 수 있었다. 외딴 마을까지 전기가 들어가고, 학교와 진료소가 세워졌다. 태국의 가장 빈곤한 지역이 정부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사람들의 형편이 피었다.

당시 태국 정부군 순찰병들이 한 얘기는 들어보자.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을 겨눌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의 형제인 태국인들입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거나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가다가 나와 마주치면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새로 산 손목시계를 보여주거나, 신형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사회주의자의 길을 포기합니다.”

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정부에 대해 화가 나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정부측의 인내와 자제 덕분에 분노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사면을 통한 용서는 그들이 안전하고 명예롭게 사회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줬다. 개발을 통한 문제해결은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공산주의자들도 밀림으로 뒤덮인 산골짜기에서 험난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회의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총을 버리고, 그들의 마을로, 대학으로 돌아갔다. 1980년대초에는 이미 반란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됐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반란군 지도자들에 대한 태국정부의 처우였다. 그들은 처벌받지도, 추방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태국 정부의 주요 요직이 제공됐다. 정부는 그들의 지도력, 힘든 환경을 견디는 능력,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높이 샀다. 그토록 용기있고 헌신적인 젊은이들을 쓸모없이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같은 자제와 용서의 힘을, 그리고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전략이 허리잘린 한반도에 적용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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