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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 어머니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주말에는 어버이날 찾아뵙지 못했던 아버님과 함께 대구 칠곡 현대공원에 있는 어머님 묘소를 찾았다. 1988년 뇌일혈로 쓰러져 돌아가신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를 보며 환히 웃던 어머니 모습은 눈앞에 그린 듯 선명하다. 아버님은 어머니가 외아들인 내가 하고싶은 일은 뭐든지 다 해주라고 할 정도로 공을 들여 키웠는 데, 이렇게 자주 찾지 않아서야 되겠느냐며 무심한 아들을 나무라셨다. 멀지 않은 곳에 묘소를 두고도 자주 찾지 못한 불효를 뭐라 변명할 길 없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묘소주위에 있는 잡초를 뽑으시던 아버님 손가락에 아차, 뾰족한 가시가 박히고 말았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자 아버님은 “야야, 내가 자주 찾지 않는다고 네 엄마가 혼내는갑다. 나라도 앞으로 좀더 자주 와야겄다.”하시며 쓸쓸히 웃으셨다. 포항서 근무하면서도 대구에 계신 아버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그 말씀에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다. 어머니가 못견디게 그리웠고, 아버님께는 그저 죄송스런 마음뿐이었다. `나실 제 괴로움 다~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어버이날에 부르는 `어머님 은혜`는 어떤 노래보다 우리 마음을 강하게 울린다. 노래 첫 소절 반주만 나와도 금세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땅에 사는 누구라도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는 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큰 딸이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대실내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 뒤 앙코르곡으로 이 노래를 연주했단다. 수많은 청중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쳤고, 연주후에 감동의 박수를 오랫동안 받았다고 했다. 어버이날 청중들에게 어머니 은혜를 되새기게끔 해준 딸의 사려깊은 마음에 나 역시 크게 칭찬해주었다.어머니는 예술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미술작품에는 미국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회색과 검정의 배열 제1번-화가의 어머니`(1871년 작·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란 작품이 있다. 휘슬러의 어머니는 예순일곱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즐거움에 3개월간 의자에 꼼짝않고 앉아 있는 고통을 감수했다고 한다. 그런 정성덕분일까. 이 작품은 미국의 어머니날 기념우표에 등장하는 아이콘이 됐고, 휘슬러도 큰 명성을 얻었다. 이외에도 반 고흐, 피카소, 렘브란트 등 수많은 화가들이 어머니를 화폭에 담았다. 그들은 왜 자신의 어머니를 그렸을까? `어머니를 그리다`란 책의 저자 줄리엣 헤슬우드(영국 미술평론가)가 대답한다. “화가의 어머니들은 자식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헌신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화폭에 담아내고 싶었을 겁니다.”영국문화원이 102개 국가 4만명을 대상으로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조사한 결과 `mother(어머니)`란 단어가 첫 손에 꼽혔다. 우리만 어머니에게 애틋하고 가슴이 저려오는 감정을 가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머니가 아름다운 단어로 꼽히는 것은 마땅하다. 못난 자식들은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겹다 해도 어머니만 생각하면 용기를 되찾는다. 이 땅에 계시든 안 계시든 상관 없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이 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그늘 덕분이다.김종해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가운데 /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사모곡` 전문)나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르고 싶은 이름은 `어머니`일 수 밖에 없다.

2014-05-16

포항의 선택

▲ 김진호 편집국장세월호 참사로 잠정 중단됐던 6·4지방선거 일정이 다시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29일 대구시장 경선을 시작으로, 30일 포항시장에 대해 국민참여선거인단 경선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새누리당 경선을 앞둔 예비후보들의 막판 선거전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참여선거인단 경선은 당원직접투표 50%, 여론조사 50%를 합산해 후보자를 결정한다니 후보들은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국민여론조사보다 선거인단으로 명부가 공개된 책임당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지방선거 일정중에 터진 세월호 참사는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지역민들의 마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항시장 선거는 새누리당 공천 경선이 본선 열기에 못지않다. 공원식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 이강덕 전 해양경찰청장, 김정재 전 서울시의원 등 3명의 후보중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무소속 이창균 전 한국지방자치연구원장과 포항시장선거에서 맞붙게 되지만 포항지역이 여권의 텃밭이란 점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크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28·29일 이틀에 걸쳐 3천명의 포항시민 여론조사에 이어 30일 오후 포항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새누리당 포항시장 경선은 당원 50%, 여론조사 50%의 직접 경선으로 치러질 예정이지만 아직도 누가 새누리당 후보로 뽑히게 될 지 예측불허다. 이날 경선에는 책임당원 2천명, 일반당원 2천100명 등 총 4천100명이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각 후보들은 여론조사에 대비,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자신의 대표공약을 제시하고, 시장 출마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당원 직접투표의 결과가 분수령을 가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포항시민들이 어떤 후보를 포항시장으로 선택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현재 포항이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면 어떤 후보가 바람직할까. 우선 후보가 제시한 정책들이 지역과 주민을 위해 꼭 필요하며 실현가능한 정책인지, 그리고 후보자가 인권, 민주주의, 생태(환경), 복지 등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한 비전ㆍ가치ㆍ철학을 제시하는지, 또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구비한 후보인지 면밀히 따져야한다. 도덕성 역시 중요하다.대신 뽑지 말아야 할 후보에 대해서도 알아두자. 출마지역의 모든 현안을 임기내에 해결하겠다는 식의 `봉이 김선달식`공약을 내세우는 후보, 지방의 현안문제를 중앙정부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거나 인근 지역과의 갈등문제를 주민의 힘으로 풀어보겠다는 후보는 곤란하다. 최근 세월호 참사이후 화두가 되고 있는 관피아(관료+마피아)도 피하는 게 좋겠다. 관료사회의 완고함속에 사고가 굳은 이에게 성장동력이 꺼져가는 포항호의 선장직을 맡겼다가는 `제2의 세월호`참사가 나지말란 법 없다.고위관료인 친구가 소개한 일화 한 토막. 모 부처 장관이 새로 부임해 국장들을 모아놓고 임기내 이루고 싶은 과제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자리에 모였던 10명의 국장들이 일제히 갖가지 이유를 들며 “어렵다”“불가능하다”“전례에 없다”며 반대했다. 화가 난 장관이 “이 사업은 꼭 해야한다. 내일 아침까지 사업 추진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다음 날 아침, 장관의 책상위에는 10명의 국장이 제출한 10가지 사업추진방안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직업관료들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얘기다.현재 포항은 철강산업의 침체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민간기업이나 대학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의견, 제안을 적극 수렴해 발전정책으로 다듬고,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경륜있는 일꾼이 필요하다.민주주의는 선택의 역사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014-04-29

그대가 곁에 있어도

▲ 김진호 편집국장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로 102년 전의 타이타닉호 사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럿이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타이타닉`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11일 승객 2200명을 태우고 항해를 시작한 지 4일 만에 침몰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탑승객 1천514명이 숨졌고, 410명의 승객이 살아남았다.영화는 타이타닉호 침몰이란 불운한 역사적 실화에다 17세기 엄격한 사회 질서에 숨막혀 하는 미국 상류층 로즈(케이트 윈슬렛)와 부두의 선술집에서 도박으로 운 좋게 `타이타닉호`의 3등실 티켓을 얻은 가난한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엮어 내 큰 히트를 쳤다. 이 영화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영화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상 11개 부문 수상이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영화가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둔 것은 2억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어 대형 자연재난을 실감나게 재현한 카메룬 감독의 역량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속의 멋진 캐릭터들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특히 타이타닉호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존 스미스는 배가 침몰위기에 빠지자 승객 중에서 어린이, 여자, 남자 순으로 탈출토록 했고, 총으로 공포를 쏘면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게 했다. 그 후 자신은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보여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가슴저릿한 감동을 안겨줬다. 실제로 그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서는 배와 운명을 함께한 스미스 선장의 동상을 세우고, 동판에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마지막 말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반면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에서 세월호 선장은 어땠나. 승객을 제쳐두고 제일 먼저 배를 탈출해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선장이 어찌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침몰위기의 배를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세월호 선장은 승객인 양 가장해 구조선을 타고 나와 구호용 담요까지 지급받았다가 동영상이 방송을 타는 바람에 더 많은 비난을 자초했다.게다가 사고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의 사고 초기 미흡한 초동 대처가 피해를 키운 정황도 드러났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공개한 사고 당시 세월호와 진도 VTS(해상관제센터)의 교신 내용에 따르면 배가 침몰직전인 데도 선장은 우왕좌왕하다가 퇴선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먼저 배를 탈출해버렸고, 선실에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고 남아 있던 승객들만 고스란히 참변을 당했다.그 와중에 여객선이 침몰하기 직전까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승무원 박지영씨(22·여)나 침몰하는 배 난간끝에 매달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찾아 던져주고 아래층의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객실쪽으로 내려갔다가 숨진 안산 단원고 교사 남윤철씨(35),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고, 친구들을 구하려다 숨진 안산 단원고 2학년 정차웅군 등이 보여준 `살신성인`의 자세는 온 국민의 마음에 귀감으로 남았다.배가 침몰한 지 엿새째인 21일, 기적같은 생환을 고대하며 애태우는 실종자 가족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것인가. 평소 애송하던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란 제목의 시를 상심한 세월호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건네고 싶다.`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하늘에는/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리고 내 안에는/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2014-04-22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김진호 편집국장4월 중순에 접어들며 산과 들을 뒤덮었던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의 향연에 이어 때이른 라일락꽃이 한달 일찍 피어 상춘객들에게 달콤하고 향긋한 꽃향기를 선물하고 있다. 이처럼 흐드러진 봄향기에도 불구하고 봄을 만끽하기 어려운 이도 적지않다. 신문사에 함께 근무하는 한 간부는 요즘 고교 1학년 딸때문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딸이 사춘기에다 우울증이 겹쳤는 지 새로 진학한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있어 선생님과 교육청을 찾아다니며 전학 등 수속을 알아보고 있단다.한창 예민한 시기의 딸을 곁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챙기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는 그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을 비명처럼 외쳤다. 그의 외침에 공감한다.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돈버는 일도 중하지만 자식농사 잘못되면 무슨 보람이랴.나 역시 반성할 일이 떠올랐다. 지난 주말 모처럼 다섯식구가 함께 식사를 할 때였다. 서울 여의도고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지난 해 10월 `2013년 인천청소년록페스티벌`에서 학교 밴드부인 `이데아`신디사이저 멤버로 출전해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평소 재즈피아노를 치기 좋아해서 연주실력이 제법 괜찮은 줄은 알았지만 록밴드 멤버로 출전해 상을 받은 줄은 까맣게 몰랐다. “왜 얘기 안했냐?”고 아내에게 묻자 “내가 얘기 안했던가요?”하고 만다. 막내아들이 공부에 소홀한 데 대해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던 아내는 그 일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 그냥 지나간듯 했다. 어쨌든 뒤늦게나마 아들에게 “대단하다. 참 잘했다.”하고 칭찬했더니 아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고보니 `고3 입시를 앞두고 있는 아들이 어떻게 공부하는 지, 생활하는 지 모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비로서의 무심함을 새삼 반성했다. 부모에게 훌륭한 아들이 되기도 어렵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고민을 안고보니 춘래불사춘의 의미가 새록새록 다가왔다.원래 춘래불사춘은 한나라 궁녀 왕소군의 심정을 표현한 시에서 비롯됐다. 왕소군(王昭君)은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역대 중국의 4대 미인을 가리키는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雁 閉月羞花)`가운데 낙안(雁: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춰 땅에 떨어졌다)의 주인공이다.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에 의해 흉노왕에게 미인계의 제물로 바쳐졌는 데, 후세 중국의 많은 시인들이 왕소군이 오랑캐의 땅으로 출발할 때 가련함과 슬픔, 변방에 끌려가 지내는 외로움, 고향에 대한 애끓는 마음 등을 노래했다. 그 가운데 당나라의 시인인 동방규(東方叫)는 `소군의 원망`이란 시에서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으니)`라며 봄은 봄이로되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처지를 노래한 것이다.춘래불사춘을 외치며 자식농사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잭 켄필드와 마크빅터 한센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중 `내가 만일 아이를 키운다면`이란 글을 가슴에 담기를 권한다.`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작게 다투리라. 도토리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이렇게 아이를 키운다면 이 나라 교육에 봄다운 봄이 오지않을까.

2014-04-15

카르페 디엠

▲ 김진호 편집국장꽃 피고 새 우는 봄,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는 산책객들이 늘었다. 거의 가정집의 왕자나 공주 대접을 받는 애완견들은 꼬까옷에 머리리본이 기본이다. 전용주택은 물론 사람도 먹기 힘든 최고급 육식 메뉴로 식사가 준비된다. `개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개 이야기를 하다 떠오른 얘기부터 해보자.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카레닌이라는 이름의 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카레닌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도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에 즐거워했다.”보통 개들은 잘 때 죽은 듯이 잔다. 눈을 뜨면 해가 떠 있는 사실에 놀란다. 밥을 먹을 때는 “세상에! 나에게 밥이 있다니!”하고 먹는다. 산책을 나가면 온 세상을 처음 본 듯 뛰어다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우와, 해가 떠 있어!”하고 다시 놀란다. 매 순간 집중하면서 산다. 이런 맥락에서 `개처럼 살자`는 건 결코 욕이 아니다. 오히려 이 순간의 보배로움을 알라는 금언이다. 카르페 디엠이다.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먹고 이런저런 잡 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 때 잠은 안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동서양을 관통해 내려오는 삶의 지혜 가운데 `카르페 디엠`은 수많은 일화와 에피소드를 담고있다. 현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서 즐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진실이기도 하다.또 하나 온전히 현재에 집중해야 할 이유는 어떤 다른 사람의 삶도 결코 내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후회없는 삶이 어디 있으며, 가보지 않은 길을 부러워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길을 걸어갔다 해도 내 삶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고, 그것이 내 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6·4지방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아쉽게 바라보는 대목이 있다. 바로 경북도지사에 도전한 박승호 전 포항시장에 대한 얘기다.재선 포항시장으로서 인지도나 지지도에서 가장 앞서는 박 전 시장이 경북도지사 선거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은 지방정가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50대 후반의 박 전 시장이 정치적 미래가 없는 3선 포항시장보다 광역자치단체장인 경북도지사에 도전하는 것이 2년뒤 총선도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있었다. 형편에 따라서는 김관용 현 도지사가 당선될 경우에도 3선 임기후 한번 더 경북도지사에 도전할 수 있다.문제는 박승호 전 포항시장이 권오을 후보와 함께 네거티브 선거전에 올인하면서부터다. 박 전 시장은 권 후보와 함께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아들 병역비리의혹, 논문표절의혹, 측근 비리에 대한 진상규명 후 경선실시를 주장하며, 경선을 보이콧하고 있다. 두 차례 예정된 TV토론회에도 불참해 토론회를 무산시켰고, 경선 기호추첨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경북도당 공천위가 경선강행 여부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중앙당 공천위에 맡겼지만 새누리당으로서는 볼썽사납게 됐다.특히 선거에 최선을 다해 페어플레이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지역민에게 박 전 시장의 선택은 아쉽기만 하다. 왜 공개된 TV토론과 연설회에 나가 당당하게 문제점을 제기하고, 당원과 국민의 심판에 승부를 걸지 않았을까. 선거열기에 몸이 단 박 전 시장에게는 `카르페 디엠`,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2014-04-08

봄에 꽃피다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주말 대구서 열린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국도변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에 연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산기슭 언덕에 자리잡은 과수원엔 복숭아꽃이, 도로변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도로건너편 촌집 마당에는 흰 목련꽃이 소담스런 자태를 뽐냈다. 바로 얼마전까지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하던 날씨가 갑자기 포근해지더니 어느새 온 산과 들에 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속에 펼쳐진 기적같은 풍경의 변화였다. 어김없이 다가온 봄에 꽃들이 피어나는 것은 사계절을 가진 이 땅에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형형색색의 꽃이 만발하고, 깡마른 나무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는 광경은 경이로운 장면이다. 봄을 생명의 약동으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꽃들을 두고 단순히 `봄의 전령`이란 한마디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문화유산답사기의 서문에는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좋아해 인용했지만 나 역시 이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사랑하면 더 많이 알게되고, 그러면 알기 전 보다 더 많이 보게되며, 그때 보게 되는 것은 그 전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게 연인과의 사랑이든, 학문이든, 꽃에 대한 관심이든 말이다.일반 사람들은 목련이나 진달래같이 화려한 것만 꽃이라고 부르며, 버드나무나 참나무와 같이 화려한 색깔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꽃인 줄도 모르고 지나친다. 지구상에 있는 식물의 종(種)은 30만 종 내외며, 꽃으로 취급되는 종은 약 8천여 종이지만 온실화훼까지 합치면 수만 종에 이른다. 그 중 우리 나라에서 자생하는 자생식물은 대략 4천135종류가 있으며, 이 가운데 꽃으로 불리는 것은 약 500여 종으로 추정된다.신문기자 초년병 때의 일이다. 어느 기자가 여행을 다녀온 곳에 대해 풍경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썼다. “들판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있고…”이 글을 본 한 선배기자는 분개하며 말했다. “절대로 이런 글을 써서는 안된다. 이 땅에 사는 꽃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이름을 모르다니 무슨 얘기냐”당시 시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던 그 선배는 들판에 피어있는 꽃 이름 하나 알아볼 생각 않고, 막연히 이름모를 꽃이라고 글을 쓰는 기자가 되선 안된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 말에 감명받은 나는 한동안 여행기사에서 풍경스케치를 할때면 우리의 산과 들에 자라는 나무와 꽃 이름이 적힌 책을 들고 다니며 여행지의 꽃과 풀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 적어넣곤 했다.꽃은 꽃피는 식물을 통틀어 말하지만 인기가 많거나 아름다운 여자 또는 아름답게 화려하게 번영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말하거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쓰기도 한다.하지만 문학에서 꽃은 또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특히 `꽃의 시인`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김춘수 시인은 그의 대표작인 `꽃`이란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꽃으로 이름 불리는 것은 우리 서로에게 중차대한 의미가 되었다는 뜻이다. 시인에게 이름은 의미부여를 나타내고, 꽃은 의미가 부여된 타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름은 나와 타자를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맡고있다. 이름을 통해서 나는 타자에게로, 타자는 나에게로 건너올 수 있다. 또한 꽃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원초적 열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은 작품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싶다”꽃이 만개한 이 봄, 당신은 누구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은지요?

2014-04-01

내가 없어도

▲ 김진호 편집국장사랑하고 아끼는 친구가 기업을 창업해 운영하다가 선의로 한 경제행위로 인해 배임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아 1년여의 감옥살이를 치러야 했다. 그 정도에서 일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전문직으로서 남부럽지않을 만큼 성공했고, 직업군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친구는 옥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후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음해하고, 모략하고, 감시한다며 불안해 했다. 어제의 동료나 친구들이 적으로 변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무섭게 여겨질 법도 하다. 비오는 날이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면 가끔 전화를 걸어 `술 마시자`는 친구의 불안한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처럼 유능하고 전도창창한 사람이, 남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자기자신의 망상속으로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돌리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친구로서 어떻게든 홀로 선 듯한 외로움과 좌절을 달래주려 애썼으나 별무 성과였다. 친구에게 `남들 의식하지 말고 소신대로 살자`는 한마디 전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타인을 피해 자기자신 속으로 빠져든 그에게는 어떤 말도 가닿지 않는 듯 했다.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마치고, 전문직 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지인의 아들이 자살시도를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개인사이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길 없으나 자격시험 준비가 여의치 않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일어난 일로 짐작됐다. 그깟 자격시험이 무엇이기에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려 했을까.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화근이었겠지만 충격적이었다.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의 정신건강이 이토록 허약해서야 될 일인가. 온실속에서 고이 자란 내 아이들의 마음건강부터 잘 챙겨야겠다는 자각이 번쩍 들었다.어쨌든 사회생활을 하는 이가 정신줄을 놓으면 사망에 이른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살아있다 해도 허망하고, 전문직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사회지도층으로 진입할 전도양양한 젊은이가 다시 응시하면 될 시험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니 기가 찰 뿐이다. 이 나라의 교육은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걸까.이런 황망한 일들을 생각하며 로저 로젠블라트의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불성실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이 열심히 해놓은 일을 폄하하기 위해, 당신을 해칠 계략을 꾸미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당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바로 당신이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이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 친구에게, 지인의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얘기였기에 더욱 그랬을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사실 그게 아니다. 휴가철에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보면 내가 없어도 세상은 저절로 잘 굴러갔다는 걸 알게 되지않나.샐러리맨 사회에 떠다니는 우스개 얘기 하나. “평직원들은 일주일 이상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다 오지만 임원들은 이틀이나 사흘 휴가뒤 부리나케 복귀하곤 한다. 이유는 뭘까?” 답은 “비싼 몸값의 임원이 자리를 비워도 회사가 별탈없이 잘 돌아간다는 것을 사장이 알아차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란다. 과연 사장은 `그 사람이 없어도 기업이 별 탈없이 돌아간다`는 비밀(?)을 모르고 있을까. 그가 없을 때 그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있다는 얘기일 뿐이다.그러니 그냥 우리가 생을 다한 후에도,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러니 이제 남 눈이나 평판을 의식해 스트레스 받는 일도 사양하자. 도대체 내가 사는 데 남들이 무슨 상관일까.

2014-03-25

산을 보라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주말 북한산의 한 자락인 도봉산 자운봉을 올랐다. 봄을 맞은 산은 한 주동안 세파에 찌들었던 심신을 달래려는 수많은 산행객들로 붐볐다. 두어시간 남짓 산을 오르노라니 숨도 가빠오고,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듯 힘이 빠져 오르기가 힘들었다. 일행들을 앞서 보내놓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산을 올랐다. 먼저 정상부근까지 올랐던 일행들이 정상밑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정상에 오르자`며 반갑게 맞아준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산의 기쁨은 산 정상을 정복했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을 것이다.”과연 그랬다. 산 그늘진 경사에 눈이 채 녹지않은 터라 정상인 자운봉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암벽 틈사이로 이어진 로프를 타고, 바위로 이뤄진 능선과 계곡을 번갈아 기어올라가야 하는 험로의 연속이었다. 그처럼 산을 오르는 일은 힘겨웠지만 오르는 동안 느껴지는 풋풋한 풀내음은 싱그러웠고, 이제 막 물이 오르는 나뭇가지들에서 뻗쳐오르는 생명의 약동은 손에 잡힐 듯 힘차게 느껴졌다. 몇 번의 오르내림 끝에 마침내 고지 724m의 자운봉 정상에 올랐다.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바위에서 내려다 보니 인간의 사소한 시름과 번민은 대자연의 입김 한차례에 날아가버릴 듯한 장엄한 광경이었다.`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앞에서/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이문재의 시 `농담` 전문에서 보듯 누구에게라도 마구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만날 때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살아가며, 사랑하며, 그런 마음을 가슴깊이 느끼니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실재하는 삶이란 자각으로 깨어난다. 마음 흠뻑 감동으로 채워준 풍경에 취한 뒤 산이 끝나지 않은 산자락 어귀에서 일행들과 함께 마신 막걸리 한잔은 세파에 찌든 심사를 한꺼번에 씻어내리는 치유의 힘을 발휘했다.산을 생각하노라면 성철스님이 종정 취임직후 일성으로 터뜨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한 법어가 먼저 떠오른다. 1980년대 불교계가 만연한 부패속에서 서로 주도권 싸움에 빠져있을 때, 던진 이 말은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됐다. 당시 성철스님이 직면했던 불교계는 눈에 보이는 것인 돈과 권력과 명예 등과 같은 비본질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채 휘둘리는 상황이었으니 불교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넘는 태도를 추구함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정리하고 세워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담아낸 말로 이해된다.성경에서도 산은 높고 숭고한 의미로 나타난다. 시편 121장 1절에서는 `눈을 들어 산을 보라`고 했다. 산을 보라는 것은 안을 보지 말고 밖을 보고,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라는 뜻이다. 특히 아래를 보지말고 위를 바라보라는 말이다. 눈을 들어 보아야 할 산은 만물 안에 있는 질서와 섭리, 절대자의 위대함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자신에 집착하거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세속적인 욕망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향해 나아가라는 메시지다.6.4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TV와 라디오가 목청 큰 정치인들로 시끌시끌하다. 서로 앞다퉈 상대의 잘못을 헐뜯으며, 지지를 호소하는 그들에게 `산을 보라`는 말 한마디 꼭 전하고 싶다.

2014-03-18

사필귀정(事必歸正)

▲김진호 편집국장6.4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경북지역을 텃밭으로 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자치단체장 후보 공천을 놓고 이런저런 고심도 적지않아 보인다. 아무튼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후보 경선은 오는 4월 25일까지 완료하기로 했다니 앞으로 한달 남짓후면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 방식으로 `2:3:3:2`, 즉 대의원(20%): 당원(30%): 국민선거인단(30%): 여론조사(20%) 반영 룰을 원칙적으로 적용키로 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미 지난 주말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후보자 추천 규칙과 여론조사 시행규칙, 시·도당 공천관리위 운영지침 등을 확정해 각 시·도당에 하달했다니 이제 시행만 남은 셈이다. 공천위는 또 후보난립에 대비해 예비 여론조사에서 후보자를 상위 3배수로 압축하고, 하위 순위자는 떨어뜨리는 방식의 `컷오프` 제도를 도입키로 해 경선과정을 지켜보는 주민들도 한층 흥미를 갖고 지켜볼 수 있을 전망이다.공천위는 아울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이 특정 후보자의 경선 대책기구에 참여하거나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 기성 정치권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는 데 신경을 쓰는 것은 지방선거 공천폐지 공약을 파기한 데 대한 `보상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새누리당은 또 지난달 25일 개정한 당헌·당규를 통해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은 당원과 국민 각 50%로 구성된 국민경선인단에 의한 경선으로 뽑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치개혁 차원에서 도입한 `상향식 공천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지방선거 후보자 전원을 경선을 통해 뽑기로 했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느끼고 있는 위기의식이 적지않다는 방증이다. 다만 기초 여론조사 과정을 거쳐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은 3배수, 기초의원은 2배수로 압축해 경선을 실시하게 돼 사상 유례없는 경선정국이 펼쳐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새누리당이 경선(여론조사 포함)을 통한 후보자 추천 방침을 최종 확정함에 따라 현직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한 `인위적 물갈이`가 사실상 불가능해 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사실 새누리당이 지방의원 공천폐지 공약을 깬 것은 정치권이 공천권을 내려놓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신뢰와 약속의 정치`를 모토로 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을 어겼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선뜻 공약이행을 하지 못한 것은 지방의회에서의 영향력 확보문제가 그만큼 정치권의 생존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당원, 즉 정치권보다는 지역주민의 뜻을 중시하는 상향식 공천방식을 채택해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새누리당을 보면서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가 적지않게 발전했구나`하는 자각을 하게된다. 지방자치선거가 도입된지 20년째를 맞아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성과도 적지않다는 깨달음인 셈이다. 중앙에 편중된 인사권, 예산권도 조금씩 지방에 내려오고 있고, 지역민들도 지방자치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다 패션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S) 광고문구를 보면서 무릎을 쳤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짧은 광고카피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사물의 겉 모습은 바뀔지 몰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지방자치뿐 아니라 우리 정치에도 진보는 있었다. 개발독재와 군부독재의 시대를 지나 문민정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MB정부와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면서 정치발전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가 조금씩 강화되고 있다. 역사는 진보한다. 사필귀정이다.

2014-03-11

벼랑끝 전술

▲ 김진호 편집국장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에서 나오는 얘기다. 아르바이트생이 유오성에게 묻는다. “저 형님, 궁금한게 있는데요. 저기, 필드에서 다구 붙을 때요. 여럿이서 한꺼번에 덤비면 어떻게 하세요?” 무대포역으로 나오는 유오성은 이렇게 답한다. “음, 상대가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난 한놈만 패.”아무리 많은 적이 달려들어도 한 놈만 골라 집중적으로 패면 나머지는 겁을 먹고 쉽게 달려들지 못하기 때문에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전략이다.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듯 하지만 사실은 게임이론 중 `또라이 전략`이다. 흔히 말하는 `벼랑끝 전술`의 일종이다.약자도 강자를 일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게임이론 중 벼랑끝 전술이다. 벼랑끝 전술이나 전략, 정책을 영어로는 위기 정책(brinkmanship)으로 표현한다. 주로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북한이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을 일컫는 데, 이와 흡사한 말로는 배수진(背水陣)을 들수 있다. 물을 등지고 진용을 꾸린다는 것은 물러서지 않고,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벼랑 끝 전술은 타협해 모두 같이 잘되자는 윈윈(win-win) 전략보다는 제로섬(zerosum) 게임에 가깝다. 한마디로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가서 이득을 취하는 전술이다.실제로 북한의 전력은 미국의 군사력에 비하면 하룻강아지에 불과하다. 미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북한은 싸우다가 죽든가 아니면 항복해서 포로가 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겨냥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다. 최근에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전후해 3차례나 잇따라 동해상에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군사적 긴장국면을 유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아무리 강한 자라도 상대가 `미친 또라이`처럼 극단적으로 `벼랑끝에 선`사람처럼 굴면, 제압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일단 주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재미를 본 적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약발이 다 돼가는 분위기다.정치판에서도 벼랑끝 전술이 등장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제3지대 신당`창당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당과 정치공학적 선거연대는 없다”고 목청높여 외치던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함으로써 6·4 지방선거가 3자구도에서 새누리당과 통합신당의 양자 대결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은 기초선거 `무공천`방침을 선언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공천폐지 공약 파기를 걸고넘어질 기세다.민주당 입장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40%중반에 이르는 정당지지율에 비해 반토막도 안되는 10%초반대의 정당지지율로는 차기 대권창출이 어려운 만큼 새정치연합의 지지층 흡수를 위해 통합신당이 필요했을 것이고, 새정치연합 역시 지방선거에 내세울 인물영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창당작업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방선거 공천 폐지라는 정치개혁적 화두에 합의하면서 신당창당으로 선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벼랑끝 전술 얘기를 하다보니 80년대초 이른바 `오송회`사건으로 투옥돼 야만적인 고문과 옥고를 치렀던 이광웅 시인의 시비에 새겨진 시 `목숨을 걸고`가 연상된다.`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술을 마시든, 연애를 하든, 교단에 서든,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백배다.

2014-03-04

정치인의 거짓말

▲ 김진호 편집국장“우리는 하루에 40번 거짓말을 한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존 프란쯔의 말이다. 우리가 이처럼 많은 거짓말을 한다면 그 거짓말의 대부분은 예의상 하게되는 선의의 거짓말일 게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서로 곤란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짓말도 있는 법이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솔직한 것은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독일 나치시대에 활동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종교인으로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만약 히틀러에 대항하기 위해 누구와 공모를 했느냐는 신문을 받게 된다면 동지들의 생명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그는 현명한 거짓말 덕분에 진실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어느 유태인 현자는 거짓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혐오하는 사람은 세상 전체를 혐오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실을 사랑하는 세상 전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진실한 구석이 없는 사람 또한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용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이 결코 용인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이다.미국의 닉슨대통령이 탄핵된 이유는 워터게이트 도청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해서 닉슨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의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지방선거 공천폐지 문제를 놓고 민주당은 새누리당에게 “공약파기”,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해 “정쟁용 발목잡기”라고 삿대질이 한창이다. 잘잘못을 따져봐야 할 `뜨거운 감자`다.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예비후보가 정치 쇄신안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오는 6·4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선거의 정당 공천폐지 공약은 공약(空約)이 매듭지어 질 모양이다. 새누리당이 공천 유지 쪽으로 확실하게 돌아섰고, 공천폐지를 당론으로 정하고 여당의 동참을 주장해오던 민주당 역시 공천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군축협상을 하다가 군축협상이 깨지면 우리만 무기를 파기해야 하느냐”하는 게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속내였다. 그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공천을 유지함으로써 후보들에게 기호 1번을 부여받는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자신들만 공천포기를 강행했을 때는 기호순에서 군소 정당 후보보다도 뒤로 밀려 당의 풀뿌리 조직이 흔들릴 것이라는 걱정이 더 컸을게다.그런데 반전은 있다. 당시 정당공천 폐지를 함께 공약했던 무소속 안철수 예비후보는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했단다. 새정치연합을 이끌고 있는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정치의 근본인`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여당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상향식 공천이라는 동문서답을 내놓았다”면서 “대선공약조차 지키지 않았는데, 중앙당이나 지역구 의원의 영향력없이 진정한 상향공천을 이룬다는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보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도 “약속의 정치, 신뢰의 정치는 이제 포기하시는 것인가”라고 물었다.대선공약 파기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에 대한 국민의 질책을 달게 받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공약파기는 거짓말한 것 아닌가? 약속은 약속이다.

2014-02-25

염원의 힘

▲ 김진호 편집국장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얘기다. 일곱살 짜리 아이들로 가득한 반에서 선생님이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무엇이지요?”한 소녀가 대답했다. “우리 아빠요.” 최근에 동물원에 다녀온 한 남자아이가 대답했다. “코끼리요.”어린 딸이 말했다. “내 눈이 세상에서 가장 커요.”그 순간 교실안의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그 말을 이해하느라 어리둥절했다. 선생님도 똑같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어린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눈은 저 애의 아빠도 볼 수 있고, 코끼리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내 눈은 산도 볼 수 있고, 다른 많은 것들도 볼 수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내 눈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내 눈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틀림없어요.”지혜는 결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마음은 눈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제공되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마음은 눈이 결코 볼 수 없는 소리까지 듣고, 실제로 존재하거나 꿈으로만 존재하는 것 까지 만질 수 있다. 마음은 모든 것을 담는다.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마음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임에 틀림없다.또 마음은 실재하며, 우리 삶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지난 16일 오전 경북 동해안지역 최대규모 사찰인 내원산 보경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바람을 쐴 겸해서 들른 내원산 보경사는 정월 보름 방생법회에 참석한 뒤 절을 찾은 신도들 수백여명으로 붐비고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온 마음을 모아 염불을 외우는 신도들의 모습에는 무언가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넘쳤다. 한 목소리로 염불을 외우는 신도들의 목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듯 울려 퍼지는 그 순간, 대웅전을 둘러보고 절을 나서던 내게 무언지 모를 힘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실로 청량하면서도 장엄한 기운이 나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사람이 마음속 깊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그대로 이뤄진다는 `염원의 힘`은 엄연히 실재(實在)한다는 사실을 말이다.그 힘은 `세상에서 가장 큰`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이를 제대로 의식하고,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바로 그것을 꿈꿀 때라야만 그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진심으로 갈망하는 소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소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비밀스러운 보물창고와 같이, 마음 깊은 곳 무의식에서부터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아는 것은 그리 쉽지않은 일이다.지난 2007년 전직 TV 프로듀서인 호주 여성 론다 번이 쓴 책 `시크릿`에서 얘기한 것도 바로 이 마음의 힘에 대한 것이었다. 론다 번은 “인생을 창조할 모든 힘을, 당신은 다름아닌 `지금` 사용할 수 있다”면서 그 방법은 먼저 원하는 것을 `찾고`, 그 소원이 이미 이뤄졌다고 `믿고`, 마지막으로는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느끼기`라고 했다.내 마음속 소원이 무엇인지 간절히 알고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먼저 당신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이 당신에게 말하도록 해야 한다. 마음속에 있는 지혜로움이 당신을 이끌도록 해 자신이 정말로 원하고 있는 소원이 무엇인지를 발견해보자. 마음의 가장 심오한 곳에 있는 소원은, 당신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찾아낸 후, 인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한다는 진리를 수용하는 사람이 될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당신만의 간절한 소원을 큰 소리로 당당하게 외쳐보자.바로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면 그 소망은 이루어진다”는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2014-02-18

꾸뻬 씨의 행복론

▲ 김진호 편집국장여간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포항에서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눈만 내리면 이유없이 즐거워 온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녔던 시절,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추억에 가슴이 뻐근해온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다가 지난해 읽었던,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책 `꾸뻬 씨의 행복여행`을 다시 집어들었다. 파리중심가 한 복판에 진료실을 갖고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 꾸뻬 씨는 둥근 뿔테 안경에 콧수염을 기르고, 의사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을 원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친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를 찾는 여자, 환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슬퍼하는 의사….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꾸뻬 씨는 여행을 떠났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지 알기위해서. 꾸뻬 씨가 세상을 여행하며 찾은 행복의 비결은 얼핏 보면 그리 대단해뵈지 않는 글귀들이다.△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여기까지 읽으니 내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이 책을 읽게된 이유가 짐작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뿜어내는 빛과 향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데 공감했던 모양이다. 꾸뻬 씨의 행복론은 더 이어진다.△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또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꾸뻬 씨는 중국의 한 사원에서 고승을 만났을 때 묻는다. “행복을 목표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요?”노승이 말했다. “삶에서 목표는 많은 일들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는 겁니다.”여행을 마친 꾸뻬 씨는 자신을 찾아오는,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래의 글귀가 적힌 카드를 선물했다고 한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 처럼.”꾸뻬 씨의 카드에 쓰인 글귀처럼, 나 역시 그저 춤추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인줄 가슴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2014-02-11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김진호 편집국장설 명절을 지나며 접한 가장 안타까운 소식이 자살소식이었다. 경산시 남산면에서 두 남자가, 대구 남구의 한 주택에서 60대 부부가, 대구시 달서구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20대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하나뿐인 목숨을 버린 이유가 경제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서, 외로움을 풀 길 없어서, 뜻대로 되지 않은 이성 문제때문이라니 안타까울 뿐이다. 남들은 다들 즐거워하는 명절에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절망감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누구라도 모진 고난이나 절망감에 맞서 이기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사람으로부터 살아갈 의욕을 빼앗는 우울증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이런 우울증에 도움을 주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르침 가운데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얼핏 단순해보이는 에피소드지만 곱씹을 수록 마음을 움직이는 얘기다.교도소에 새로 들어온 재소자가 있었다. 그는 몹시 두려워했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차가운 돌로 된 감방벽은 온기를 죄다 빨아들였으며, 단단한 쇠창살은 모든 자비심에 냉소를 보냈다. 긴 형량이 선고되는 순간 그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날 밤, 깊이 좌절해 모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감방에 누워있던 그는 문득 간이 침대 머리맡 벽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앞선 재소자에게 힘이 되어 준 것 처럼, 그 글귀가 그로 하여금 모든 절망을 이기게 해주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는 돌벽에 새겨진 그 글귀를 기억했다. `이것또한 지나가리라`세월이 흘러 석방되는 날, 그는 그 말이 진리임을 알았다. 형기는 끝났고, 감옥생활 역시 지나가 버린 것이다. 다시 삶을 시작하면서 그는 그 글귀를 침대 옆 메모지에다, 그리고 자동차 안과 일터에도 적어놓고 틈날 때마다 그것의 의미를 마음에 새겼다. 상황이 나쁠 때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이 사실을 기억했다. `이것또한 지나가리라`그리고 상황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쁜 시기는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시기가 다가오면 그는 그것을 즐기되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또 다시 그는 기억했다. `이것또한 지나가리라`그는 삶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좋은 시기는 언제나 이상하리만치 길게 느껴졌다. 암에 걸렸을 때 조차도 그는 기억했다. `이것또한 지나가리라`그것이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희망은 병을 물리칠 수 있는 힘과 긍정적인 생각을 주었다. 어느 날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암은 지나갔습니다.” 생의 마지막 날, 임종의 자리에서 그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속삭였다. `이것또한 지나가리라`그러고는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말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주는 그의 마지막 사랑의 선물이었다. 그 말을 통해 그들은 `슬픔 역시 지나가리라`는 것을 배웠다.이 아름다운 글귀는 성경에 나오는 다윗왕과 관련된 예화에서 비롯됐다.어느 날 다윗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어 반지세공사를 불러 명령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기쁠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고 반지를 멋지게 만들었는 데, 어떤 글귀를 넣어야 할 지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다윗의 아들이자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찾아갔다. 반지세공사의 고민을 들은 솔로몬 왕자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말했다. “이것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이 글귀는 유대인들의 지혜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데, 유대인들은 나찌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이 글귀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분에게 지금 힘겨운 시련이 닥쳐왔나요. 그렇다면 이 글귀를 꼭 기억하세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2014-02-04

설에 맞는 AI경보

▲ 김진호 편집국장설 명절을 앞두고 이게 웬 날벼락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귀성행렬을 조류인플루엔자가 가로막고 나선 모양새다. 정부는 27일 새벽부터 경기도와 충청남북도, 대전시와 세종시에 12시간 동안 스탠드스틸을 재발령했다. 이는 전북 고창·부안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한 데 이어 인근 지역으로 확산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지난 19일 0시를 기해 전·남북, 광주 지역에 지난 2012년 2월 제도도입 이후 처음으로`일시 이동중지 명령`(Standstill)을 내린 데 이어 두번 째다.원래 스탠드 스틸의 뜻은 정지나 멈춤을 뜻하는 말로, 무역분야에서는 현재의 자유화수준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무역장벽설치를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첫 번째 G20 정상회의에서 2010년 말까지 추가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지 말자는 뜻에서 제안했던 것으로, 1930년대 대공황 때 세계 각국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취한 보호무역 조치가 오히려 전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를 장기화시켰던 데서 교훈을 얻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물론 여기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막기위한 방역대책의 일환으로 가금류와 축산 차량, 축산 인력의 이동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가리킨다.스탠드 스틸 조치에도 한계는 있다. 가금류와 축산 차량, 축산 인력의 이동을 금지해도 철새로 인한 AI의 확산까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전북 고창에서 처음 AI가 발생한 지난 16일 이후 최대 21일로 알려져있는 AI 잠복기가 끝나지 않은 점도 AI확산 방지대책마련에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라도 전역에 19일 0시부터 20일 자정까지 스탠드스틸을 발령했지만 AI로 폐사한 철새는 전북 동림저수지뿐 아니라 금강 하구에서도 발견됐다. 또 충남 서천의 종계장에서는 닭이 AI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역시 철새로 추정된다. AI의 최대 잠복기는 21일이므로 이론적으로 다음 달 6일까지는 이런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올 경우 스탠드스틸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스탠드스틸을 발동한 이유는 AI 전파를 막는 가장 효율적인 정책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철새에 의한 전파도 결국은 농가 안으로 사람이나 가축 차량이 바이러스를 옷 등에 묻혀 들어와야 한다”면서 “철새의 이동을 막을 수 없다면 농가에 출입하는 바이러스의 운반체를 막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AI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늦은 것도 정부가 스탠드스틸을 택한 이유 중 하나다. 지금부터라도 AI 확산을 막고, 소독에 힘쓸 경우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현재 AI 발생지 중심으로 이뤄지는 방역은 AI를 사멸시키지 못하고, 확산을 억제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 2010년 12월 발생한 AI는 다음해 설을 전후해 인구이동이 늘어나자 역대 최장기간인 139일동안 지속됐다. AI는 전파속도가 매우 빠른 게 특징이다. 2010년 AI 유행 당시 최초 발생 확인 이후 수도권으로 퍼지는데는 약 한 달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8일로 줄어 설 명절에 대 확산의 우려가 크다.전문가들은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서해안 철새 이동경로 및 가금류 농장에 선제 대응이 필요하며, 축산 농가에 일반인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매일 집중적으로 소독을 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조언하고 있다.이런 이유로 정부는 스탠드스틸 조치를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할지를 검토하고 있다니 큰 걱정이다. AI확산 방지를 위해 귀성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고향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얘기일게다. 방역당국의 철통같은 방역대책으로 AI확산 없는 설 명절이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2014-01-28

게임의 법칙

▲ 김진호 편집국장정치권은 아직도 `게임의 룰`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 6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가 화두다. 이미 새누리당은 기초의원 공천 폐지에 부정적 견해를 굳혀가는 대신 상향식 공천제와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경선제)`도입, 후보자 전과 공시제 등을 제안, 대선공약철회와 동시에 기선 제압을 시도하고 있다.민주당은 여야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의원 공천 폐지를 지켜야 한다며 여당을 압박하는 동시에 이번 지방선거부터 선거참여연령을 18세로 한 살 낮추고, 투표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기존보다 2시간 늘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올들어 `게임의 룰`논란이 유달리 뜨거운 것은 예년의 지방선거와는 달리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우선 김범일 대구시장·염홍철 대전시장·김완주 전북지사 등 일부 광역현역 단체장들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김문수 경기지사도 차기 대권도전을 내세우며 사실상 3선 도전 포기를 공식화했다. 여기에 허남식 부산시장·박맹우 울산시장·박준영 전남지사는 `3선 연임 제한(4선 금지)`으로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됐다. 전체 광역단체 16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곳이 현직 프리미엄이 없는 선거를 예고하고 있으니 과열로 치달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창당을 추진중인 `신당`의 지지도가 제1 야당인 민주당보다 높게 나타난 것도 과열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게임의 룰`은 어느 한쪽에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해법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누구의 해법이 옳다고 말하면 무엇하랴.선거때마다 닥치는 `게임의 룰`논쟁을 보노라면 90년대초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영화 `게임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게임의 법칙은 배우 박중훈을 명실상부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영화로 이경영, 오연수가 주연으로 함께 나온 액션영화다. 폭력과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영화인 데, 홍콩 느와르를 방불케 하는 마지막 장면의 사실적인 폭력 묘사가 인상적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게 영화 포스터였는 데, 거기 쓰인 “삶은 단 한번의 게임”이란 문구가 압권이었다.이 영화는 냉혹한 배신과 음모로 점철된 주먹세계를 묘사했지만 정치판의 변화무쌍함도 만만치 않다.새누리당 중진인 이재오 의원이 기초선거 공천폐지에 소극적인 새누리당에 대해 직격탄을 날려 눈길을 끌고있다. 이 의원은 기초선거 공천 폐지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민과 함께한다는 정치를 말로만 하지 말고 공약한 대로 기초자치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면서 “여야가 공약한 기초자치 공천 폐지는 대국민 약속”이라고 강조했다.주류 친박계 지도부가 기초 공천 폐지 공약을 사실상 백지화하려는 상황에서 비주류 친이계의 좌장격이었던 이 의원이 제동을 건 셈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특히 이 의원은 “당 지도부는 현행 제도를 내심 확정해놓은 것 같다. 여야 협상을 질질 끌다가 합의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이번에는 현행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선언할 것”이라며 “국민들은 그 속임수를 잘 알고 있다”고 당 지도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국민 다수가 공천이 가져오는 정치적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과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이유를 댄다는 것도 국민은 잘 알고 있다”면서 “눈앞에 이익을 쫓다가 낭패할 수 있다”고 새누리당의 속내를 들어 꼬집었다.침묵하는 국민 다수의 속내를 그대로 읽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어쨌든 정치권이 오직 국민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게임의 법칙`을 짜고, 실행하길 기대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2014-01-21

개천에서 용나나

▲ 김진호 편집국장`개천에서 용난다`고 했는데, 옛말이 됐다는 얘기가 많다. 서울의 한 명문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의 출신지를 물어보니 두 명 중 한 명꼴로 서울이란다. 수도권과 지방의 대학 진학 격차가 해마다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경기지역에선 고등학교 졸업생 1만 명 중 134.5명이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나머지 지역은 80명에 불과했고, 수능 성적을 살펴보니 서울은 5%의 학생들이 수리 1등급을 받았지만, 지방 8개 도는 3.4%에 그쳤다. 가장 큰 이유는 서울 고등학생들의 사교육비. 서울은 한 달 평균 42만 원이었지만, 지방 8개 도는 16만 원에 그쳤다는 것이란다. 어느 동네에 사느냐, 부모의 경제력이 어떠냐에 따라서 수능성적과 진학하는 대학의 차이가 크다는 게 오늘의 `슬픈` 연구결과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광역자치단체장에 여야 현역 중진의원들의 출마선언이 잇따르는 것을 보다가 문득 개천에서 용이 안나는 요즘 세태가 안타깝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특권만 무려 200여개에 달한다는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광역단체장에 출마하려고 용을 쓰고 있는, `잘 나가는` 여야 현역 중진의원들은 아마 `개천에서 용나는` 꿈을 꿀 것이다. 특히 1천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수장을 뽑는 서울시장 선거와 경기도지사 선거는 대권가도에 직결된다.대구·경북지역 단체장에도 대구의 서상기(3선), 조원진(재선) 의원이 각각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과 간사 역할을 수행하며 대구시장 선거를 겨냥하고 있으며, 주성영·권영진·배영식 전 의원이 대구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경북도지사 선거에는 현 김관용 도지사 아성에 3선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권오을 전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밖에도 김 지사가 나이문제로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또는 선거 불출마선언을 할 경우 재선의원인 강석호, 이철우 의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광역 단체장에 도전하는 이들이 밝히는 출마이유는 “광역단체장은 집행기관이니까 일을 성취하는 보람이 국회의원보다 낫다”거나 “지방과 중앙 정치 경험을 다 해본 만큼 이를 잘 융합시키면 내가 도전하는 광역단체를 한국의 미래와 희망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정도다.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광역단체장 자리가 대권 후보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잠재적 대선후보에게 필요한 지역기반을 다질 수 있고, 행정 능력을 학습할 수 있는 `소중한`기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경험을 살려 대권으로 직행,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지난 대선 때도 광역단체장 출신 인사들의 대권 도전이 많았다. 김문수 현 경기지사나 경기지사 출신인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그랬고,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참가를 위해 지사직까지 중도사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 역시 경남지사로 자리를 옮긴 채 대권을 노리고 있으며, 새누리당에서 현역의원인 이완구 전 충남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 민주당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잠재적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광역단체장이란 정치적 자산이 대권을 꿈꾸는 이에게 후광효과를 선물하는 모양새다.정치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도 지난 1980년대 이후 30여년간 공화,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주지사(governor)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공화당에서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주), 조지 W 부시(텍사스주), 민주당에서 지미 카터(조지아주), 빌 클린턴(아칸소주)이 나왔다.이런 분위기라면 차기 대통령은 광역단체장 출신이 더 유망할 법 하다. 그래서 광역지방자치단체라는 `작은 개천`에서 나라를 이끌어갈 `용`이 나길 기다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2014-01-14

`기자쟁선(棄子爭先)`의 계

▲ 김진호 편집국장돌아가는 꼴을 보니 또 물 건너가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권에서 한창 논의중인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얘기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후보 모두가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는 데도 올해 6·4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 폐지문제가 어떻게 될 지 예측이 어렵다. 새누리당이 느닷없이 정당공천 폐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초의회 선거폐지를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제도 개선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당헌·당규개정특위는 최근 6월 지방선거에 앞서 지방정치와 지방행정의 불합리한 제도를 전면적으로 쇄신키로 하고, 현행 3연임인 광역단체장 임기의 2연임 축소, 특별·광역시의 기초의회(구의회) 폐지, 광역단체장-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또는 공동후보등록제 등 지방자치제도 개선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정당 공천 폐지 논란에 휩싸인 기초의회를 아예 특별·광역시에서 없애는 방안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는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공약을 나란히 내걸었지만, 아예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온 기초의회 자체를 구의원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시도다.기초의회는 기초의원들의 자질 문제와 수없이 되풀이된 토착 비리 사건, 기초단체장과의 유착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광역의회와의 업무 중복성 때문에 `옥상옥`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사실 여당이 주장하고 있는 구의회 폐지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0년 국회 행정체제개편특위가 구의회 폐지안을 담은 `지방행정체제 개편특별법`을 냈지만, 구의원들은 물론 이해가 얽힌 일부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여권은 급격한 개혁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을 고려, 우선 7개 특별·광역시의 구의회부터 폐지해보고 나서 대상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여권 관계자는 “광역의원들이 기초단체장을 충분히 감시할 수 있다”면서 “기초의회 의사당을 따로 두고 기초의원을 선출하고 운영하는데,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것을 대부분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시니컬하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지방자치제도 개선안에 대해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요구를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박기춘 사무총장도 “정당공천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지방선거 전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데,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기초의회 폐지는 가능하겠는가. 여당의 주장은 전형적 물타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지방의회 공천 폐지에 대한 새누리당의 설명 역시 옹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속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방송에 출연, “정당공천 폐지 시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 권리보호가 어려워지고, 후보가 난립해 검증이 제대로 안되며, 협동조합 등에서 비롯된 유사 정당이 많아 정당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정당공천 폐지 반대입장을 보였다.지방의회 정당공천 폐지로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의 정치적 진출이 문제되면 여성명부제, 동반당선제 등을 도입해 보완하면 된다. 후보 난립 문제 역시 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쳐 정책선거 분위기를 만들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여당인들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굳이 기초의회 폐지를 들고나선 여당의 속셈은 뭘까.바둑에서 `기자쟁선(棄子爭先)`이란 말이 있다. `알을 버리더라도 주도권은 잃지말라`는 뜻이다. 싸움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수세에 몰리면 방어에 급급해지고, 빈틈이 노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의 해, 기초의회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후 공세를 취해온 야당에 대한 대응이 무척 궁색했던 여당이다. 그 와중에 나온 `기자쟁선의 계`는 하나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어떤 신산묘책도 민의나 천심을 거슬러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2014-01-07

유리천장 깨는 법

▲ 김진호 편집국장계사년 연말, 사회 각계각층에서 `유리천장`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말은 자격을 갖추었는 데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원래는 `여성들의 고위직 진입을 가로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애`란 의미로 사용하다가 여성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상황에까지 확대해 사용된다. 이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79년 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 처음 등장했고, 1986년 동일한 잡지에 실린 다른 기사를 통해 재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1991년 미국 정부는 성차별을 해소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제도적으로 독려하기 위해 유리천장위원회(The Federal Glass Ceiling Commission)를 만들기도 했다.먼저 지난 29일 외환은행은 내년도 상반기 정기 임원 인사에서 첫 내부 출신 여성 임원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임원이 된 최동숙 영업지원본부 담당 전무(54·여)는 1979년 입행, 35년의 재직 기간에 24년을 영업점에서 근무했다. 과거 론스타가 대주주이던 시절 외부 인사가 선임된 사례를 제외하면 외환은행 내부 출신으로 여성이 임원 자리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23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차기 기업은행장에 권선주 기업은행 부행장을 내정해 화제가 됐다. 사상 첫 여성 은행장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은행은 검찰 및 경찰과 더불어 대표적인 보수 성향 조직으로 꼽혀 더욱 큰 화제가 됐다. 검찰에서는 지난 19일 조희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서울고검 차장에 임명되면서 검찰 창설 65년 만에 첫 여성 검사장 기록을 세웠고, 경찰에서는 지난 3일 이금형 경찰대학장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치안정감으로 승진,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발령받았다.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유리천장을 깨는 여성이 늘고 있지만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그리 녹록치 않다. 남녀차별이 덜 심한 미국에서도 중간관리자급의 여성은 많지만 임원급은 14%정도이고, CEO는 4%에 불과하다.이와 관련, 월스트리트 저널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5가지 비법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첫째는 큰 그림 보는 법을 배우라는 것. 중간관리자나 하위직급의 일은 실행이 대부분이지만 정상급은 결정하고 리드하는 것이 주 업무기때문에 전문성과 핵심역량을 갖춰야 한다. 또 자기개발의 기회를 활짝 열고, 외부인들과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고, 독서, 블로그와 신문읽기 등을 통해 회사내부뿐 아니라 공동체의 폭넓은 관심사를 주시해야 한다. 둘째는 이니셔티브를 쥐라는 것이다. 당신이 책임지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며, 뒷자리에 앉아 누군가 설명해주길 기다리거나 질문받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셋째는 멘토와 후원자를 찾으라고 했다. 멘토는 자신이 깊은 지식이 없는 영역에서 당신을 코치해주는 사람을 말하고, 후원자는 의사결정의 테이블에 앉아 당신을 대신해서 당신을 옹호해줄 수 있는 시니어 레벨의 리더를 가리킨다. 사내에서 적어도 한명이라도 이런 리더를 확보하지 못하면 당신은 정상의 자리에 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넷째 기꺼이 모험을 감내해야 한단다. 누구나 안전지대에 머물기를 좋아하고,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많은 이들이 좋은 기회를 회피한다. 그렇지만 실패의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정지수를 개발하라고 조언한다. 사다리를 높이 오르려면 사람들을 리드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한다. 무엇보다 윤리적이어야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불어 넣어야 한다.돌이켜보니 이런 비법은 여성 리더에게 필요한 유리천장 깨는 법이 아니라 계사년 한 해를 보내며 21세기 리더를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성공지침일 수 있겠다.

2013-12-31

뮤지컬 `명성황후`를 말한다

▲ 김진호 편집국장뮤지컬 `명성황후` 열풍이 일고있다. 지금으로부터 118년전인 1895년 10월 8일 새벽, 왜인들이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으로 경복궁 건천궁에서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바로 명성황후다. 지난 1995년 명성황후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 `명성황후`는 역사적 고증을 거쳐 600여 벌의 궁중의상과 스펙터클한 무대,`백성이여 일어나라`로 대표되는 웅장한 선율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며 단기간 내 최다 관객동원 기록을 수립했다. 이후 명성황후는 18년간 장기공연되며, 2007년 국내 최초 대형 창작뮤지컬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2009년에는 1천 회 공연을 돌파하며 오랜 기간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 1997년에는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 브로드웨이의 심장부에 위치한 링컨센터에서 공연하며 높은 객석 점유율과 기립박수 속에 대성황을 이뤘다. 2010년에는 창작뮤지컬의 세계화를 위한 초석을 다진 공로를 인정받아 공연예술 부문으로는 유일하게 국가브랜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특히 뮤지컬 명성황후는 `역사의 교훈을 잊은 민족에게는 발전이 없다`는 뼈아픈 지적을 다시 새겨보게 하는 뮤지컬이다. 요즘과 같이 일본이 독도영토 분쟁을 야기시키고 역사교과서 망언 등을 스스럼없이 일삼고 있는 현실에서는 오욕의 역사를 새기며 분발하자는 의미도 적지않다.그래선지 지난 주말 뮤지컬 `명성황후`가 공연중인 대구 계명아트센터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아이들의 손을 잡은 가족단위의 관객들로 붐볐다. 오후 7시 공연시간이 되자 서곡과 함께 막이 올랐다.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면서 무대 상공으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한반도의 일제 강점기를 끝내게 만든 1945년 8월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연도가 1945년부터 거꾸로 흘러 1896년에 멈추어지고, 히로시마 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인들의 `민비 살해` 공판으로 뮤지컬 `명성황후`는 시작됐다.이어 고종과 민자영이 혼례를 올리는 장면부터 민자영이 왕비로 간택되던 해인 1866년부터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고, 명성황후가 행방불명되었다가 환궁하기까지 궁중의 역사가 빠르게 장면이 바뀌면서 펼쳐졌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편이 되어 시아버지 대원군과 갈등을 빚는데, 대원군은 실권을 쥐고 있으면서 쇄국정책과 섭정을 계속 이어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개방이 대세라고 생각한 명성황후는 대원군을 견제한다. 1874년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고, 그해에 뒷날 순종이 될 왕자가 탄생한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갑오개혁 등을 거치며 한반도 점령에 야심을 꾸고 있던 일본은 명성황후가 걸림돌이라며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한다.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비탄에 잠겨있는 온 백성에게 명성황후의 혼이 나타나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곡을 부르는 대목이다. “어린 나이에 힘이 없어 부모님을 지키지 못하고 원수의 칼날에 떠나보내고… 착하고 순한 백성들이 이 땅을 어찌 지킬꼬, 한스러워라 조정의 세월…”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이태원(명성황후 역)의 호소력 넘치는 노래는 관객들에게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다.2013년이 저물어가는 연말, 국채보상운동이란 항일운동의 역사를 가진 대구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명성황후는 개화기 서구열강에 휘둘리며 고통받는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되돌아보게 했다. 이 나라의 역사가 누구에게 어떻게 핍박받았는 지, 지도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도 생각하게 했다.명성황후가 비명에 간지 118년이 지난 지금, 뮤지컬 `명성황후`는 어느 시대나 국민대통합의 역사가 꼭 필요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