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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꽃피다

등록일 2014-04-01 02:01 게재일 2014-04-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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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지난 주말 대구서 열린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국도변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에 연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산기슭 언덕에 자리잡은 과수원엔 복숭아꽃이, 도로변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도로건너편 촌집 마당에는 흰 목련꽃이 소담스런 자태를 뽐냈다. 바로 얼마전까지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하던 날씨가 갑자기 포근해지더니 어느새 온 산과 들에 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속에 펼쳐진 기적같은 풍경의 변화였다.

어김없이 다가온 봄에 꽃들이 피어나는 것은 사계절을 가진 이 땅에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형형색색의 꽃이 만발하고, 깡마른 나무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는 광경은 경이로운 장면이다. 봄을 생명의 약동으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꽃들을 두고 단순히 `봄의 전령`이란 한마디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문화유산답사기의 서문에는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좋아해 인용했지만 나 역시 이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사랑하면 더 많이 알게되고, 그러면 알기 전 보다 더 많이 보게되며, 그때 보게 되는 것은 그 전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게 연인과의 사랑이든, 학문이든, 꽃에 대한 관심이든 말이다.

일반 사람들은 목련이나 진달래같이 화려한 것만 꽃이라고 부르며, 버드나무나 참나무와 같이 화려한 색깔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꽃인 줄도 모르고 지나친다. 지구상에 있는 식물의 종(種)은 30만 종 내외며, 꽃으로 취급되는 종은 약 8천여 종이지만 온실화훼까지 합치면 수만 종에 이른다. 그 중 우리 나라에서 자생하는 자생식물은 대략 4천135종류가 있으며, 이 가운데 꽃으로 불리는 것은 약 500여 종으로 추정된다.

신문기자 초년병 때의 일이다. 어느 기자가 여행을 다녀온 곳에 대해 풍경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썼다. “들판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있고…”이 글을 본 한 선배기자는 분개하며 말했다. “절대로 이런 글을 써서는 안된다. 이 땅에 사는 꽃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이름을 모르다니 무슨 얘기냐”당시 시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던 그 선배는 들판에 피어있는 꽃 이름 하나 알아볼 생각 않고, 막연히 이름모를 꽃이라고 글을 쓰는 기자가 되선 안된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 말에 감명받은 나는 한동안 여행기사에서 풍경스케치를 할때면 우리의 산과 들에 자라는 나무와 꽃 이름이 적힌 책을 들고 다니며 여행지의 꽃과 풀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 적어넣곤 했다.

꽃은 꽃피는 식물을 통틀어 말하지만 인기가 많거나 아름다운 여자 또는 아름답게 화려하게 번영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말하거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쓰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에서 꽃은 또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특히 `꽃의 시인`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김춘수 시인은 그의 대표작인 `꽃`이란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으로 이름 불리는 것은 우리 서로에게 중차대한 의미가 되었다는 뜻이다. 시인에게 이름은 의미부여를 나타내고, 꽃은 의미가 부여된 타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름은 나와 타자를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맡고있다. 이름을 통해서 나는 타자에게로, 타자는 나에게로 건너올 수 있다. 또한 꽃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원초적 열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은 작품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싶다”

꽃이 만개한 이 봄, 당신은 누구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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