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 실적 실망에 투매…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10.3% 폭락 5월 美고용 예상 밖 호조에 연내 금리인상 우려까지 겹쳐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끌어온 미국 반도체주가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일제히 급락하며 시가총액 약 1조3천억달러(약 2천26조원)가 증발했다.
브로드컴의 AI 칩 사업 성장세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친 데다 예상보다 강한 고용지표가 금리 인상 우려를 자극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주요 반도체 종목 30개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이날 10.3% 폭락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급락의 진원지는 브로드컴이었다. 브로드컴이 최근 발표한 분기 실적에서 맞춤형 AI 칩 사업 성장세가 시장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AI 관련주 전반에 대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는 이날 6% 가까이 하락하며 시가총액 3천억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13% 급락해 시가총액 약 1천500억달러가 사라졌다. 마벨 테크놀로지는 17%, AMD는 11% 각각 떨어졌고 브로드컴도 8% 가까이 하락하며 이틀간 낙폭이 20%에 육박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급등한 기술주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투자자들이 고평가된 기술주 비중을 줄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의 예상 기업가치는 1조7천500억달러(약 2천7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을 크게 웃돈 미국 고용지표도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 노동부는 5월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17만2천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8만명을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경기 둔화 우려가 완화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부각됐고, 성장주 중심의 기술주 매도세를 자극했다.
데니스 딕 트리플D트레이딩 트레이더는 “그동안 투자자들은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무조건 매수에 나섰지만 그런 전략은 오늘로 끝났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급락을 업황 악화보다는 과열된 주가에 대한 조정 국면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이날 폭락에도 불구하고 연초 이후 상승률이 73%에 달한다. AI 산업 성장 기대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단기 충격 이후 반등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평가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