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어버이날 찾아뵙지 못했던 아버님과 함께 대구 칠곡 현대공원에 있는 어머님 묘소를 찾았다. 1988년 뇌일혈로 쓰러져 돌아가신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를 보며 환히 웃던 어머니 모습은 눈앞에 그린 듯 선명하다. 아버님은 어머니가 외아들인 내가 하고싶은 일은 뭐든지 다 해주라고 할 정도로 공을 들여 키웠는 데, 이렇게 자주 찾지 않아서야 되겠느냐며 무심한 아들을 나무라셨다. 멀지 않은 곳에 묘소를 두고도 자주 찾지 못한 불효를 뭐라 변명할 길 없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묘소주위에 있는 잡초를 뽑으시던 아버님 손가락에 아차, 뾰족한 가시가 박히고 말았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자 아버님은 “야야, 내가 자주 찾지 않는다고 네 엄마가 혼내는갑다. 나라도 앞으로 좀더 자주 와야겄다.”하시며 쓸쓸히 웃으셨다. 포항서 근무하면서도 대구에 계신 아버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그 말씀에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다. 어머니가 못견디게 그리웠고, 아버님께는 그저 죄송스런 마음뿐이었다.
`나실 제 괴로움 다~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어버이날에 부르는 `어머님 은혜`는 어떤 노래보다 우리 마음을 강하게 울린다. 노래 첫 소절 반주만 나와도 금세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땅에 사는 누구라도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는 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큰 딸이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대실내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 뒤 앙코르곡으로 이 노래를 연주했단다. 수많은 청중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쳤고, 연주후에 감동의 박수를 오랫동안 받았다고 했다. 어버이날 청중들에게 어머니 은혜를 되새기게끔 해준 딸의 사려깊은 마음에 나 역시 크게 칭찬해주었다.
어머니는 예술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미술작품에는 미국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회색과 검정의 배열 제1번-화가의 어머니`(1871년 작·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란 작품이 있다. 휘슬러의 어머니는 예순일곱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즐거움에 3개월간 의자에 꼼짝않고 앉아 있는 고통을 감수했다고 한다. 그런 정성덕분일까. 이 작품은 미국의 어머니날 기념우표에 등장하는 아이콘이 됐고, 휘슬러도 큰 명성을 얻었다. 이외에도 반 고흐, 피카소, 렘브란트 등 수많은 화가들이 어머니를 화폭에 담았다. 그들은 왜 자신의 어머니를 그렸을까? `어머니를 그리다`란 책의 저자 줄리엣 헤슬우드(영국 미술평론가)가 대답한다. “화가의 어머니들은 자식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헌신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화폭에 담아내고 싶었을 겁니다.”
영국문화원이 102개 국가 4만명을 대상으로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조사한 결과 `mother(어머니)`란 단어가 첫 손에 꼽혔다. 우리만 어머니에게 애틋하고 가슴이 저려오는 감정을 가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머니가 아름다운 단어로 꼽히는 것은 마땅하다. 못난 자식들은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겹다 해도 어머니만 생각하면 용기를 되찾는다. 이 땅에 계시든 안 계시든 상관 없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이 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그늘 덕분이다.
김종해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가운데 /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사모곡` 전문)
나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르고 싶은 이름은 `어머니`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