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난다`고 했는데, 옛말이 됐다는 얘기가 많다. 서울의 한 명문대학에서 1학년 학생들의 출신지를 물어보니 두 명 중 한 명꼴로 서울이란다. 수도권과 지방의 대학 진학 격차가 해마다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경기지역에선 고등학교 졸업생 1만 명 중 134.5명이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나머지 지역은 80명에 불과했고, 수능 성적을 살펴보니 서울은 5%의 학생들이 수리 1등급을 받았지만, 지방 8개 도는 3.4%에 그쳤다. 가장 큰 이유는 서울 고등학생들의 사교육비. 서울은 한 달 평균 42만 원이었지만, 지방 8개 도는 16만 원에 그쳤다는 것이란다. 어느 동네에 사느냐, 부모의 경제력이 어떠냐에 따라서 수능성적과 진학하는 대학의 차이가 크다는 게 오늘의 `슬픈` 연구결과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광역자치단체장에 여야 현역 중진의원들의 출마선언이 잇따르는 것을 보다가 문득 개천에서 용이 안나는 요즘 세태가 안타깝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특권만 무려 200여개에 달한다는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광역단체장에 출마하려고 용을 쓰고 있는, `잘 나가는` 여야 현역 중진의원들은 아마 `개천에서 용나는` 꿈을 꿀 것이다. 특히 1천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수장을 뽑는 서울시장 선거와 경기도지사 선거는 대권가도에 직결된다.
대구·경북지역 단체장에도 대구의 서상기(3선), 조원진(재선) 의원이 각각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과 간사 역할을 수행하며 대구시장 선거를 겨냥하고 있으며, 주성영·권영진·배영식 전 의원이 대구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경북도지사 선거에는 현 김관용 도지사 아성에 3선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권오을 전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밖에도 김 지사가 나이문제로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또는 선거 불출마선언을 할 경우 재선의원인 강석호, 이철우 의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광역 단체장에 도전하는 이들이 밝히는 출마이유는 “광역단체장은 집행기관이니까 일을 성취하는 보람이 국회의원보다 낫다”거나 “지방과 중앙 정치 경험을 다 해본 만큼 이를 잘 융합시키면 내가 도전하는 광역단체를 한국의 미래와 희망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정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광역단체장 자리가 대권 후보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잠재적 대선후보에게 필요한 지역기반을 다질 수 있고, 행정 능력을 학습할 수 있는 `소중한`기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경험을 살려 대권으로 직행,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 대선 때도 광역단체장 출신 인사들의 대권 도전이 많았다. 김문수 현 경기지사나 경기지사 출신인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그랬고,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참가를 위해 지사직까지 중도사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 역시 경남지사로 자리를 옮긴 채 대권을 노리고 있으며, 새누리당에서 현역의원인 이완구 전 충남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 민주당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잠재적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광역단체장이란 정치적 자산이 대권을 꿈꾸는 이에게 후광효과를 선물하는 모양새다.
정치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도 지난 1980년대 이후 30여년간 공화,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주지사(governor)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공화당에서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주), 조지 W 부시(텍사스주), 민주당에서 지미 카터(조지아주), 빌 클린턴(아칸소주)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라면 차기 대통령은 광역단체장 출신이 더 유망할 법 하다. 그래서 광역지방자치단체라는 `작은 개천`에서 나라를 이끌어갈 `용`이 나길 기다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