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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등록일 2014-04-15 02:01 게재일 2014-04-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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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4월 중순에 접어들며 산과 들을 뒤덮었던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의 향연에 이어 때이른 라일락꽃이 한달 일찍 피어 상춘객들에게 달콤하고 향긋한 꽃향기를 선물하고 있다.

이처럼 흐드러진 봄향기에도 불구하고 봄을 만끽하기 어려운 이도 적지않다. 신문사에 함께 근무하는 한 간부는 요즘 고교 1학년 딸때문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딸이 사춘기에다 우울증이 겹쳤는 지 새로 진학한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있어 선생님과 교육청을 찾아다니며 전학 등 수속을 알아보고 있단다.

한창 예민한 시기의 딸을 곁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챙기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는 그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을 비명처럼 외쳤다. 그의 외침에 공감한다.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돈버는 일도 중하지만 자식농사 잘못되면 무슨 보람이랴.

나 역시 반성할 일이 떠올랐다. 지난 주말 모처럼 다섯식구가 함께 식사를 할 때였다. 서울 여의도고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지난 해 10월 `2013년 인천청소년록페스티벌`에서 학교 밴드부인 `이데아`신디사이저 멤버로 출전해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평소 재즈피아노를 치기 좋아해서 연주실력이 제법 괜찮은 줄은 알았지만 록밴드 멤버로 출전해 상을 받은 줄은 까맣게 몰랐다. “왜 얘기 안했냐?”고 아내에게 묻자 “내가 얘기 안했던가요?”하고 만다. 막내아들이 공부에 소홀한 데 대해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던 아내는 그 일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 그냥 지나간듯 했다. 어쨌든 뒤늦게나마 아들에게 “대단하다. 참 잘했다.”하고 칭찬했더니 아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고보니 `고3 입시를 앞두고 있는 아들이 어떻게 공부하는 지, 생활하는 지 모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비로서의 무심함을 새삼 반성했다. 부모에게 훌륭한 아들이 되기도 어렵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고민을 안고보니 춘래불사춘의 의미가 새록새록 다가왔다.

원래 춘래불사춘은 한나라 궁녀 왕소군의 심정을 표현한 시에서 비롯됐다. 왕소군(王昭君)은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역대 중국의 4대 미인을 가리키는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雁 閉月羞花)`가운데 낙안(雁: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춰 땅에 떨어졌다)의 주인공이다.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에 의해 흉노왕에게 미인계의 제물로 바쳐졌는 데, 후세 중국의 많은 시인들이 왕소군이 오랑캐의 땅으로 출발할 때 가련함과 슬픔, 변방에 끌려가 지내는 외로움, 고향에 대한 애끓는 마음 등을 노래했다. 그 가운데 당나라의 시인인 동방규(東方叫)는 `소군의 원망`이란 시에서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으니)`라며 봄은 봄이로되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처지를 노래한 것이다.

춘래불사춘을 외치며 자식농사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잭 켄필드와 마크빅터 한센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중 `내가 만일 아이를 키운다면`이란 글을 가슴에 담기를 권한다.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작게 다투리라. 도토리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이렇게 아이를 키운다면 이 나라 교육에 봄다운 봄이 오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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