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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해 신공항`의 허구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영남권 신공항이 결국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났다. 밀양이나 가덕도로 결정됐을 경우 닥쳐올 국론분열이나 배제된 지역의 민심이반을 우려한 결론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을 대선공약으로 약속해놓고 결국 파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됐다. 그래선지 당·정·청은 일제히 `김해 신공항`을 주장하며 정면 대응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영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신공항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대응은 임기말로 치닫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세가 능사가 아니란 생각도 한몫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돌이켜보건대 2009년 MB정부에서 신공항 건설 논의 당시 김해공항 확장안이 전향적으로 검토됐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2010년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되고 재추진을 거쳐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내리기까지 격었던 지역갈등과 논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 과거 이명박(MB) 정부에서 폐기된 김해공항 확장안이 이제 다시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가 궁금해진다.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강호인 장관은 최근 언론사 부장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발상의 차이였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였던 2009년과 비교해 항공 수요가 크게 늘었고, 저비용항공사(LCC)가 증가하면서 수요 전망에서 차이가 발생한 것도 김해공항 확장이 가능해진 원인이 됐다는 얘기도 나왔다.사실 MB정부 시절인 2009년 국토연구원이 제시한 김해공항 확장 방안에서는 기존 활주로에 교차(cross)해서 1본을 증설하는 안을 포함해 총 4가지 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당시 이 안들은 항공기 처리 용량이 기존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는데다 군공항 이전 문제, 안전 문제 등이 지적되며, 최종 대안에서 탈락해 밀양과 가덕도만 남게 됐다. 즉, 당시 연구용역에서는 인근 부지를 건드리지 않고 자체 공항 부지내에서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제한적인 아이디어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 용역을 맡은 프랑스ADPi는 공항 인근의 부지를 활용해 독립 활주로를 건설하는 해법을 찾아냈다. 기존 활주로 옆쪽으로 40도 비스듬히 `V`자 형태로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면 활주로간 간섭이 없어 늘어나는 항공수요를 처리하기 위한 충분한 용량 확보가 가능하고, 안전에도 문제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신공항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바로 청와대나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켜온 신뢰정치에 맞지않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우선 청와대와 정부는 신공항 입지 발표 전날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신공항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쪽으로 결론나자 `김해공항 확장= 신공항`이란 논리를 폈다. 그러려면 당초 밀양과 가덕도를 놓고 지역주민과 정치권이 유치경쟁을 펼때 제3의 대안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공표했어야 한다. 아무 말 않다가 뒤늦게`김해공항 확장=신공항`이란 논리를 펴니 해당 지역의 어느 누가 수긍하겠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이라고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걸 국민들도 잘 안다. 따라서 나라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서 추진했다가 전문가의 연구결과 아니라고 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게 옳다. 영남권 신공항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로 밀양과 가덕도를 검토했으나 두 지역 모두 경제성이나 안전성, 정치적 파급효과를 모두 고려해보니 적절치 않다는 결론이 났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만 결정과정이 좀더 객관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설령 일이 잘못됐을 경우라 해도 진솔한 사과와 함께 민심수습책을 내놓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도 앵무새처럼 입을 맞춰 “공약을 이행했다”며 억지를 쓴다. `과즉물탄개 (過則勿憚改: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란 말이 있다. 반성 없는 청와대와 정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2016-06-24

불붙는 개헌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개헌논의가 20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14년만에 야당출신으로 국회의장을 맡게 된 정세균 의장은 지난 13일 개원사를 통해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정 의장은 16일 취임 간담회석상에서도 “개헌논의가 쭉 돼 왔는데 그냥 논의만 할게 아니라 매듭지을 때가 됐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개헌논의도 과감해질 때가 됐다”며 강력한 개헌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예전부터 4년 중임제와 함께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결합한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정 의장은 또 신임 국회 사무총장에 19대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 154명으로 구성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 간사를 맡아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히는 우윤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내정해 자신의 개헌 의지를 또다시 드러냈다. 정 의장의 개헌의지를 반영하듯 `개헌 전도사` 우윤근 내정자는 국회 내 개헌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해 개헌론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무엇보다 개헌론에 무게를 실어준 것은 4·13총선에서 대구 동구갑에 이른바`진박(眞朴)` 후보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정종섭 의원이다. 서울대법대 학장을 지낸 헌법학자 출신인 정 의원은 최근 “올 연말까지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현행 정치체제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극단적 정치 대립을 낳았다”면서 “정치권과 학계가 공감하고 있는 만큼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하면 연내 개헌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국민여론이 개헌에 우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정치권의 개헌론 열기를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16일 리얼미터가 CBS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19세 이상 성인 515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 중 69.8%가 개헌론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2.5%에 불과했다.이런 상황임에도 여권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 4년 차를 맞은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면 20대 국회가 “개헌으로 시작해 개헌으로 끝날 수 있다”는 이른바 `블랙홀 효과`를 우려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6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개인적으로 `87년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면서도“범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여의도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하는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국민은 경제 살리기, 청년 일자리 등 먹고사는 문제와 고단한 삶의 문제를 정치인들이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는 데, 개헌 논의가 여러 현안 의제 중 우선순위에 자리 잡을 경우 과연 그것이 국민적 동의와 추동력을 담보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돌이켜보면 87년 헌법은 6월 민주화운동의 결실로서 단임제 대통령,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주의발전에 큰 업적을 낳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87년 체제는 대통령직선제에 집중하다보니 시민기본권 등에서 많은 부분이 누락됐다. 그 이후 다가온 지방자치·정보화시대 등 새로운 시대가치 역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시대변화의 흐름과 미래대비를 위한 가치를 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한반도의 긴장,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따른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비용, 지방자치 25여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시민기본권의 피해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이제 이 모든 부조리와 비합리를 털어내고 새출발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쪼록 87년 체제의 적폐를 개선하려는, 뜻있는 시민사회와 정치세력들의 노력이 새롭게 논의되는 헌법에 오롯이 담겨지길 소망한다.

2016-06-17

협치(governance) vs 합의(consensus)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여야 3당이 8일 제20대 국회 전반기 원(院) 구성에 전격 합의해 모처럼 여의도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원 구성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국회의장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양보함에 따라 극적 타결의 전기가 됐다고 한다. 국회의장을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는 대신, 핵심 상임위인 운영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챙겼다. 국회부의장 2명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하나씩 나눠 맡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운영·법사위 외에 기획재정·정무·안전행정·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정보·국방위원장 등 국정 운영에 필수적인 8개 상임위원장을 맡는다. 더민주는 예산결산특별·환경노동·외교통일·보건복지·국토교통·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여성·윤리위원장 등 8개 상임위원장을 가져갔다. 국민의당에는 교육문화체육관광·산업통상자원위원장 등 2개 상임위원장이 배정됐다. 이번 협상 결과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그리고 국민의당까지 모두 윈-윈-윈 했다는 평가를 낳았다. 먼저 새누리당은 원내 제1당을 더민주에 내주면서 야당몫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가져왔기에 상임위원장 자리는 `선방`했다는 평가다.더민주당은 국회의장직을 따냈고 예결위원장을 가져갔으니 명분과 실리 모두 만족하는 협상이 됐다. 국민의당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상임위보다 산하기관과 예산소요가 많은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자리를 꿰어찼으니 기대이상의 실리를 챙긴 셈이다.새누리당 정진석·더민주 우상호·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원 구성 협상을 전격 타결한데 이어 9일 오후 의장단을 선출했다. 상임위원장은 13일 20대 국회 개원식을 진행한 뒤 오후 2시부터 선출하기로 했다.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의 법정 시한은 각각 이달 7일과 9일이어서 의장단 선출은 법정 시한보다 이틀, 상임위원장 선출은 나흘 지각한 셈이다. 그래도 20대 국회는 1994년 법정 시한이 생긴 이후 가장 이른 시일 안에 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됐다.극적인 원구성 협상결과가 나오자 언론에서는 `협치의 정치`로 이어가길 바란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협치란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정책위원장 회담이 진행된 전후부터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 일제히 `협치`의 시대가 시작됐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그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문제나, 상시 청문회법 거부권행사, 원 구성 협상 난항 등으로 `청와대발` 협치 분위기는 크게 흐트러지고 말았다. 협치(協治)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다만 외래어인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종종 사용돼 온 용어다. 모든 종류의 관리(governing)가 이뤄지는 구조와 절차를 의미하는 거버넌스가 정부에 적용될 때는 통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야가 협치를 한다면 연립정부나 거국내각이 이뤄지는 정도의 상황에 어울린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나 여당이 말하는 협치는 이런 의미가 아니다. 정부는 협치라는 말을 통해 현재 상황을 야당과 함께 관리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도 야당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이러니 지금 국회에서 일어난 일을 협치와 연관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이번 원 구성협상의 극적 타결은 `합의정치`의 결실이라고 평가하는 게 옳다. 사회계약론에서 정치적 권력의 정통화 조건으로 보는 합의(consensus)는 사전적 의미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야가 극한대립만을 반복해 온 우리 정치판에서 오랫만의 쾌거이니 이런 분위기가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라는 게 온국민의 바람일 것이다.협치든 합의든 용어가 무슨 상관이랴. 다함께 마음을 모아 나라발전에 힘써야 할때다.

2016-06-10

반기문 대망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반기문 대망론`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특히 대권 잠룡들이 총선에서 낙선하는 등 타격을 입은 여당은 반기문이란 카드를 잡기 위해 환영의 손짓을 보내는 모양새인 반면 야당은 대권후보군이 나름 정립된 상태여서인지 반 총장의 발언과 행동이 적절치 못하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그동안 대권도전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던 반 총장은 최근 방한에서 “유엔여권을 갖고있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할 지 그때 가서 결심하겠다”고 말해 대권 출마의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방한 이후 모 여론조사기관이 대권주자 지지도를 조사하자 여야의 유수 주자를 제치고 1위로 나타나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반 총장의 후배들이 반기문 총장 퇴임후를 위해서 재단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실상 대권 행보를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단설립을 통해 기반을 다졌고, 안철수 또한 재단설립 이후 대선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반 총장의 고향인 충청도에서는 대망론에 대해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론주도층 가운데 상당수는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처럼 반 총장이 UN 사무총장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과연 대통령이 되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과 일본의 역사갈등에서도 제대로 된 중재역할을 하지 못했고, 미국과 중국이 개입된 소규모의 분쟁에서도 상임이사국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필자 역시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반 총장이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대권주자로 떠오른 것은 한국 외교사 최초로 UN 사무총장이란 직책을 맡아 나라의 이름을 드높였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해외 언론에서 반 총장의 직무성과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거나 아주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UN이란 국제기구에서 사무총장으로서 활동하기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반 총장이 국제사회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반 총장의 위상이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은 반 총장의 약점이 될 수 있다. 반 총장이 UN 사무총장으로서 공직을 마무리한다면 모르지만 대권 주자로 나서는 순간 수년동안 쏟아져 나온 해외언론의 부정적인 평가 보도가 반 총장의 외교적인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평생을 외교공무원으로 근무한 반 총장에 대한 정치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큰 위험부담이다. 대권주자가 되면 장관 청문회 수준의 검증과는 전혀 다른, 아주 높은 강도의 검증과정에 돌입한다. 이 과정을 반 총장이 큰 상처없이 통과할 수 있을까. 녹록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친박계와 비박계간 갈등으로 어수선한 여당내 역학구도 가운데 반 총장이 대권후보로서 연착륙하기에는 정치적 기반이 너무 없다는 것도 대망불가론의 이유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친박계가 반 총장을 영입해 대권주자로 내세울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당내기반이 전혀 없는 반 총장이 정권 말기에 접어들어 힘을 잃어가는 청와대, 민심의 역풍을 맞고 있는 친박계의 지지로 비박계와 여권 잠룡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여권 주자로 자리잡기란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다.개인적으로 반기문 총장이 한국외교사에 쾌거로 기록된 `한국 최초의 UN 사무총장`이란 영광스런 타이틀을 대권이란 이름의 늪에 빠져 더럽히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반 총장은 외교관으로서 세계에 족적을 남기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다.

2016-06-03

새누리당의 정명론(正名論)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후략` 김춘수 시인의 대표적인 시 `꽃` 가운데 일부다. 특히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는 대목에 이르고 보면 이 시는 요즘 새누리당 정진석 대표가 밀고있는 정명론(正名論)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듯 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최근 계파갈등에 대해 정명론을 주장했다. 즉, 당내 계파와 관련해 대상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문제인 만큼 대통령 성을 딴 `친박``비박`이란 표현을 쓰지말고, 쓰더라도 주류·비주류라고 하자는 제안이었다. 명칭이 실제에 맞도록 바로잡으려는 주장을 정명론이라 한다면 나름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친박·비박계란 새누리당내 계파이름의 유래는 약 10년 전 이명박·박근혜 대선 후보 경선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명박·박근혜 두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각각 친이계와 친박계를 처음 형성했고, 5년 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치러진 19대 총선을 기점으로 친이계가 몰락하면서 친박계와 비박계로 재편됐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서로 맞서는 당내 상황은 20대 총선 공천 파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특정인 중심의 계파 정치가 빚은 참사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 당 내부에서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쉬쉬하지만 지난 달 26일 권성동 의원이 전략기획본부에 낸 `총선 패인 분석 및 지지 회복 방안` 보고서에서도 명확히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맥락에서 총선 패배 이후 당 수습의 최일선에 선 정 원내대표는 당 쇄신을 위한 의사 결정에 계파색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 원내대표가 비록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선출되긴 했지만 친박계의 속셈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을 하게 됐고, 결국 친박계로부터 공격을 받아 전국위원회가 무산되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정 원내대표와 친박계 최경환 의원과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 3자회동을 통해 가까스로 혁신비대위원장을 선임하는 등 갈등을 봉합했지만 정명론적 해법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까 궁금하다.정 원내대표가 계파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정명론은 논어 자로편 3장에 나온다.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하니,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 자로가 말했다. “어떻게 바로 잡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 구차히 함이 없을 뿐이다.”즉, 올바른 이름으로 사물을 부르는 것은 철학의 문제이고, 현실 정치에는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는 바른 명분을 갖고 해나가야 하는 것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다.그러나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론에 덧붙여 또 하나의 정명론을 안연편 11장에서 설파하고 있다. 제(薺)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군주는 군주 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앞으로 참조할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또 하나의 정명론이 아닐까. 이같은 정명론이 우리 정치판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시인 김춘수가 노래한 것처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2016-05-27

장수(長壽) 솔개의 교훈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새누리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4·13총선 참패이후 당을 수습하기 위해 출범키로 했던 비대위와 혁신위가 친박계의 조직적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친박세력이 비대위와 혁신위의 출범을 가로막은 것은 비박 인사들이 주도하게 될 이들 기구가 자신들을 거세시킬 것이란 우려에서 비롯됐다. 총선이 민심의 심판이라면, 민심이 등을 돌린 상황인데도 친박계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않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그래서 비대위에 강성 비박계 의원이 포진한 데 대해 반발하면서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비박세력에게 당권을 넘겨주느니 차라리 자기들끼리 영남지역당이 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태세다. 특히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하나를 구심점으로 뭉쳐있는 정치세력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을 돕기 위해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을 장악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빠져있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불편한 일이 있다해도 비박 세력이 당을 깨고 나가는 분당을 결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한다. 만에 하나 분당이 된다 해도 박 대통령을 따르는 영남지역당을 지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도로 친박당`이 됐다고 가정할 때부터 생긴다. 국민들은 그런 새누리당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아마 민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 집권 여당이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친박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은 결국 대선 필패론에 직면하게 되고, 당의 분열은 불가피해질 것이다.사실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데는 박 대통령이 `유승민이라는 특정인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면 총선 패배도 감수할 수 있다`는 비이성적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놓지 않기 위해 정권을 놓을 수 있다`는 비이성적 결기를 보인다해서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보수당인 새누리당의 앞날을 걱정하다보니 장수(長壽) 솔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솔개는 수명이 매우 길어서 자연 상태에서 약 25년을 산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50년 가까이 생존하는 솔개가 있다. 그 희귀한 솔개의 생태를 연구한 조류학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솔개가 20년 이상 살면 몸이 노쇠하여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고 날개 깃털도 헤어져 날기조차 힘든 볼품없는 모습이 된다.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그 시기에 몇몇 특이한 솔개는 남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각하고, 그냥 늙어 죽어가는 동료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경이로운 솔개는 천적을 피해서 험준한 바위산으로 날아가 혼자 둥지를 튼다. 그리고 구부러진 부리로 단단한 바위를 마구 쪼아 늙은 부리를 깨트려 부순다. 고통스런 재생의 시간이 흐르면, 부리가 부서진 자리에서 매끈하고 튼튼한 새 부리가 자라난다. 그 다음에는 튼튼한 새 부리로 무뎌진 발톱을 뽑고, 낡고 추레한 깃털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참고 또 견디면 튼튼한 새 발톱과 날렵한 새 깃털이 돋아난다. 그렇게 솔개는 새 몸을 얻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산고의 기간을 통해 튼튼한 부리와 발톱과 날개를 얻은 솔개는 깊은 지혜와 인내심을 겸비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 2라운드의 원숙한 생을 우아하게 시작한다. 장수 솔개처럼 스스로 자신의 부리와 발톱, 그리고 깃털마저 하나하나 뽑아내는 인고의 시간을 참고 견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새누리당 역시 장수 솔개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느 솔개처럼 하릴없이 역사속에 스러져 갈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제라도 자성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계파정치라는 구시대의 정치관행을 떨쳐내고, 국민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새로운 보수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2016-05-20

빗나간 초선의원 연찬회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0대 국회를 앞두고 지난 11일 국회사무처가 주관한 초선의원 연찬회가 온갖 뒷말을 남긴 채 끝났다. 특권부터 가르친다`는 날선 비판을 받은 것이다. 국회 경내에서 300m 남짓 떨어진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우등버스를 동원하고, 단 한층을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독점하는 등 무리한 행사 진행이 화근이었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의 특권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많은 요즘 국회사무처의 무신경이 안쓰럽다. 지난 2014년 자유경제원은 국회의원의 특권은 200여 가지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많은 특권이 국회의원 금배지를 다는 순간 주어지니 말그대로 신분이 격상되는 것이다. 먼저 국회의원의 권한을 보면 특권층이란 말이 실감난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입법권, 국가예산 심의권, 국정조사와 조사권 등의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큰 권한은 입법권이다. 국민과 국가, 그리고 국민 상호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률 제·개정권과 헌법 개정에 관한 권한 등을 갖는다. 또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권한과 함께 정부의 주요 재정행위에 대한 동의 및 승인권을 행사한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가기관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이와 함께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등에 대한 임명동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에 대한 인사청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권 등의 권한을 통해 정부를 견제한다. 이밖에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에 관한 탄핵소추권, 외교와 국방정책에 관한 동의권, 계엄해제 요구권 등을 갖는다.수많은 특권 중 가장 특별한 권한은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이다. 국회 내에서 행한 직무상 발언과 표결에 관해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 또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 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국회의원은 이밖에도 수많은 특권이 있다. 법안 하나 내지 못하는 국회의원도 예외없이 4급, 5급을 포함해 9명이나 보좌진을 거느린다. 세비 약 1억4천만원에 이들의 연봉 3억 9천만원도 전액 지원받는다.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65세 이상 되면 매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항공기·선박·KTX열차도 공짜다. 그것도 항공기는 비즈니스석이다. 공항에서 VIP 룸과 귀빈 주차장 사용은 기본이다. 고급휴양지 못지않은 의정연수원 사용도 공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반 국민은 예외없는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도 국회의원은 열외다. 일반인과 달리 출발 20~30분 전에 도착해도 된다. 국회내 시설물은 대부분 무료다. 163㎥ 규모의 사무실은 물론, 헬스장과 사우나, 병원, 한의원까지 모두 공짜다. 의사가 상주하는 의무실은 가족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세비와는 별도로 각종 경비도 지급된다. 유류비의 경우, 리터당 10km 연비를 기준으로 하면, 매일 300km 가까이 달릴 수 있는 금액을 매달 지원받는다.국회의원 특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세비를 삭감해 정책 비서를 추가로 채용하고,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회의에 절반 이상은 착석해야 회의 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추진중이다.특히 국회의원의 대표적 특권으로 꼽혀온 불체포특권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폐지하기 위해 체포동의안 처리 기간을 넘기면 이후 첫 본회의에 무조건 상정, 기명 표결에 부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니 지켜볼 일이다.연찬회에서 정치선배들은 초선의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다음 선거가 아닌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되라”(정의화 국회의장), “법안이나 행동이 고민스러울 땐 자기 양심에 물어보라”(이석현 국회부의장). 이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다선의원들 얘기 들을 필요 없다”며 `초심과 소신`을 강조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초선의원들이 이 말을 거울삼아 선량(選良)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2016-05-13

정말 남탓인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그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다. 모든 일들과 상황을 전지(全知)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걸맞게 판단하리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그러나 청와대를 출입하며 오랫동안 취재활동을 해온 필자는 대통령이나 수석비서관을 비롯한 비서관, 이들을 보좌하는 각 정부부처에서 파견한 행정관 등에 대해 그런 환상을 버린 지 오래다.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대면해보면 대통령도 한 사람이자 국민의 선택을 받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대통령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이하 참모들도 남다른 경력관리를 해온 공무원이거나 대통령과 같은 정치노선을 걸어온 사람들이란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왕조시대 백성들이 믿은 것처럼 왕의 머리 뒤에 훤하게 비치던 후광이나 전지전능한 능력이 대통령에게 없다는 건 분명하다.그런데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모조리 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서울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내용이 가감없이 알려지면서부터다.한 편집국장이 대통령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집권당의 선거 패배는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심판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리고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이 친박이라고 하는 특정 정파의 관점에 매몰되면서 지지층을 실망시키고 결국 등을 돌리게 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었다.먼저 박 대통령은 “지난 시절을 보면 대통령 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면서 “특히 국회하고의 관계에서 보면 이건 꼭 좀 해야만 경제를 살릴 수 있겠다 호소도 하고, 국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초청해서 말씀도 나눠보고, 그래도 뭔가 되는 게 없이 쭉 지내왔다”고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국회 탓으로 돌렸다. 이어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볼 적에 국회가 양당체제로 되어 있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되는 것도 없고, 무슨 식물국회로 쭉 가다 보니까 국민들 입장에서는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것 같다”면서 “그래서 양당체제에서 3당 체제를 민의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총선참패에 대한 책임론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3당체제로 된 것 역시 대통령 잘못이 아니라 국회 잘못을 심판한 것이라는 뉘앙스의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 실패에 대해서는 아예 동문서답이었다. 박 대통령은 “친박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친박이라는 말 자체가 특히 선거 때 자기의 선거 마케팅으로 자신들이 그냥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친박이라고 그랬다가 탈박이라고 그랬다가 짤박이라고 그랬다가 별별 이야기를 다 만들어내는 데, 제가 거기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새누리당의 잘못된 공천에 대해 발뺌하기 바빴다. 박 대통령은 이어 “예를 들면 지난 19대 국회 때 전혀 협조를 안 해 주고 계속 반대 목소리만 낸 사람도 대통령 사진을 마케팅을 하면서 다녔지만 제가 그걸 뭐 하라마라 그런 이야기도 안했다”면서 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뒤 “친박이라는 자체가 다 자신의 정치를 위한 선거 마케팅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에 없애라 마라,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인들이 마케팅보다는 국민한테 약속하고 신뢰를 국민한테 지키면서 신념의 정치를 앞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뜬금없이 약속과 신뢰를 통한 신념의 정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만 두고보면 1.국회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2.새누리당이 180석을 얻지 못해서 더 못하게 됐다→ 3.그래서 앞으로 일을 잘못해도 내 잘못이 아니라 국민들이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순환논법이 성립될 지경이다. 그냥 `내탓이오` 한 마디만 했더라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많은 국민들에게 `남탓이오`로 실망시킨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안스럽기 짝이 없다.

2016-04-29

새누리당의 복당 논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0대 총선에서 충격적인 참패로 원내제1당의 지위마저 야당에 내준 새누리당이 복당논란으로 야단법석이다.총선 직후에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일괄복당을 허용하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안상수 당선인에 이어 막말파문으로 새누리당 총선참패에 상당한 부담을 주었던 윤상현 당선인이 복당신청을 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괄복당이 적절하냐`는 의문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뒤이어 유승민 당선인 역시 지난 일 복당신청을 해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래서 `선별복당`, `시차복당`이란 말까지 나왔다. 정작 복당해도 큰 부담이 없을 주호영 의원의 경우는 “최고위원회가 사과를 하면 복당하겠다”고 `조건부 복당`을 천명하고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어 더민주의 123석에 이어 원내제2당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짐작치못했기에 일어나는 헤프닝이다. 물론 지금도 11석의 무소속 의원 가운데 7석의 새누리당 탈당파 무소속 의원을 복당시키면 원내제1당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복당 논란의 핵심은 바로 탈당한 의원을 일괄 복당시키는 게 과연 옳으냐 하는 문제다. 특히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후 당 정체성 위배 논란에 휩싸였던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를 겨냥한 `막말 파동`을 일으켜 공천탈락했으나 인천남구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윤상현 의원의 복당문제가 최대 관심사다. 이에 대해서는 친박계나 비박계의 반대 기류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새누리당이 위기상황인 만큼 친박계나 비박계 의원 모두 차츰 일괄복당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듯 하다.친박계 의원들이 총선참패의 책임론을 의식,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김무성 전 당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21일 방송에 출연, “복당 신청을 한 의원들은 정정당당히 싸울 기회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서 어쩔 수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것”이라면서 “억울한 분들은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비박계인 새누리당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도 이날 오전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유승민, 윤상현 의원의 복당이 급선무”라면서 “당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공천 결과의 잘잘못을 떠나서 무소속으로 나왔던 분들을 받아주고 빨리 당을 추슬러야 한다”고 밝혔다.지금 분위기대로라면 복당논란의 불씨가 잦아들면서 일괄복당으로 결론나는 모양새다. 그러나 같은 날 친박계 핵심인 유기준 의원은 “새누리당을 원내 제2당으로 만든 국민의 뜻이 있는데, 무소속 당선자들을 인위적으로 복당을 시키는 것이 국민의 뜻에 맞는 것인지 의논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일괄복당이 과연 국민의 뜻이냐는 물음에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사실 새누리당의 복당논란은 조만간 벌어질 권력투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 견고한 지역주의 판도에 편승해 오만한 자세로 공천했던 탓에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지역에서 4석의 야권 및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의 민심이탈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이 나와있는 상태다.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행태를 심판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렇다면 위기의 새누리당이 복당논란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할까에 대한 답도 명확하다. 이 순간부터라도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새누리당 공천파동의 피해자로 자리매김한 유승민 의원의 경우와는 달리 지역구에서 당선됐다해도 당 대표에 대한 막말 파문으로 새누리당 전체에 크나큰 이미지 손상을 입힌 윤상현 의원같은 인사를 복당시키는 결정을 내려선 안된다. 가뜩이나 오만한 이미지로 표를 잃은 새누리당에 `당 대표도 우습게 아는` 정치인을 복당시키는 것은 자충수가 될 뿐이다.

2016-04-22

민심의 심판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민심이 참으로 무섭구나”14일 새벽까지 20대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였다. 많은 국민들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이튿날 선거결과를 보도한 신문 지면에서 `민심``심판`이란 제목글자가 유독 눈에 띄게 다가온 것도 같은 맥락일게다. 그렇다. 올 들어 최대 정치행사인 20대 총선이 막을 내린 날, 민심이 새누리당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는 기사를 쓰게 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더구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충격의 참패를 당하며 원내 제1당의 자리마저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니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새누리당은 민심이 내린 `카운터 펀치` 한방에 지도부가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대 접전지인 수도권에서 전체 의석(122석)의 3분의 1도 확보하지 못했고,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에서도 총 65곳 가운데 무려 17곳에서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했다.근데 야당 지도부도 비슷한 소회를 내놨다.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4·13총선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확보해 1석 차이로 새누리당을 제치고, 17대 총선 이후 12년만에 원내 제1당을 차지했다. 잘 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의 심장부인 호남에서 28곳 가운데 단 3석만 건지는데 그치며 참패했으니 마냥 희희낙락할 수 없는 입장이다. 호남패배에 대해선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도 수도권 압승을 기반으로 당초 목표의석인 107석을 훨씬 상회하는 의석을 확보해 원내 제1당으로 올랐으니 지금쯤 표정관리에 바쁠 법하다. 국민의당은 지역구 의석 25석에 비례대표 의석 13석을 얻어 모두 38석을 얻게 됐다. 예상보다 훨씬 뛰어넘는 의석수를 확보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물론 앞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최대 승리자라 할 만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이번 선거는 정치인들의 승리가 아니라 위대한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민심의 승리라는 얘기다.안 대표는 특히 정당투표 결과에 대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를 보내주셨고, 특히 대구와 경북에서 두번째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국민의당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고 자평했다.그러나 국민의당 역시 고민이 적지않다. 호남 석권을 통해 제3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으나 호남지역에 당선자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자칫 호남지역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어지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스럽다.특히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지형 변화는 여야의 전통적인 텃밭이나 지역구도가 무너진 대목이다. 한국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일대사건이요, 변화다. 새누리당은 전남 순천의 이정현, 전북 전주을의 정운천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더민주는 대구 수성갑의 김부겸 후보를 비롯해 부산에서 5명, 경남에서 3명 등 영남권에서 무려 9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이로써 한국정치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기분좋은 평가도 나왔다.이리 되고보니 19대 국회내내 여당의 발목을 잡았던 국회선진화법 처리를 둘러싼 딜레마는 어찌될까 궁금해진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국회선진화법은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한 악법”이라며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제 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180석을 노리던 새누리당은 사라지고 없다. 불과 122석으로 원내제2당의 처지에 놓인 새누리당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3당을 합쳐 167석을 자랑하는 거대야당이 만약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법이라 주장할까. 민심의 심판을 지켜보다 불현듯 떠오른 궁금증이었다.

2016-04-15

널뛰기 여론조사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3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가 1천건을 돌파했다고 한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의 816건에 비해 30% 가까이 늘어났다니 `여론조사 공해`가 심각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여론조사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표심을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돼 왔다. 문제는 선거판세를 가늠해보기 위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가 잇따라 실시되고 있지만 여론조사마다 차이가 커서 유권자들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대표적인 사례는 대구 수성을 선거판세 여론조사다. 모 지역언론사가 지난 3월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주호영 38.9%, 이인선 25.9%로 주 후보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이 후보를 13.4%p 오차범위 밖으로 앞선 것으로 보도했으며, 4일 조사에서는 무소속 주호영 후보가 44.0%의 지지도를 기록해 36.4%를 얻은 새누리당 이인선 후보를 7.6%p 차이로 앞서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결과대로라면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차이가 확연히 달랐다. YTN이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선 주호영 후보가 47.5%, 새누리당 이인선 후보가 25.8%로 21.7%p까지 벌어졌다. 이날 중앙일보는 주호영 41.2%, 이인선 26.2%, 동아일보는 주호영 40.4%, 이인선 후보는 26.9%로 발표했다. 이인선 후보의 지지율이 25%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반면 주호영 후보는 40~45%를 오르내리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니 형세판단이 아예 달라질 수 밖에 없다.이처럼 같은 기간에 조사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다른 이유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먼저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은 모집단을 반영하는 표본추출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설문항목이 잘 설계돼 있는지, 어떤 조사기법을 사용했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가정마다 유선전화를 두지 않고 휴대전화만을 사용하는 추세에 반해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유선전화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는 정당만 할 수 있게 돼 있다. 여론 조사의 수요는 높지만 제도적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가 유선전화를 많이 쓰는 중장년층에 치우칠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휴대전화 활용도가 높은 젊은 유권자의 여론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법적으로 정당의 경선조사나 정책용 조사로만 쓸 수 있다고 명시돼 있는 안심번호를 언론사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여론조사 방식에 따른 정확도 차이도 문제가 된다. 각종 언론에서 하는 여론조사는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유선전화로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을 채택하는데, 이는 면접조사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게 통설이다. 실제 여의도연구원에서 안심번호를 도입해서 한 여론조사 결과와는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즉, 유선전화 여론조사의 경우 지난 19대 총선 때를 비춰보면 새누리당 후보 지지도는 영남은 5% 포인트, 수도권은 15~20% 포인트까지 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여론조사는 실제 투표율과 차이가 난다. 여론조사는 이론상 100% 투표율을 전제로 하지만 지난 19대 총선 투표율은 54%에 불과했다. 그리고 성별, 연령별 투표율도 차이가 난다. 2030세대 투표율은 5060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여론조사는 실제 투표 결과와 당연히 차이가 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론조사가 널뛰기를 해도 여론조사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여론 변화의 추이라고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공직선거법상 7일부터 투표마감때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는 기간이 시작된 만큼 새누리당 일색인 대구·경북지역 선거판세가 여론조사에 나타난 변화 그대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주요 관전포인트다.

2016-04-08

정책선거가 되려면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31일부터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선거운동이 본격 시작됐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초강세지역인 대구에서는 친유승민계란 이유로 현역의원들이 낙천하면서 탈당 및 무소속 출마가 이어져 예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의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아쉽고 안타까운 일은 후보들이 모두 지역발전을 위한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각 후보들이 어떤 공약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국민들에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책공약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더욱 가슴답답한 것은 이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정책공약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짚다보니 20대 총선 후보등록을 이틀 앞둔 지난달 22일 지역언론인들의 모임인 한국지역언론인클럽(KLJC) 주최로 열린 여야3당 정책책임자 초청 토론회에서 들은 얘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그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국시군구의회 의장협의회 회장인 천만호 부산동래구의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20대 국회에서 지방자치특위를 구성해 지방자치에 관련한 여러 권한을 일괄이양하는 법을 만들어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용섭 정책공약단장이 여야가 대선때 공약했으나 지키지 못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재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 등을 되짚은 뒤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강도높게 추진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국민의당 장병완 정책위의장 역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자치분권특위를 상설화하거나 지방소비세율을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해 지방재정을 확충하는 공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장 의장은 또 20대 총선이 시작되는 시점인데도 누구도 정책공약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점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첨단산업단지 사업의 경우를 예를 들며 기업이 투자하도록 4~5만평 부지를 확보해 12개 지역을 선정했다는데, 지난 해 그린벨트를 해소한 곳은 광주지역 1군데 밖에 없고, 단지에 입주하겠다는 기업의 상담건수가 1건도 없는 것이 실상이라고 비판했다.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2006년~ 2008년까지 노무현 대통령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장병완 의장이 근무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였다. 장 의장은 지역균형발전에 관심이 많았던 노 대통령의 업무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정된 국가 예산을 다루는 기획예산처 장관이란 자리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사업이라 해도 무조건 예산을 집중투입할 수는 없어서 반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듣기에 불쾌하지 않게 그 이유를 조리있게 대는 것이 어려운데, 이 때 대통령에 따라 대처방식이 다르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장관이 특정 사업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면 얘기를 끝까지 묵묵히 들은 뒤 “철학에 관련된 부분인 만큼 최대한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하는 스타일이었다 회고했다. 반면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경우 얘기를 들은 뒤 별다른 말을 않는 대신 `알아서 해오지 않았다`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아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책이든 실효를 거두려면 대통령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렇다. 해답은 바로 관심이었다. 나라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려면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관심이 쏠려있어야 적극 추진되고,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이 정책선거가 되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역시 총선에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의 관심에 달려있다. 민초들의 삶과 생활에 온기가 스며들 수 있는 건전한 정책공약을 누가 더 많이 내놓느냐를 보고 뽑아야 하고, 공약 실천여부를 꼼꼼히 지켜보고 약속을 어긴 정치인에게는 철퇴를 내려야 한다. 이런 정책선거가 펼쳐지는 건강한 총선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이다.

2016-04-01

유승민 의원의 출사표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의 고민은 길고 깊었습니다. 저 개인의 생사에 대한 미련은 오래전에 접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고민했던 건 저의 오래된 질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였습니다.”새누리당 주류 친박계와 청와대로부터 불출마 압박을 받아온 유승민 의원이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23일 밤 11시에 심야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행보를 밝히는 순간이었다. 그는 공천이 이뤄지는 시간동안 스스로에게 `왜 정치를 하는가` 자문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누리당 공천과정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공천에 대하여 당이 보여준 모습.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일 뿐입니다.” 이 대목에서 유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과정에서 느꼈던 억울함, 아쉬웠던 마음, 분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이어 당에 대한 애증의 마음도 가감없이 털어놨다.“2000년 2월 입당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당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당을 사랑했기에 `당의 정체성에 맞지않는다`는 말에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2011년 전당대회의 출마선언, 작년 4월의 국회 대표연설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몇 번을 읽어봐도 당의 정강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습니다.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저와 함께 한 죄밖에 없는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비박이라는 편가르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국민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유 의원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의 정체성과 배치되는 것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노선과 가치가 옳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새누리당 주류를 이루는 친박계가 자신의 노선과 가치를 폄하하고, 정체성 시비를 일으킨 것이 편가르기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국민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힐난했다. 유 의원은 여기서 다시한번 헌법가치를 거론하고 나선다.“`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국민권력`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2항입니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논란의 국회법 통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때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항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데, 이번에는 제2항을 들고 나온 것이다. 유 의원은 말을 이었다.“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 현장에서 지지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공천과정 내내 침묵을 지켜온 유 의원이 마침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출사표를 던진 순간이었다.“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입니다. 오늘 저의 시작이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나아가는 새로운 걸음이 되길 바랍니다.”유 의원은 자신이 바라는 새 정치의 캐치 프레이즈를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친 유승민계 의원으로 분류돼 낙천한 동료의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털어놨다. “저와 뜻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선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동지들을 생각하면 제 가슴이 미어집니다. 제가 이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서 보수개혁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국민여러분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회견문 낭독이 끝나자 지지자들은 “유승민!”을 연호하며 응원했고, 유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 승상 제갈량이 후주(後主)인 황제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는 빼어난 문장과 애국심, 그리고 죽은 선제 소열제 유비에 대한 애틋한 충성심이 담겨 있어 글을 읽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유승민 의원, 그의 출사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을까 궁금하다.

2016-03-25

친박연대 vs 비박연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요즘 정치얘기가 아니다. 친박연대는 정확히 8년전인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공천과정에서 친박계 현역의원들을 대거 떨어뜨리자 낙천의원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정치결사체를 가리킨다. 이에 비견되는 `비박연대`는 최근 새누리당이 비박(비박근혜)계 현역 의원들을 대거 낙천시킨 데서 비롯된 것으로, 8년 전의 `친박(친박근혜)연대`처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4·13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에 떨어진 비박계 현역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정치권에서 하나같이 이름있는 이들이다. 먼저 친이계 `좌장`격인 경북 영양출신의 5선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3선의 주호영·진영 의원 등 중진들이 포함돼 있어 이들이 `비박연대`라는 정치결사체를 만들면 여의도 생환가능성이 꽤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든다. 17일 현재 주요 비박계 현역의원 중 컷오프(공천배제)된 사람은 수도권에서는 이재오(서울 은평을)·진영(서울 용산)·안상수(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의원이 있고, 지역에서는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과 재선의 조해진(경남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의원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초선이지만 소위 `유승민계`로 분류돼온 김희국(대구 중구남구)·류성걸(대구 동구갑)·이종훈(경기 성남시분당구갑) 의원 등과 임태희(경기 성남시분당구을)·강승규(서울 마포갑) 예비후보 등 친이계 출신 전직 의원으로서 비중있는 원외인사들도 공천에서 배제됐다.이들끼리 비박연대 결성 가능성이 점쳐지는 건 상당수가 공천심사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고, 이미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 의사를 내비치는 인사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3선 출신인 임태희 전 의원이나 강승규 예비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안상수 의원도 “공천결과에 대한 재심을 요청하고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고 밝혔고, 조해진 의원도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주요 비박계 낙천자들의 무소속 출마행렬이 현실화되면 지난 2008년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대거 탈락한 친박계 인사들이 `친박연대`로 바람을 일으키며 국회 재입성의 쾌거를 거뒀던 일이 재연되지 말란 법도 없다. 선거판에서 기세란 게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한번 기울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다만 8년전 친박연대에는 차기대선 주자인 박 대통령이란 정치적 구심점이 있었던 반면 현재 비박계는 뚜렷한 구심점이 없고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이런 측면에서 비박연대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유승민 의원의 공천배제 여부를 두고 새누리당 공관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류 친박계와 청와대는 낙천자들의 비박연대 결성을 겁내기 보다 임기내 레임덕과 총선이후 적전분열 양상을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선 여론조사가 한 사람에게 이중삼중으로 이뤄져 불공정논란이 거세게 일고있는 데도 불구하고 공관위가 여론조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이유를 뚜렷이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면 반드시 쳐내야 할 후보를 경선에 참여시킨 후 여론조사결과와 상관없이 면접 등 심사점수를 종합해서 솎아내버리는 편법도 동원될 수 있다. 이 경우 후보는 무소속 출마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공관위가 그런 꼼수를 부렸다가는 `빈대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 공천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공천학살이란 비판과 함께 과정 전체가 불공정했다는 불신을 사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공천파동`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동안 유승민 의원은 최근 실시한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 이어 오차범위내 2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쯤되면 유 의원은 `울고싶은 데 때려주길` 바랄 수도 있다. 예전 친박연대가 걸었던 길, 비박연대가 또 다시 걷게될까. 이번 총선의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2016-03-18

다선(多選)이 죄인 나라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국회의원 선거때마다 떠오르는 화두가 현역의원 물갈이다. 어느 의원이 공천배제되고, 어느 의원은 단수공천으로 낙점됐다는 소식은 드라마틱한 요소도 있어 정치판에 화제가 되곤 한다. 이번 총선 공천에서도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지역 현역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된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의 1차 공천심사결과에 이은 2차 공천심사 결과에서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의 3선 이상 중진, 지역을 불문한 65세 이상 다선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될 것이란 분위기가 확산됐으나 10일 발표된 공천심사결과에는 민감한 대구지역과 경북 다선지역에 대한 공천결과가 모두 빠진 채 발표됐다. 실제로 홍문표 부총장도 라디오에서 다선 중진의원의 교체 필요성에 대해“(공관위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많은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해, 중진 의원의 물갈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대상에서 원천배제 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74세의 강길부(울산 울주) 의원은 공관위에 65세 이상도 경선에 참여시켜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나이만으로 경선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의 평등권 위반일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당헌·당규 위반”이라며 “당헌·당규 어디에도 나이와 선수 때문에 컷오프 시켜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년 후 대선 때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73세가 된다”며 “65세 이상이니까 대선후보 경선에서 원천배제할 것이냐”고 꼬집기도 했다.생각해보자. 국가예산안을 심의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법령을 만드는 국회의원은 고도의 정치적 역량과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선출직이다. 예로부터 국회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초선의원이 되면 국회다니는 길을 알게되고, 재선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법을 알게되고, 3선의원이 돼야 비로소 국가정책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나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국회의원직이 녹록치 않다는 얘기다. 국가정책이란 것이 한 쪽면만 보는 단견으로는 이해하기도 힘들고, 법제화하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처럼 여야 대결이 첨예한 나라에서는 국가정책이나 법안을 세우거나 새롭게 다듬는 데 협상과 타협이란 정치적 경륜이 더욱 절실하다. 경륜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따라서 경륜을 가진 다선 국회의원은 나라의 정치적 자산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다선(多選)의원이 되면 오히려 죄인취급을 한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신뢰나 존경을 잃어버린 데 원인이 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다선의원을 모조리 공천배제하고 특정 계파의 말을 잘 듣는 초선의원들로 국회를 채우겠다는 독선은 너무 위태롭게 느껴진다. 마치 고속도로에 온통 초보운전자들만 다니는 꼴이니 허구헌날 교통사고로 애꿎은 생목숨이 다칠까 걱정되는 것이다.현역의원 물갈이에 대해 비박계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수십년 동안 총선을 앞두고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물갈이 경쟁을 많이 했고, 물갈이를 하게 되면 언론이나 국민들, 국회의원들 꼴 보기 싫으니 순간적 카타르시스는 있었다. 하지만 현역 물갈이를 많이 하는 것은 초등학생만 양산하는 꼴이다. 결국 우리 국회의 위상이 약해지고 또 국민의 정치 불신이 오히려 심화되는 악순환을 겪었다.”그러면서 그는“지금 현재의 정당 국회운영 시스템, 정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같은 분이 다시 나와서 국회의원 활동을 하신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다선의원이 오랜 세월 쌓아온 정치적 경륜은 대립과 갈등의 정치환경을 돌파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물갈이 공천으로 뒤숭숭한 요즘, 다선의원이 존경받는 나라가 돼야 우리 정치도 선진화될 것이라는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이 가슴깊이 와닿는다.

2016-03-11

`터널 시야` 증후군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필리버스터 정국을 전후해 정치평론가들 사이에 `터널시야` 증후군이 화제가 되고 있다. `터널시야` 또는 `터널비전(tunnel vision)`이란 말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터널시야 증후군을 처음 거론한 곳은 필리버스터 정국을 좌우한 야권 지도부의 행동을 설명하는 정치평론가들이었다. 47년만에 국회에 재등장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처음 제안하고 지휘한 더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2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마지막 토론자로 나서 눈물의 연설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7시1분 38번째 주자로 단상에 올라 오후 7시32분까지 12시간31분간 발언함으로써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이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두고 빚어진 혼선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의원들의 열정과 국민의 열망을 제 판단으로 날려버렸다”며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거듭 허리를 숙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동안 참여한 의원들의 이름을 수차례 열거하면서 “필리버스터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에 앞서 더민주당 비대위원인 박영선 의원 역시 지난 1일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33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서서 당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박 의원은 “필리버스터 중단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이라며 “모든 분노의 화살은 저에게 쏴 달라. 제가 다 맞겠다”며 “4월 13일 야당을 찍어주셔야 한다.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주셔야 한다. 더민주당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주셔야 한다”고 호소했다.박 비대위원과 이 원내대표의 눈물을 본 상당수 국민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아선 데 대해 국민들은 일정부분 공감했고,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여러 문제점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야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필리버스터 정국하에 야당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데도 이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참여의원들을 민주투사처럼 영웅시하며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 것이나 자신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라며 울먹인 박 비대위원의 행동은 다소 이상하게 보였다는 얘기가 많았다. 국민들이 느낀 이같은 생경한 감정에 대해 정치평론가들이 내놓은 설명이 바로 터널시야 증후군이었다.다른 모든 면에선 대단히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일지라도 일단 싸움에 휘말려들어 몰입하게 되면 전혀 딴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을 잃는다. 상대편의 언행은 무조건 악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토론에서 A가 B의 말을 왜곡했다고 가정해보자. B가 그 왜곡에 몰입해 비판하기 시작하면 토론은 진도를 나가기 어렵게 된다. 시청자는 B의 항변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망정 B가 느끼는 분노에까지 공감하진 않는다. 시청자가 원하는 건 좋은 내용의 토론이지 토론자들의 인격에 대한 품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B가 토론 내내 A의 왜곡을 질타하면서 분노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시청자는 짜증을 낼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들이 B가 분노의 와중에서 내놓은 발언의 품질을 공정하게 평가하면 좋겠지만, 그건 기대하기 어렵다. B가 A에 대한 공격에 몰입해 책임지기 어렵거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발언들을 남발했을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싸움이 치열할수록 몰입은 `자기 성찰`을 원천봉쇄한다. 상대편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신의 허물은 사소하게 여기는 심리를 낳는다. 이처럼 갈등 상황에서 몰입은 곧바로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도 당연시하게 되는 터널 시야 증후군을 불러온다. 여야가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정치판이 이처럼 혼탁한 것도 터널시야 증후군이 만연된 때문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2016-03-04

필리버스터, 존재의 이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필리버스터가 아름다운 이유는 내가 몇년전에 몸싸움·패싸움하던 국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빈자리를 보면 아직 멀었구나 싶긴 하지만 발언 내용은 차라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민주진보적인 가치를 민주진보적인 `언어`로 민주진보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사람들은 민주진보세력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나아가 지지할 생각을 해보게 되죠. 이것이 프레임 이론의 핵심이고, 현재 필리버스터가 그 좋은 예입니다.”25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기드문 진풍경인 `필리버스터(Filibuster)`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다.야당이 필리버스터라는 새로운 법안통과 저지방안을 실행하고 있는 데 대해 이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시민들이 많다. 그래선지 야당은 사흘째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고,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본회의장 밖에서 야당에 의한 국회 마비를 규탄하는 `피켓시위`에 나섰다.필리버스터란 미국 연방상원에서 소수파(때로는 1인의 상원의원)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의회 전술인 데, 다수파가 양보를 하거나 법률안을 철회할 정도로 오랫동안 연설함으로써 의회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도입됐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며, 발언은 의원 한 명당 1회씩 주어진다. 단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의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은 금지된다. 또 본인이 발언을 멈추거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있으면 토론은 중단된다. 발언하는 동안 음식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고, 단상에 기대거나 앉아도 안되며, 중간에 연설을 잠깐 멈추거나 자리를 비우는 것도 안된다.과거에도 제헌국회 때부터 `의원의 질의나 토론 등에 대해 발언 시간을 제한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필리버스터로 활용할 수 있었다. 1964년에는 김대중 의원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연설을 진행한 바 있다. 1969년에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3선 개헌안 저지를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의원의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무제한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국회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지난 23일부터 야당 주도로 테러방지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의사방해연설)가 진행되고 있다. 그 와중에 더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 토론으로 박한상 의원의 최장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40여년간 우리 국회에서는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필리버스터였지만 막상 불이 붙자 야당은 기록경쟁하듯 서로 발언대 위로 올라가려는 모양새다. SNS에서도 한때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할 만큼 분위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26일 선거구획정안을 포함한 공직선거법 처리를 앞두고 있어 더이상 필리버스터를 끌고가기에는 야당도 부담스럽다. 반면에 울화통이 터진 새누리당의 반응은 자못 격렬하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에 대해 “지금 국회 본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의 `얼굴알리기 총선 이벤트장`으로 전락했다”면서 “국민 목숨을 볼모로 한 희대의 선거운동”이라고 비난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끝내기 위해서는 국회법상 재적의원(293석) 5분의 3이상인 176석의 동의가 필요하다. 새누리당은 157석에 불과한 만큼 남은 방법은 야당과 협상하는 길 밖에 없다.쟁점법안 처리를 두고 사사건건 치킨게임을 벌여온 여야다. 그랬던 것이 필리버스터란 새로운 방식의 의회운영형태 덕분에 협상의 외통수로 몰리고 있으니 지켜보는 국민들은 자못 흥미로울 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회가 서로 비난하고 물어뜯기보다 건강한 비판과 토론으로 운영되길 바라는 게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2016-02-26

불통(不通)의 증거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을선언하는 등 강경대응키로 한 데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급기야 지난 16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국회연설을 통해 정부의 대북·외교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핵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이대로 변화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대북 강경대응을 결정하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여야정치권의 반응은 으레 그렇듯 긍정과 부정의 반응으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북핵 문제에 대한 결연한 대응”이라는 칭찬일색의 논평을 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용 겁박”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논란의 정점은 박 대통령의 연설이 있은 다음 날인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연설이었다. 이 원내대표는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관련, “북한의 4차 핵실험에서부터 개성공단 폐쇄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정부 부처의 갈팡질팡하는 대응을 보면서 국민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며 “대통령의 결정을 도운 청와대 비서진과 국내외적 논란만 유발시킨 통일부 장관은 즉각 경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개성공단 중단조치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전면적 무력충돌을 막아주던 최소한의 안전판을 제거한 것”이라며 “`통일대박`을 외치다가 돌연 국민에게 `분단쪽박`을 남기는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의 발언을 보면서 가슴 답답함을 느낀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닐듯 싶다.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에게 대외정책기조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구한 바로 그 다음날, 같은 자리에 서서 “`통일 대박` 아닌 `분단쪽박 `”이라고 직격탄을 날려대는 정치풍토가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협조를 당부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퍼렇게 날선 비판의 칼날을 날리는 것이 야당 정치인으로서 선명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 북핵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국가존립과 안위에 관한 정책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한 것을 일방적으로 폄하한 것은 총선을 앞둔 야당 입장에서도 손실일 뿐이다. 아무리 국정운영을 비판·견제할 책무가 있는 야당이라해도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비판할 것을 비판하는 자세가 옳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마음을 얻어 정권을 쟁취해야 할 야당이 불통(不通)의 늪에 빠져있는 셈이다.그렇다고 정부·여당이 잘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야당의 고질이라면 소통노력이 없는 `불통의 문화`가 현 정부·여당의 병폐다. 예전 3김시대에도 가동됐던 `야당과의 대화채널`이 현재의 박근혜 정부에서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많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기반인 새누리당 인사들과도 그리 긴밀한 소통을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가리켜 `배신의 정치`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유 의원을 불러 논란이 된 `증세없는 복지`와 관련해 의견을 나누고 협조를 당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유 의원도 그리 날카롭게 각을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소통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사람의 생각이나 신념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왜 그런 생각을 갖고 일을 하는지 알게된다. 그렇게만 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바뀐다. 불통(不通)의 증거가 소통을 불러오길 바랄 뿐이다.

2016-02-19

배신의 계절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배신의 계절이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지목한 사람은 유승민 의원이었다. 친박계로 분류됐던 유 의원은 원내대표 취임연설에서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증세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공격하면서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라섰다. 사실 같은 당내에서 당론, 혹은 청와대의 뜻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고 해서 배신이라고 낙인찍는 경우는 그리 흔치않다. 요즘 최경환 의원이 박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진박마케팅`을 통해 `TK 물갈이론`을 관철시키려는 모양새지만 배신의 정치가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설 민심이 어떻게 요동치느냐에 따라`진박마케팅`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니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문제는 그토록 배신을 싫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이 잇따라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드는 `월경`(越境) 행보로 배신의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가장 먼저 `배신의 나팔`을 분 건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전 의원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가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투신했던 김 위원장은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소속 전국구 의원을 3차례 지낸 정통 보수 인사였다. 이후 2004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깜짝` 변신하더니, 2012년 대선 국면에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캠프에 합류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정부여당과 각을 세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섰다.배신의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행을 발표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2014년말 정치권을 뒤흔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됐던 핵심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감찰과 대통령 친인척 관리업무를 담당했다. 현 정권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일제히 “의리를 팔아먹고 대통령 임기 중에 (야당으로) 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맹비난에 나선 것도 그만큼 그가 위협적이란 방증일 수 있다. 청와대의 핵심 비서관을 지낸 인사가 그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청와대를 향해 칼을 겨누는 야당 진영으로 `이적`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선거철에 당적을 옮기는 배신의 월경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당에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합류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또한 여야진영을 넘나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YS정부까지 내각과 청와대에서 일해온 윤 전 장관은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떠났다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국민통합추진위원장으로 등장했고, 2014년에는 당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제1차 독자세력화를 추진했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성식 전 의원이나 이태규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실무지원단장도 과거 보수진영에 몸담은 정치인이다.그러나 요즘 여야진영간 벌어지는 월경은 최소한의 명분 조차 사라진 배신 그 자체다. 신념보다는 정치적 이익에 따른 행보로 읽히기 때문이다. 새정치를 지향한다는 `안철수 신당`도 오십보백보다. 친박계와 비박계간 내전상태인 새누리당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정치판이 권력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박쥐 떼들로 어지럽다.일각에선 자꾸 배신을 당하는 사람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단다. 주변 사람이 떠나는 데도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논어에서 섭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먼저 가까이 있는 자가 만족해하도록 힘써야 한다. 가까이 있는 자가 기뻐하면 먼 곳에 있는 자는 스스로 모여들어 복종할 것이다.”신뢰의 정치를 지향해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욱 뼈아픈 배신의 계절이다.

2016-02-05

정치판의 매 사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매 사냥과 관련된 여러 속담들이 있다. 우선 `꿩 잡는 게 매`란 말은 꿩 잡는 데 명수가 매란 뜻이다. 이 말은 방법이야 어떻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고란 의미로 쓰인다. `꿩 놓친 매`란 말은 애써 잡은 꿩을 놓쳐서 헐떡이며 분함을 빗대는 말이다. 또 `떼 꿩에 매 눈`이란 말이 있다. 여러 마리의 꿩이 동시에 날아 가면 매는 머뭇거리다가 모두 놓친다. 즉, 기회가 너무 좋으면 그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의미로 쓴다. `꿩 대신 닭`이란 말은 사냥을 나간 매가 꿩은 못 잡고 닭을 잡았다는 의미로 최선이 아닌 차선도 상책이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너무나 잘 알려진 `시치미 뗀다`란 말의 유래도 재미있다. 사냥 중 잃어버린 매를 다른 사람이 잡아 주인 이름이 새겨진 명패(시치미)를 떼어내고 자기의 매처럼 행세하는 행위를 말한다. 4·13총선을 앞두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여당과 야당의 움직임들을 관찰하노라면 매 사냥에서 비롯된 이같은 속담들이 품고 있는 뜻과 비유가 제격으로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 흥미롭다.가장 적극적으로 인재영입에 나서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약칭 더민주)의 사례를 들어보자. 더민주는 지난해 12월 안철수 의원 탈당과 올 1월 김한길·박지원 의원의 탈당으로 곤경에 빠졌다. 수 많은 호남권 인사들이 줄지어 당을 떠났고, DJ정권을 대표하는 정치원로인 권노갑 전 고문까지 등을 돌렸다. 실로 `꿩 놓친 매`꼴이 된 것이다. 이후 더민주는 탈당 러시에 맞서 새로운 인물들을 적극 영입해 이미지쇄신과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해 비대위원장으로 세운 것은 꽤나 충격적인 조치였다. `꿩 잡는 게 매`란 말에 걸맞는 파격이었다. 그 뒤를 이어 자수성가형 전문가 출신과 시민단체 출신, 지명도 있는 법조인 등을 줄줄이 영입하는 전략으로 더민주는 나름의 정치적 성과를 거뒀으니 야당의 매사냥은 나름 성공적인 셈이다.그러나 여당인 새누리당의 인재영입 행보는 왠지 갈팡질팡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상향식 공천` 원칙을 고수하며 인재영입을 주장하는 친박계와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김무성 대표는 지난 11일 방송 시사 프로그램 출연으로 지명도가 있는 인물 6명을 소개하면서 “자발적으로 입당하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에 기존의 인재 영입과는 다르다”면서 선을 그었다. 정치신인으로서 당 대표 소개로 정치판에 나섰는 데, 민주적 절차를 거쳐 공천하겠다니 이런 식이라면 `떼 꿩에 매 눈`이 될 것이란 뒷말들이 무성했다. 김 대표는 또 부산이 지역구였던 문대성 의원도 야당 현역 의원(더불어민주당 박남춘)이 버티고 있는 인천 남동갑에 경선 과정을 거쳐 출마토록 했다. 이는 `꿩 대신 닭`의 형세가 됐다. 당 대표 본인이 험지출마를 피하는 바람에 몇몇 인사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험지출마론이 좌절되자 애꿎게 불출마를 선언한 문 의원을 끌어들여 수도권에 출마토록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김 대표의 이같은 행보에 친박계 의원들이 볼멘 소리를 터뜨렸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지난 23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참석 직후 “인재영입에 대해 지도부가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김무성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5일에는 TK지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유망한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데, 이들에게까지 경선을 하라고 하면 누가 오겠느냐”고 꼬집었다. 홍문종 의원 역시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에서는 인재영입 대신 인재등용이 적절하다`고 지적한 데 대해 “인재등용이 됐든, 인재영입이 됐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며 “누구를 위한 상향식 공천인지 잘 모르겠다”며 비판했다. 김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보를 위해 뛰면서 `시치미를 떼지 말라`는 지적인 것이다. 정치판의 매사냥은 그저 험난하기만 하다.

201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