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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정명론(正名論)

등록일 2016-05-27 02:01 게재일 2016-05-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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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후략>` 김춘수 시인의 대표적인 시 `꽃` 가운데 일부다. 특히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는 대목에 이르고 보면 이 시는 요즘 새누리당 정진석 대표가 밀고있는 정명론(正名論)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듯 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최근 계파갈등에 대해 정명론을 주장했다. 즉, 당내 계파와 관련해 대상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문제인 만큼 대통령 성을 딴 `친박``비박`이란 표현을 쓰지말고, 쓰더라도 주류·비주류라고 하자는 제안이었다. 명칭이 실제에 맞도록 바로잡으려는 주장을 정명론이라 한다면 나름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친박·비박계란 새누리당내 계파이름의 유래는 약 10년 전 이명박·박근혜 대선 후보 경선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명박·박근혜 두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각각 친이계와 친박계를 처음 형성했고, 5년 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치러진 19대 총선을 기점으로 친이계가 몰락하면서 친박계와 비박계로 재편됐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서로 맞서는 당내 상황은 20대 총선 공천 파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특정인 중심의 계파 정치가 빚은 참사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견해다. 당 내부에서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쉬쉬하지만 지난 달 26일 권성동 의원이 전략기획본부에 낸 `총선 패인 분석 및 지지 회복 방안` 보고서에서도 명확히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맥락에서 총선 패배 이후 당 수습의 최일선에 선 정 원내대표는 당 쇄신을 위한 의사 결정에 계파색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 원내대표가 비록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선출되긴 했지만 친박계의 속셈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 비상대책위원회 인선을 하게 됐고, 결국 친박계로부터 공격을 받아 전국위원회가 무산되는 정치적 타격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정 원내대표와 친박계 최경환 의원과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 3자회동을 통해 가까스로 혁신비대위원장을 선임하는 등 갈등을 봉합했지만 정명론적 해법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까 궁금하다.

정 원내대표가 계파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정명론은 <논어 자로편 3장>에 나온다. 자로가 말했다.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하니,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 자로가 말했다. “어떻게 바로 잡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 구차히 함이 없을 뿐이다.”즉, 올바른 이름으로 사물을 부르는 것은 철학의 문제이고, 현실 정치에는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는 바른 명분을 갖고 해나가야 하는 것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론에 덧붙여 또 하나의 정명론을 안연편 11장에서 설파하고 있다. 제(薺)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군주는 군주 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앞으로 참조할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또 하나의 정명론이 아닐까. 이같은 정명론이 우리 정치판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시인 김춘수가 노래한 것처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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