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주말 부산으로 볼 일 보러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옆에는 노오란 개나리꽃과 분홍빛 복숭아꽃, 희디 흰 배꽃이 화사한 자태로 온 산과 들녘을 수놓고 있었다. 해운대에 도착하니 호텔앞에 문지기처럼 지키고 선 동백나무에선 선혈처럼 붉은 빛의 동백꽃이 탐스런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양산 통도사에서 마주친 홍매화는 속눈썹 단 처녀처럼 다소곳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아파트 단지 모퉁이에서는 목련꽃이 우유빛 속살을 자랑하다 어느덧 꽃잎을 하나둘 내려놓고 있었다. 꽃향기 가득한 봄날, 금수강산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벚꽃이다. 눈처럼 흰 벚꽃이 흩날리며 춤추는 봄이 오면 예외없이 축제가 펼쳐진다. 대구·경북에서는 동촌유원지와 경주도심 및 보문단지 일대의 벚꽃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벚꽃이 사람의 눈길을 유달리 끄는 것은 절정미(絶頂美) 때문일게다. 짧은 기간 더할 나위없이 화려하게 꽃 피운 뒤 미련없이 한꺼번에 꽃이 지는 게 벚꽃이다. 그래서 이 꽃은 절정에서 나락까지를 한 자리에서 펼쳐 보이는 처연함이 진정한 매력이다.짧은 기간 불타오르듯 꽃 피우는 벚꽃을 보며 봄철 노곤한 중년의 삶을 고민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이 아니라 벚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꽃피워 불타는 듯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백일홍처럼 오랜 시간 꽃 피워 사랑받을 수 있다면 더 좋으리란 욕심은 왜 없을까.사람이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에는 인연맺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집착이 존재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이래저래 괴로워하면서도 애착이 있는 이 세상을 떠나기 싫은 게 보통 사람들의 속내다. 그래서 나이 든 어르신들은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살면 좋겠다, 손주볼 때까지 살면 좋겠다, 손주가 대학갈 때까지 살면 좋겠다, 손주가 장가갈 때까지 살면 좋겠다 하면서 이별을 한없이 뒤로 미루곤 한다.반야심경에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불교철학의 진수가 담겨있다. 생기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생하고 멸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란 뜻이다. 이 말을 설명할 때 흔히 얼음구슬의 비유를 든다. 그릇에 얼음구슬을 담아놓았는 데, 네다섯살난 어린아이가 바깥에 나가서 한두시간 놀다가 들어오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지고, 물만 담겨 있다. 아이는 그걸 보고 어떻게 말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이 때 엄마는 얼음구슬이 녹아서 물이 된 과정을 아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생긴 것도 아니며, 다만 얼음이 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어린아이처럼 생멸의 관점에서 삶과 죽음을 보기 때문에 살았다고 기뻐하고, 죽었다고 슬퍼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 전체를 보면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일 뿐이다. `그게 무엇이든`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변화하는 것일 뿐이다.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런 변화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편하고 좋은 데,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워진다는 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필멸(必滅)은 인간의 숙명인 데,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다.흔히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한다. 인생이 한바탕 꿈을 꾸고 나면 흔적도 없는 봄밤의 꿈과 같다는 뜻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고사성어지만 오늘 이 순간 봄날 벚꽃의 향연속에 흔들리는 내 삶을 두드리는 말이다.
201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