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야당 국회의원의 심리적 저항

▲ 김진호 논설위원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혁신안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하위 20% 현역의원 물갈이 공천개혁안을 내놓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당론 정면부정을 해당행위로 규정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일 모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전날 발표한 공천 혁신안 중 공천 시 불이익을 주는 기준과 관련해 “당론을 정면 부정하는 것도 해당행위가 될 수 있다”면서 “의원이 자기 판단이나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해당행위적·분열적 이야기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사실상 평가 및 판단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혁신위가 전날 공천혁신안을 발표하면서 당 정체성을 해치는 자, 막말과 해당 행위자도 새정치연합에 발붙일 수 없게 해야 한다며 공천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천명한 연장선상에서 보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문제는 `당론부정=해당행위`로 간주해 공천시 불이익을 시사한 김 위원장의 발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당론`이라는 미명하에 의원들에게 무조건 따를 것을 압박하는 정치문화를 비판해왔다. 따라서 정치발전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개인적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어떤 대상에 대해 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경우의 심리적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론이 심리학자 브렘의 `심리적 저항이론(the 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이다. 브렘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 대해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위협당하게 되면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한 동기가 유발되어 우리는 그 자유를, 그것과 관련된 대상을 포함해 이전보다 더욱더 강렬하게 원하게 된다. 그래서 만일 어떤 대상이 점차 희귀해져서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면 우리는 그 대상을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소유하려는 심리적 저항을 한다는 것이다.이같은 심리적 저항의 에너지는 정책입안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1970년대초,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인산염이 들어있는 세제를 사용하거나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을 때 일이다. 이 법안에 대한 마이애미 시민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났다. 첫째로 적지않은 시민들이 갑자기 밀수꾼이 됐다. 친한 친구나 친척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 법안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인근 도시로 몰려 가서 인산염을 포함하고 있는 세제나 비누 등을 다량 구매해 돌아오곤 했다. 어떤 주부는 20년 쓸 분량의 세제를 확보했다고 자랑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둘째로 더 이상 인산염을 포함한 세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앞에서 마이애미 시민들은 인산염이 포함된 세제가 일반 세제보다 훨썬 더 좋은 제품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구에 의하면 이 법안의 적용을 받지않는 탬파 시민들에 비교해 마이애미 시민들은 인산염이 포함된 세제가 다른 세제들보다 더 부드럽고 효과적이며 표백능력도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어떤 대상에 대한 자유가 제한당하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 그 대상을 소유하려는 강렬한 동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금지하면 더 하고 싶은”심리적 현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거나 검열하게 되면 우리는 그 정보에 대한 접촉을 더욱 열심히 추구하게 되며, 정보의 가치도 검열 이전보다 이후에 더욱더 상승하게 된다.야당의 혁신안이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될 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론부정을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다. 말리면 더 하고싶은 심리적 저항의 끝이 어디인지 굳이 확인해서 무엇하랴.

2015-08-21

세상사는 마음가짐

▲ 김진호 논설위원여름휴가철이다. 사람들은 해수욕장으로, 휴양림으로, 해외 휴양지로 떠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을 헤매기보다 가족들과 오붓하게 집근처 풍광 좋은 곳에서 삼겹살 바비큐파티를 즐기거나, 채 못 읽은 고전을 읽는 여유가 더 절실했다. 지난 한주, 그런 재충전의 시간으로 지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삶을 경주하듯 살아간다. 요즘은 유치원에 들어가기전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대체로 초등학교부터 레이스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명문중학교에 진학한다. 거기에 갈때까지 하고싶은 일은 꾹 참고 견뎌야 한다. 명문중학교에 가서 며칠은 행복하다. 그러나 다시 경주가 시작된다. 이제 특목고를 향해 달린다. 간난신고(艱難辛苦)끝에 특목고에 들어가면 얼마동안 행복하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쟁은 그때부터다. 대학 입시경쟁은 참으로 치열하다. 무수히 많은 불면의 밤을 피할 수 없다. 서울대에 가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야 한다.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서울대에 가면 얼마동안은 기쁘고, 자랑스럽다. 행복하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졸업후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뛰어야 한다. 남다른 스펙을 쌓아야 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제2 외국어공부에, 각종 자격증, 봉사활동으로 대학생활을 빼곡이 채워나간다. 대기업에 들어가서는 부장이 되기 위해, 임원이 되기 위해,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 위해 뛴다. 뛰고, 또 뛴다. 잠깐 숨돌릴 찰나의 시간을 제외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여유라곤 없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이 60, 70이 된다. 이런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바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더라도 어느 때엔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독이는 여유는 꼭 필요하다.수년 전 여름휴가때는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를 찾았다. 그때 절 한 귀퉁이에서 커다란 돌에 새겨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란 글귀를 보고 세상사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추스리게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보왕삼매론은 중국 명나라때 묘협이란 스님이 불자들에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에 대해 쓴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우리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몸은 유기체인데, 바이러스가 들어오고 나가고, 나이먹으면서 노화가 오는 데 어떻게 병이 없을 수 있나. 그런데도 우리 대다수는 병이 없는 상태를 기본값으로 잡는다. 그래서 오히려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권한다. 또 세상살이란 게 간단치 않으니 어떤 일이든 쉬운 게 없으니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는 것 역시 욕심이라고 지적한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기니 오히려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라`고 한다.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마라는 구절은 경주 최부잣집 여섯가지 가훈 중 `재산을 만석이상 모으지 말라`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필요이상으로 축적된 재물은 사회에 환원하고 많이 가진 자의 도덕적인 의무를 다하라는 뜻일게다. 마지막으로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마라는 것은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만 생기게 되니 오히려`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고 권한다. 세상살이에 억울함 있어 사실을 밝혀봤자 마음속에 원망만 남으니 이를 넘어서라는 주문이다.메르스사태로 인한 경기침체에다 열대야로 뜨겁고 힘겨운 일상을 사는 많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되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싶은 심경에서 하는 말이다.

2015-08-07

지역경기 옥죄는 포스코 수사

▲ 김진호 논설위원경북제일의 도시인 포항이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까지 온 나라를 공포 분위기에 몰아넣었던 중동감기(메르스) 여파도 있지만 지난 3월부터 시작돼 5개월째 계속되는 포스코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주요 요인이다. 그간 포스코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 13명이 구속된 것으로 집계됐다. 비자금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포스코 본사에 앞서 포스코건설 토목사업본부 결재 라인을 따라 수사를 진행해 전·현직 토목사업본부장 4명 가운데 3명을 구속했다. 포스코그룹의 주요 협력업체도 수사대상에 올랐다.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박재천 코스틸 회장, 전정도 세화엠피 회장이 구속 기소됐고,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동양종합건설의 대주주인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 역시 소환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이나 대검에서는 아예 “올해 내내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이처럼 포스코그룹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는 고강도 쇄신안을 생존전략으로 내놓으며 돌파구를 찾고있다. 주요 골자는 2017년까지 국내 사업 절반과 해외 사업 30% 정리, 경영부실 관련 임원 43명 퇴직 혹은 징계조치다. 또한 향후 2년간 국내 계열사 47개를 22개로, 해외 181개 사업을 117개로 줄일 방침이며, 순혈주의를 깨고, 포스코 임원이 계열사 CEO로 가는 관행도 없애기로 했다. 특히 `100% 투명성`경영, 윤리적 비리는 `단 한번에 퇴출 원칙`을 세웠다.이 가운데 `100%투명성` 경영원칙에 따라 포스코 용역을 공개경쟁입찰로 돌릴 경우 기존 협력업체는 인건비 부담때문에 새로 진입하려는 타지 업체와 경쟁이 되지 않아 대부분 퇴출의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알려져 포항지역 포스코 협력업체들 역시 큰 위기를 맞게됐다. 실제로 며칠전 포스코는 그동안 포스코 협력업체와 수의계약을 해온 조경·청소·페인트 등의 용역 발주를 공개경쟁입찰방식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포스코그룹 수사의 불똥이 철강경기 침체로 허리띠를 졸라매 온 지역업체쪽으로 튄 셈이다.포스코 협력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한 인사는 “벌써 4개월이 넘도록 여기 찔러보고 안되면 저기 찔러보는 식으로 수사하면 지역경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포스코그룹 수사가 어떤 식이든 하루빨리 마무리되도록 지역경제인과 언론이 함께 나서야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포항철강관리공단에 입주해 있는 또 다른 포스코 하청업체 대표는 “요즘 검찰 수사를 보면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 또는 정동화 전 부회장 정도를 구속할만한 건수가 나올때까지 하겠다는 태세”라며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지역경제 사정이나 지역민 정서를 알법한 청와대가 나몰라라 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포스코가 포항지역은 물론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대하다. 실제로 검찰수사가 장기화되면 될 수록 국민기업 포스코의 대외 신인도는 더 떨어지고, 투자결정이 늦춰지면서 지역경기 침체도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한 지역경기 침체, 그리고 국익 손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라도 포스코 수사를 하루빨리 끝내고 투자촉진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란 말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유교경전 중 대학에 나오는 말이다. 특히 국정의 타워컨트롤 센터가 돼야할 청와대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청와대의 마음에 지역 경제나 지역민의 정서가 들어있기나 할까 싶어 해보는 푸념이다.

2015-07-24

첫 사랑의 추억

▲ 김진호 편집국장연애 시절 사람들은 “나 사랑해?”“나 이뻐?”하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묻곤 한다. 사랑은 그렇게 확인하고도 또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한 지 20년, 30년이 넘어 말 그대로 `식구`가 된 부부들은 새삼스레 “사랑해?” 하고 묻지 않는다.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듯이 묘사한 황지우의 시는 남다른 감흥을 안겨준다.“내가 말했잖아/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사랑하는 사람들은,/너, 나 사랑해?/묻질 않어/그냥, 그래, 그냥 살어/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그대 옷깃의 솔밥이 묻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시 `늙어가는 아내에게` 중에서)시인은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진심을 표현하는 법은 한가지가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무심히 짓는 미소, 고개 끄덕임, 눈곱을 훔치는 손짓으로도 사랑은 전해진다는 것이다.정치판에서 진심을 소통하는 법은 중요하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건으로 경직됐던 당·청관계회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당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당정청이 앞으로 하나가 돼서 경제재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를 바란다”면서 “지난번에 공무원연금도 꼭 필요한 개혁과제 중 하나였지만 노동개혁이라든가 이런 것을 잘 실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로 비판했던 것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은 “국민 중심의 정치를 꼭 이루어서 국민 중심의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는 모범을 보여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저희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 우리가 당에서 책임지는 그런 자세로 같이하도록 하겠다”고 적극 화답해 본격적인 당청 화해모드에 돌입했다.내년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와 각을 세우지 않으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돼 공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당권을 쥔 김무성 대표에게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보면 이뤄지지 않은 첫 사랑이랄 수 있다.모든 첫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첫 사랑은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과 상실감이 배경으로 깔린다. 그래서 더욱 애절한 게 첫 사랑이다. 한 걸음 나아가 새로운 희망과 함께 첫 사랑을 노래한 장석주의 시는 내 삶에 어떤 것을 소망해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어떤 일이 있어도 첫 사랑을 잃지 않으리라/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켜있는 아무도 가지않은 길을 걸어가리라/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두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보리라/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상처받은 일과 나쁜 소문,/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 오를 때/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시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전문)첫 사랑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바다에 온몸을 던지는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시인의 얘기가 새삼 가슴을 찌른다.

2015-07-17

아모르 파티(Amor Fati)

▲ 김진호 편집국장세상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여러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즉 자존(自尊)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존을 지키는 삶은 당당하다. 기업컨설팅으로 이름이 난 작가가 10여년전 어느 전자회사의 AS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자신을 ○○전자 AS기사말고 다른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봤더니 한 사원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제가 냉장고를 고치면 사람들은 시원한 음료수를 기분좋게 마시고 신선한 요리를 먹게 됩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그들의 저녁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그는 자신의 삶이 전자제품 서비스기사로 허비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올곧은 자존의 자세다.현재 삶에 만족하고 즐기는 모습 역시 자존에서 우러나온다. 대구시내 유원지 한 귀퉁이에서 만난 어느 포장마차집 사장님의 표정은 언제나 싱글거리는 표정이었다. 손님이 많든 적든 늘 한결같이 손님을 맞는 첫 마디부터 “어서 오세요!”하며 활기가 넘쳐 흘렀다. 새벽영업이 어찌 그리 즐겁기만 했으랴. 그래도 그는 그저 즐거운 표정으로 손님을 맞아 참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는, 자존감이 충만해보였다.자존을 이야기하면서 웬 포장마차집 사장님이나 AS기사 이야기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자존을 지키는 사람은 포장마차를 해도, 전자제품 서비스기사를 해도 행복하고 당당하지만, 자존이 없는 사람은 수백억원의 재산이 있어도 제풀에 힘들어하고, 심지어 자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흔히 삼류 정치란 말로 비하되는 우리 정치판에서 당당하게 자존을 지킨 유승민 의원이 화제다. 지난 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장본인으로 지목당한 후 2주일 가까이 사퇴를 거부해온 그는 8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요구에 따라 사퇴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가치에 어긋난다는 의미로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사퇴 요구를 비판하는 말로 해석됐다. 회견에서 밝힌 그의 정치철학도 자못 감동적이었다. 그는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고 물었다”며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해왔다”고 했다.고집과 소신있는 사퇴의 변이었다. 그래서일까. 유 전 원내대표는 사퇴 당일 실시한 JTBC와 리얼미터의 여권의 차기대선후보 긴급 여론조사에서 16.8%의 지지를 받아 19.1%인 김무성 대표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일약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한 것이다.어쨌든 앞으로 유 의원이 어떤 정치적 역정을 겪게될지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한때 친박으로 분류됐던 그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비박`을 넘어 `반박`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태로 정치적 선명성과 인지도를 높인 것이 성과라면 성과지만 그로 인해 겪을 역경과 고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래도 어쩔것인가.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갈밖에. 그의 자존을 지키는 험난한 길위에 가로놓인 금언은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네 운명을 사랑하라)`란 한 구절일 뿐이다.

2015-07-10

참새의 빨간 가슴털

▲ 김진호 편집국장`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는 동물생태학적 관찰에서 발견된 `고정행동유형(fixed-action patterns)`과 `유발기제(the trigger feature)`라는 개념으로 인간심리의 많은 부분을 설명했다. 실제로 한 동물생태학자의 실험에서 수컷 참새는 자신의 영역내에서 다른 수컷 참새의 빨간 가슴털이 꽂혀있는 진흙덩어리를 발견하면 마치 그것이 자신의 경쟁참새인 양 맹렬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빨간 가슴털이 제거된 수컷 참새의 박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 참새의 자기 방어시스템 유발기제는 빨간 가슴털인 셈이다.요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당내 친박계, 그리고 청와대 간에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보다보면 왠지 `참새의 빨간 가슴털`같은 유발기제가 작동된 듯한 인상이 짙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유승민 원내대표를 미워하게 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더욱 그렇다.한때 친박계의원으로 분류됐던 유승민 원내대표와 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소원해졌을까. 유 원내대표는 17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 10·26재보궐선거를 거쳐 3선 의원을 지내고 있다. 지역구를 대구로 택한 것은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의 지역구였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아버지인 유수호 전 의원은 대구지방법원 판사출신으로 `여당의 양심세력, 여당의 비판세력`을 자처하며 대구 중구에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5대 총선에서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남다른 정치적 소신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유 원내대표 역시 평소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것이 진정한 로열티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래서 그는 2013년 1월 박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첫 인사로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에 언론인 윤창중씨가 임명되자 “그는 극우다. 사퇴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또 2013년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는 “좌파정권이라고 비난받던 노무현 정권은 8.8%씩 국방예산을 늘렸는 데,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보수정권이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각각 연평균 5.3%, 4.1% 늘린 것은 보수정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를 약속한 박 대통령의 공약에 정면으로 반대한 것 역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 일이었다.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 박 전 대통령은 2인자와 항명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이후락, 박종규, 김형욱 등의 인물을 서로 경쟁시키며 견제했고, 권력에 위협이 되면 가차없이 내쳤다. 국회조차도 자신의 명령에 따르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실제로 1971년 공화당 의원 23명이 당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시 공화당 실세였던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의원 등이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정계를 떠나는 사건도 있었다.박 대통령 역시 대구에서 차세대리더로 발돋움하는 유 원내대표가 고울리 없었을 것이고,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한 행보는 항명사태로 간주했을 법하다.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란 표현을 동원해 퇴진을 요구했는데도 들은 척 않는 유 원내대표를 청와대가 나서 더 압박하려 해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가뜩이나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두언, 이재오, 이병석 의원뿐 아니라 새누리당 재선의원 20여명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니 일은 꼬여만 간다. 이번 사태가 내년 총선 공천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권력투쟁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자칫 세분열로 조기 레임덕사태가 우려된다. 어떻든 권력투쟁 양상이 길어져봤자 망신살 뻗칠 일뿐이니 적정선에서 타협은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대구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유 원내대표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요즘이다.

2015-07-03

간호사의 편지

▲ 김진호 편집국장메르스가 맹위를 떨치던 이달초 메르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온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외과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김현아 간호사가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냈다. “제 옆에 있던 환자도, 돌보는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가래를 뽑고 양치를 시키던 환자는 황망히 세상을 떠났고, 나중에야 그 환자와 저를 갈라놓은 게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의 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 그녀를 격리실 창 너머로 바라보며 저는 한없이 사죄해야 했습니다. 의료인이면서도 미리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따스하게 돌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낫게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그녀는 환자를 좀더 따스하게 돌보지못했음을 죄송해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문한다.“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래도 이 직업을 사랑하느냐고. 순간, 그동안 나를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들이 지나갑니다. ….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 더 악착같이, 더 처절하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습니다.”평범한 보통사람으로서의 두려움과 고뇌도 함께 호소했다. “저희들도 사람입니다. 다른 격리자들처럼 조용히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병이 무섭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기에 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생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 갇힌 채 어쩔 수 없이 간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게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차가운 시선과 꺼리는 몸짓 대신 힘 주고 서 있는 두 발이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세요.”김 간호사의 편지에는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숨진 환자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간호사란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인간적인 애환과 고통속에 다 함께 극복해나가자는 결의가 진정성있게 담겨있어 많은 국민들에게 가슴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 편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메르스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책임감 가득한 사람들이 이 사회 곳곳에 있고, 그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희생만 강요하고 무관심했다는 자성이 널리 퍼졌다. 아울러 이처럼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임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두려움을 떨치며 오늘도 메르스와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과 간호사는 말 그대로 자랑스러운 메르스전사요, 영웅이다.아무리 현실이 고단해도 정신이 번쩍 드는, 한줄기 맑고 시원한 샘물같은 감동은 우리 삶을 새롭게 충전시켜준다. 몇 해 전 TV광고로 소개돼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피로회복제 광고도 그랬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드라마같은 내용의 광고였다. 그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청소부 아저씨의 버거운 손수레를 몰래 밀어주고, 졸고 있는 빌딩 경비아저씨에게 음료수를 건넨다. 월급봉투는 얇아도 노점상 할머니의 야채를 전부 사고는 신나는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고, 엘리베이터안에 있는 열명이 임신부 한 명을 위해 한참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상품선전을 위해 제작된 TV광고인데도 보고있으면 미소가 지어지고, 따뜻한 마음이 드는 풍경들이었다.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보자. 우리들 대부분은 남을 돕거나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의사를 꿈꾸었고, 억울한 사람들의 가슴을 달래려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랬던 것이 험난한 인생을 사는 동안 산전수전 겪으면서 이겨야 하고, 밀어내야 하고, 외면해야 하는 순간이 반복되면서 애초의 자신과 너무 멀어져 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잊지 말자. 우리가 꿈꾸었던 가치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진정한 행복도, 가치있는 성공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2015-06-26

`철밥통` 공무원 vs 프레드

▲ 김진호 편집국장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공무원이란 말에는 `철밥통`이나 `부정부패`라는 부끄러운 접두사가 달렸다. 전국적으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대구에서 메르스 첫 확진환자로 판정된 대구 남구청 공무원 K씨는 철밥통 공무원의 개념없는 행보로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K씨는 지난달 27일 어머니 허리 때문에 진료차 서울삼성병원 제2응급실을 다녀갔고, 이튿날 현대아산병원에 들렀다가 같은 날 오후 KTX를 이용해 대구로 귀가했다. 그 후 K씨와 같이 병원을 다녀온 누나는 지난 2일 발열 현상으로 격리된 이후 지난 1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아 대전의 한 병원에 격리됐다. 이쯤되면 자신이 메르스에 걸렸을 것으로 짐작할 만한 상황인 만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서라도 스스로 신고하고 자가격리조치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K씨는 신고도 제대로 않고, 이후 열흘남짓 동안 경로당과 식당, 목욕탕과 노래방 등을 섭렵하고 다녔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처신이다.K씨 한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K씨가 메르스 확진환자로 판명난 당일인 지난 15일 낮 K씨가 근무하던 대구 남구 대명3동주민센터의 센터장과 사무장 등 직원 3명은 대명3동 발전협의회 소속 주민 30여명과 함께 팔공산에 있는 한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특히 동장인 센터장은 K씨가 이날 오전 남구보건소에 들러 메르스 검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도 아랑곳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쯤되면 질병본부의 메르스 메뉴얼이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개탄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센터장과 사무장, 동료공무원을 비롯한 14명의 공무원 모두는 K씨의 확진 판정 이후 자가격리자로 분류됐고, 주민센터는 폐쇄됐다. 개념없는 공무원들이 왜 이리 많은 지 모르겠다.이들이 공직자로서 개념없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업무를 건성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뭘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을 가치있고, 소중한 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려 했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을텐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래야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잘 해낼 수 있다. 그런 일을 찾으라.”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던져두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미국의 우체부 프레드의 사례를 보자. 그는 푸른 유니폼과 커다란 가방을 하나 메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일이 단지 우편물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단순노동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고객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우편물이 쌓여 도둑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우편물을 자신이 보관했다가 전해 주었다. 그들에게 우편물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안부를 챙기고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사람사이의 `관계`를 만들 줄 알았고, 자신의 일이 결코 단순노동이 되지 않도록 했다. 마침내 보잘것없는 일상에서 위대한 가치를 발견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프레드상`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모 방송사에서는 지난 3월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공무원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철밥통은 가라`를 방영하고 있다. 공무원에게는 자긍심을, 시청자에게는 공무원에 대한 신뢰와 긍정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이런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철밥통은 가고, 더 많은 프레드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2015-06-19

공포의 사회학

▲ 김진호 편집국장온 나라가 메르스(중동감기) 공포로 야단법석이다. 공포(恐怖)는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극렬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말한다. 실생활에서 우리들은 공포의 대상에 따라 다양한 공포의 유형을 만난다. 예를 들어 높은 위치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키는 고소공포증(acrophobia)이나 열린 곳이나 공공장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인 폐쇄공포증(claustrophobia) 등은 일반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여기에다 메르스 공포(mersphobia)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판이다. 메르스공포는 `메르스`처럼 전염돼 질병 자체보다 후유증이 더 무섭게 퍼지고 있다. 수도권의 대다수 학교들이 메르스 전염을 피해 휴교를 하니,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 PC방이 북새통이란다. 경찰이 음주단속을 미온적으로 하자 음주운전도 부쩍 늘었다. 음주측정기를 통해 메르스가 감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명백한 음주운전자에 대해서만 음주측정을 하라”는 업무지시를 각 지방청에 하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취상태가 아니면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아 대리운전업계가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한다.11일에는 전날 2차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던 임신부가 최종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시끄럽다. 병원이나 보건소에는 `임신부가 감염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임신부들은 태아에 영향을 미칠까봐 약 같은 것도 잘못먹기 때문에 더욱 큰 걱정이다. 문제는 메르스가 임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거의 연구된 게 없다는 데 있다. 그저 임신부가 감염될 경우, 증상이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전망만 나와있다. 임신부는 태아와 함께 호흡해야 해 필요한 호흡량이 20% 가량 늘어나는데 폐활량이 떨어져 있어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메르스 공포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기저에는 공포심리의 확산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바로 엘러리 퀸이 쓴 소설 `꼬리아홉 고양이`에 적용된 공포의 사회학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공포심리는 살인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무차별 살인사건으로 인해 군중들이 느끼는 공포, 익명의 타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도시인들만이 느끼는 공포, 바로 `모른다`는 사실이 공포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은 벌어지고 있으나 살인범이 밝혀지지 않는다.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한 시체는 계속 늘어가는 데, 범인은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미치광이 범인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내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번져나가는 것이다.메르스가 공포로 번진 것 역시 치료약도, 예방약도 없어 해법을 모른다는 점에서 출발했고, 치사율 40%란 사실이 과대포장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메르스에) 걸리기만 하면 약도 없이 반수는 죽는다`는 걸로 잘못 알고,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유럽 질병통제센터가 지난 달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메르스 치사율은 40.8%(확진 환자 1172명·사망자 479명)에 이른다. 그러나 11일 현재 국내 메르스 환자의 치사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실제로 10일 기준, 메르스 확진환자 108명 가운데 9명이 사망해 현재 국내 메르스 치사율은 8.3%에 불과하다.이 정도면 독감이나 폐렴에 걸려 사망하는 치사률과 비슷하다. 통상 폐렴구군에 의한 폐렴이 5~7%의 사망률을 보이며, 연령이 올라갈수록 폐렴에 의한 사망률이 훨씬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미지(未知)에 대해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공포를 잡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적확하게 실행하는 방책 하나뿐이다.

2015-06-12

결혼식 신풍속도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주말 후배 기자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예식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례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은 채 예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결혼식 진행도 주례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로 보이는 젊은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이어졌다. 결혼식이 있겠다는 사회자의 안내말이 있은 후 곧 바로 신랑이 입장하고, 아버지의 손을 잡은 신부가 입장하면서 본격적인 결혼예식이 시작됐다. 이어 신랑 신부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종지쪽지에 깨알같이 적은,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해 열심히 잘 살겠다`는 요지의 결혼서약을 번갈아 읽어내렸다. 그 뒤 신랑 친구들의 축가, 그리고 신랑 신부 부모에 대한 인사, 축하 케익절단이 있은 후 신랑신부가 부부로서 새 삶을 향해 씩씩하게 행진하는 것을 끝으로 결혼예식이 모두 끝났다. 결혼식 말미에 신부가 다음에 결혼할 예정인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는 풍경도 사라졌다.예전과는 너무 많이 달라진 광경에 당황했던 나는 신랑과 비슷한 연배의 하객에게 “요즘 혼례가 모두 이런 식이냐?”고 물었더니 “요즘 결혼식에서는 주례 선생님이 없는 경우가 많고, 신랑신부가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하거나 신랑이나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결혼식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답하는 것이었다.예전에는 결혼식을 하려면 제일 먼저 지역사회에 명망이 있거나 신랑신부와 특별한 관계(주로 사제관계)에 있는 분을 주례로 섭외하는 것이 큰 일이었는 데, 주례가 없으니 혼인준비는 쉬워진 듯 했다. 또 도덕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주례사를 바쁜 주말 결혼식장에서 20~30분씩 듣는 것이 내게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기에 `노(NO)주례`결혼식이 오히려 반갑기도 했다.그러나 신랑 신부가 함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데 대해서는 아직까지 신부를 시집보낸다는 의미가 강한 결혼식에서 장인이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절차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시집보내야 할 딸 둘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머지않아 고이 키운 딸들을 시집보내야 할 처지이니 말이다.결혼식 풍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듯 하다. 내가 어릴 때는 흔히 사모 관대 차림의 신랑이 조랑말을 타고 신부의 집으로 가서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원삼을 입고 족두리를 쓴 신부와 마주 서서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전통 결혼식은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필자가 결혼할 즈음에는 거의 사라지는 추세였다. 그래서 또래들은 대다수 예식장이나 관공서의 강당, 마을 회관 등에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다.나도 27년전인 1988년 결혼할 때 전통혼례가 아닌 간소한 서양식 결혼식을 치렀다. 주례로는 통상 은사를 모시는 경우가 많았지만 첫 직장으로 영남일보사에 입사해 신문기자로서 생활을 막 시작했던 나는 평소 언론통폐합의 시련을 딛고 신문을 복간한 뒤 언론인으로서의 소명을 강조해 온 고(故) 이재필 당시 사장님을 존경했기에 무작정 사장실로 찾아가 “주례로 모셔서 덕담을 듣고 싶다”며 졸랐다. 처음엔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며 난감해하시던 사장님은 어렵게 주례를 허락하셨다. 결혼식 당일 이 사장님은 주례사를 통해 “평생 처음 주례를 부탁받고 고민했으나, `첫 월급봉투를 얼마전 돌아가신 어머님 산소앞에 놓고 울었다`는 김 기자의 효심에 감동해 주례를 맡게됐다”고 사연을 소개하는 바람에 울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결혼식은 타인으로 살던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 함께 사는 것을 서약하는 의식이다. 결혼식의 겉모습이 어떻게 바뀌든 그런 뜻을 잘 살린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새롭게 부부로 탄생하는 신랑신부들이 모두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본다.

2015-06-05

설득의 심리학

▲ 김진호 편집국장5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공무원 연금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여야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회기 마지막날인 28일 국회에서 협상을 재개했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 온 국민이 원하는 법안이라해도 갖은 몸살을 치러야 합의되는 상황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정치나 경영에서의 협상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판에서는 유독 협상이나 대화에 인색하고 힘겨루기나 치킨게임이 득세한다. 이런 정치판을 십 수년째 가까이서 지켜봐 온 필자는 설득력이 빈곤한 여야 정치인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대한 연구는 없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알고보니 해답은 몇 년전 서점가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던 `설득의 심리학`에 나와있었다.로버트 치알디니가 쓴`설득의 심리학`은 먼저 상호성의 법칙을 강조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생일을 기억하여 생일선물을 보내면 당신도 그의 생일날 선물을 보내야 하며,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면 언젠가는 당신도 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법칙을 이용해 상대방을 일종의 빚진 상태로 만들어놓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상대방에게서 “그렇게 하지요”라는 승낙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상호성 법칙의 힘은 정치의 장에서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주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자들은 자신을 당선시키기 위해 수고한 자신의 참모들이나 후원자들을 논공행상해 적절하게 보상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며, 당연시된다. 또 이 법칙은 한 쪽이 양보하면 다른 쪽도 양보해야 한다는 `상호양보`라는 현상을 부른다. 이런 아이디어끝에 고안된 것이 바로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설득전략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당신의 요청에 응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당신은 나에게 매우 무리한 부탁을 먼저 한다. 물론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할 것이고, 그때 당신은 처음보다 작은, 그렇지만 원래 당신이 원했던 부탁을 한다. 만일 당신이 아주 그렇듯하게 크게 양보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수만 있다면 나는 상호성법칙의 함정에 빠져서 두번째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 전략이 매우 효과적인 이유가 있다. 상호성의 법칙에다 `인식의 대조효과`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물체를 들어 본 후 무거운 물체를 들면 처음부터 무거운 물체를 들어본 경우보다 더 무겁게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놀라운 일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들었던 `워터게이트`도 바로 이 전략의 산물이란다. 워터게이트는 공화당의 재선이 유망한 시점에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했다가 발각나는 바람에 대통령이 사임하고, 선거에도 지는 최악의 결과를 부른 세기의 사건이다. 그 사건은 대통령재선위원회 정보 수집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리디가 최초에 1백만달러의 예산과 고급창녀, 유괴, 습격, 태업, 도청 등 온갖 종류의 불법적 책략을 제시한 것이 발단이었다.첫 제안 1주일 후 그는 여러 프로그램중 상당부분을 줄여 50만달러를 청구했고, 마지막에는 다시 25만달러 규모로 축소돼 제시했다. 만약 리디가 최초 제안에서“민주당 사무실을 침입해 도청하자”고 했으면 그 제안은 즉시 묵살됐을 것이다. 리디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맨 처음 제안의 반, 혹은 사분의 일만이라도 얻어낼 작정으로 무리한 요구를 한 뒤에 최종적으로 25만달러의 도청작전을 쓰자고 설득한 것이다.워터게이트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이처럼 말썽 많은 제안을 관철해 낸 `일보후퇴 이보전진`전략의 효용성은 높이 살 수 밖에 없다. 우리 정치도 이런 설득전략을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정치는 사회를 단 한 걸음도 나아가게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5-05-29

반기문의 대망론

▲ 김진호 편집국장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망론이 화제다. 이번에 방한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하려 했으나 발표 하루 만에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파장도 컸다. 박근혜 대통령도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반 총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번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통해 개성공단의 현 상황 타개 등 남북문제의 진전에 좋은 계기가 됐으면 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반 총장 역시 취임이후 한반도 평화와 안보, 그리고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를 하고 싶어했기에 아쉬움은 더 했을 것이다. 반 총장은 또 이날 국회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장단과 여야 원내대표 등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비전을 가지고 활동해 나가는데 있어 국회의 지지, 특히 초당적 지지가 중요하다”면서 정의화 의장에게 “의장님이 지도력을 발휘해 정부를 적극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반 총장은 “(대통령에 대한) 초당적 지지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제가 강조하는 부분”이라며 “대통령이나 수상이 일할 때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법안-예산 관련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면 (국정운영이) 잘 안 된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비록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하긴 했지만, `살아 있는 현재 권력의 도움 없이 차기 대권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 총장이 박 대통령에게 러브콜을 보낸 모양새다. 반 총장의 퇴임 시기도 내년 12월이어서 그로부터 1년 후 열리는 대선과 절묘하게 겹친다.특히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맞물려 반 총장에 대한 국민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게 대망론의 진원(震源)이 되고 있다. 반 총장은 “(대선)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지난 15~16일 실시된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대통령 적합도`가 36%를 넘은 것으로 나타나 기존 후보군을 20% 포인트 이상 앞서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대망론이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또 반 총장은 망국적인 지역색 논쟁에서 벗어난 충북 음성이 고향이다. 이래저래 대망론에 부합하는 많은 강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반기문 총장이다.문제는 역대 대선에서 제3의 후보로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지만, 성공한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반 총장의 대망론에 대한 정치권의 전망은 엇갈린다. 정치권밖에서는 `장외 대장주`처럼 각광을 받았다해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도덕성과 능력 등에 대한 검증이 시작돼 신드롬처럼 치솟았던 인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나 안정적 행정 경험을 앞세웠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거센 돌풍을 일으켰으나 끝내 실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게다가 최근 `성완종 파문`에 반 총장의 이름이 거명되고, 동생이 성 전 회장의 경남기업에서 일했던 것으로 나타난 것은 두고두고 악재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아직 여야 어느 진영의 후보가 될지 몰라서 그렇지 반 총장이 정치적 좌표를 정해 출마하는 순간 상대편의 집중포화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어느 정치인의 말마따나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게 맞다. 비록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정점인 국제연합 사무총장을 지냈다 해도 과연 온갖 모함과 모략, 음해가 판 치는 정치판에서 반 총장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금의환향`해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던져주는 차기 대권주자가 돼 주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는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한반도 평화의 메신저로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낸 이후 통일 대통령의 비전을 제시하고 나선다면 누구보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지 않겠는가. 더 이상 다툼과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평화와 희망의 정치를 보고싶다는 게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2015-05-22

“있을 때 잘해”

▲ 김진호 편집국장5월 가정의 달은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이어진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한 말처럼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다 같다고 했으니, 스승과 부모의 은혜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더구나 어버이는 우리를 키워준 부모이자 밥상머리 교육으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8일 어버이날, 모처럼 누님 가족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올 한해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정담을 나눴다. 아버님은 손자 손녀들이 모두 모이지는 못했지만 딸과 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당신을 챙기는 모습만으로도 좋으셨나보다. 어버이날 다음 날 아침에는 아버님과 함께 팔공산온천을 찾았다. “등 밀어줄 아들 하나 없어서야 되겠냐”는 독려에 딸 둘로 그치려 했던 가족계획을 바꿔 막내 아들을 낳았던 내 처지에 아버님과 함께 목욕하는 일은 중요 행사일 수 밖에 없다. 한 주는 서울 집에서, 한 주는 포항에서 지내는 주말부부로서 매월 한번 대구에 계시는 아버님과 목욕을 다니는 것 조차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지만 빠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있다. 그래야 팔순을 넘어 미수(米壽)로 나아가는 연세가 되신 아버님의 건강을 챙길 수 있으리란 심산때문이다. 직장과 아이들 교육때문에 고향인 대구를 떠난 마당이라 이렇듯 가정의 달만 되면 황망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다.돌이켜 보건대 어린 시절 아버님은 유독 이 아들에게 엄친(嚴親)이셨다. 사소한 잘못에도 회초리나 군대식 체벌로 혼냈다. 온화하기 보다는 항상 엄한 표정으로 아들을 대하셨다. 아버님의 그런 태도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걸 커서야 알게됐다. 평안북도 정주군이 고향이었던 아버님은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남한에 내려왔다가 국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로 석방돼 대구에 정착한, 기구한 인생역정을 겪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남한에서 홀로 자리를 잡느라 힘들게 살아오셨으니 무슨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랴. 그러니 험한 세상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하셨다. 어떻든 어린 시절의 내게 아버님은 그저 어렵고 무서운 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상당기간 아버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다. “어린 아들에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그러던 어느 날, 집 소파에 누워 TV로 영화를 보고있던 내게 집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아들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인색해요? 아들이 좋아하는 농구도 하고, 목욕도 함께 다니도록 해요. 그러면서 학교 공부는 어떻게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얘기도 들어주고, 조언도 해주고요.”사실 아버님은 어린 내게 야구글러브를 사주며 공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셨고, 배드민턴과 탁구도 가르쳐주셨다. 아이들과 싸워 울고 들어온 다음날에는 태권도 도장에 데려다주시면서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당부하신 일도 떠올랐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아들에게 무심한 내가 누구를 원망하나`하고 반성하게 됐다. 아버님은 내가 막내아들에게 해 준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베풀어주셨고,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런 아버님을 잠시라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던 게 부끄러웠다. 이제는 연로하신 아버님을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모실까 하는 생각 뿐이다. 요즘 스마트폰 매력에 흠뻑 빠진 아버님은 얼마전 연습삼아 누님에게 카톡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다고 했다. “있을 때 잘해!”이 말이 가슴을 울린다.짧은 봄처럼 아쉬운 삶에 대해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진달래가 피었다가 지고, 목련이 피었다가 지고, 철쭉이 피었다가 지고, 사람이 피었다가 지고….`내게 큰 은혜를 베푼 아버님과 스승님들이 `지기전에` 존경과 사랑을 다해 잘 모셔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2015-05-15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

▲ 김진호 편집국장여야가 논쟁끝에 협상이 결렬되면서 4월 임시국회 처리를 약속했던 공무원연금법, 소득세법개정안 등의 처리가 무산돼 `무능한`국회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19대 국회는 정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일 못하는 국회`,`당리당략에 포로가 된 국회`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이후 최근까지 무려 1만4천건이 넘는 법안이 접수됐지만 이 가운데 3분의 2가 처리되지 못한 상태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니 걱정이다.여야가 의견이 달라 아웅다웅하는 일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국회는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역대 최악`이란 평가다. 여야가 서로 가슴을 털어놓고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해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될 날은 언제일까.답답한 마음에 인간관계에 관한 한 시대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중의 하나인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들춰보다가 여야 정치권의 갈등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비방(秘方)들이 즐비한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3부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편에 제시된 해법들을 몇 가지만 소개한다.먼저 논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방울뱀이나 지진을 피하는 것 처럼 논쟁을 피하라는 것. 논쟁에 지면 말 그대로 지는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논쟁에서 진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자존심을 구겨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달리 말해 싸워 이기려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둘째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고 말한다. 결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해선 안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과연 당신에게 동의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당신에게 강력하게 반격을 가하고 싶어한다. 어떤 논리를 동원해 설명해도 상대방의 의견은 변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가장 부드러운 분위기속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교수인 제임스 하비 로빈슨은 명저 `정신의 발달과정`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우리는 아무런 저항감이나 별다른 감정없이 생각을 바꾸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우리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라도 하면 분개하며 고집을 부린다. 우리는 믿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놀라울만큼 경솔하지만, 누군가가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할 때에는 그 믿음에 쓸데없이 집착하게 된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그 생각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전받는 우리의 자존심인 것이다.”누군가에게 틀렸다고 하는 순간 당신은 그의 적이 될 뿐이다.셋째 우호적인 태도로 말을 시작하라고 권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은 “만일 당신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에게 대든다면 나도 금방 두 주먹을 움켜쥘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다가와 `우리 앉아서 같이 이야기해 봅시다. 만일 우리가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서로 다른지, 또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하고 말한다면 서로의 의견 차이가 결국 그다지 큰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점은 적고 오히려 같은 많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고, 서로 잘 지내기 위한 인내심과 솔직함과 의욕만 있다면 우리는 함께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대화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결코 싸우려 해서는 안된다.결론적으로 말해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웅변한다. 우리 정치권이 논쟁의 정치를 끝내고 생산적인 상생의 정치를 하고 싶다면 여야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자세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5-05-08

승부는 싸우기전에 결정된다

▲ 김진호 편집국장손자병법에서는 승률계산을 `묘산(廟算)`으로 표현한다. 묘산은 전쟁개시와 같은 국가중요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경건하게 사당에 들어가서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산가지를 하나씩 놓으면서 타당성을 따진다. 성공 요인이 하나 나오면 산가지를 하나 놓고, 실패요인이 하나 제거되면 산가지를 하나씩 빼는 방식이다. 예컨대 누군가 “우리 임금은 적의 왕보다 훌륭합니다”라는 의견을 제기하면 산가지를 하나 추가하고, 누군가 “하지만 아군은 명령계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산가지를 하나 빼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산가지가 많이 쌓이면 승률이 높은 것이다.손자는 이런 승률계산이 전쟁에 앞서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이길만한 싸움만 하라는 가르침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치는 싸움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승률 100%의 신화도 이처럼 이기는 싸움만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아니다.승률을 계산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운 게도 도망갈까봐 다리 먼저 떼어내고 먹는`게 싸움이나 전쟁에 임하는 자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수양제가 압도적인 국력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싸워 진 것은 “난 바위니까 계란쯤은 아무렇게나 쳐도 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누워서 떡을 먹다가는 잘못하면 기도가 막혀 죽을 수 있다.4·29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야당 텃밭`이던 서울 관악을을 27년 만에 탈환한 것을 포함해 총 4개 선거구 중 수도권 3석을 싹쓸이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 중반 `성완종 파문`이라는 호재를 만났음에도 심장부인 광주 서을까지 4곳 모두를 내어주며 `완패`했다.이번 선거에서 `성완종 리스트`라는 호재를 만나고도 패한 새정치연합의 결정적인 실착은 뭘까. 야당의 패인은 선거결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한 나머지 큰 고민없이 매번 재보선 때마다 꺼내 든 `정권심판론`을 내세웠다는 점일 것이다. 유권자들이 선거때마다 나오는 정권심판론에 식상해하는 데도 이를 간과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민생·경제를 우선시하는 `지역일꾼론`을 내세운 새누리당이 더 많은 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은 재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경제살리기와 각종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낼 기세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활성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확인했다고 자평하고, 서민경제 살리기와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한 공공분야 4대 개혁 작업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선거 다음날인 30일 이른 아침부터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연달아 소집하고 경제활성화와 개혁 완수를 위한 국회 차원의 지원을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새누리당에서는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잇단 재보선 승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오히려 여권에 대한 `견제론`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 지도부 인사들은 `겸손 모드`일색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치르며 현장을 돌아보니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과 혐오감이 매우 높다”며 “정치권 모두가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세 곳을 이겼다고 새누리당의 진정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짚어볼 필요 있다”고 몸을 낮췄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당장 내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고, 이 짧은 기간 민심은 수십 번 바뀔 수 있다”며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서 결코 착각하지도, 자만하지도 않겠다, 오히려 민심 앞에 더 낮은 자세로 국정의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재보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새누리당을 예뻐해서 승리를 안겨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니 다행스럽다. 여당이나 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고 싶다면 이길 수 있는 요인의`산가지`를 많이 쌓아야 한다. 승부는 언제나 싸우기 전에 결정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둔다.

2015-05-01

손자병법 이야기(2)-싸우지 않고 이기기

▲ 김진호편집국장이완구 총리의 사퇴는 자초한 측면이 많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부동산 투기, 언론 외압, 병역 기피 등 각종 의혹을 안고 취임한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주위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과거 정권에서 사정수사가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주위의 우려속에 이 총리의 사정의지는 검찰의 포스코건설과 경남기업 압수 수색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에서 마당발로 알려진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이 `MB 정부`자원 외교 비리 수사의 첫 표적으로 지목됐고, 우려곡절끝에 지난 9일 성 전 회장이 자살하고 말았다. 그는 친박 핵심 정치인 8명에 대한 금품 로비 내용을 적은 `메모`와 육성 인터뷰를 남겼다. 육성 파일을 통해서는 “2013년 재·보궐 선거 때 (이 전 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성 전 회장한테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섣부른 해명이 되고 말았다. 성 전 회장 운전기사가 “2013년 4월 4일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와 선거사무소에서 단둘이 만났고, (3000만원이 든) 비타500 상자를 두고 왔다”고 폭로했고,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왔는지 모른다”고 했다가 “독대는 하지 않았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더구나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최근 1년 사이 200회가 넘는 전화를 주고받은 객관적 물증까지 등장하자 이 총리는 더이상 버티지못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총리 취임 63일만이었다. 아직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성 전 회장이 지난 16년간 주요 정관계 인물에 보낸 선물 리스트를 별도로 작성해 관리해 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선물 명단에는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8인은 물론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와 장관 등도 다수 포함됐다.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A4용지 200장으로 이뤄진 장부에는 성 회장이 16년 동안 해마다 500여명의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한 선물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한다. 특히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물론 이완구 국무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등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된 인물들이 모두 성 회장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정치판에서 싸움이나 전쟁은 일상적이다. 다만 싸움도 다 똑같은 게 아니다. 피투성이가 된 상처뿐인 영광이 있는 가 하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완벽한 승리도 있다. 전쟁은 즐거움을 주자고 하는 것도, 박수를 받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적을 굴복시키고 적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게 목적이다. 어떻게 하면 나는 다치지 않으면서 적이 가진 것을 빼앗고, 동시에 갖고 싶었던 것을 얼마나 온전하게 내 손에 넣느냐가 관심사다.싸움이나 전쟁에 관한 고전중의 고전인 손자병법의 모공(謨功)편에서 손자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걸 최고라 하지 않는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라 했다.여(與)도, 야(野)도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싸고 헐뜯고 싸워봐야 모양만 우스운 꼴이다. 싸움은 적을 전멸시키기 보다는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기는 게 좋다. 아니 가능하면 아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좋다. 손자는 전쟁을 벌이는 맞상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정치판에서의 싸움도 적군을 깡그리 죽여 없애야 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적으로 지칭되는 경쟁자나 정당도 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이며, 더불어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최고 경지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듯 정치판에서 최고경지가 `상생의 정치`로 귀결되는 게 당연해 보이는 요즘이다.

2015-04-24

손자병법 이야기 (1) - 지피지기(知彼知己)

▲ 김진호 편집국장이른바 `성완종 리스트`파문으로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자진사퇴 요구가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크게 번지고 있다. 이 총리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당내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이 총리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사퇴 불가피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양상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 총리는 증거도 없이 일방적 주장만으로 거취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면서 사퇴를 거부해 정치권이 온통 야단법석이다. 정치권의 공방을 지켜보노라니 박근혜 정부의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는 생각에 안쓰런 마음뿐이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공공부문의 개혁을 동력으로 노동, 교육, 금융 부문의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전략이 크게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령탑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에 매진하겠다며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정치현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되면서 제동이 걸려버렸고,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회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휘말려 표류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과 임금피크제, 저성과자 퇴출제, 공공기관 기능재편 등의 내용을 담은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도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국정동력이 손아귀 사이로 물 새듯 새고 있는 상황이다.여야의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이 총리 입장에서는 증거도 없이 마냥 총리직을 사퇴하라니 억울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옛말에 “도둑놈은 한 죄, 도둑맞은 놈은 열죄”라고 했다. 도둑놈의 죄는 물건 훔친 것 하나밖에 없지만 도둑 맞은 사람은 물건 제대로 간수 못한 죄에 쓸데없이 사람 의심하게 한 죄 등 10가지 죄를 짓게 된다는 말이다. 도둑을 탓할 일이 아니라 도둑을 막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치판에서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래서 불법적인 일과 관련이 없는 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당사자로서, 국정을 책임지고 영을 세워야 할 총리로서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것은 돌이키기 어려운 치명상이다.정치판은 언제나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한 영원한 고전인 손자병법에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손자는 나를 아는 건 당연하고, 적을 아는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상대를 아는 것보다 자신을 안다는 게 더 어려울 때가 많다. 열가지 자기 흠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결점에만 눈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지피지기를 제대로 못할 경우 개인의 신세를 망치는 것은 물론 나라까지 망친다. 고려시대 최 영 장군은 과거 원나라가 지배하던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는 명나라의 요구에 반발해 요동정벌을 계획했다. 나라가 바뀌는 시기에 명나라는 전력을 다할 수 없으므로 해볼만하다는 게 최영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적의 사정만 생각했을 뿐 고려의 처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창궐했고, 선봉에 내세울 장수는 전쟁에 반대하는 이성계였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을 강행하다 보니 결국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졌고, 최영 장군 자신의 목숨을 잃은 건 물론이고 고려왕조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모름지기 싸움이나 전쟁을 하려면 적을 알기에 앞서 나 자신부터 잘 알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적의 위치에서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고, 적의 입장에서 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이래저래 남을 아는 것은 어렵고, 자신을 알기란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어려운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이 총리에게 권해본다.

2015-04-17

진작 이랬어야지

▲ 김진호 편집국장명연설이었다. 지난 8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끝나자 여야의원들은 물론 국민들이 함께 박수쳤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새누리당은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면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다”고 했다.유 원내대표는 평소 자신이 견지해온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기조를 바탕으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조목조목 피력했다. 특히 기존 여당의 입장에서 볼때 중도나 중도좌파적 정책까지 과감하게 내세우며 새누리당도 시대흐름에 맞춰 혁신하고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경제·안보정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정책노선의 `우클릭`을 모색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여야가 어떤 점을 목표로 수렴하는 듯한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다.유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보수의 정의를 내렸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며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흘려 노력하는 보수이다.”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했다. 예전 진보정당 대표 연설에서나 나올법한 단어로 점철된 연설이었다. 그는 “10년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양극화 해소`를 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다. 가장 파격적이었던 대목은 박근혜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반성과 대안제시부분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관련한 134조5천억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점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아예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2천억원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그는“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여야 간에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여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 원내대표는 “재벌대기업은 지난날 정부의 특혜와 국민의 희생으로 오늘의 성장을 이뤘다”며 “천민자본주의 단계를 벗어나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아픔을 알고 2차, 3차 하도급업체의 아픔을 알고 이런 문제의 해결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재벌대기업에 임금인상을 호소할 게 아니라 하청단가를 올려 중소기업의 임금인상과 고용유지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재벌그룹 총수일가를 보통사람과 똑같이 처벌하고 사면, 복권, 가석방 등도 다르게 취급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다만 유 원내대표는 안보이슈에 대해서만큼은 “정통보수의 길을 확실하게 가겠다”면서 야당과 분명한 차별화에 나섰다.보수여당 원내대표가 대다수 국민들이 아쉽게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성을 촉구한 것이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밝힌 세금과 복지 문제, 재벌개혁 등에 대한 입장과 기조는 기존 당의 기본 입장과 차이가 있어 향후 당내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도, 되지도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자제모드에 들어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별도의 논평을 삼가겠다”고 말했다. 섣부른 논평으로 국민감정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청와대도 이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해선 안된다.예전 권위주의 정권시절, 한 기업 총수가 “대한민국 경제는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논평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 `사류`정치의 급수가 좀 올라가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본 시민들의 반응도 내 맘과 같은 듯 했다. “진작 이랬어야지…”

2015-04-10

일장춘몽(一場春夢)

▲ 김진호 편집국장지난 주말 부산으로 볼 일 보러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옆에는 노오란 개나리꽃과 분홍빛 복숭아꽃, 희디 흰 배꽃이 화사한 자태로 온 산과 들녘을 수놓고 있었다. 해운대에 도착하니 호텔앞에 문지기처럼 지키고 선 동백나무에선 선혈처럼 붉은 빛의 동백꽃이 탐스런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양산 통도사에서 마주친 홍매화는 속눈썹 단 처녀처럼 다소곳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아파트 단지 모퉁이에서는 목련꽃이 우유빛 속살을 자랑하다 어느덧 꽃잎을 하나둘 내려놓고 있었다. 꽃향기 가득한 봄날, 금수강산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벚꽃이다. 눈처럼 흰 벚꽃이 흩날리며 춤추는 봄이 오면 예외없이 축제가 펼쳐진다. 대구·경북에서는 동촌유원지와 경주도심 및 보문단지 일대의 벚꽃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벚꽃이 사람의 눈길을 유달리 끄는 것은 절정미(絶頂美) 때문일게다. 짧은 기간 더할 나위없이 화려하게 꽃 피운 뒤 미련없이 한꺼번에 꽃이 지는 게 벚꽃이다. 그래서 이 꽃은 절정에서 나락까지를 한 자리에서 펼쳐 보이는 처연함이 진정한 매력이다.짧은 기간 불타오르듯 꽃 피우는 벚꽃을 보며 봄철 노곤한 중년의 삶을 고민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이 아니라 벚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꽃피워 불타는 듯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백일홍처럼 오랜 시간 꽃 피워 사랑받을 수 있다면 더 좋으리란 욕심은 왜 없을까.사람이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에는 인연맺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집착이 존재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이래저래 괴로워하면서도 애착이 있는 이 세상을 떠나기 싫은 게 보통 사람들의 속내다. 그래서 나이 든 어르신들은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살면 좋겠다, 손주볼 때까지 살면 좋겠다, 손주가 대학갈 때까지 살면 좋겠다, 손주가 장가갈 때까지 살면 좋겠다 하면서 이별을 한없이 뒤로 미루곤 한다.반야심경에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불교철학의 진수가 담겨있다. 생기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생하고 멸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란 뜻이다. 이 말을 설명할 때 흔히 얼음구슬의 비유를 든다. 그릇에 얼음구슬을 담아놓았는 데, 네다섯살난 어린아이가 바깥에 나가서 한두시간 놀다가 들어오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지고, 물만 담겨 있다. 아이는 그걸 보고 어떻게 말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이 때 엄마는 얼음구슬이 녹아서 물이 된 과정을 아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생긴 것도 아니며, 다만 얼음이 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어린아이처럼 생멸의 관점에서 삶과 죽음을 보기 때문에 살았다고 기뻐하고, 죽었다고 슬퍼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 전체를 보면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일 뿐이다. `그게 무엇이든`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변화하는 것일 뿐이다.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런 변화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편하고 좋은 데,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워진다는 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필멸(必滅)은 인간의 숙명인 데,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다.흔히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한다. 인생이 한바탕 꿈을 꾸고 나면 흔적도 없는 봄밤의 꿈과 같다는 뜻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고사성어지만 오늘 이 순간 봄날 벚꽃의 향연속에 흔들리는 내 삶을 두드리는 말이다.

2015-04-03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 김진호 편집국장싱가포르의 국부(國父)라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와 향토기업인 대아그룹 황대봉 명예회장의 타계소식을 접하며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상념에 빠졌다. 강력한 리더쉽과 효율적인 경제정책으로 신생독립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 최고부국으로 만든 리콴유 전 총리 서거소식은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큰 아쉬움이었으리라. 또한 포항지역 버스운수업체인 (주)포항버스를 창립해 큰 부를 쌓아 대아고속해운과 대아상호저축은행 등 포항지역 대표 향토기업인 대아그룹을 세운 황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 역시 지역민들에게 삶의 모습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이 사실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자신은 영원히 살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 비로소 `우리 삶이 영원한게 아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현실로 받아들이곤 한다.내가 죽음이란 것을 처음 경험한 건 초등학교때 였다. 어느날 인근에서 이쁘기로 소문난 동네누나와 저녁늦게까지 웃고 떠들다 집에 돌아갔는 데, 다음 날 아침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었다는 게 아닌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그 누나집을 찾아갔더니 경찰이 사고경위를 조사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마당 한가운데 시신이 놓여있었다. 항상 불그스레하게 달아올라 복숭아같이 탐스럽던 누나의 뺨이 서리내린 듯 하얗게 바뀌었고, 앵두처럼 붉던 입술도 푸르스름하게 변색된 데다 나긋나긋하던 팔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정말 굉장한 충격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룻밤새 시신이 되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뿐 아니라 죽으면 저런 모습이 되는구나 생각하니 두렵고 무서웠다. 그때 이후 꽤 오랫동안 사고로 죽는 악몽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이대로 죽는구나`할 정도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중학교 때, 친구들과 포항송도 해수욕장에 놀러갔을 때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수영을 그리 잘 하지 못했는 데, 갑자기 큰 파도가 치는 바람에 눈깜짝할 새 바다 깊은 곳으로 밀려들어갔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지만 구조를 요청할 새도 없이 파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쓰디쓴 바닷물을 몇 모금 들이키고 나니 정신마저 몽롱해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살아온 기나긴 날들이 말 그대로 주마등처럼, 일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 와중에 `절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팔다리를 놀린 덕에 얕은 곳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날의 경험 이후 `죽음이 그리 먼곳에 있는 게 아니구나`하는 깨달음은 나를 많이 성숙시켰고, 내 삶에 대한 태도 역시 크게 바뀌었다.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고나면 모든 것이 없어져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게다. 나란 존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그 아쉬움이 지나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니까 종교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세를 얘기한다. 불교에서는 죽으면 윤회설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당이나 지옥에 간다고 한다. 그걸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대로 믿어주자.다만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것은 확실하다. 30년안이냐, 20년안이냐 하는 차이일뿐이다. 한걸음 더 나가면 인생이란 게 오래 살고싶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사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다 죽는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문제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다. 무의식속에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해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죽음의 순간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뜨겁게 살자. 그래야 내일 죽어도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다.

201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