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서는 승률계산을 `묘산(廟算)`으로 표현한다. 묘산은 전쟁개시와 같은 국가중요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경건하게 사당에 들어가서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산가지를 하나씩 놓으면서 타당성을 따진다. 성공 요인이 하나 나오면 산가지를 하나 놓고, 실패요인이 하나 제거되면 산가지를 하나씩 빼는 방식이다. 예컨대 누군가 “우리 임금은 적의 왕보다 훌륭합니다”라는 의견을 제기하면 산가지를 하나 추가하고, 누군가 “하지만 아군은 명령계통이 분명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산가지를 하나 빼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산가지가 많이 쌓이면 승률이 높은 것이다.
손자는 이런 승률계산이 전쟁에 앞서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이길만한 싸움만 하라는 가르침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치는 싸움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승률 100%의 신화도 이처럼 이기는 싸움만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아니다.
승률을 계산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운 게도 도망갈까봐 다리 먼저 떼어내고 먹는`게 싸움이나 전쟁에 임하는 자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수양제가 압도적인 국력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싸워 진 것은 “난 바위니까 계란쯤은 아무렇게나 쳐도 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누워서 떡을 먹다가는 잘못하면 기도가 막혀 죽을 수 있다.
4·29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야당 텃밭`이던 서울 관악을을 27년 만에 탈환한 것을 포함해 총 4개 선거구 중 수도권 3석을 싹쓸이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 중반 `성완종 파문`이라는 호재를 만났음에도 심장부인 광주 서을까지 4곳 모두를 내어주며 `완패`했다.
이번 선거에서 `성완종 리스트`라는 호재를 만나고도 패한 새정치연합의 결정적인 실착은 뭘까. 야당의 패인은 선거결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한 나머지 큰 고민없이 매번 재보선 때마다 꺼내 든 `정권심판론`을 내세웠다는 점일 것이다. 유권자들이 선거때마다 나오는 정권심판론에 식상해하는 데도 이를 간과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민생·경제를 우선시하는 `지역일꾼론`을 내세운 새누리당이 더 많은 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은 재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경제살리기와 각종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낼 기세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활성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확인했다고 자평하고, 서민경제 살리기와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한 공공분야 4대 개혁 작업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선거 다음날인 30일 이른 아침부터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연달아 소집하고 경제활성화와 개혁 완수를 위한 국회 차원의 지원을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잇단 재보선 승리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오히려 여권에 대한 `견제론`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 지도부 인사들은 `겸손 모드`일색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치르며 현장을 돌아보니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과 혐오감이 매우 높다”며 “정치권 모두가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세 곳을 이겼다고 새누리당의 진정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짚어볼 필요 있다”고 몸을 낮췄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당장 내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고, 이 짧은 기간 민심은 수십 번 바뀔 수 있다”며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서 결코 착각하지도, 자만하지도 않겠다, 오히려 민심 앞에 더 낮은 자세로 국정의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재보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새누리당을 예뻐해서 승리를 안겨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니 다행스럽다. 여당이나 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고 싶다면 이길 수 있는 요인의`산가지`를 많이 쌓아야 한다. 승부는 언제나 싸우기 전에 결정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