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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등록일 2015-05-29 02:01 게재일 2015-05-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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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5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공무원 연금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여야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회기 마지막날인 28일 국회에서 협상을 재개했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 온 국민이 원하는 법안이라해도 갖은 몸살을 치러야 합의되는 상황이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정치나 경영에서의 협상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판에서는 유독 협상이나 대화에 인색하고 힘겨루기나 치킨게임이 득세한다. 이런 정치판을 십 수년째 가까이서 지켜봐 온 필자는 설득력이 빈곤한 여야 정치인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대한 연구는 없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알고보니 해답은 몇 년전 서점가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던 `설득의 심리학`에 나와있었다.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설득의 심리학`은 먼저 상호성의 법칙을 강조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생일을 기억하여 생일선물을 보내면 당신도 그의 생일날 선물을 보내야 하며,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면 언젠가는 당신도 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법칙을 이용해 상대방을 일종의 빚진 상태로 만들어놓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상대방에게서 “그렇게 하지요”라는 승낙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

상호성 법칙의 힘은 정치의 장에서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주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자들은 자신을 당선시키기 위해 수고한 자신의 참모들이나 후원자들을 논공행상해 적절하게 보상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며, 당연시된다. 또 이 법칙은 한 쪽이 양보하면 다른 쪽도 양보해야 한다는 `상호양보`라는 현상을 부른다. 이런 아이디어끝에 고안된 것이 바로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설득전략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당신의 요청에 응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당신은 나에게 매우 무리한 부탁을 먼저 한다. 물론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할 것이고, 그때 당신은 처음보다 작은, 그렇지만 원래 당신이 원했던 부탁을 한다. 만일 당신이 아주 그렇듯하게 크게 양보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수만 있다면 나는 상호성법칙의 함정에 빠져서 두번째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전략이 매우 효과적인 이유가 있다. 상호성의 법칙에다 `인식의 대조효과`가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물체를 들어 본 후 무거운 물체를 들면 처음부터 무거운 물체를 들어본 경우보다 더 무겁게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놀라운 일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들었던 `워터게이트`도 바로 이 전략의 산물이란다. 워터게이트는 공화당의 재선이 유망한 시점에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했다가 발각나는 바람에 대통령이 사임하고, 선거에도 지는 최악의 결과를 부른 세기의 사건이다. 그 사건은 대통령재선위원회 정보 수집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리디가 최초에 1백만달러의 예산과 고급창녀, 유괴, 습격, 태업, 도청 등 온갖 종류의 불법적 책략을 제시한 것이 발단이었다.

첫 제안 1주일 후 그는 여러 프로그램중 상당부분을 줄여 50만달러를 청구했고, 마지막에는 다시 25만달러 규모로 축소돼 제시했다. 만약 리디가 최초 제안에서“민주당 사무실을 침입해 도청하자”고 했으면 그 제안은 즉시 묵살됐을 것이다. 리디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맨 처음 제안의 반, 혹은 사분의 일만이라도 얻어낼 작정으로 무리한 요구를 한 뒤에 최종적으로 25만달러의 도청작전을 쓰자고 설득한 것이다.

워터게이트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이처럼 말썽 많은 제안을 관철해 낸 `일보후퇴 이보전진`전략의 효용성은 높이 살 수 밖에 없다. 우리 정치도 이런 설득전략을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정치는 사회를 단 한 걸음도 나아가게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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