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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메기와 미꾸라지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자신의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농사를 지을 때 이야기다. 이 회장은 일찍부터 이재술(理財術)이 뛰어나 논에서 돈 버는 방법을 연구해 냈다. 당시의 논 1마지기(200평)에서는 농사가 잘돼야 쌀 2가마니가 생산되던 시절이었다. 이 회장은 시험삼아 논 1마지기에는 벼를 심고, 다른 한 마지기에는 ‘미꾸라지’새끼 1천마리를 사다가 길렀다. 가을에 수확 때까지 양쪽 모두 똑같은 비용을 투입해 각각 재배하고 길렀는데, 벼를 심은 논에서는 예상대로 쌀 2가마니가 생산됐으나 미꾸라지를 기른 논에서는 커다란 미꾸라지가 약 2천마리로 늘었다. 그것을 전부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았더니 쌀 4가마니 값을 받았다. 그 이듬해 또 다른 방식으로 시험양식을 했다. 한 쪽 논 200평에는 역시 어린 미꾸라지 1천마리를, 다른 논 200평에는 미꾸라지 1천마리와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사는 천적인 ‘메기’20마리를 같이 넣고 길렀다. 그해 가을에 양쪽 모두 수확을 하고 보니, 처음 논에는 2천마리의 미꾸라지가 생산됐고, 메기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어 길렀던 논에서는 메기들이 열심히 미꾸라지를 잡아먹었는데도, 4천마리로 늘어났고 메기도 200마리로 늘어났다. 이 회장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 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생명계의 자연현상은 어려움과 고통과 위험이 닥쳐오면 긴장해 더 활발히 움직이고, 생존본능이 강화돼 더 열심히 번식하고 훨씬 더 강인해진다는 사실이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파면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정권을 내 준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여당에게 대참패를 한 후에도 아직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며 자유한국당이 이 회장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고 생각해 떠올린 얘기다. 지방선거에서 ‘메기’인 더불어민주당이 ‘미꾸라지’인 자유한국당 후보들을 수없이 잡아먹었는 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아직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정치권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가 향후 10년 이상 정권을 재창출해낼 것이란 때이른 전망이 무성하다.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분발이 필요한 데,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설왕설래만 계속하니 안쓰럽기 짝이 없다.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또 다른 물고기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강에 돈(豚)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살았다. 이 물고기가 하루는 다리 아래에서 헤엄을 치다가 교각을 들이 받았다. 그러자 돈이라는 고기는 그 교각이 자기를 들이 받았다고 화를 냈다. 이 고기는 아가미를 펴고, 지느러미를 세우고, 배를 두드리며 물 위로 떠올라 교각을 원망하며 오래도록 거기서 떠나지 않았다. 독수리가 날아가다 그 물고기를 보고는 잡아먹어 버렸다. 제 멋대로 헤엄치다가 교각을 들이받아 놓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멋대로 화를 내다 끝내 독수리에게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물고기를 두고,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는다고 과녁을 탓하고, 산이 멋지게 그려지지 않는다고 산을 탓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를 탓할 것이냐고 묻는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나의 자세가 바른가를 보고, 산이 그려지지 않으면 나의 마음을 보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있는가를 살펴봄이 옳지 않은가.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지 못하면 발전은 없다.자유한국당이 돈이란 이름의 오만한 물고기 꼴이 되지 않길 바란다. 서로를 키우는 메기와 미꾸라지의 지혜는 차용하면 좋겠다. 대구·경북을 텃밭으로 했던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인재를 키우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아 진보당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가 펼쳐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2018-07-06

다시 보는 ‘보수의 유언’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지난 2009년 일본에서 첫 정당 간 정권교체가 있었다. 중의원 480석 중 야당인 진보 민주당이 무려 308석을 휩쓸고, 여당인 보수 자민당은 119석에 그쳤다. 일본 역사상 이런 보수와 진보의 대역전은 없었다. 보수 자민당은 처절하게 무너졌다. 사상 처음으로 만년야당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고, 만년여당 자민당은 야당이 됐다. 그때 위기에 봉착한 자민당에게, 자민당 출신 전직 총리이자 이미 은퇴한 노정치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는 이렇게 조언했다. “보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 그렇게 힘을 기르고 원칙을 지키며 개혁해 나가면 반드시 국민이 알아주고, 기회가 다시 온다.”나카소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전후 정치를 주름잡은 인물로 28살에 정계에 입문해 무려 20선을 연달아 지낸 일본 보수의 아이콘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가 이때 내놓은 ‘보수의 유언’은 ‘보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충언이었다.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대참패를 하고, 혁신비대위를 구성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보수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 사이에 ‘보수의 유언’이 새롭게 회자되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10년 전 일본의 상황은 지금의 우리나라 보수가 처한 현실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떻든, 일본의 자민당은 4년 후 2012년 선거에서 깜짝 놀랄 대역전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역사상 첫 정권교체의 주인공이었던 민주당은 4년 전 획득의석의 4분의 1도 안되는 57석을 얻는, 대참패를 했다. 반대로 자민당은 294석을 얻어 절대과반수를 확보했다. 보수 자민당이 4년만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보수 자민당이 나카소네가 쓴 ‘보수의 유언’을 얼마나 잘 따랐는 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이 보수의 갈 길을 밝히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나카소네는 책에서, “선거에서 지는 것은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필자도 동의한다. 다만 그런 낙관적 희망을 현실로 바꾸려면 지혜로운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에 방점을 찍고 싶을 뿐이다. 이 책에서 위기에 빠진 보수의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는 ‘행동하는 정치가 비전이 있다’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당의 힘을 축적하고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당과 당원들이 그 내용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국회 등에서 여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야 한다. 처음에는 너무 나가지 말고 토론과 논쟁을 해가면서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해 가면 결국에는 자민당이 국회에서 변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폭넓게 전달할 수 있다. 당장은 매서운 북풍이 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상대방이 허점을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격적인 정권 탈환 작전에 들어가면 된다.”보수당의 정체성을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는 의미심장했다. “보수당은 역사와 문화, 전통을 계승해가는 입장에 있다. 창당 정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이 자신감 없는 행동은 용납할 수가 없다.”새로운 출발을 위해 혁신비대위를 준비하는 보수 한국당에 들려줄 만한 조언은 ‘초심으로 돌아가라’편에 빼곡했다. “야당시대는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여당 시대에 몸에 밴 호사를 떨쳐버리고 신체를 연마하는 시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정치인이 됐는가를 생각하고, 국가 비전을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이처럼 “꽃이 피어나지 않는 겨울 땅에 생명의 씨를 뿌리고 토대를 단단하게 구축하라”고 설파한 나카소네의 조언이 아무리 좋아도 보수 한국당이 듣고, 따라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다시보는 ‘보수의 유언’이 보수의 행보에 보태지길 바랄 뿐이다.

2018-06-29

험난한 보수의 보수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6·13지방선거를 마친 자유한국당에 ‘보수를 보수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쇄도해 있다. 유례없는 처참한 선거 성적표를 받아든 자유한국당이 혁신안을 놓고 논의가 한창이지만 보수를 보수하기엔 난관이 첩첩이다. 우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의 혁신안을 놓고 당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바른미래당도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워크숍을 열었지만 중도개혁과 개혁보수의 정체성이 충돌하면서 당의 노선 정립에 대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TK) 단 2곳에서만 당선됐다. 동시에 치러진 12곳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는 경북 김천 지역구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바른미래당은 광역자치단체장·재보궐 선거에서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면서 ‘중도보수 대안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 선거에서 보수가 궤멸한 이유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몇 가지로 나뉜다. 무엇보다 보수의 패배는 낡은 기득권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잘못했던 것들을 고쳐서 환골탈태하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다져야 하고, 책임있는 중진의원들은 김무성 의원처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반성의 의지를 행동으로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보수가 궤멸한 또 다른 이유로는 보수의 가치 내지 방향성 상실도 한몫했다. 진보를 대변하는 정부·여당이 평화 이슈를 앞세워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대안을 제시한 반면 보수를 지향하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경제 효율성만을 강조한 채 무엇을 지향하는 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평화 이슈에서도 “위장평화쇼”란 비판만 일삼았다.보수를 재건하는 방법론으로는 사람과 제도를 동시에 완전히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낡은 정치에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해 키워야 한다. 인적 청산과 함께 정책 노선, 정강, 당헌, 당규의 대폭 수정도 필요하다. 리모델링이 아닌 완전한 해체를 통해 재창당 수준으로 가야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보수당의 현실을 보면서 희망없는 마을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 청년이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났다. 평소 상상하던 것과 사뭇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며 기존의 잘못된 선입관을 돌아보고 갱생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청년은 도시나 넓은 평야에서는 수확할 수 없는 특수 작물을 재배하면서 그들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산골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다. 그런 멋진 모습들을 보며 여기저기 자유롭게 여행을 하던 청년은 어떤 산골짜기에서 이전 마을들보다 제법 큰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이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고장 난 트랙터와 농기구들이 길에 버려져 있고, 떨어진 문짝이나 무너진 담벼락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활기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는 무기력한 모습들만 보였다. 청년은 마을 사람에게 이 마을 분위기가 왜 이런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 골짜기 위쪽에 발전소하고 커다란 댐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머잖아 여기가 몽땅 수몰돼서 마을이 사라질 거야. 어차피 없어질 집하고 밭을 누가 돌보겠어? 우리 마을에는 내년이 없으니까”이 이야기는 미래의 희망이 없으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잃게 된다는 진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이란 자신의 저서에서 보수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주의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특정 이념이 아닌 사람들이 갖는 여러 태도 또는 성향 중의 하나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 자신이 처한 환경을 천천히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러셀 커크가 말하는 보수주의가 진짜 보수라면 선거에서 무너진 보수당은 어쩌면 ‘가짜 보수’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보수의 희망은 “보수를 보수해야 한다”는 목소리 자체에 있다.

2018-06-22

홍준표의 휴브리스(Hubris)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파나마운하 이야기다. 자유한국당의 대참패로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여서 온통 선거 이야기인데, 왠 파나마운하 이야기냐고 의아해할 지 모르지만 잘 들어보시라. 민심의 물결이 바뀌고, 미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안보지도가 바뀌는 데도 보수층 지지만을 겨냥해 안주해온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는 수에즈 운하는 세계의 항로를 바꾼 대역사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총감독을 맡아 완공한 것은 토목기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였다. 그는 첫 삽을 뜬 후 불굴의 의지로 흙을 파내며 10년간 공사에 매달렸고, 마침내 운하가 개통되는 날 수에즈운하에 오페라 ‘아이다’를 올렸다. 그로부터 12년후 레셉스는 파나마에 입성했다. 수에즈 운하 공사에 자금을 대주고 이용료를 받는 것으로 대박을 터트린 금융업자들이 파나마에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기로 했고, 그 책임자로 ‘운하계의 대스타’ 레셉스를 지목했다. 레셉스는 또 한 번 자신의 명성을 높일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1881년에 착수한 공사는 8년동안 고전한 끝에 중단됐고, 레셉스의 회사는 파산했다. 수에즈 운하가 세워진 곳은 사막의 평원(해발 15m)이었던 것에 비해 파나마운하 공사현장은 열대의 밀림(해발 150m)이었기 때문이다. 사막과 열대의 차이, 해발고도 15m와 150m의 차이를 무시했기에 레셉스의 실패는 당연했다. 그는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을까. 바로 ‘휴브리스(Hubris)’때문이었다.‘극단적 오만, 자기 과신’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인 ‘휴브리스’는 역사학자 토인비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의 연구’에서 ‘성공에 도취되어 자신의 방법과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사람들을 경고하며 사용한 단어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는데 성공했던 레셉스는 ‘휴브리스’에 빠져 있었다. 한 번 크게 성공한 이들은 종종 자신들이 성공한 방법이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라고 착각하는 ‘휴브리스’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레셉스의 ‘휴브리스’가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다. 8년 동안 무려 2만 2천명의 인부가 희생됐고, 3억 5천200만 달러의 건설 경비가 사라졌다. 레셉스가 포기한 수에즈운하 공사는 25년이 지난, 1914년 미국에 의해 거대한 갑문을 이용한 저수식 운하로 공법을 변경해 완공됐다. 사실 갑문식 공법은 레셉스가 파나마 공사를 시작할 당시에도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공법이었다. 레셉스 한 사람의 ‘휴브리스’로 몇 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천문학적인 돈을 허무하게 날려 버렸으며,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했던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6·13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검사출신 정치인으로서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하면서 이름을 날렸고, 이 사건이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작품의 소재가 돼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15·16·17·18대 국회의원을 잇따라 지내며 당 대표까지 올랐고, 이후 경남도지사로 변신했다가 지난 해 자유한국당 19대 대선후보로 나섰으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 고집스런 검사를 거쳐 4선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을 지낸 그의 남다른 경력은 그에게 강한 휴브리스를 부여했고, 여기서 증폭된 거침없는 입담이 그의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하지만 툭 하면 터져나오는 막말논란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방선거에 앞서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으로 인한 북풍이 휘몰아치자 전쟁위협이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로 부푼 국민들에게 ‘위장평화쇼’라고 일축하는 모습을 보여 민심을 잃은 것도 그의 업보일지 모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홍준표의 휴브리스는 얼마나 많은 보수지지층의 마음을 압살하는 참사를 빚었을까 짐작키도 어렵다.

2018-06-15

TK의 선택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6·13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중반판세 분석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조사상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여론조사를 신뢰하며 ‘믿을만 하다’는 반응인 반면 자유한국당은 여론조사에 ‘샤이 보수’ 등 변수가 제대로 반영이 안돼 ‘이대로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중간판세 분석도 확연히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초단체장 100곳 이상 석권, 특히 서울지역 25개 구청장 싹쓸이를 예고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여론조사와 바닥민심이 다르다면서 영남을 중심으로 보수층이 결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 직전에 내놓은 전망은 광역단체장 9곳 획득이 목표였으나 선거운동 중반을 지난 현재 17곳의 광역단체장 중 최소 9곳 이상으로 승리 예상지역을 확대한 것이다. 또한 서울지역 25개 기초단체장의 싹쓸이를 예상했다. 더욱이 100곳 이상의 기초단체장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226곳 기초단체장 중 절반을 획득하겠다는 이야기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바닥 민심과 여론조사가 다르다고 강조한다. 홍준표 당 대표는 아예 여론조사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며 막판 ‘샤이보수’층의 가세로 한국당이 상당 지역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모집단 샘플을 지난 대선 실제 투표 기준으로 민주당 지지자는 우리당 지지자의 두 배가 넘게 뽑아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면서 “특정정당 편들기로 혹세무민하는 이런 여론조사기관은 선거가 끝나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최소한 민주당은 10% 정도 디스카운트 하고 우리는 10% 정도 플러스하면 그나마 제대로 된 국민 여론일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어쨌든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텃밭’으로 불려왔던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주당과 무소속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한국당 후보를 앞서거나 막상막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상전벽해같은 변화다. 그 결과 경북지역 시장 군수 선거를 대상으로 한 경북매일 여론조사에서도 최대 7~8명의 무소속 또는 민주당 시장 군수가 속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고, 다른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는 대구나 경북에서 민주당 시장 군수가 8명+α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이번 지방선거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자유한국당 대표비서실장 겸 대구 달서병 당협위원장인 강효상 의원 역시 홍 대표의 주장에 가세했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요지다. 강 의원은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관련 주요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지지율과 실제 득표율을 비교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실제로 대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조사기관들은 홍 후보의 지지율을 13.7~20.1%로 발표했으나, 홍 후보는 24%를 득표했다. 이는 실제 득표율보다 최소 3.9%포인트, 최대 10.3%포인트 낮은 수치로, 오차범위를 훌쩍 넘는 여론조사였다. 대구·경북에서는 그 편차가 더욱 심했다. 홍 후보는 대구·경북에서 30% 안팎을 득표할 것이라던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47.1%의 득표율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갤럽 등 다수의 여론조사기관은 20% 중반대의 지지율을 발표, 20%포인트 이상의 오차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경북에서 유독 오차가 큰 이유는 애초에 표본 수가 적고, 지역의 특성이나 샤이보수층 등 수치화할 수 없는 변수를 간과했기 때문이란 게 강 의원의 분석이었다. 홍 대표가 선거기간 내내 일관되게 주장해온 ‘왜곡된 여론조사’주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 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민심의 추이를 과학적·객관적으로 조사해 통계처리한 여론조사가 정말 왜곡됐는지 여부는 6·13지방선거 당일 모두 드러날 것이다. 과연 TK의 선택이 어떤 것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2018-06-08

소크라테스의 선택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6·13지방선거 운동기간이 시작되면서 선거전이 뜨겁다. 선거는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것이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한다. 그게 대의 민주주의가 받아들인 기본 원리이다.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각자 자유이며, 각자 생각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선택한 결과는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이처럼 정치에 있어서 선택은 선거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선거가 아니더라도 인생에 있어 선택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인생이란 무엇입니까?”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아무 대답 없이 제자들을 데리고 사과나무밭으로 갔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각자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 하나씩을 골라 따오게. 단 선택은 한 번뿐이며, 다시 사과나무밭으로 돌아가 바꿀 수도 없네.” 제자들은 사과나무밭을 걸어가면서 유심히 관찰한 끝에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 따 가지고 왔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선택한 사과가 제일 좋은 사과가 맞는가?” 제자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소크라테스가 다시 물었다.“왜,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한 제자가 소크라테스에게 말했다. “선생님! 다시 한번 사과를 고르게 해주세요. 사과밭에 막 들어섰을 때 정말 크고 좋은 걸 보았거든요. 그런데 더 크고 좋은 걸 찾으려고 따지 않았어요. 끝까지 와서야 처음 본 사과가 크고 좋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가 급히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저는 정반대였어요. 사과밭에 막 들어섰을 때 제일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골라서 나왔는데 나중에 오다 보니까 더 좋은 게 있더라고요. 선생님,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세요.”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며, 인생은 언제나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다. 모든 선택으로 인한 책임은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번뿐인 선택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있더라도 자신의 선택 결과를 감당하는 일이다.”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고, 선택의 결과들이 쌓여 우리 현재의 모습과 삶을 이룬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나라의 먹거리 장만을 위한 경제정책도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소득을 끌어올려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를 선순환한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밀고있다. 문제는 ‘소득격차가 2003년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 기존에 보도됐던 전국 기준 가계수지는 2003년부터 통계가 작성됐지만, 비교 기준을 넓히기 위해 1990년 1분기부터 조사된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소득 10분위별 가계수지를 들여다보면 하위 10%의 근로소득은 20만2천원, 상위 10%의 근로소득은 1천13만7천800원이었다. 대한민국 도시에 사는 10개 가족 중 가장 잘 사는 1개 가족과 가장 못 사는 1개 가족이 각각 일하는 대가로 받은 금액에서 50배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1990년과 비교해보면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의 민낯을 더욱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1990년 1분기 하위 10% 가구주의 연령은 평균 38.71세, 근로소득은 12만113원이었다. 상위 10%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43.6세, 근로소득은 122만2천100원이었다. 1990년에는 가구주 나이가 적을수록 근로소득이 적었고, 나이가 많을수록 근로소득이 늘어났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는 10배 정도였다. 정부가 소득격차를 완화하는 대책마련에 부심하는 이유를 알만하다.6월13일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지역 살림을 맡을 사람으로 뽑아야 할까.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단 한번뿐인 ‘소크라테스의 선택’을 고민해 보자.

2018-06-01

한반도 평화체제를 응원한다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나의 희망은 항상 실현되지는 않지만 나는 희망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의 말이다. 온 겨레가 바란다. 핵 전쟁 위협 없는 한반도, 이산가족 자유왕래, 남북 경제통합, 그리고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통일 구상이 실현되는 그날을. “이루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어렵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나서며 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23일)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그의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기자로서 함께 했던 필자로서도 그의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모습, 그리고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던 그의 이마주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가 바라던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이나 각오를 되새기는 추도식에 많은 사람들이 찾은 것은 갑작스런 남북화해무드가 그가 뿌린 씨앗에서 비롯된 것이란 때늦은 깨달음도 한 몫 했을 법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 봉하마을을 찾아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서 다시 찾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은 추도식 당일 태평양을 건너 미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다.미북정상회담을 앞둔 미국과 북한의 힘겨루기는 전문가들의 엇갈린 전망을 불러오고 있다. 필자는 낙관론에 한 표다. 최근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체제보장과 평화협정 체결, 미국의 경제 지원을 원했다고 밝힌 점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미북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좋다”거나 “다음 주 알게 될 것”이라고 연막을 치는 것을 보면 미국은 현재 ‘헐리우드 액션’을 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미 북미수교를 확신한다는 발언까지 쏟아내고 있는 데, 바로 옆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연기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북한이 바라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기싸움의 일환이요, 협상전략의 하나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또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내 정치적 입지도 녹록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간 평가격인 11월 선거를 겨냥해 뭔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만한 업적을 이뤄야 할 처지다. ‘미국 국익우선주의’를 모토로 정권을 잡은 강경보수파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느닷없는 강짜외교에 상을 뒤엎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그러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어떡하든 미북정상회담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거두고 싶은 공명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이를 간파했기에 미북정상회담의 성공을 확신하며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그리 말한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의 철학자인 G. 무어는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에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양식을 정하는 길목이 된다. 좋은 선택인 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의 삶에서 자신만이 매길 수 있는 독단적 권한일 수 있다. 다만 정치적 판단에 관한 한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사실상 선택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그대로 머무르기로 한 것도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온 나라가 한반도 해빙무드로 들뜬 가운데 자유한국당 분위기는 싸늘하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오늘도 줄기차게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쇼에 불과하고, 미북정상회담도 제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도 폭파쇼에 불과하고, 머지않아 북한의 마각이 드러날 것이란 악담에 열을 올린다. 온 국민이 바라는 해빙무드가 한국당에는 불편하기만 해보인다. 정략도 좋고 전술도 좋지만 국민의 여망에 고춧가루 뿌리는 행태는 이제 그만두면 좋으련만. 선택은 자유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응원하는 데 한 표 던진다.

2018-05-25

범죄와 정의의 차이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사람이 호랑이를 죽이는 걸 스포츠라 하고 호랑이가 사람을 죽이는 걸 재앙이라 한다. 범죄와 정의의 차이도 이와 비슷하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평론가인 버나드 쇼가 한 말이다. 요즘 드루킹 사건을 보노라면 바로 이같은 범죄와 정의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눈높이와 다른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드루킹 사건은 세계에서 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온라인 여론조작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여야 합의로 세운 드루킹 특검이 얼마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 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어쨌든 드루킹 특검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현직 의원이 ‘경공모’(경제공진화 모임)등의 사조직에 의뢰해 하루에 수 백 건 이상의 기사에 호의적인 댓글을 다는 작업을 조직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현 정부는 여론조작이란 범죄행위로 상당한 도덕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작은 치명적인 범죄다. 국민의 뜻이 왜곡되고, 왜곡된 뜻에 따라 권력의 향방이 정해졌다면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드루킹 사건이 처음 시작될 때는 순수한 ‘자원 봉사자의 지원행위’에 불과했을 수 있다. 헌정 사상 이런 류의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었고, 범죄로 구속되거나 처벌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론조작사건의 장본인인 드루킹 자신도 ‘문제는 있지만 뭐 그리 큰 죄가 될까’하는 마음을 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같은 인식의 차이는 얼마 전 방영된 ‘썰전’에 나온 유시민 전 장관과 나경원 의원간 토론에서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유 전 장관은 그동안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보진영을 대변해 왔는데, 이날은 드루킹 사건을 허구라는 주장으로 매우 편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자리에서 나경원 의원은 “드루킹 사건은 국정원 댓글사건보다도 더 무서운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만약에 민주당이나 김경수 의원이 조직적으로 이 일에 연관이 돼 있었고, 지난 대선 당시 범행방법이 매크로를 사용한 불법행위였다면 그건 명백한 여론조작행위”라고 강조했다.이에 맞서 유 전 장관은 “이런 게 바로 ‘3라면’ 논평”이라고 폄하하면서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면, 드루킹에게 대가를 지급한 것이라면, 매크로를 이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인데, 세 종류의 라면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로 주장이 다른 만큼 그래서 특검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나 의원의 말에 유 전 장관은 시니컬하게 “한국당은 그러면 좋겠죠”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드루킹 사건은 이미 보도된 내용만으로도 국민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경수 의원이 ‘홍보해주세요’라고 하자 드루킹이 ‘처리하겠습니다’ 하는 등 시그널 메시지 30여건 대화를 추가확인했다는 언론보도만 봐도 김 의원의 드루킹과의 연관성은 부인하기 어려워보인다. 더구나 드루킹이 주도했던 ‘경공모’는 경선장마다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고, 민주당의 온라인 대응활동을 자신들이 대신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바 있고, 회원들이 24시간 교대로 하루 700건 이상의 기사에 댓글을 다는 활동을 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드루킹에게 대가를 지급했느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드루킹 운영비가 연 11억원에 달해 경찰이 자금출처 추적중이라니 조금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을 듯 하다. 매크로 조작이 이뤄졌는 지 여부도 경찰의 확인작업이 진행중이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게임의 사냥과 아이템 확보, 아이돌 콘서트 공연이나 야구장 티켓 구매를 위해 암표시장에서 주로 쓰였던 매크로가 댓글 추천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누구에겐가는 정의로운 행동이었을 드루킹의 활동이 어느 순간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범죄로 바뀐 사태를 보며 버나드 쇼의 날카로운 통찰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된다.

2018-05-18

장님 코끼리 만지기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맹인모상(盲人摸象)이란 말이 있다. 우리 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이 속담은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우화에서 비롯됐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장님 여섯 명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도록 했다. 먼저 코끼리의 이빨(상아)을 만진 장님이 말했다. “폐하 코끼리는 무같이 생긴 동물입니다.”그러자 코끼리의 귀를 만졌던 장님이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같이 생겼습니다.” 옆에서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이 큰소리로 말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구공이같이 생긴 동물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코끼리 등을 만진 이는 평상같이 생겼다고 우기고, 배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장독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며, 꼬리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외쳤다.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진리를 아는 것도 이와 같다.” 이 우화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고집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은 10일, 정부는 ‘문재인 정부 1년,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책자를 펴냈다. 첫 단원은 ‘변화’의 장이었다. 1년 동안 국민과 함께 한 문재인 정부 1년간 변화의 큰 줄기를 간추렸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어 번영의 시대,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는 내용이 첫 장을 장식했다. 이어 ‘나라다운 나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포용적 복지’, 더불어 잘사는 ‘사람중심 경제’로 패러다임 전환 등의 선언이 있었다.두번째 단원에서는 100대 국정과제중 국민의 삶과 직결된 35개 정책의 성과를 5대 국정목표별로 소개했다. 첫번째 국정목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였다.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주변 4국과 협력외교 및 외교지평 확대, 베를린 구상·우리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환경구축,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적 개최, 강력한 국방개혁 추진 등이 주요 실적으로 꼽혔다. 뒤를 이어 ‘국민이 주인인 정부’에서는, 적폐청산·잘못된 제도와 관행혁신, 국민참여형 정책결정모델 구축, 국가를 위한 희생에 합당한 예우, 피해자 치유하는 과거사 진상규명 등이 포함됐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치매국가책임제 본격시행, 사각지대 없는 주거복지망 마련, 노동시간 단축 등 휴식과 문화가 있는 삶 등이 강조됐다. ‘더불어잘사는 경제’에서는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 최저임금 16.4%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실천됐고,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에서는 강력한 지방분권, 지방재정 자립기반 확충 등의 순이었다. 세번째 단원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1년간 국민의 기대와 눈높에 미치지 못한 15개 숙제를 소개했다. 야당이 비판하는 민생, 청년일자리 문제, 사드 문제, 안전·환경문제 등이 망라됐다. 정부의 자부심 가득한 자평과는 달리 야당의 비판은 신랄했다.지난 9일 자유한국당 경제파탄대책특위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최악의 고용성적표, 말뿐인 일자리 정책’토론회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제로’정책 등은 청년 일자리 급감, 경영비용 상승 같은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도 ‘문재인 정부, 아마추어 국정운영 1년’평가 토론회에서 외교·안보 분야 성과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경제·정치 분야에 대해서는 ‘낙제젼을 줬다. 한 교수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중심 경제정책은 반시장적이고 서로 충돌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의 평가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맹인모상의 우화가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18-05-11

문재인 정부의 주한미군정책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지고, 앞으로 한반도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이 급진전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과연 어떤 것일까. 가장 먼저 해답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다. 문 특보는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포린어페어즈에 기고문을 통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와 관련해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야당 등 정치권에서 반발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이례적으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야권의 문 특보 경질 요구는 거부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문 특보와 문 대통령이 핑퐁게임을 통해 주한미군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를 가늠해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간 문 특보가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을 대신 언급, 여론을 떠보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 정부 당국자들도 주한미군 정책에 대해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심상치않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맺은 뒤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선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북한과도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얼마전까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두고 “미치광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하다가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는“꽤 똑똑한 녀석”이라며 정상회담을 “영광스럽다”고 표현했다. 트럼프가 종잡을 수 없는 언동을 하는 데는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북핵을 억제하며, 일본은 더욱 끌어안아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읽힌다. 한국에 대해서는 사드 운영비용 전가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미 FTA 재협상 등 여러 현안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둬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트럼프 입장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들고나오면 협상이 결렬될 것이니 조심스러울 것은 분명하다. 현재 북미정상회담 진전상황을 보면 북한이 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미국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하지 않는 것은 선대의 유훈에 해당하기 때문이란 주장도 나와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두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1992년 1월 당시 김일성 주석이 노동당 국제비서 김용순을 미국 뉴욕으로 보내서 미 국무부 차관 아놀드 캔터를 만난 자리에서 “북미 수교만 해 주면 앞으로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통일된 뒤에도 미국은 남쪽에 또는 조선반도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또 첫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 6월 14일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한테 “미군에 대한 우리 생각은 바뀌었다. 냉전 끝나고 난 뒤에도 요동칠 수 있는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미군이 있는 조건 하에서 남과 북이 왕래하고 교류하고 협력해도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즉,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교만 해달라는 얘기는 선대의 유훈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정인 특보의 핑퐁전을 보노라면 왠지 한 사람은 협박하고, 다른 사람은 어르는 역할을 나눠 맡는 ‘굿 캅, 배드 캅(good cop, bad cop)’을 연상케 한다. 한 사람은 협박하고, 한 사람은 어르는 역할을 맡아 사람을 설득하는 이 협상기법이 주한미군 철수란 ‘뜨거운 감자’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묘방으로 활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2018-05-04

여론조사 vs 여론조작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지금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드루킹 사건은 인터넷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이 본질이다. 대선정국으로 민심이 어디로 흐를 지 혼란스런 상황에서 일어난 드루킹 사건은 특정 여론이 대세라고 믿게끔 인터넷 댓글을 적극 활용했다는 의혹이기에 민주주의의 근본가치를 흔드는 중대사건에 해당한다. 그래선지 여당과 청와대도 ‘드루킹 사건’의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을 짐작한 듯 심각한 표정이지만 마땅한 대처방안을 찾지 못한 채 남북정상회담이란 카드에 기대어 정국돌파를 꾀하고 있다. 야당은 천막농성으로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여권을 압박하며 정면대치를 계속하고 있다.드루킹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지고 있다. 여론조사가 여론조작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늘고 있는 것도 ‘드루킹 사건’의 후유증은 아닐까 싶다. 여론조사는 국민여론을 통계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조사해 발표하는 조사기법을 말한다. 여기서 여론조사 결과를 인위적으로 바꾸면 곧바로 여론조작으로 탈바꿈한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인위적으로 바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사례도 적지않다. 특히 정치판에서 공천경쟁을 여론조사에 의존해 실시하면서 많은 여론조사기관들이 여론조작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이 우세한 대구·경북지역에서 공천경쟁 과정에서 여론조작을 통한 공천권 확보는 누구라도 욕심낼 만한 유혹이 될 수 있다.이같은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풍조는 이미 수년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공천에 적극 활용되면서부터 제기돼왔다. 지난 지방선거때도 여론조사를 못믿겠다며 수 많은 후보들이 이의를 제기하며 여론조사 경선을 거부하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바 있다.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자유한국당 경북지역 기초단체장 공천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요즘 경북지역 기초단체장 경선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도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일례로 경북 김천지역에서 자유한국당 공천을 신청한 한 후보는 여론조사 경선에서 자신이 떨어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지지자들과 함께 자유한국당 경북도당 사무실에 진을 치며 항의농성을 벌였다. 그의 주장은 경선을 앞두고 실시한 여러차례의 자체 여론조사에서 줄곧 1등을 차지했던 자신이 떨어진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에서는 “여론조사에 이의가 있으면 여론조사 기관에 찾아가 모든 데이터를 열람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법원에 제소를 하도록 하라”고 권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에게는 여론조작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질 리 없다는 믿음이 있지않았나 싶다.이같은 의심은 드루킹 특검에 대한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똑같이 확장·적용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의원총회에서 전날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갖리얼미터 여론조사가 검찰수사로 충분하다는 여론이 52.4%, 특검 찬성이 38.1%밖에 안돼 특검을 하지 못한다’고 답한데 대해 아예 다른 조사기관의 결과로 정면반박했다. 그는 “지난 20~22일까지 3일 동안 여론조사 공정주식회사에서 리얼미터 여론조사 샘플보다 사이즈가 큰 1천37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특검 찬성이 63.3%, 반대가 30.9%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을 ‘여론조작당’으로 규정하면서 “민주당은 대통령 지지율도 여론조작에 취해서 국정을 일방통행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냐”고 질타했다.여론조사와 여론조작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른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누가 어떻게 주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 여론조사가 여론조작으로 탈바꿈하는 것 역시 순식간이다. 불신의 시대요, 불확실성의 시대에 내걸린 슬픈 자화상이다.

2018-04-27

댓글의 늪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보수정권의 실정 가운데 손꼽히는 것이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 직원이 조직적으로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을 올렸다는 것이 사건의 요체다. 이 사건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일명 ‘드루킹’사건으로 댓글조작의 늪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의혹이 커져만 가는데 청와대는 특검수용에 부정적이다. 해명처럼 무고하면 특검인들 두려울 이유가 있을까 싶은데, 반대하는 까닭은 짐작키 어렵다. 지난 18일에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대선때 경선현장과 온라인상에서 지지해온 문재인 팬클럽 ‘경인선’을 격려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경제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뜻을 담은 조직인 ‘경인선’은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김모(필명 드루킹)씨가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조직이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문재인 후보 지지, 안철수 후보 비난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며 네이버에서 댓글부대와의 전쟁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져 댓글의혹에 불을 지피고 있다. 드루킹의 흔적은 지난 해 대선과정에서도 있었다. 대선 당시 국민의 당은 드루킹을 포함한 네티즌 14명을 댓글 등을 이용한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바로 드루킹이 안철수 후보가 30% 중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MB아바타이기 때문이라고 안 후보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서로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 이때 민주당이 드루킹이 포함된 고발건을 콕 집어 취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협상에 나섰던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민주당측은 네티즌 14명 가운데 드루킹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반박했지만 드루킹에 대한 고발취하 요청이나 청와대 행정관 추천, 오사카 총영사 추천 같은 일은 드루킹과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든 깊은 관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드루킹 사건을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게이트’로 규정한 자유한국당은 국회 본관에서 천막농성을 벌인데 이어 이틀 연속 의원총회를 열어 강도높게 규탄하고 나섰다. 바른미래당 역시 당 지도부와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총출동해 국회규탄대회를 열고, 청와대 항의방문을 통해 특검을 촉구했다.이런저런 이유로 드루킹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드루킹의 인사청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알려진 김경수 의원이 경남도지사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석연치 않다. 김 의원은 당초 출마를 선언키로 했던 19일 새벽 돌연 출마선언 장소를 경남도청에서 국회 정론관으로 바꾸더니 국회 기자회견 역시 예정시간 30분을 앞두고 취소해 불출마선언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결국 김 의원은 이날 오후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경남도지사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김 의원의 출마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5번째 선고가 19일 내려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재상고심 선고에서 징역 4년 파기환송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드루킹 사건· 김기식 금감원장 낙마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소폭 반등했다는 점이다. ‘댓글조작으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큰 소리친 드루킹의 망령이 현 정부를 댓글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

2018-04-20

아! 대한민국!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남북정상회담의 실무책임자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2일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 미 NSC측과 협의하는 한편 13일에는 존 볼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한미간 긴밀한 협의채널 구축에 들어갔다. 지난달 방북 결과를 들고 미국으로 날아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미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지 한 달여 만이다. 정 실장은 지난 9일 취임한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과 상견례 겸 회동을 갖고, 남북·북미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한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안보수장 간 핫라인을 조기에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대북 초강경파 진용을 꾸린 만큼 한미, 북미간 비핵화 해법에 대한 이견을 조율해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의 핵심 의제를 비핵화로 삼겠다고 밝혀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 여하에 따라 미북 정상회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대북 제재 완화 전에 미국과 비핵화에 합의할 이유가 거의 없고, 미국은 먼저 제재 완화를 할 경우 대북 압박 국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더 어렵게 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칫 하다가는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한국에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엇갈린 전망도 나오고 있다.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이 꼭 필요하다. 1945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1970년대부터 남북한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1차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3월 9일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베를린 선언’이후, 특사간 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이뤄졌다. 그해 6월13일 평양 순안 공항에서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은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제2차 정상회담은 2007년 ‘2·13 합의’ 이후 북핵문제의 진전이 가시화되면서 남북관계가 정상화된 가운데 이뤄졌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해 8월 28일부터 제2차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준비 기간 중 북한의 수해로 인해 일정이 연기됐고,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총 30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과 함께 육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10월4일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을 발표했다.남북정상회담은 불신과 반목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는데 큰 이정표를 남겼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남북간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협력 확대 및 한반도 평화증진과 공동번영의 선순환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남·북한관계는 악화일로였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보성향 학자들은 남북관계 악화는 그런 사건보다는 정권의 철학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교류와 협력강화를 통해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강조,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사실상의 통일’이 이뤄지도록 하려했다면 보수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대북강경책을 통해 북한의 굴복을 강요하는 ‘목표로서의 통일’을 고수하는 바람에 남북관계 악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 어떻든 우여곡절끝에 성사된 4·27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매우 크다. 우선 국제사회가 바라는 것 처럼 북한 비핵화가 이뤄져 항구적인 동북아 평화가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민족의 비원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정례화’가 성사돼 남과 북이 형제로서 서로 화해하고, 소통하며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우호관계로 지낼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이번 회담의 결과가 “아! 대한민국!”이란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감동의 회담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2018-04-13

`올드보이` 논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로 이인제 전 충남지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등을 내세우자 `올드보이`논란이 한창이다.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 연출에 최민식·유지태·강혜정 등이 주연한 영화이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15년 동안 사설 감금방에 갇힌 한 남자가 자신을 감금한 사람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 장르의 한국 영화다. 근친상간이란 터부를 복수의 모티프이자 해결책으로 삼고 있는 이 영화의 제목 `올드보이`는 오대수의 딸인 미도(강혜정)가 오대수(최민식)를 부르는 호칭이다. 영문도 모르고 15년동안 사설 감금방에 갇힌 주인공 올드보이가 자유한국당의 미래상을 반영하는 듯 느껴져 가슴 서늘했던게 나뿐일까 싶다. 어쨌든 당내외의 연이은 비판에 대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특유의 거친 애드립으로 또 한번 구설수를 불렀다. 그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갑니다”라고 정면으로 맞대응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올드보이` 공천이 보수층 결집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좌파 폭주로 체제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안보위기, 경제 청년실업위기, 사회주의 체제 변혁 시도에 자유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특유의 색깔론을 펼쳤다.홍 대표는 또 “탄핵대선 때와는 달리 보수 우파들의 결집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며 “혁신, 우혁신으로 새롭게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난 자유한국당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확신한다”며 6.13 지방선거 승리를 장담했다. 당 대표로서 당원들을 이끌어가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보이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형세와는 맞지않는 색깔론을 제기하고, 보수 우파를 지지하는 중산층들이 느끼는 박탈감과는 괴리가 있는 상황인식을 보여주는 것 등은 오히려 보수당에 거는 기대를 떨어뜨린다. 인물에서나 당 운영에서도 혁신보다는 구태가 도드라진 요즘이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경선은 물론 전략공천에서도 눈에 띄는 삼삼한 후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말 그대로 오래전 검증이 끝나 더 이상의 차기를 기약하기 어려운 `올드보이`들이 판을 친다. 한국당에는 `인물이 그리 없나`하는 탄식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대구의 한 택시기사는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 나설 참신한 후보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차기를 장담못하는 올드보이들을 공천한다는 소식에 자존심상하고, 분통이 터진다”라고 토로했다.반면에 여당은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전도유망한 김경수 의원이 현역 국회의원 배지를 던지고 불리한 형세의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고, 지방선거 승패의 바로미터인 서울시장 선거에는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이 도전장을 내 박원순 현 시장과 흥미진진한 경선구도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밖에 4선의원에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은 당권에 도전할 채비에 나섰고,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알려진 3선의 최재성 전 의원 역시 서울 송파을에서 보궐선거로 국회재입성 후 당권을 노리고 있다. 여당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86세대로,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한국당 공천과정을 지켜보던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작심한 듯 당 대표의 `꽃길 행보`에 불만을 털어놓는다.“당 대표란 사람이 국회입성이 손쉬운 대구지역 당협위원장을 맡으려 오만 꼼수를 다 쓴 데서부터 잘못됐다”는 요지다. 당을 위해 헌신해야 할 생각이었다면 후보를 찾지못해 고민스러웠던 서울시장 등 격전지에 자원해 출마하는 자세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꽃길을 걸으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니 설득이 먹힐 리 없다는 쓴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2018-04-06

다시보는 청와대 국민청원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http://www.president.go.kr/)의 국민소통광장 아래 `국민청원 및 제안`에 들어가면 떠오르는 안내문이다. 바로 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르는 국민들의 관심사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다만 이 코너에 몰리는 국민청원들이 청와대가 처리하기 어려운 내용이거나 삼권분립의 원칙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답변해야하는 청와대 참모들이 골머리를 앓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21일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며 고충을 토로했고, 정혜승 뉴미디어 비서관도 같은 날 청와대 라이브 방송에서 “청와대가 해결사는 아니다. 모든 문제를 풀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정 비서관은 “다만 이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국민의 뜻을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고 소통하는 게 저희의 책무”라고 소신을 밝혔다. 어쨌든 정부의 책임있는 당국자가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 또는 공분하는 현안에 대해 답변을 내놓는 채널 자체가 전무했던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로서 매우 흥미롭다. 벌써 17개의 청원에 대한 정부의 공식답변이 나온 지금, 이들 청원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 정부가 현안에 대해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갖고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 국가의 권력이나 행정이 어떻게 말초신경인 기초단계까지 전달돼 내려가는 지도 엿볼 수 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지난 23일 김형연 법무비서관이 청와대 라이브 방송에서 내놓은 `일베 사이트 폐쇄` 청원에 대한 답변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온 문 정부의 기조와 다른 답변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김 비서관은 이날 답변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그동안 불법유해정보 신고 내용을 중심으로 일베에 게시글 삭제 등을 요구해왔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협의해 차별, 비하 사이트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심각한 사이트는 청소년 접근이 제한되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될 수도 있다”고 일베 사이트 폐쇄가 가능하다는 요지의 답변을 내놨다. 김 비서관은 이어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헌법에도 명시됐듯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갖는 동시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험담글을 올린 일베 회원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한 대법원 확정판결 등을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율규제를 존중하는 동시에 허위 정보나 명예훼손 표현 등 불법정보에 대하여는 무관용의 원칙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또 국민청원 코너에서 20만명 이상 추천을 받아 답변 대기중인 6개 청원 역시 보수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많은 국민들이 공분하거나 공감하는 주제들로 빼곡하다. 경제민주화문제, 연극인 이윤택씨의 상습성폭행, 성폭력 피의사실에 대한 진상규명과 조사 촉구, 정부 개헌안 지지, 고 장자연 죽음의 진상규명, 미혼모 위한 앤드런 방지법 청원, 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 재조사 등이 바로 그런 주제다.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관심과 여론몰이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인민재판장화되고 있고, 적절치 못한 요구와 답변으로 삼권분립을 위협하거나, 일부 유명인은 `집단린치`를 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칼은 요리를 할 때는 훌륭한 도구지만 잘못 다루면 자신이 다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 SNS도 마찬가지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의 국민청원이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는 보완조치를 거쳐 `21세기의 신문고`로 자리잡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2018-03-30

대통령의 개헌안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이 연일 발표되면서 국민적 화제가 되고 있다. 3차례에 걸쳐 발표된 개헌안의 요지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논의돼왔던 현안이나 주제들을 포함하는 것들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권력구조는 `4년 연임제`로 정리됐다. 이미 권력을 잡은 쪽이나 앞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쪽, 그리고 지금의 권력을 지키려는 쪽 할 것 없이 모두 지금의 `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는 성에 안 찬다는 데 동의한 듯 싶다.기본권과 관련해서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성장, 국제사회에서의 위치 등을 반영해 주체를 `국민`에 한정하지 않고 `사람`으로 확대했다. 기본권을 폭넓게 인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생명권·안전권·정보기본권·주거권 등 기본권을 새롭게 인정·신설하자는데 반대할 일은 없어 보인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개헌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 답게 지방분권에 대해서도 진전된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적합한 조직을 구성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와 지방행정부의 조직구성과 운영에 관한 구체적 내용은 지방정부가 정할 수 있도록 했다니 자치행정권 측면에서 상당히 진전된 논의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에 대해 기존의 헌법에서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던 것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로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니 환영할 만하다. 지방자치에서 가장 중요한 돈 문제와 관련한 `자치재정권`도 보장했다. 특히 `누리과정 사태`에서 겪은 것처럼 정책시행과 재원조달기관이 일치하지 않아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재정부담을 떠넘기는 사태 등을 예방하기 위해 `자치사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는 지방정부가,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 위임사무 집행에 필요한 비용은 그 국가 또는 다른 지방정부가 부담한다`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러나 지방재정의 문제는 결국 자립도가 낮은 지방도시와 자립도가 높은 수도권 지역과의 세수불균형을 `지방재정조정제도`로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결하느냐가 요체다. 지방의 오랜 숙원이었던 `지방세 조례주의` 도입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공무원에게도 노동3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던 걸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바꿨으니 한걸음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걱정스런 대목도 있다. 노동조건을 노사가 대등한 자격으로 결정한다는 근로기준법상의 `노사 대등 결정 원칙`과 남녀고용평등법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헌법에 규정하는 것은 자칫 기업 자율성과 노동 유연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한 것도 공감을 얻고 있다. 현행 헌법에 국민소환제가 포함되지 않은 탓에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있어도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기 전까지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들 때 무를 수 있는 권리를 국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의견이니 찬성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수도조항을 신설해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 역시 수도권 분산을 위한 추가조치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다만 토지공개념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논란이 많아 추후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개헌안에 대한 여야 반응은 늘상 그렇듯 찬반양론으로 갈라진다. 어쨌든 야당의 협조없이 개헌안 국회통과가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한 채 정부 개헌안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부 여권의 태도는 큰 문제다. 다른 속셈이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 해도 개헌시기와 권력구조 등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개헌을 발목잡는 야권 역시 반성해야 한다. 국민에게 공약한 개헌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 차원에서 여야 정치권이 새롭게 합리적인 대안으로서 개헌일정과 개헌안을 내놓고 논의해야 할 단계가 아닌가 한다.

2018-03-23

부메랑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준비한 대국민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어떤 이유가 됐든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마음을 어지럽힌 점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라고 호흡을 조절한 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더이상 우리 역사에 이른바 `부메랑 효과`가 없었으면 한다는 선언이었다.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그의 측근들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참모들이 즐비하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전 대통령의 원죄(?)는 그의 재임시절 표적수사 논란 속에서 이뤄진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역사의 비극을 낳았다. 이 비극적인 수사가 현재까지 이르는 극심한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고, 결국 이 전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서울 삼성동 사무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역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조사에 대해 `6·13 지방선거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홍 대표는 “모든 것을 지방정부 장악을 위한 6·13 지방선거용으로 국정을 몰아가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면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개헌, 집요한 정치보복 등 모든 정치 현안을 6·13 지방선거용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죄를 지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복수의 일념으로 전 전(前前) 대통령의 오래된 개인비리 혐의를 집요하게 들춰내 꼭 포토라인에 세워야만 했을까. MB처럼 (이 정권에도)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사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로 채워진 TV뉴스를 보노라면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당시엔 전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비리와 흑막들이 어느 날 부턴가 정치권 뉴스 전면을 장식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것 역시 `데자뷰`처럼 느껴져 마뜩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리저리 어지러운 마음 잡지 못한 채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읽게 된 한 구절의 기도문이 내 마음에 위안으로 다가온다. 작자 미상의 `수우족 인디언의 구전 기도문`이다.“바람 속에 위대한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내 두 눈이 오래도록/석양을 바라 볼 수 있게 하소서./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 가르쳐준 것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내 형제들 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5명의 전직 대통령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기도문이다.

2018-03-16

뜨거웠던 청와대 회동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조선에 통신사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조선은 몇 차례 거절을 하다가 일본의 정세를 살피기 위해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 수행군관 황진 등을 통신사절단으로 보냈다. 그러나 1년 뒤인 1591년 3월에 돌아온 황윤길과 김성일은 서로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서인인 황윤길은 일본은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침략해올 것이라며 전쟁의 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조정의 실권을 잡고있던 동인인 김성일은 도요토미는 조선을 침략할만한 인물이 못된다며 일본의 침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자 선조는 통신사로 같이 다녀왔던 허성과 황진을 불러들였다. 허성은 동인이었으나 황윤길의 말에 동의했고, 김성일의 수행원이었던 황진 역시 황윤길의 말에 동의했다. 이로써 3대1의 상황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고 요란을 떨면 민심만 사나워진다는 이유로 동인 김성일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김성일은 전쟁 준비에 바쁜 일본을 둘러보고도 왜 그런 보고를 했을까. 역사는 당파싸움을 그 이유로 꼽았다. 나라의 안위를 위협한 반역행위였다. 조선 역사를 배우며 가장 개탄스러웠던 대목이었다. 그 이후 근대화로 국력을 키운 일본에 의해 일제식민지 치하에 들었던 이 나라가 해방된 후 남북으로 갈라진 데도 냉전체제로 인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이외에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민족지도자들 사이의 이념갈등에 기인한 바가 컸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민족의 염원인 남북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참으로 거칠고 험난해 보인다. 진보정권의 햇볕정책과 유화정책이 반짝 남북관계를 밝힌 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보수정권은 대북강경책으로 다시 돌아섰다. 코너에 몰린 북한은 핵무장과 미사일도발이란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맞섰다. 그랬던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한의 제안에 부응해 대표단과 선수단·응원단을 파견하는 등 남북 긴장완화와 비핵화논의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은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그래서일까.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은 유독 뜨거웠다. 전날 북한을 다녀온 대북특사사절단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논의,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메시지 등을 챙겨온 경과 등을 듣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참석을 보이콧 했던 제1야당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처음 참석해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으면서 일순 토론장 분위기로 바뀌었다. 홍 대표는 정 안보실장이 3페이지 분량의 보고를 끝내자마자 “어느 쪽이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요구했느냐” “한미 훈련 무력화 및 지방선거용으로 4월 말 정상회담을 택하지 않았느냐” “9·19 합의 당시에는 핵 폐기 로드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북한이 불러준 대로 써온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여기서 왜 취조하듯이 그러냐”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홍 대표가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의 시간벌기용 회담으로 판명된다면 정말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안이 있느냐”고 따져 묻자 문 대통령은 “홍 대표께서는 어떤 대안이 있느냐”고 맞받았고, 홍 대표가 “모든 정보를 총망라해 가진 대통령께서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으면서 언쟁이 벌어졌다. 홍 대표는 또 “북한 핵폐기가 아니라 핵 동결 및 탄도미사일 개발 잠정중단으로 가면 안 된다”고 지적하자 문 대통령은 “입구는 핵동결, 출구는 비핵화로 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북핵 해결을 위한 기본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뜨거웠던 청와대 회동을 지켜보며 남북화해와 비핵화 논의를 통해 평화통일로 단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모두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파적인 다툼은 국내 현안을 둘러싼 다툼으로도 충분하다 믿기 때문이다.

2018-03-09

2·28민주운동과 3·1운동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대통령이 대구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는 처음 열린 2·28민주운동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2·28정신을 기렸다. 이날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2·28기념식은 이색적이었다. 2·28을 기념하는 뮤지컬을 공연하는 배우들이 사회자 역할을 하며,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 국민의례와 결의문 낭독 등 기념식순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기념식 도중 2·28주역으로 분한 뮤지컬 배우인 남경읍과 하성민의 대사 몇 토막이 가슴을 울렸다. 배우 남경읍이 “그나저나 봄날이 오면 그날의 모든 기억들이 나네. 내일이면 벌써 3월인데 쌀쌀한게 꽃봉오리가 얼까 걱정이네” 라고 하자 배우 하성민은 “원래 꽃이라는게 한번 추워야 그 색도 진해지고 향도 진해지는거야” 라고 답했다. 그런 후 남경읍은 “난 말이야. 저 꽃봉오리가 꽃을 잘 피웠으면 좋겠는데. 혹시 자네도 그런가. 봄바람이 불면 그날의 함성 소리가 쟁쟁하게 들린다네” 라며 2·28민주운동 당시 불렀던 가요 `유정천리`를 개사한 노래를 불렀다.진지한 표정으로 약식 뮤지컬을 지켜보던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그동안 홀대받았던 2·28민주운동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감회어린 격려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대구의 자랑스러운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처음 치러지는 기념식을 축하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정치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행세했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58년 전의 오늘도 그런 시절 중의 하루였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바로 이곳 대구에서 용기 있는 외침이 시작되었다”면서 “그 외침이 오랫동안 온 나라를 가두고 있던 체념과 침묵을 깼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2·28민주운동을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운동`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구형이 내려진 바로 다음 날의 일이었다. 그 다음날인 3월1일, 문 대통령은 온 겨레가 `대한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침으로써 일제치하에서의 독립을 만천하에 주장한 3·1운동을 이렇게 기념했다.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독립선언서에 따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었다.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새겨 넣었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되었다. 왕정과 식민지를 뛰어넘어 우리 선조들이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3·1운동이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든 것이 바로 3·1운동”이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에게 헌법 제1조뿐아니라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국가 상징을 물려주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고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이유” 라고 했다.특히 문 대통령은 역사적 시간으로는 40여년의 간격을 둔 2·28민주운동과 3·1운동을 모두 `촛불정신`으로 묶어 설명했다. 2·28민주운동은 국민이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한 또 하나의 촛불혁명이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여정을 시작했고, 6월 민주항쟁으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으며, 마침내 촛불혁명으로 더 큰 민주주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3·1운동 역시 촛불혁명의 정신을 담고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겨울 우리는,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3·1운동으로 시작된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냈다”면서 “1천700만 개의 촛불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역사를 펼쳐보였다”고 말했다. 촛불혁명 당시 어둠을 밝혔던 하나하나의 빛은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또 다시 선언했다면서 그로 인해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운동을 이끈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그 말이 유독 아프게 와닿는 3월이다.

2018-03-02

미투운동을 응원함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미국 연예계에서 출발한 미투(Me too)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뜻밖에도 우리나라에서 권력기관이라 불리는 검찰조직에 근무하던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검찰 간부, 원로시인, 원로 연극인, 중견배우이자 교수 등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권위와 권력으로 억압한 상태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일삼은 이들을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인 혹은 성공한 사람들이 잇따라 성추문에 휩싸이며 추락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 전통적인 남존여비 문화가 성차별적인 사회문화로 굳어진 데 따른 부작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지난 해부터 문인들의 성추행의혹으로 시끄러웠던 문단이 미투운동에 본격적으로 휩쓸리게 된 것은 지난 해 12월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리고 난 뒤부터다. 시 `괴물`은 문단의 성희롱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최 시인은 `괴물`에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중략)….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후략)” 가슴 서늘하게 만드는 독설이자 신랄한 고발장이다.배우 김지우도 손바닥에 `ME TOO`라고 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영화계 미투운동에 동참했다.그는 “17살 때부터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오디션에 갈 때마다 혹은 현장에서 회식 자리에서 당연하듯이 내뱉던 남자·여자 할 것 없는 `어른`들의 언어 성폭력을 들으면서도 무뎌져온 나 자신을 36살이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면서 “당신네 가족이 있는 것처럼 당신들이 유희하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엄마, 딸, 누나, 동생 가족”이라고 꼬집은 뒤“(미투운동을) 마음을 담아 지지한다”고 전했다. 성폭력에 무뎌진 사회분위기가 더 큰 문제란 점을 제대로 짚고 있다.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개그계도 미투 동참할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화제다.청원자는 한때 남자 개그맨으로 지냈다며 개그계의 성희롱 실태를 적었다. 2008년부터 2009년 초까지 대학로 Xxx홀에서 신인 개그맨으로 지냈다고 소개한 그는 여자 개그맨들에 대한 성희롱 사례로 “`너 찌찌 색깔은 뭐야?`이딴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강해야 살아남는다`고 믿던 여자 신인 개그맨들은 `갈색인데요`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쳐야만 했다”면서 “실제로 어떤 여자 개그맨은 남자 선배 5명이랑 자고 방송 나간 적도 있었다”고 폭로했다.그는 “당시에는 개그맨에 대한 꿈이 너무 컸기 때문에 성희롱적인 발언, 폭행 등 당연하게 버텨야 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잘못된건 밝혀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면서 “개그계에도 미투 바람 불어서 앞으로 이런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글을 맺었다.이제 세상을 뒤덮는 미투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사회·경제적 권력이나 성차별적 권력의 억압으로 다가오는 부조리한 성폭력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에 차별적인 사회의 편견에 맞서 미투운동의 선두에 선, 용기있는 여성들에게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벗어나 자유로워지자고 노래한 박노해 시인의 시를 전함으로써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나의 행복은/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나의 불행은/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행복은 비교를 모른다` 전문)

2018-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