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맹인모상(盲人摸象)이란 말이 있다. 우리 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이 속담은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우화에서 비롯됐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장님 여섯 명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도록 했다. 먼저 코끼리의 이빨(상아)을 만진 장님이 말했다. “폐하 코끼리는 무같이 생긴 동물입니다.”그러자 코끼리의 귀를 만졌던 장님이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같이 생겼습니다.” 옆에서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이 큰소리로 말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구공이같이 생긴 동물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코끼리 등을 만진 이는 평상같이 생겼다고 우기고, 배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장독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며, 꼬리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외쳤다.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진리를 아는 것도 이와 같다.” 이 우화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고집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맞은 10일, 정부는 ‘문재인 정부 1년, 국민께 보고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책자를 펴냈다. 첫 단원은 ‘변화’의 장이었다. 1년 동안 국민과 함께 한 문재인 정부 1년간 변화의 큰 줄기를 간추렸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어 번영의 시대,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는 내용이 첫 장을 장식했다. 이어 ‘나라다운 나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포용적 복지’, 더불어 잘사는 ‘사람중심 경제’로 패러다임 전환 등의 선언이 있었다.두번째 단원에서는 100대 국정과제중 국민의 삶과 직결된 35개 정책의 성과를 5대 국정목표별로 소개했다. 첫번째 국정목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였다.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주변 4국과 협력외교 및 외교지평 확대, 베를린 구상·우리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환경구축,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적 개최, 강력한 국방개혁 추진 등이 주요 실적으로 꼽혔다. 뒤를 이어 ‘국민이 주인인 정부’에서는, 적폐청산·잘못된 제도와 관행혁신, 국민참여형 정책결정모델 구축, 국가를 위한 희생에 합당한 예우, 피해자 치유하는 과거사 진상규명 등이 포함됐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치매국가책임제 본격시행, 사각지대 없는 주거복지망 마련, 노동시간 단축 등 휴식과 문화가 있는 삶 등이 강조됐다. ‘더불어잘사는 경제’에서는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 최저임금 16.4%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실천됐고,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에서는 강력한 지방분권, 지방재정 자립기반 확충 등의 순이었다. 세번째 단원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1년간 국민의 기대와 눈높에 미치지 못한 15개 숙제를 소개했다. 야당이 비판하는 민생, 청년일자리 문제, 사드 문제, 안전·환경문제 등이 망라됐다. 정부의 자부심 가득한 자평과는 달리 야당의 비판은 신랄했다.지난 9일 자유한국당 경제파탄대책특위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최악의 고용성적표, 말뿐인 일자리 정책’토론회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제로’정책 등은 청년 일자리 급감, 경영비용 상승 같은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도 ‘문재인 정부, 아마추어 국정운영 1년’평가 토론회에서 외교·안보 분야 성과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경제·정치 분야에 대해서는 ‘낙제젼을 줬다. 한 교수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중심 경제정책은 반시장적이고 서로 충돌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의 평가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맹인모상의 우화가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1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