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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통령은 없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발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 지도부가 버티기작전에 나선 가운데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의원들이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해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고 있다.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모두 탄핵소추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야당 의원 172명이 탄핵소추 발의를 하고, 여당의원 28명 이상이 동의하면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탄핵심판을 받게된다. 이미 탄핵에 찬성한 새누리당 비주류의원 수가 40명을 넘었다는 얘기고 보면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의결이 있으면 국회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이 그 의결서의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게 되고, 이로써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가 시작된다. 탄핵소추의결서는 본인에게 보내지는데 본인이 의결서를 받은때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결정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대통령이 있어도 권한을 행사할 수 없으니 대통령이 없는 상황이 된다.탄핵의 역사를 보면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측근비리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며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의결서를 받은 지 63일만에 탄핵소추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기각판결이유로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해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정당화된다”면서 `노무현 탄핵안`은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였다고 판단해 청구를 기각한다고 했다.당시 기각됐던 헌법재판소의 기준에 따라서 탄핵의 이유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 탄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 검찰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살펴보면, 탄핵의 요건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최순실에게 허락도없이 줘버렸기 때문이다.탄핵심판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숨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더 이상 새누리당이란 이름으로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없는 만큼 당명을 바꾸고 신장개업하거나 아예 새로운당을 세워 제3지대에서 일부 야권인사들과 힘을 합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보수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선 후보들을 적극 영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맞대결을 벌일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안철수, 반기문, 손학규 이런 분들이 합류한다면 `문재인 vs 반문재인` 전선을 형성할 수 있을 법도 하다.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기회에 제왕적인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위해 권력분권형 개헌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누군들 제 손에 들어온 무소불위의 권력을 놓으려 할까. 차라리 대통령이 있어도 없는, 이 시기가 바로 이 나라를 분권형 권력구조로 바꿀 절호의 기회다. 대통령 한 사람 잘못 뽑았다가 온 나라가 경제·안보위기속에 빠지게 된 것 아닌가. 이제 이 나라 모든 것을 대통령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게 만들어선 안된다. 의원내각제를 도입해 총리에게 내치를 맡기고, 내각은 여야가 협의해 구성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반대를 위한 반대가 사라지고, 생산적인 국회가 가동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대통령은 없다. 없어야 한다.

2016-11-25

100만 촛불민심이 바란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요즘에는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네요.”최근 TV뉴스를 보던 집사람이 시니컬한 표정과 함께 털어놓은 뉴스 시청평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재미있기로는 세계에서 손꼽힌다던데, 어떻게 뉴스가 더 재미있을까. 쓴 웃음만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뉴스에서는 `비선 실세 최순실 주연, 박근혜 대통령 조연`의 막장 드라마가 매일 저녁 방영되는 판이니 이런 소리 들어도 싸다 싶었다. 더구나 주연배우에 소문만 무성하던 비선실세 최순실이 등장하고, 조연배우로 현직인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하니 두번 다시 섭외하기 힘든 출연진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렇다해도 TV드라마를 자주 보지않는 내가 무슨 말을 하랴 싶어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다. 별 대꾸를 않는 게 의외라 여겼을까, 집사람이 연이어 던진 카운터 펀치 2탄. “청와대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최순실씨 보거나 만난 적 없어요? 그런 사람 미리 알았으면 우리도 팔자 필 뻔 했네요.”설마 최 씨와 모른다고 나무라는 것은 아닐테지만 왠지 내가 법당 뒤로 다닌 것 아닌가 반성하게 만드는 일갈이다. 그렇다고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 순 없는 일. “이 사람아, 내가 무능한 탓에 큰 집 구경은 안해도 되쟎나.”무안한 나로선 무능을 실토하는 선에서 급마무리해야 했다.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은 가히 충격적이다. 대통령 연설문 수정에 이어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들고,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미리 받아보았다거나 미르·K스포츠 재단을 설립해 이 단체를 통해 나라예산을 빼먹은 것은 물론 CF감독인 차은택씨를 동원해 수천억원에 해당하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세우고 이를 착복하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청와대나 각료 인사 개입에 이어 최근에는 대통령 진료도 대통령 전담의무진도 아닌 병원에서 최순실씨와 그의 언니인 최순득씨 이름으로 진료받는 등 `비선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이쯤되면 대통령은 자진해서 하야하거나 2선퇴진의 뜻을 밝히고 야당이 지명한 거국중립내각 총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힐 줄 알았건만, 현실은 거꾸로 돌아간다.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뒤엎고 변호인을 통해 `검찰조사를 못 받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장기전 모드에 들어갔다. 대통령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검찰조사에 불응하며 버티기 작전을 펼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최순실과 정호성, 안종범 등 관련자들이 기소된 후 자신이 조사를 받으면 관련자들의 진술을 알아내어 그것에 맞추어 진술할 수 있다고 계산했거나, 검찰이 대통령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으면 최순실 등의 공소장에 관련자들끼리의 공모과정에 대해 소상하게 기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을 수 있다. 또 최순실의 공소장에 대통령의 범행이 기재되면 국회가 이를 기초로 탄핵발의를 할 지도 모르니, 탄핵발의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상태로 검찰이 대통령을 강제수사하기 어렵다는 현행 법해석에 매인다면 대통령에 대한 혐의입증은 지지부진할 수 밖에 없다. 국정공백 역시 기약없다.대통령이 하야나 2선퇴진을 거부하는 한 해법은 탄핵절차뿐이다. 문제는 탄핵을 하려해도 대통령의 혐의입증이 우선돼야 한다. 즉,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로 소환조사를 해야 하고, 소환조사에 불응하면 강제수사로 전환해야 한다.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임기중`형사소추가 금지된 대통령이라해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피의자`로 출석하라는 검찰의 소환요구에 불응하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서라도 조사를 강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희대의 `국기문란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박 대통령에 대한 100만촛불 민심이라 믿는다.

2016-11-18

위기는 기회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산은 첩첩이 쌓여있고 물은 돌고 돌아서 이제 길이 없는가 여겼더니 버드나무 그늘이 우거진데 아름답게 꽃이 피어있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더라.`(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 송나라 육유의 `유산서촌(游山西村)`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두운 현실이 끝나는 길목, 혹은 힘든 상황 뒤에는 좋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이번 기회에 나라를 한번 확 뜯어고치면 안 될까.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이 상황에도 여야는 서로 정치공세하느라 바쁘다. 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로 패가 갈려 사태수습책을 놓고 다투고 있고, 야당은 왠지 사태 수습보다는 파문의 확대재생산에 더 열심인 듯 하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정권말기만 되면 대통령 자신, 혹은 대통령 측근이나 아들 딸, 형제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감옥으로 향하는 부끄러운 풍속도를 언제까지 반복하도록 놔둬야 하나.이 땅의 정치사를 돌이켜보자. 1945년 8월15일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이후 시작된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들에게 무척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보여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당 측근들의 부정부패에다 3·15부정선거를 저질러 하야했고, 뒤이어 집권한 장면 민주당 정권은 나라의 갈길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주도한 군부쿠데타를 맞고 말았다. 국가의 근대화를 꿈꾼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이 나라의 경제는 크게 신장시켰지만 민주적인 국가운영이나 인권보장에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결국 최측근인 김재규 안기부장의 총격으로 막을 내린 박정희 정권 이후 전두환 장군이 12·12 군부쿠데타로 세운 군부정권은 육사동기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까지 이어졌다.노 전 대통령 이후 군부정권하에서 야당과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던 김영삼 후보가 3당 합당이란 극약처방을 통해 집권에 성공, 최초의 문민정권을 세웠으나 임기말 IMF라는 국가적 경제위기와 아들 김현철씨의 권력형 비리로 국민적 비난을 맞았고, 이에 실망한 국민들은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에 대통령직을 넘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를 극복하고 남북대화에 힘써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으나 김홍일·김홍업·김홍걸 세 아들이 뇌물수수 등의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측근과 가족들의 포괄적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다가 대통령 본인이 자살하는 비극을 낳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형 이상득 의원과 처사촌 등의 뇌물수수로 물의를 빚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이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이처럼 반복되는 권력형 비리의 사슬을 끊어내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에게 책임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니 거국중립내각에 적합한 인물을 총리로 세우는 게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신임 총리가 거국중립 내각의 취지에 맞는 인물들을 장관으로 세워 내각을 구성한 뒤 국정을 운영케 하자. 그 다음 수순으로 국회 주도하에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을 바꾸는 거다. 여야와 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는 개헌특위를 만들어 공청회와 토론회 등으로 온 국민의 뜻을 모아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의 핵심은 말썽많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나 분권형 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거다. 큰 그림은 이런 방향이 옳다.그럴 경우 국회에서 허구한날 여당과 야당이 서로 물고뜯는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여야가 내각에 함께 참여하는 권력분점형 내각은 서로 대화하는 정치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럼, 하나를 주고, 다른 하나를 받게 되겠지. 이렇게만 된다면 실로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했다 할 수 있으리라. 위기는 기회다. 정치권이, 이 말 한번 되새겨 주길 바란다.

2016-11-11

`순실의 시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26일 구미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때 언론사에서 함께 동료로 지냈던 이 지인은 전화를 받자마자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지역에서 근무하는 그가 느끼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심각성은 남다르다 할 수 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사태에까지 이르자 “대구·경북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더욱 큰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TK지역에서 더욱 큰 민심이반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한, 가장 큰 이유가 “(박 대통령은) 사심이 없을 것”이란 믿음으로 지지했는데, 알고보니 박 대통령 배후에 온갖 사심에 가득 찬 최순실이란 사람이 도사리고 있는 줄 누가 알았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박 대통령이 무슨 낯으로 이 나라의 국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대외적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일만 맡고, 내치는 거국내각을 구성해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것은 그동안 대통령을 보좌해온 청와대 참모들일 듯하다. 이들 참모들은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 이후 허탈상태에 빠진 분위기다. 비선실세인 최순실은 대선 전후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선거와 국정에 개입해왔지만 박 대통령의 참모 대부분은 최씨를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최씨 의혹이 몇 달 전부터 청와대 주변에서 계속 제기됐지만 참모진이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것 역시 참모진 대부분이 최씨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최씨 얘기를 알고 있는 것은 박 대통령 본인과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비서관) 정도만 알고 지낸 것 아니겠냐는 추측이 파다하다. 이 때문에 가장 곤혹을 치른 사람은 바로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이 실장은 지난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최순실씨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의혹에 대해 질문을 받고,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겠느냐”고 일축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불과 나흘 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로 비선의 존재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비서실장은 여야의원들이 “최순실씨가 연설문 봤다는 사실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내가 알았다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했겠느냐”고 반문했지만 비서실을 총괄해야 할 비서실장이 겉돌았다는 얘기니 그로서도 이래저래 곤혹스럽고 불명예스런 일이 되고 말았다.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다 몇 달 전 발탁된 이원종 비서실장이야 청와대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쳐도 1년 이상 박 대통령을 모신 전임 비서실장들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게 더욱 놀랍고 충격적이다. 실제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연설문 수정 사실을 몰랐고,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아예 최순실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한다.`최순실 게이트` 수습책의 일환으로 `거국중립내각론`이 정치권에서 부상하고 있다. 거국중립내각이란 특정 정당이나 정파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여야가 각각 추천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꾸리는 것을 말한다. 거국내각이 해법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최순실 파문으로 박 대통령이 권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만큼 1년 이상 남은 임기 동안 국정 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여소야대 국회상황에서 야당과의 실질적인 협치만이 국정을 굴러갈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설득력을 더한다.벌써 대학생들은 거리에 나가 시국선언과 함께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교수들도 시국선언으로 지식인의 양심을 실천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는 하루빨리 초고강도 수습책을 내놔야 한다. JTBC 방송 손석희 앵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빗대 명명한, 낯부끄러운 `순실의 시대`가 하루빨리 지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6-10-28

최순실게이트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순실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추문의 골자는 청와대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재벌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800억원 가까운 거금을 모아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K)스포츠를 설립했고,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한겨레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 배후로 최순실 실명을 공개하면서 파문을 일으켰고, 박근혜 정부 출범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청와대 입성에도 최씨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추문의 핵심인물인 최순실씨를 둘러싼 소문들은 귀로 듣고도 차마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직접 수정하곤 했다거나 K스포츠재단이 주요 보직자를 뽑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직접 인사검증을 했다는 얘기, 그리고 스타렉스 밴(van)을 타고 비밀통로를 통해 자유롭고 빈번하게 청와대를 출입했다는 소문 등이 그것이다. 청와대는 즉각 부인하고 나섰지만 모 방송사는 최순실의 최측근인 고영태씨를 취재한 결과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직접 수정하곤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고씨는 국가대표 펜싱선수 출신으로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기전에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더 블루K`의 이사이며 `더 블루K` 독일법인의 관리자이기도 하다. 그런 인물이 취재진에게 “최순실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것, 유일하게 잘하는 건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이라며 “연설문이 문제가 되면 자기가 고쳐놓고 애먼 사람 불러다 혼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이모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일일이 고친다는 뜻”이라며 “애먼 사람은 청와대 비서관들”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단다. 아무런 직책이 없는 개인이 대통령 연설문을 맘대로 뜯어고치고, 청와대 비서관을 아랫사람처럼 혼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K스포츠재단의 돈을 빼돌리는 창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더블루케이(The BlueK)에 대해 최씨는 “블루케이의 블루는 청와대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니 참으로 기가 찬다. 한마디로 청와대를 앞세운 권력형 게이트의 요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 사건이 `최순실 게이트`로 번져가자 불똥은 여당인 새누리당으로 튀었다. 지난 19일 최고중진의원 연석간담회에서 5선의 정병국 의원은 “최순실씨 의혹을 앞장서 막는 듯한 집권당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을 주고 있다”면서 “막는다고 막아질 부분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유승민 의원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시간이 길든 짧든 진실은 드러난다”며 검찰의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했다. 비박계인 김성태 의원도 “최순실씨라는 사람이 정말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을 하고 또 그런 내용을 통해서 여러 가지 증인이나 사실이 밝혀진다고 하면 법적인 처벌까지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대통령제하에서 최고권력을 잡은 대통령 본인은 깨끗한 경우가 많다. 정점을 찍은 이상 더 욕심부릴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주변에서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 왔다. 메뚜기 한철이 듯 이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부정한 재물을 취하면서 추문의 주인공이 됐다. YS나 DJ정부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청렴을 주장하던 노무현 대통령이나 경제대통령을 자처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순실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최순실게이트가 온천하에 드러난 만큼 대통령은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은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공분하는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권력주변의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야 한다. 그게 정도요, 올바른 길이다.

2016-10-21

여권발(發) 개헌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요즘 정치권에서는 여권발(發) 개헌론이 화제다. 개헌론은 지난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5년 단임제로 인한 공약 남발과 임기 내 성과주의로 인한 폐해, 조기 레임덕,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의 불일치로 인한 정치적 낭비와 불안정 등이 개헌론의 요체로 꼽힌다.한 언론사 조사에서는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03명이 헌법 개정에 찬성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대로라면 국회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결 정족수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200명 이상)인 만큼 개헌 정족수를 웃돌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상황이면 개헌안 발의에 이어 표결, 국민투표를 거치는 개헌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여권발 개헌론에 최대 걸림돌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 석상에서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논의)를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나”라며 개헌론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이후로 최근까지 개헌론에 대한 청와대의 반대입장은 확고하다. 최근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지금은 개헌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분명한 방침”이라며 “당과 언론 등에서 자꾸 청와대에 개헌 의견 전달했다는 등의 말이 나와 청와대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을 둘러싼 여당내 분위기는 심상찮다. 특히 비주류 인사들을 중심으로 개헌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김성태 의원은 언론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며 “여든 야든 차기 유력 주자가 부각된 상황도 아니라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했다. 역시 비박계인 하태경 의원도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당론으로 국회 개헌특위를 제안하자”고 제안했다. 중립을 표방하는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 파동을 겪으면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느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돌아가시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모두 가족들이 감방에 간 것 역시 87년 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했다.이같은 여권발 개헌론의 분출은 일상적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여소야대 체제하 대통령중심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임기 후반기이면서도 정부를 강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박근헤 정부가 핵심 국책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은 협치가 불가능한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정치투쟁이 펼쳐지는 대통령중심제로는 일상적인 협치가 불가능하고, 이것이 끝없는 정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레임덕이 없는 협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각제적인 요소를 대폭 도입한 개헌문제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개헌논의를 구체화하는 것 역시 어렵고 험한 길이다. 우선 개헌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야당을 잘 설득해 개헌론에 동참시키는 게 급선무다. 당장 국감 와중에 제기된 여권발 개헌론에 대해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미르-K스포츠, 최순실, 우병우 이런 초점을 흐트리려는 공작정치가 아닌가”라며 의혹 어린 시선이다.국민들과 정치권이 권력구조에 대해 갖는 이중적인 태도도 문제다. 대통령중심제의 폐해가 많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권력구조가 대통령중심제란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권을 당혹스럽게 한다. 실제로 최근 리얼미터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이 바라는 권력구조 형태로는 대통령 4년중임제(41%)와 분권형 대통령제(19.8%) 및 의원내각제(12.8)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개헌에 반영돼야 할 시대변화에 대한 구구한 해석, 특히 경제양극화로 인한 문제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이느냐도 숙제다.

2016-10-14

청렴사회 만드는 지혜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당초 우려했던 것과 같은 대혼란은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앉은 자리마다 화제가 되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감이 한창인 국회에서도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외부 민원인들과 식사자리를 피하고, 구내식당을 애용하게 됐다거나 기업들도 영업 또는 대관업무를 맡은 부서에서 상대방이 식사를 하지 않으려해 법인카드 사용액이 크게 줄었다는`애교` 수준의 부작용 정도에 그치고 있다. 다소 걱정할 만한 부작용도 있다. 한 예로 학교 운동회 날 선생님들은 따로 교무실에서 자비로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는 가족과 함께 하는 축제였고, 파티였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행사인 운동회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따로따로 식사를 하는 살풍경으로 바뀌었단다. 청렴한 운동회를 넘어 이상하고 어색한 운동회가 되고 말았다.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김영란법의 입법취지에 대해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 법의 적용대상이나 내용을 보면 너무 어설픈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적용대상을 너무 폭넓게 잡은 데서 비롯된다. 대상자가 400만명을 넘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법의 저촉을 받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온 나라 경찰을 김영란법 대상자를 단속하는데 동원해도 부족할 판이다. 누구나 지켜야 할 교통법규를 예로 들어보자. 교통법규는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게 간단하다. 그래서 CCTV, 블랙박스, 스마트폰에 의해 현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위반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경찰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사람들을 모두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량 운전자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단 한 번도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고 다닌 날이 한달에 며칠이나 되는지 말이다. 아마 적지 않은 날, 사소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김영란법 역시 이와 비슷한 법감정으로 정착돼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적용대상을 좀 더 축소할 필요가 있다.또 어떤 게 위반인지를 알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내용을 쉽고 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가권익위에서 내 논 해설집이 이미 두꺼운 책이 됐다. 법이 이렇게 복잡해서는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설사 위반했다고 해도 승복하기 어렵다. 단속하는 사람도, 단속당한 사람도 알쏭달쏭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권익위원회는 최종적인 `유죄`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사안이라 말한다. 법원 판례가 최종 정답인데, 판례가 축적되려면 그만큼 누군가가 김영란법 위반으로 기소돼 `전과자`가 돼야 한다. 전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모두들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고 있다. `시범케이스`로 걸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김영란법이 `직무연관성`이란 애매한 용어를 통해 단속대상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용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 `법은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라 했으니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법 시행 이후 공무원들은 `낯선` 민원인들은 피하고 있다. 복지부동이다. 교사들도 학부모들을 안 만나려 든다.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피곤하게 이사람 저사람 만나지 않아도 될 핑계가 생겼다. 문제는 이럴 경우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불편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을`의 위치에 있는 대다수의 서민이나 중소기업, 민원인들이다. 이들은 이제 누구에게 억울하고, 힘든 사연을 하소연할 수 있을까.부정부패 없는 청렴사회 건설을 위한 법이 제대로 정착되길 바란다. 그렇다해도 지금처럼 헷갈리는 법을 그대로 둬서는 안된다. 청렴과 공정의 분위기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국민모두가 지킬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국민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기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2016-10-07

20대 국회의 진풍경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20대 국회에서는 예전 국회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진풍경이 예사로 펼쳐진다. 국회의장의 개회사 파동으로 정기국회 개회가 늦어진다거나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와 `여당발 국정감사 파행`이 벌어진 점, 야당출신 국회의장의 정치 발언에 항의해 여당대표가 단식투쟁으로 의장사퇴를 주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20대 국회 진풍경 1호는 여당인 새누리당 주도의 국회일정 보이콧이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발언을 문제 삼아 의장실을 점거했으며, 국회 일정 보이콧에 들어갔다. 정 의장은 개회사에서 “고위 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 한다”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판했고,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에 대해 소통 부재로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취지로 정부를 비판해 중립성 위반 시비를 낳았다.진풍경 2호는 바로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였다. 지난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야당이 추진하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을 어떻게든 미루고자 하는 새누리당의 `요청`에 맞춰 국무위원들이 답변시간에 장황한 답변으로 시간 끌기에 나서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국회법상 질문자의 발언 시간은 15분, 의사진행발언은 5분으로 제한되지만, 국무위원의 답변시간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20대 여소야대 국회의 새로운 풍경이었다. 진풍경 3호는 여당발 국정감사 파행이었다. 발단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에서 비롯됐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4일 0시 35분경 국회방송을 보던 국민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다”며 “(정세균 의장의) 그 발언은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내놔. 그래서 맨입으로, 그래서 그냥은 안되는 거지`라고 발언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즉각 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28일 단식농성중인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완전히 명문으로 하는 `정세균 방지법`이 가장 급하다”며 정 의장을 압박했다. 이 대표는 “국회의장이 탈당을 해서 중립을 지키라는 이유는 이런 여야의 대치를 중간에서 조정하고, 조절하고 협상을 유도하라는 것”이라며 “본인이 그런식으로 한쪽에 서서 `맨입으로 안된다`고 거래까지 할 정도로 국회법이나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인식 자체가 더 문제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특히 이 대표는 이날 방송클럽토론회에 참석,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되는데, 지키지 않았으니 사퇴해야 된다”며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이처럼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주요 안건을 단독 처리하고, 여당이 표결에 불참한 뒤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기이한 현상이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기존의 날치기 처리는 여당 몫, 국회 일정 보이콧과 점거 농성은 야당의 `전매특허`라는 공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다.국감 나흘째인 29일에도 국감파행 정국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완강하다. 정 의장은 전날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제시한 `유감 표명`을 전제로 한 중재안을 일축했다. 그는 “유감 표명할 내용이 없다”며 “지금까지 직무수행에서 헌법이나 국회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했다. 이에 맞선 새누리당은 지도부 전체가 이 대표와 함께 동조단식에 들어가는 한편 29일엔 정 의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새누리당과 정세균 국회의장간 힘겨루기는 지켜보는 국민들을 짜증나게 한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그것이 국민의 뜻임을 정치권은 벌써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6-09-30

괴담의 생태학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괴담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광우병 괴담`이 첫 테이프를 끊었고,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세월호 괴담`이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요즘에는 김천·성주지역을 중심으로 `사드괴담`이 맹위를 떨친다. 괴담은 `증명되지 않지만 사실처럼 떠도는 현대의 민담 또는 기담`을 뜻한다. 설화나 민담이 주로 권선징악 또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한 부분이 많았다면 괴담은 누가 무슨 짓을 했다, 벌을 받았다, 이런 건 하면 어떻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다. 왠지 그런 사실이 있을 것 같은 형식으로 구성돼 대중을 현혹시킨다. 이같은 괴담은 왜, 어떻게 발생할까. 흔히 유언비어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는 많은 데, 모든 것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 정보의 부족에서 불확실성이 발생하고, 그런 불확실성이 유언비어를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세월호 참사를 전후한 사실관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데, 제공된 정보는 불확실했다.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바로 아니라는 발표가 나오고, 탑승자 숫자도 오락가락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경위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았다. 공식 발표만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안 되고, 정보의 공백이 생긴다. 이 공백을 괴담이 메운 것이다.요즘 대구·경북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있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괴담`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여느 괴담처럼 사드괴담 역시 내용은 끔찍하다. 레이더 전자파로 인해 해당지역 주민은 다 암에 걸리고, 여성은 불임이 될 것이며, 기형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식이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얘기다.그렇다해도 흉측한 내용의 사드괴담에 뒤숭숭해진 성주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정부는 성산포대 대신 김천지역과 인접한 롯데골프장을 새로운 후보지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천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곤경에 빠진 것은 김천지역구인 이철우 의원. 지난 총선에서 3선의원으로 당선돼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의원은 “일본은 8개월간 주민설명회, 레이더 배치지역 현장방문 등 19차례의 설명회를 통해 수용성을 높였다”면서 “우리는 주민설득 계획조차 없다보니 온갖 괴담들만 무성하고 이를 우려한 주민들이 거리로 나서 울부짖는 것”이라고 정부의 잘못을 질타하고 나섰다. 그래도 김천시민들의 반대가 숙지지 않자 이 의원은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만약 사드가 김천 인접지역에 설치될 경우 내가 그 지역으로 이사가서 살면서 사드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이 의원은 또 지난 9월 10일 일본 교토의 교가미사키 사드 레이더 기지를 직접 방문한 경험을 들어 “교가미사키 기지의 레이더 1.5km 지점에 159가구 370여 명이 살고 있는 어촌마을이 있고, 심지어 레이더 바로 옆에는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더라”면서 “이들은 한결같이 아무런 건강상의 이상 징후가 없으며, 심지어 기지 주변에 미군 관사도 들어설 계획”이라고 전하기도 했다.유언비어가 폭넓게 퍼져 발전한 괴담이 뒤늦게 정보 공개를 한다고 해서 그리 쉬이 숙질 리 없다. 더구나 대부분 괴담에는 분노가 담긴다. 사람들이 소문을 믿는 주된 이유는 소문을 받아들이고 싶은 심리적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즉, 사람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얘기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9·11테러 이후 발생한 괴담을 보라. 월드 트레이드 건물 붕괴는 이라크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조작한 테러라는 주장이 지금도 그럴듯하게 괴담으로 떠돌고 있다.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괴담, 그 밑바닥에는 소통부재에서 오는 분노가 짙게 깔려있다.

2016-09-23

모든 것이 기적인 삶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근 롯데그룹 이인원 부회장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한 데 이어 이 부회장과 가까웠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이 자살했다. 8일에는 야구해설가로 유명한 하일성씨가 목매 숨진 채 발견돼 잇따른 사회지도층의 자살이 화제가 되고 있다.사회에서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자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멀리 보면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가까이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등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해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곤 했다. 그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통해 자신의 분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혹시 이들도 그런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건 아닌지 하는 추측을 해 보지만 공감은 가지 않는다. 자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살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자살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다. 생명이 있는 동물 가운데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고래나 물개, 바다표범과 같은 해양동물이 스스로 해안가 육지로 올라와 옴짝달싹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죽음에 이르는 스트랜딩(Stranding) 현상을 일종의 자살 행위로 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다. 해양 동물들의 이러한 이상행태에 대해서는 질병에 대한 종족보존을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천적에게 쫓기다가 바닷가까지 밀려왔다는 주장, 바다 오염이나 먹이 고갈에 의한 생태계의 위협이라는 분석, 인간들이 사용하는 음파탐지기에 의한 방향감각 상실에서 발생했다는 추정까지 분분하다. 어쨌든 인간의 자살과는 다른 기제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자살이란 과정에는 공격성과 충동성이 동반된다.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더 공격적이고 충동적이라 자살을 시도하는 쪽은 여자가, 성공하는 쪽은 남자가 많다고 한다. 또 전쟁 중에는 자살률이 낮아지고, 가난한 나라에는 살인이나 범죄가, 잘사는 국가에는 오히려 자살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도 경제 강국이 되면서 자살률이 크게 상승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연간 100만명 정도가 자살 했다. 하루 평균 3천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얘기다. 이러한 숫자는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능가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만 연간 13만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 10만명당 약 7.8명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31.7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4년에는 28.5명으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의 두 배 이상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무려 12년 동안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갖게 됐다. 통계대로라면 자살률의 차이는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는 아닌듯 하다. 오히려 사회가 건강하냐 아니냐의 문제로 보인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10일은 WHO가 정한 세계자살방지의 날이다. 내 주변, 내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처럼 확실한 것도 없다. 다만 죽어본 사람이 없으니 죽음의 실체는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따라서 내게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고, 필연적으로 다가온 죽음을 맞이하면 될 터이다.열정적으로 살다간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모든 것이 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자살은 생뚱맞은 일일 수 밖에 없다.

2016-09-09

빈대만 잡는 지혜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인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사립학교 교원들과 기자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잘 모르는 눈치다. 고위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정부 부처별로 시행되는 김영란법 교육에 참석해 귀를 기울인다. 진풍경이다. 우리나라 권력의 중추인 청와대에서도 지난 달 29·30일 김영란법에 대한 교육이 진행됐다. 국민권익위 관계자가 김영란법의 주요 내용과 일반적인 적용 사례 등을 설명했다. 청와대 직원끼리라고 해도 인사수석실 등 특정분야 업무 담당자와 식사할 경우 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의 설명도 있었다. 청와대는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3만원(식사), 5만원(선물), 10만원(경조사비) 등으로 규정된 가액기준을 충실히 지킨다는 입장이다. 특히 업무특성상 언론 또는 여의도 정치권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홍보·정무라인과 관련 정부 부처 직원들을 만날 일이 많은 정책관련 수석실 직원들은 걱정이 많다. 한 직원은 “해당 비서관실에서 업무 협의를 위해 장·차관을 만나더라도 김영란법이 적용된다고 들었다”며 “앞으로 업무협의를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고 고충을 털어놨다.주한 외교공관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김영란법은 속지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외국인도 대상이란다. 원칙적으로 주한 외국대사관 직원이 한국 정부 관계자나 국회의원에게 가액기준인 3만원 이상의 식사를 사거나 5만원 이상의 선물을 하면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은 통상적 외교 활동으로 인식되던 식사 대접이나 선물 교환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어쩌나 걱정들이다.광역지방자치단체인 대구시와 경북도 역시 지난달 말부터 소속 공무원들과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교육에 나섰다. 이쯤되니 국회 의원회관 어느 방에 가도 김영란법이 `뜨거운 감자`다. 김천 인근지역인 성주 사드배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이철우 의원실도 마찬가지였다. 방에 들렀더니 포항 북구 지역구인 김정재 의원과 김영란법을 화제로 두런두런 얘기 중이었다. 두 의원이 전하는 국회 분위기는 김영란법의 부작용이 사회 전반에 너무 커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은 알지만 국민여론이 김영란법을 찬성하는 마당에 시행전 개정은 불가한 상황이란 입장이었다. 실제로 새누리당이 김영란법 개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국민의 약 70%가 김영란법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총선에 참패한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국민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할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도가 되든 모가 되든` 시행을 해보고,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문제는 김영란법의 부작용이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심각할 것이란 예측에 있다. 무엇보다 국내 농축수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지역언론에 몸담고 있다가 얼마전 바이오사료 및 탈취제 생산업에 뛰어든 A씨도 그 자리에 동석해 있다가 흥분한 듯 “사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고쳐야 하지만 차선책으로 시행 직후 빠른 시일내에 개정하지 않으면 국내 농축수산업 종사자들과 요식업 종사자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도 `국내 농축수산물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토록 하자`는 의견에 서명을 받으러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김영란법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행위가 사라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다만 그 부작용이 국민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면 어떡해야 할 것인가.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한다.`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온 식구가 오손도손 살아가야 할 초가삼간은 태우지 않고, 빈대만 잡아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2016-09-02

피로스의 승리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고대 그리스 지방인 에피로스의 왕 피로스(Pyrrhus)는 로마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신 장수들을 많이 잃어 마지막 최후의 전투에서는 패망했다. 이후부터 많은 희생이나 비용의 대가를 치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 부르게 됐다. 그래서 피로스의 승리는 `실속 없는 승리` 또는 `상처뿐인 영광`과 동의어로 불린다. 8·9전당대회에 당 대표에 도전했다가 아쉽게 2등에 그친 4선의원인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이 24일 새누리당 대표·최고·중진간담회에 처음 참석해 꺼낸 첫 마디가 `피로스의 승리`란 말이었다. 주 의원은 이 말로 최근 새누리당이 처한 위기를 비유적으로 지적했다. 주 의원은“`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고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 있다.`고 한다.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도 있고 `승자의 저주`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라며 “요즘 언론 1면에 계속 나오고 있는 현안문제, 소위 우병우 수석 문제, 저는 이겨도 지는 게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 걱정이 많다”고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를 빨리 정리하지 못한 데 대해 우려를 보인 것이다. 주 의원은 이어 “우리는 민심만 보고 가야되는데 당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해서 정리하고 있는지 걱정이 많이 앞선다”면서 소문난 불교통답게 선가에 전해내려오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말로 새누리당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말은 혜연(慧然)이 엮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당·정·청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야 될 일이 있지만, 이를 넘어서서 제 목소리를 내야 될 순간들이 있고,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이날 주 의원의 직설적인 지적에 대해서도 이정현 대표는 알쏭달쏭한 선문답으로 답했다. 그는 “당대표로서 당신이 쓴소리를 하느냐. 당신이 제대로 얘기를 하느냐라고 이야기한다”면서 “벼가 익고 과일이 익는 것은 그냥 보이는 해, 보이는 구름, 보이는 비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도 작용을 한다”고 했다. 즉, 벼를 익게 하고 과일을 익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이 늘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그저 영문모를 얘기였다.우 수석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내에서도 호의적이지 않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8일에 이어 24일에도 “민심 이기는 장사 없다”며 우 수석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중진인 정우택 의원도 “우 수석이 스스로 거취 문제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자진사퇴를 주장했다. 사정기관을 사실상 지휘하는 현직 민정수석의 입장에서 수사를 받을 경우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여론도 우 수석에게 매우 불리하다. 국민의 77%가 우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와 있다. 여야 관계 역시 우 수석의 거취를 놓고 꼬일대로 꼬였다.지난 8·9 전당대회에서 호남출신 이정현 의원을 대표로 뽑아 큰 변화를 예고했던 새누리당이다. 이 신임 대표 스스로 자신을 `근본 없는 놈``흙수저 출신`이라고 지칭하며 변화와 혁신의 기수가 되겠다고 다짐해왔고, 민심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힘주어 말했으니 국민들도 기대만발이었다.하지만 이 대표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민심을 가감없이 전달하겠다던 이 대표가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기에 빚어진 일이다. 이제라도 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더이상 우병우는 안 된다”라고 직언해야 한다.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코끼리를 바늘로 찔러서 죽게 하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가 화제다. 정답은 `죽을 때까지 계속 찌르는 방법`이란다. 박 위원장은 이 방법을 우병우 사건에 적용하겠단다. 이 대표는 우병우를 `바늘에 찔려 죽는 코끼리`가 되도록 놔둬선 안 된다.

2016-08-26

친박은 없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데자뷰(Dejavu:旣視感) 현상인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맞닥뜨렸던 상황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지난 9일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호남출신 이정현 대표가 취임일성으로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비박을 포함한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말할 때 였다. 2011년 12월7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당시 쇄신파인 권영진 의원과 비공개로 만난 자리에서 “친박(친박근혜)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친박계와 쇄신파는 당 쇄신 방향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친박계도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행보에 발맞춰 2선으로 퇴진했다. 친박계 의원모임인 `여의포럼`이 해체됐고 그 당시 박 전 대표의 `입` 역할을 해온 이정현 의원도 `대변인격(格)`이란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런 후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당의 전면에 나서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같은 해 8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12월 치른 대선에서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됐다.어쨌든 새누리당 신임대표가 당의 고질적 병폐인 계파주의를 청산하겠다니 크게 반길 일이다. 문제는 이게 당 대표의 선언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동안에도 백약이 무효였다. 사실 정치판에서 특정 정파 혹은 계파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에게 좌파와 우파, 진보파와 보수파, 또는 매파와 비둘기파 등과 같은 이념이나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파벌이 형성되지 못한 데 있다. 우리에게는 `상도동파`나 `동교동계`라는 정치파벌이 아직도 익숙하다. 이런 파벌 보스들의 좌충우돌이 곧 정치가 된다. 그 결과 노선의 차이가 계파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계파가 노선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비극이 반복된다.이같은 계파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바로 보스 지상주의다. 계파 우두머리의 말씀이 곧 법이요, 진리다. 모든 길은 그에게로 통한다. 예를 들면 DJ가 야당총재로 있을 때 바로 그 밑에는 “선생님이 숨을 쉬라고 하니 숨을 쉰다”던 사람들이 적지않았다니 쉽게 짐작이 간다. 새누리당내 골수 친박계 의원들의 몸짓과도 닮아 보인다. 선진국 정치에서 파벌 혹은 정파간 대결은 우리와는 자못 다른 양상이다. 상대를 비판하는 가운데도 위트와 유머가 넘친다. 영국의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은 서로가 앙숙이었다. 둘 다 재상을 지내긴 했지만 앞사람은 보수당 소속이었고, 뒷사람은 자유주의자였다. 한번은 디즈레일리에게 `불운과 재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를테면 글래드스톤이 템스 강에 빠졌다고 하면 그것은 불운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강물에서 구출된다면 그것은 곧 재난이 될 것입니다.” 필생의 정적을 상대할때도 이런 유머를 날리며 대응하는 정치문화라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정현 대표가 `친박은 없다`고 그리 목소리 높일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친박계의 쇠락은 이제 역사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한때 친박계보다 셌던 친이계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총선을 거치며 친노(친노무현)는 사실상 사라지고 친문(친문재인)만 남았다. 이제 친박도 그렇게 사라져갈 것이다. 한때 `박사모`로 뜨거웠던 대구·경북지역 민심도 어느새 싸늘해졌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부모를 모두 총격에 잃은 `비운의 공주` 박근혜에게 느끼는 부채의식도 대통령 당선으로 갚았다 여기는 지역민들이다. 오히려 영남권신공항 무산, 사드체제 성주배치, 원자력해체연구센터 유치무산 등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어쨌든 공천이나 당직을 놓고 자기들끼리 코피터지게 싸우는 친박·비박 패거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민생문제를 놓고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새 정치세력이 나타나길 바라는 게 나뿐만은 아닐것이다.

2016-08-19

이정현 효과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전남 곡성 출신의 3선 이정현(전남 순천) 의원이 한국 정치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이변을 연출했다. 영남권을 지지기반으로 한 한국 보수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호남 출신 당 대표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전대 선거운동 기간동안 “바다가 갈라지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던 이 의원이 몸소 `기적`을 일궈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 의원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계층적으로는 사회 엘리트층이 포진한 현 새누리당 주류와는 체질적으로 상반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이 의원은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한 당권주자 중 유일한 호남출신일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 112명 가운데 호남을 지역구로 둔 2명의 의원 가운데 한명이었다. 다른 한명은 농림부장관을 지낸 정운천(전북 전주을) 의원이다.여기에 정치권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커왔다고 할 수 있는 당 사무처 당직자 출신이다. 스스로를 “집권 여당의 대표머슴 후보”라고 표현한 이 의원은 전당대회 당일 연설에서도 “말단 사무처 당직자 시절부터 시작해 이날 이때까지 16계단을 밟아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른바 `흙수저` 당대표다.이런 이색경력을 가진 당 대표이다 보니 취임 직후부터 당 운영방식부터 많은 변화를 가져와 `이정현 효과`란 신조어까지 회자되고 있다.우선 이 대표의 등장으로 정치권은 명실상부한 `호남전성시대`가 됐다. 이에 따라 지역주의와 세대간 장벽은 상당히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전남 곡성출신의 이 대표가 새누리당 대표로 등극한 만큼 호남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과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그리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까지 여야 3당 대표와 국회의장단이 모두 `범호남 출신`으로 짜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이정현 효과가 가장 눈에 띄게 가시적으로 나타난 곳은 바로 당 운영방식에서부터다.새누리당의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정현 신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공개 모두발언이 모두 생략됐다. 이전에는 매주 월·목요일 개최되는 정례 최고위원회의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에 이어 최고위원단과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등이 언론을 통해 국정 현안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은 뒤 비공개로 진행되는 방식이었으나 이같은 오랜 관례를 깨버렸다. 집단지도체제에서는 최고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하도록 돼 있어 당 대표와 최고위원간 의견이 엇갈릴 경우 `봉숭아학당` 모양새가 돼 왔던 것을 지양하자는 취지란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 최고위원들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 대표는 오히려 “회의다운 회의를 위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또 이날 최고위원회의에는 최근 정치권 현안으로 떠오른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실무 관계자가 현안보고를 위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과거 국정 현안이 있을 때 관련 부처의 장·차관급이 주로 참석했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형식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쪽으로의 변화란 긍정적 평가가 당 안팎에서 나왔다.뭐니뭐니해도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대표의 등장은 경색된 여야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추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불러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이 대표와의 상견례에서 “여당 대표로서 역량을 기대한다”고 덕담을 건넨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반면 이정현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만큼 수평적 당청관계 회복에는 상당히 더딘 행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대표적이다. 또 이 대표가 호남의 대표성을 띠고 있지 않은 데다, 오히려 이 대표가 친박(친박근혜)계 중심의 당 운영으로 계파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걱정도 없지 않다.아무쪼록 이변이라 할 만한 보수정당의 호남대표 선출을 계기로 이 나라 정치권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흘러넘치길 바랄 뿐이다.

2016-08-12

권위소멸의 시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그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봉화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다 서울로 전학온 일명 `서울 TK`출신이다. 서라벌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성심여대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지난 2012년에 서울 서초을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으려 애썼다고 한다. 국회의원 4년 임기를 마치고 올해초 다시 학교로 복귀하려던 그에게 청와대 참모로 일해보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국회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그는 그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3개월 전 청와대에 들어온 강석훈 경제수석의 얘기다. 그는 우리나라 정책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이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 근거로 결론지어지기보다는 지나치게 정략적인 기준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털어놨다.“우리나라는 전문가의 권위가 너무나 없다. 예전에 대학생들에게 `누가 말을 하면 믿을 것인가` 물어보면 `김수환 추기경`이라고 답하거나 또 다른 사회지도층 중의 한 사람을 꼭 집어 얘기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똑같은 질문을 해보면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 사람 말이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권위 실종`을 넘어 `권위 소멸의 시대`다. 개탄스런 일이다.”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권위가 사라진 증거로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을 예로 들었다. 실제로 4대강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어떤 전문가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고, 어떤 전문가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니까 국민들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학자들이 정론을 버리고 시류에 영합하는 주장을 내세운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전문가들이 국론분열양상을 자초한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전문가의 권위는 사라지고 말았다.국회에 있을 때 기획재정위 간사를 지낼 만큼 조세정책에 밝은 강 수석은 최근 새누리당과 야당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조세정책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경기침체가 되면 정부에서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법과 세금을 감면해주는 두가지 정책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야당은 재정지출을 늘리자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세금을 올리자고 한다. 세금을 올리면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효과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데도 말이다. 어떤 권위를 지닌 사람이 말해도, 어떤 논리적 근거를 들어 말해도 상대방은 들으려 하지 않고, 설득되지 않는다. 정파적 이익이 정치인의 눈과 귀를 가리면 그 정치인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되는 모양이다.강 수석이 며칠 전 만난 식사자리에서 3개월간의 청와대 생활에 대해 소회를 털어놨다. 듣다보니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었다. “국회에 있을 때는 국민과 함께 민생현장에 있었는데, 청와대에 들어와보니 청와대와 국민들 사이에 언론이 숲처럼 둘러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95% 잘하고, 나머지 5%를 잘못했을 때 언론이 5%만 보도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언론과 더 많이 얘기하고 소통해야겠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권위 소멸의 시대를 전문가나 학자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치권에서 여야가 첨예한 정책대결을 펼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논리 대신 목소리 큰 사이비 전문가들을 내세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또 이런 진흙탕 싸움속에서 `너희끼리 지지고 볶고 싸워봐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련다`하는 심보로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온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다시 한번 정론직필(正論直筆)이란 언론의 사명을 되새겨 본다.

2016-08-05

김영란법, 머나먼 여정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헌재의 합헌결정을 받았다.김영란법은 공직자 외에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 민간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청탁·금품수수의 허용 또는 규제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제정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다. 처음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과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김영란법은 국회에서 수차례 논란과 수정과정을 거치면서 뜬금없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적용대상으로 포함됐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분 때문에 일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그러나 재판부는 “교육과 언론이 국가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파급효과가 크다”며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에서도 이견은 있었다. 김창종·조용호 두 재판관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을 공직자로 간주해 법 적용 대상이 되도록 한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김영란법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미래의 막연하고 추상적 위험성에 불과한 반면 법 시행으로 실제 발생하는 일반적 자유권의 제한 정도는 중대하고, 이 법으로 인해 언론과 교육의 자유가 사실상 위축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점 등을 들어 김영란법 일부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했다.필자도 김영란법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될 언론의 활동반경이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데 공감한다. 청와대와 국회를 상시출입하는 지역신문 기자들은 지역 주민들이 공공기관을 상대하며 겪는 민원이나 애로사항들을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곤 경우가 잦은데, 해석여하에 따라 부정청탁으로 오인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언론인을 제외하는 김영란법 개정안이 나온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일일게다.이제 합헌결정이 난 김영란법은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공은 다시 입법부와 행정부로 넘어갔다. 합헌결정이 난 만큼 입법부는 법률 개정을 통해 부작용이 예상되는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김영란법에 대해 4건의 법률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새누리당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 이완영(고령·성주·칠곡) 의원 등이 제출한 법률개정안은 특정 기간 김영란법의 수수 금지 품목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내용이고, 강효상 의원은 적용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사를 제외하는 대신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행정부는 국회의 법 개정전에 시행령을 어떻게 손봐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만약 김영란법이 이대로 두 달뒤에 시행된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당장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우선 김영란법 시행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곳은 농축수산물 업계다. 음식점과 선물 수요를 중심으로 1년에 6조 5천억원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어떤 민간연구원은 경제적 손실이 11조 6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반면에 김영란법의 취지가 관철될 경우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이익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OECD 평균 69점에 훨씬 못 미치는 56점으로, 34개 국가 가운데 27위, 만년 최하위다. 이 청렴도가 평균만 돼도 3%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고, 국가 브랜드와 경쟁력이 동반 상승한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또 실제로 하루 270억원, 1년에 10조원 가까이 식당과 술집에서 썼던 기업 접대비도 대폭 줄어든단다. 그럴 경우 접대보다 실력으로 경쟁하는 기업문화 형성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되려나 모르겠다.김영란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결정은 절대적으로 옳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 법률의 헌법위배 여부를 최종판단할 권한이 있는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을 헌법정신에 맞춰보니 크게 모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얘기일 뿐이다.머나먼 여정 끝의 김영란법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2016-07-29

검찰공화국의 민낯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들은 얘기중 가장 충격적인 얘기였다. 우리나라 최고권력기관이자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나서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조직이 있다고 했다.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돼 정권의 사정칼날이 서슬 퍼렇게 빛날 때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민정수석실 관계자와 점심을 같이 한 뒤 춘추관으로 돌아오면서 `공무원사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나온 얘기였다. 그는 “청와대라도 검찰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더니 “우리나라가 검찰공화국이 된 지 오래됐다”며 시니컬하게 웃었다. 놀랍게 여겨졌던 이런 현실이 현재진행형인가 보다. 새누리당 비박계 4선 의원으로서 당 대표선거에 출마한 판사 출신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다니 하는 말이다. 주 의원은 21일 한 방송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검찰권이 비대한 나라가 없다”며 “그런 반면에 검찰을 견제할 기구나 조직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상명하복의 조직특성을 가진 검찰이 국민의 권한위임을 받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통제에 제대로 따르지 않을 정도로 비대해졌다는 것은 가슴 서늘한 얘기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행하는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는 말 그대로 최고권력기관이다. 그런 청와대가 검찰권력을 확실히 제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검찰공화국이 출현할 판이다.뜬금없이 `검찰공화국`의 신화(?)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현직검사장 구속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현직인 진경준 검사장이 이금로 특임검사팀에 의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제3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특임검사팀이 밝힌 진 검사장의 혐의내용은 낯뜨겁다.진 검사장은 2005년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에게 4억 2천500만원 상당의 비상장 넥슨 주식 1만주를 받았으며, 다음 해 이를 되팔고 넥슨재팬 주식 8억 5천370주를 샀다. 그는 2015년 이를 전량 매도해 126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는 또 2008년 넥슨 측에게 넥슨 법인 제네시스 차량을 받았으며, 한진그룹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처남 명의로 된 청소용역업체가 일감을 몰아받은 의혹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진경준 검사장은 넥슨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차량과 돈을 스폰서 받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걸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박나는 바람에 도리어 쪽박차는 `희귀한` 케이스가 됐다.현직 검사장이 구속되자 검찰조직에 비상이 걸렸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은 대국민사과를 해야만 했다. 누구보다 청렴하고 모범이 되어야 할 고위직 검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공직을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했으니 입이 열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사실 현직 검사의 비리사건은 그동안에도 적지 않게 있었다. 다만 검사가 비리로 물의를 빚을 경우 사표를 낸 후 처벌을 받았기에 현직으로서 처벌받은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일 뿐이다. 실제로 2010년 그랜저검사, 2012년 벤츠여검사, 조희팔 뇌물 검사, 2013년 검찰 성접대 의혹, 2016년 홍만표·정운호 법조비리 등이 잇따랐고, 그때마다 검찰은 재발방지대책과 함께 자정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허사였다. 한술 더 떠 장관이나 고위공무원 인사를 위해 인사검증작업을 맡은 검찰출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처가 부동산거래에 관련됐다는 의혹과 함께 말썽이 된 진경준 검사장에 대해 부실검증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모양새는 사납기 그지없다. 이쯤 되자 국회에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여부가 논란거리다.새누리당은 “비리 한 두건 터졌다고 수사제도 바꾸는 건 안 된다”는 소극적인 입장인 반면 더민주당은 “검찰의 자정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라며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공수처 도입이든 뭐든 무슨 상관일까. 다시는 검찰공화국의 적나라한 민낯을 마주 대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2016-07-22

사드가 민심을 흔드는 이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성주배치 결정이 대구·경북민심을 흔들고 있다. 주민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정부가 사드 배치지역을 결정하면서 해당 지자체나 주민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특히 주민피해가 예상되는 전자파 등 사드 도입에 대한 실체적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은 채 지역 배치결정이 이뤄졌으니 `깜깜이 정책 결정` 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이는 지난 2013년 괌에 사드배치할 때와 비교해도 너무 대조적이다. 당시 미군당국은 자국령인 괌에 임시 배치된 사드를 영구 배치로 전환하기 위해 주민설명회를 열고, 공기나 수질 오염 범위, 식물 종별 피해 규모가 조사된 환경평가보고서까지 공개했다. 미군은 또 괌 주민설명회에 앞서 영상 지도로 사드 포대의 위치를 공개하고, 기지에서 내뿜는 전자파로 인해 레이더 앞 90도 각도의 통제구역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미군은 사드의 국내 도입 과정에서는 이런 절차를 전혀 밟지 않았다.이런 상황이니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민들을 설득해야 할 입장인 지역구 국회의원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장인 군수나 경북도지사마저 중앙정부 행태가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김항곤 성주군수는 “지자체는 공장 하나가 들어와도 인근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데 사드 배치라는 중차대한 국가적 행정행위를 성주군민들의 동의없이 진행할 수 있느냐”며 “이는 불법이자 원천무효”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역시 “어려운 일일수록 정부에서 먼저 (지자체에)알리고 상의해 군민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건 맞지 않다”고 성토했다.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가 대다수인 TK(대구·경북) 의원들 역시 단체로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에 대해 비판적인 성명을 내놨다. 특히 친박 핵심인 최경환 조원진 의원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의원,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의 곽상도 의원 등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당사자들까지 정부의 결정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역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성명에 서명했다는 것은 얼마나 정부당국의 일처리가 서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야당은 사드 배치와 관련, 정부가 국민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수단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을 따갑게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를 위해서는 국회 동의, 더 나아가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백승주(구미갑) 의원의 말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백 의원은 “국회의 동의보다는 국민의 동의절차가 필요하며, 그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주한미군이 중요한 자산을 가지고 올 때는 한미동맹조약과 소파라는 주한 미군지위에 관한 법을 통해 적합하게 하면 된다”면서 “우리 정부가 그 법에 맞게 조치한 것이면 국민에 대해 우리가 동의를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무기가 들어올 때마다 국민투표나 국회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어쨌든 이번 사드사태가 지역 민심 이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가 지역과 관련한 주요 국책사업을 결정할 때 법적절차의 정당성에만 포커스를 맞춰 밀어붙이는 데서 출발한다. 사드뿐만 아니다. 핵폐기물처분장, 핵발전소 등 국책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국책사업 해당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정부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심수습 매뉴얼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갖추고, 차근차근 사업을 추진하는 성숙한 정부가 돼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지역주민과 함께 울고 웃는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에 미리 협조를 구하는 것이 흐트러진 민심을 원만히 수습하는 비결이란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2016-07-15

`뜨거운 감자` 된 김영란법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오는 9월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영란법은 공무원, 사립대학 교수, 언론인 등이 제3자에게 고액 금품(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초과)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토록 하는 법이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부조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 내에서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공직자 등 뿐만 아니라 금품을 제공한 국민도 동일하게 형사처벌이나 과태료가 부과된다.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은 권익위가 지난 5월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부조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에 대해 각 3만원·5만원·10만원의 상한액을 정하면서 시작됐다. 이 발표가 나자 전국의 농·축·수산 및 화훼 농가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정부는 그동안 농·축·수산업 분야에서 자유무역협정(FTA)에 맞서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품질고급화 전략 정책을 펼쳐 왔다. 그래놓고 농·축·수산물의 판로를 막는 법령을 시행하려는 모양이 됐으니 농·축·수산업 종사자들의 반발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전에 농·축산·어업 농가들이 `유탄`을 맞게 된 꼴이다.특히 농어촌지역이 대부분인 경북지역 의원들은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법령 개정압력을 받아야 했다. 경북지역에서는 김종태·강석호 의원이 법 개정안을 내놓은 데 이어 6일에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완영(칠곡·고령·성주) 의원이 세번째로 김영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에`농·축·수산물`을 제외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김영란법의 제정취지 대로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타파해야 한다는 데는 국민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내수경기에 큰 영향이 예상될 뿐 아니라 농·축·수산물의 생산위축으로 인해 1차 산업인 농·축산·어업 농가에 커다란 타격을 주게 돼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확하다.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농·축산·어업 농가들의 피해가 얼마나 되랴 싶겠지만 추산되는 피해액이 너무 크다. 농·축산업계에서는 한해 5천여 억원, 대구 경북지역에서만 1천700여 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새누리당 이만희(영천·청도) 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오는 9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명절 선물수요가 크게 감소해 한우 4천100억원, 사과 1천296억원, 배 287억원의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한우는 국내 한우 사육의 22.3%를 차지하는 만큼 약 914억원, 사과는 전국 생산의 64%를 차지해 829억원, 배 또한 전국 생산의 9.5%를 차지해 27억원 등의 피해가 추정된다는 것이다.또 국내 산업 보호 차원의 개정과는 별개로 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언론사 기자와 사립학교 교원은 빼고, 대신 부정청탁 대상에서 제외된 국회의원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특히 김영란법 초안에는 언급도 없었던 언론사 기자가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법 취지와 거리가 멀고,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할 빌미를 줄 수 있어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법령 제정권이 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민원이란 명목으로 부정청탁의 온상이 되기쉬운 자신들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언론인 출신의 새누리당 강효상 의원이 “사회 통념상 공무원으로 볼 수 없는 기자와 교직원은 제외하고 지역구민 민원의 경우 국회의원을 법 적용에서 제외 받게 한 부분도 고쳐 수정안을 내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김영란법 제정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구체적인 적용대상과 방법에서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민생민본(民生民本)의 정신이 좀 더 고려돼야 할 것이다.

2016-07-08

중향평준화와 특권폐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상향(上向) 또는 하향(下向)평준화가 아니다. 중향(中向)평준화란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새롭게 제시한 소득양극화 해법이다.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29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야 3당에 국회의원 세비 동결 등 국회 특권 내려놓기 작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하면서 중향평준화를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향 평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이 가진 사람이 양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많이 가진 사람으로 분류되는 국회의원이 이 문제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이 문제가 되자 새누리당 지도부인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다시 중향평준화의 일환으로 세비동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30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소득 격차와 소득의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서는 포퓰리즘적 상향 평준화보다는 중향 평준화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세비동결을 검토해볼 때가 왔다고 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어 “지금 우리 사회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을 90%가 가져가는 양극화 현상이 있는데, 이 90%의 소득수준을 상위 10%가 받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포퓰리즘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있는 분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비 문제는 생활비가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중향 평준화`로 노동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열악한 여건에 계시는 하위 90% 분들의 생활 여건을 조금 더 낫게 만들어가는 일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이처럼 보수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에 앞서 고강도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혁신안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그 혁신안의 정신이 바로 중향평준화란다. 비대위는 전날도 소속 의원들이 8촌 이내의 친·인척을 보좌진에 채용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기로 한 방침을 밝힌데 이어 이날 `8촌 이내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법`제정으로 법제화하겠다고도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불체포 특권에 대해서는 `체포동의안 72시간 자동폐기`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의원 회기중 영장 실질심사 자진출석 의무화`조항을 신설토록 하는 구체안까지 발표했다.새누리당이 이처럼 특권폐지를 외치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왜일까.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이 이번 일을 기화로 야권으로부터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가족 보좌진 채용`으로 촉발된 특혜 시비가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만큼 이를 혁신의 고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란 얘기다.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인척 보좌진 채용도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그랬기에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공천과정에서 크게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사안이 국회의원 특권폐지운동이 쇄신운동과 맞물리면서 친인척채용이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선거판에 개인적인 신상정보나 일정을 모조리 알게되는 보좌진용에 믿을만한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피가 섞인 친인척을 쓰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어떤 국회의원이 국회에 입성하기 전에 이미 국회 보좌진으로서 일하고 있는 경우라면 초선 국회의원 입장에서 국회사정을 잘 아는 친인척 보좌진을 최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싶어질 법도 하다.어쨌든 소득양극화의 해법으로 중향평준화는 설득력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 수록 심화되는 폐해가 바로 소득양극화다. 이런 부작용이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켜 갖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소득양극화를 현실성없는 상향평준화로 해결하겠다는 건 턱없는 이상론이니 중향평준화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걸 어떻게 잘 실현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중향평준화를 특권폐지에 대입한 것은 새로운 시도다. 어쨌든 정치권이 그동안의 경직된 자세를 바꾸겠다니 그 변화하겠다는 마음을 국민들은 응원한다. 정치권의 중향평준화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 궁금하다.

20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