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첩첩이 쌓여있고 물은 돌고 돌아서 이제 길이 없는가 여겼더니 버드나무 그늘이 우거진데 아름답게 꽃이 피어있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더라.`(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
송나라 육유의 `유산서촌(游山西村)`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두운 현실이 끝나는 길목, 혹은 힘든 상황 뒤에는 좋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이번 기회에 나라를 한번 확 뜯어고치면 안 될까.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이 상황에도 여야는 서로 정치공세하느라 바쁘다. 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로 패가 갈려 사태수습책을 놓고 다투고 있고, 야당은 왠지 사태 수습보다는 파문의 확대재생산에 더 열심인 듯 하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정권말기만 되면 대통령 자신, 혹은 대통령 측근이나 아들 딸, 형제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감옥으로 향하는 부끄러운 풍속도를 언제까지 반복하도록 놔둬야 하나.
이 땅의 정치사를 돌이켜보자. 1945년 8월15일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이후 시작된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들에게 무척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보여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당 측근들의 부정부패에다 3·15부정선거를 저질러 하야했고, 뒤이어 집권한 장면 민주당 정권은 나라의 갈길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주도한 군부쿠데타를 맞고 말았다. 국가의 근대화를 꿈꾼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이 나라의 경제는 크게 신장시켰지만 민주적인 국가운영이나 인권보장에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결국 최측근인 김재규 안기부장의 총격으로 막을 내린 박정희 정권 이후 전두환 장군이 12·12 군부쿠데타로 세운 군부정권은 육사동기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까지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이후 군부정권하에서 야당과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던 김영삼 후보가 3당 합당이란 극약처방을 통해 집권에 성공, 최초의 문민정권을 세웠으나 임기말 IMF라는 국가적 경제위기와 아들 김현철씨의 권력형 비리로 국민적 비난을 맞았고, 이에 실망한 국민들은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에 대통령직을 넘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를 극복하고 남북대화에 힘써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으나 김홍일·김홍업·김홍걸 세 아들이 뇌물수수 등의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측근과 가족들의 포괄적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다가 대통령 본인이 자살하는 비극을 낳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형 이상득 의원과 처사촌 등의 뇌물수수로 물의를 빚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이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이처럼 반복되는 권력형 비리의 사슬을 끊어내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에게 책임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니 거국중립내각에 적합한 인물을 총리로 세우는 게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신임 총리가 거국중립 내각의 취지에 맞는 인물들을 장관으로 세워 내각을 구성한 뒤 국정을 운영케 하자. 그 다음 수순으로 국회 주도하에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을 바꾸는 거다. 여야와 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는 개헌특위를 만들어 공청회와 토론회 등으로 온 국민의 뜻을 모아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의 핵심은 말썽많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나 분권형 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거다. 큰 그림은 이런 방향이 옳다.
그럴 경우 국회에서 허구한날 여당과 야당이 서로 물고뜯는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여야가 내각에 함께 참여하는 권력분점형 내각은 서로 대화하는 정치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럼, 하나를 주고, 다른 하나를 받게 되겠지. 이렇게만 된다면 실로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했다 할 수 있으리라. 위기는 기회다. 정치권이, 이 말 한번 되새겨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