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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동산 대책을 위한 제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현 정부를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온 참여연대 조차 최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전면 전환 촉구’기자 회견문에서 “문재인 정부 3년간 20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땜질식’핀셋 규제와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으로 주택 가격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선언했다.이런 와중에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부동산·금융정책을 다루는 주요 부처와 산하기관 고위공직자 10명 중 4명은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6일 기자회견에서 “재산 신고내용을 분석한 결과 국토부와 기재부 등 고위공직자 107명 중 36%인 39명이 다주택자였다”면서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국토부, 기재부, 금융위 등에는 다주택 보유자나 부동산 부자를 업무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부동산정책의 헛발질을 막으려면 역대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집값 상승률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는 게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위례, 판교 등 2기 신도시건설을 발표했던 노무현 정부시절 재산세인상, 종부세 도입, 양도세 중과 등 세제를 통한 규제와 분양권전매금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시행, LTV강화, DTI도입,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 대출 및 재건축제한 등으로 집값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100% 가까운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 부동산가격이 가장 안정됐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길음, 아현 등 뉴타운개발, 강남 세곡동·내곡동 보금자리 아파트 건설, 도시형 생활주택 등이 공급됐고, 양도세 중과폐지, 세율인하, 일시적 1가구2주택 보유기관 완화, 종부세 합산배제, 투기지역 해제, 후분양제 완화 등으로 아파트분양을 촉진하는 정책이 추진됐다.집값은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했다. 그랬던 집값이 3기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문재인 정부 들어 양도세 중과, 종부세 인상, 취득세 인상 등 세제 규제와 재건축안전진단 강화, 민간택지 본양가 상한제 부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 신 DTI, DSR 도입 등 대출 및 재건축규제를 강화하고 나서자 다시 집값이 뛰어올랐다. 부동산가격 상승을 통한 불로소득을 유달리 혐오했던 노무현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시절 집값이 오히려 더 많이 올랐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자 팩트다.주택시장 안정대책은 보유세 강화, 공급 확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보유세 강화는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를 합리적으로 산정하면 된다. 또 핀트가 어긋나있는 공급확대책은 바로잡아야 한다. 시장경제 원리상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있는 곳에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데, 현 정부는 엉뚱하게 그린벨트를 해제해 3기 신도시를 추진하려한다. 이는 환경을 파괴하고, 원거리 출퇴근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정책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경제학 격언을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한다.

2020-08-06

노시보 효과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한민국을 밑바닥부터 흔드는 정부정책이 있다면 바로 부동산정책이다.국회는 30일 오후 본회의에서 이른바 임대차 3법의 핵심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재석 187인, 찬성 185인, 기권 2인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인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이 법안들이 토론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본회의에 넘겨졌다는 이유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20대 국회에서 부동산 관련 법안의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있었으나 야당이 반대해 처리되지 못하면서 지금의 부동산 폭등이 나타났다”고 미래통합당에 책임을 돌렸다.통합당의 반응은 격앙 일색이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청와대 청부입법 거수기”, “자충수”라고 비판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전세제도가 소멸하고, 주택 임대인을 법의 보호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고, 임대인은 적이고 임차인은 내 친구라는 선언을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언론에서도 여야 간 합의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개정안에 따르면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를 계속 두는 것보다, 한 차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총 4년(2년+2년)을 거주한 세입자를 무조건 내보내는 것이 이득이 된다. 새로운 세입자를 들일 때에는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오히려 전월세 폭등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의 전·월세 가격 급등은 피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세입자들이 4년마다 쫓겨나게 만들고, 4년 주기로 전·월세 가격 급등이 벌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실제 과거 노태우 정부 때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 1년 반이 지난 1989년 7월을 기준으로, 전국의 전셋값은 노 대통령 취임 이전과 비교해 28.3% 올랐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1989년 12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전세 계약 기간을 기존의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그러나 집주인들이 2년 치 보증금을 한꺼번에 올리는 바람에 거리에 나앉은 가장들이 자살하는 등 커다란 사회 혼란이 빚어졌다. 앞으로 4년 마다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세입자 주거 안정 보장 기간을 4년이 아니라 한국의 학제가 6년 단위(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사이클로 돌아가는 상황을 고려, 6년의 거주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다.무엇보다 22차례에 걸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잇따라 실패했다는 점에서 노시보(Noceobo)효과가 우려된다. 노시보 효과는 효과 없는 약도 환자가 약효를 믿으면 병세가 개선되는 현상인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의 반대말로,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물질에 의해 병이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섣부른 법 개정은 노시보 효과를 더욱 강화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이래저래 176석의 절대 다수를 앞세워 협치노력 없이 무작정 내달리는 국회가 걱정스럽다.

2020-07-30

다시 불붙은 행정수도 논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완성이 필요하다며 국회와 청와대,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제기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며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의 대대적인 세종시 이전이 필요하다며 행정수도 완성을 제안했다.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것은 천도(遷都)라 해서 예로부터 나라의 중대사로 여겨져왔다. 천도의 이유는 흔히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외적의 침입, 둘째 국가발전이나 정치적 목적, 셋째 자연재해다. 근현대 들어서는 외적 침략보다는 국가 균형발전을 주된 목적으로 천도를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에 국가 균형발전을 근거로 천도를 시도했으나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사실상 무산됐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내려진 위헌결정 이유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불문헌법이며, 수도이전은 헌법개정 사안인데 국회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사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은 나라안에 극심한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구 수도에 오랫동안 터전을 내린 기득권층이나 일반 백성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제기된 여당발 ‘행정수도 완성’주장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대표는 “부동산 투기대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나온 국면전환용 주장”이라고 비판했지만 미래통합당 4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이 행정수도 완성에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을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여론조사를 통한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며 찬성입장을 밝혔다. 여당에서는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이나 이제명 경기지사, 당대표 선거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 최고위원을 지낸 김두관 의원 등이 전폭적인 지지입장을 밝힌 상태다. 김 원내대표는 23일 행정수도 위헌 논란에 대해 “시대가 변하고 국민적 합의가 달라지면 헌재 판결도 바뀔 수 있다”고 했다. 행정수도 이전논란으로 야기될 후폭풍에 대해서까지 상당부분 논의가 진전된 듯 보인다.정략적 차원에서 출발했다해도 수도권집중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행정수도 완성주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미래통합당도 여당의 주장이라고 무작정 반대만 할 게 아니다. 수도권의 인구집중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행정수도 이전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대책 국면전환용이든, 길거리 국장 퇴치용이든 나라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못할 게 없다. 행정수도 완성제안이 찬반논란으로 흐른다면 여당의 국면전환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게 아닌가. 그럴 바에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예단한 여당의 페이스를 흩뜨리기 위해서라도 야당이 행정수도 완성제안을 전격 동의하는 암도진창(暗渡陳倉)의 계를 실행하면 어떨까.

2020-07-23

숙명론적 자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사건이 여의도 정치판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사회운동가이자 여권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자살론’을 저술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 및 유형을 4가지로 나눴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약해졌을 때 일어나는 이기주의적 자살은 과도한 개인주의가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연대가 너무 강화됐을 때 나타나는 자살, 예를 들어 자폭 테러, 순장, 카미카제 등은 이타적 자살이다. 아노미적 자살은 무규제(normlessness) 상태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살로 실직한 가장의 자살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적으로 규제가 너무 약할 경우의 자살이다. 사회적 규제가 너무 강할 경우의 자살은 숙명론적 자살로,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완전히 막혀 극단적인 빈곤을 평생 대물림으로 강요당하는 극단적인 양극화에 속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다. 묘사하자면 “무슨 노력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이게 숙명이야”라는 절망감이 자살에 이르게 한다.뒤르켐의 분류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숙명론적 자살에 해당할 듯하다. 그가 자살한 이유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추행 피소가 엄청난 충격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가 성추행으로 피소된 지 하루만에 자살한 채 발견된 것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전면 부정하는 모순에 맞닥뜨리면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리란 추측이다.무엇보다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이 성추문으로 하차하게 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장례식장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며 욕설까지 퍼부었던 이해찬 대표도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다.야당은 이때가 기회라는 듯 특검과 국정조사를 거론하며 여당에 대해 맹공을 펼치고 있다.무사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결백함이나 명예를 위해 배를 칼로 그어 자살하는 행위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거나 전쟁에서 진 장수가 살아남았을 때에 모든 일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루어졌던 이 행위는 고결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근대 일본에선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문학 작가마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할복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할복 자살 덕분에 일본 내에서 자살이란 행동은 꽤나 숭고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해도 자살을 했을 경우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한국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 천 년 전부터 죽음에 대한 금기가 심하다. 유교의 정신 역시 죽음을 금기시한다.박 전 시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로 목숨을 끊었지만 어쨌든 피해 진상규명 절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민여론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쪽이 많다. 그래야 제도적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구제가 가능해질 것 아닌가.

2020-07-16

노영민의 오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노자 도덕경에‘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나온다. “빛(光)을 누그러뜨리고(和), 이 세상의 세속(塵)과 함께(同) 하라”는 뜻이다. 배우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결정만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똑똑한 광채를 줄이고 세속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옳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나의 광채를 줄여서 주변의 빛과 조화를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가정도, 기업도, 나라도 온전치 못할 것이란 경고가 담겼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범한 실책이다.노 실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도와 다르게 서울의 아파트를 남겨둔 채 청주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 서울의 아파트를 지키려는 모습으로 비쳐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노 실장의 공언처럼 보유한 아파트 2채를 모두 매각하면 그는 무주택자가 된다. 다소 과하다싶은 대처였지만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 실장이 아파트를 청주-반포 순으로 처분해 양도세 3억원 가량을 절감하게 됐다는 미래통합당의 따가운 분석이 나오면서다.그가 만약 반포 아파트를 먼저 매각했다면 8억2천만원의 양도차익이 나오고, 이럴 경우 양도세 중과세율(42%+가산세)이 적용돼 4억원 가량의 양도세가 발생한다. 반면 청주아파트를 먼저 판 후 반포 아파트를 팔면 각종 세제 혜택으로 5천600만원의 양도세만 내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가뜩이나 서울 아파트값 폭등으로 사나워진 부동산 민심이 뒤집혔다. 누리꾼들은“이런저런 핑계로 잘도 빠져나간다. 내로남불 부끄럽지 않느냐” “양도 차액은 기부하라. 그게 진정한 뒤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 라고 꼬집었다.사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정부 초기부터 말도, 탈도 많았다. 20여차례에 걸쳐 “집값을 잡겠다”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천정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동산정책 입안에 관여한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로 드러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성 위기로 치달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청와대 참모진 중 10여명이 다주택자였고, 고위 공직자 750명 중 248명이 2가구 이상 주택자였다. 참여연대는 정부 부처뿐 아니라 부동산 관련 입법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 상당수도 다주택자라고 폭로했다. 실제로 이들 위원회 소속의원 56명 중 16명이 다주택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당인 민주당을 지지해 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민주당 내 다주택자 의원 42명과 일부 시세차익 내역을 공개하며 비판을 쏟아냈다논어에서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가지인 데, 첫째는 먹고 사는 경제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지키는 군대, 셋째는 백성들의 신뢰”라고 답했다. 공자는 그 중에서 백성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온다.

2020-07-09

통합당, 아쉬운 결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21대 국회 출발부터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에 밀려 맥을 못추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76석의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원구성을 강행하고,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의 비호 아래 여당의 폭거에 반발하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 의원들을 상임위에 강제배정하고, 의사일정도 단독 운영에 나선 마당이다. 급기야 38조원 규모의 3차 추경 예산도 통합당의 국회 일정 보이콧을 기화로 민주당이 3일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이쯤되면 미래통합당이 야당의원으로서 뭘 할 수 있을 지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거대여당에 맞서서 싸워야 할 미래통합당에게 돌파구란 게 별로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미래통합당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의원직 총사퇴’를 비롯한 초강경 대응과 국회내에서 실리를 챙기며 정책투쟁을 펼치는 실리론 두 갈래 길밖에 없어 보인다.초강경 대응론은 어차피 국회 내에서의 투쟁은 안 되는 상황이니 일단 의원직 총사퇴를 하고 일당독재의 부당함을 국민들에게 호소해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가져오자는 주장이다. 야당으로서의 독기나 결기를 여당에게 확실히 보여줘 판을 새로 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국민들의 호응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경우 퇴로전략을 찾기 힘들고, 정국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책임을 덮어쓸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또 하나는 여당의 횡포에 직접적으로 맞서지 말고 실리를 챙겨서 정책어젠다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자는 실리론이다.미래통합당은 일단 실리론에 힘을 실었다. 무작정 여당의 정책에 대해 반대와 비판만 한다고 해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 수 없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은 듯 보인다. 그래서 이번 여당의 일방적인 국회 원구성 사태국면에서도 강경대응으로 판을 깨기 보다 3차 추경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후 국회안에서 추경예산의 불합리성이나, 공수처 출범에 대한 비판 등 명분있는 목소리와 주장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들일 모양이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1일 페이스북에서 ‘폭주 기관차의 개문 발차, 세월호가 생각난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여당의 일방적인 원구성과 38조원에 이르는 추경예산안 부실심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 역시 역시 실리론에 맞물린 여론전의 일환으로 읽힌다.다만 미래통합당이 실리론을 선택했다 해도 야당으로서의 결기가 아쉽다는 보수층의 평가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 나서기 전‘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라고 한 말처럼 강렬한 대여투쟁을 바라는 민심을 느껴야한다. 이는 통합당이 야당이면서도 야당답지않게 느슨한 대응을 해왔다는 질타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사실 여당이 야당을 배제하고 일당독재의 길로 달려간다면 제1야당 국회의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야당의원이라면 극약처방인‘의원직 총사퇴’카드라도 언제든지 던질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통합당에 대해 야당다운 결기를 아쉬워한다.

2020-07-02

통합당의 산타클로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미국의 우박사과를 둘러싼 일화다. 미국 뉴멕시코주 고산지대에서 사과를 재배하던 농장에 우박이 내렸다. 수확을 앞두고 미리 판매계약을 마친 사과들이 우박피해를 입어 상처투성이가 돼 버린 것이다. 주변 농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넋을 잃고 힘들어할 때 영거라는 농부가 상처입은 사과를 서둘러 구매자들에게 보내면서 편지 한 장을 같이 보냈다. “우박이 내려서 사과가 뜻밖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의 상처는 고산지대에서 자란 특산품이란 증거입니다. 고산지대에서는 가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그 때문에 사과 속이 조여져서 맛있는 과당이 만들어집니다. 맛이 없으면 전액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편지와 함께 상처는 있지만 맛있는 사과를 받은 고객들은 한 명도 환불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이것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주는, 산타클로스를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다.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지만 관점을 바꾸면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생기고, 그리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존재일 수 있다.21대 국회가 원구성을 시작하자마자 파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院) 구성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끝에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미래통합당이 향후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특히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 결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여야 협상 채널 조차 사라져 국회정상화가 언제쯤 가능할 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태에 빠졌다.다수당이 단독으로 개원 국회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7대 국회 시절이던 지난 1967년 이후 53년 만이다. 여야는 그동안 법사위의 위원장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해왔다. 이번 사태는 법사위의 국회법상 권한인 체계·자구심사 권한으로 번번이 야당에 ‘발목잡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민주당이 원활한 입법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빚어진 사태다. 민주당은 오는 19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남은 12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끝내고 21대 국회 원구성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이에 맞선 통합당은 여당의 입법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선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며, 여당의 일방적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을‘1당 독재’로 규정하고 향후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예전 통합당이 여당이었던 시절 법사위원장을 보장해줬던 전례마저 무시한 채 민주당이 법사위원회를 장악하려고 하려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어떤 무리수를 둬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낼 자신이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암울해 보이는 이 상황이 오히려 민주당의 무릿수를 응징할 통합당의 산타클로스를 만들어야 할 때다.

2020-06-18

두 마리 토끼 잡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출범하면서 진로선택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때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 정국을 이끌었고,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여당과 야당을 넘나들며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좌클릭에 대한 우려가 당내에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에는 미래통합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와 김 비대위원장을 ‘용병’ ‘히딩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원 지사는 이날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 강연자로 나와 “앞으로는 용병이나 히딩크같은 외국 감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에 의한 승리를 해야 한다”라며 통합당의 혁신 작업을 추진중인 김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원 지사는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던 김 위원장을 겨냥한듯 “보수의 이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라며 “보수의 선택은 지난 100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우리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은 보수 정당이고, 보수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해 온 세력이니, 외부 세력이 아니라 보수 자체의 힘으로 정권을 되찾아오자는 얘기다.좌클릭 정책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섰던 김 위원장은 급기야 당내 중진의원들과 만나 “보수의 가치를 부정한 게 아니다”라며 다독여야 했다.지난 10일 국회서 열린 비대위원장·중진의원 회의에는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 정진석, 서병수(이상 5선), 권영세, 박진, 이명수, 홍문표(이상 4선)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중진의원들은 대체로 보수노선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좌클릭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적극 표명했다. 중진 의원들은 “‘보수’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근본 가치를 유지하면서 진취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박 진) “확실한 당의 좌표가 설정되면 조금 서운하고 부족해도 ‘가자’하는 합창이 나올 수 있는데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우려스럽다” (홍문표) “김 위원장이 기본소득제, 전일보육제 등 이슈를 선점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이슈 선점에 따른 당의 정책 대안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이명수) 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아이러니한 것은 통합당 중진들이 김 비대위원장의 ‘기본소득’ 카드를 선뜻 받아들지 못하는 사이에 더불어민주당 대권잠룡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고 나서는 바람에 범여권내 ‘기본소득제 도입’대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구도가 형성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김 비대위원장 체제 출범이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했지만 4주째 하락한 반면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총선 이후 최고치인 28.7%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이는 김 비대위원장의 ‘중도 공략 전략’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추후 계속될 미래통합당의 보수와 중도, ‘두 마리 토끼잡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2020-06-11

의문 아닌 질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베스트셀러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 토니 로빈스는 넬슨 만델라에게 물었다. “그 오랜 감옥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습니까.”만델라는 “난 견뎌냈던 적이 없다오.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때부터 “의문하지 말고, 질문하라!”는 말로 사람들 안에서 잠들어있는 거인을 깨우라고 설파하기 시작했다.의문하는 사람은‘이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질문하는 사람은‘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만델라는 ‘나는 분명히 건강하게 걸어 나갈 것이다. 그러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하지?’를 질문하고 있었다. 이것이 만델라가 70이 넘어 감옥에서 나와서도 건강하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공수처법 표결 당시 당론과 달리 기권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 화두가 되고 있다. 당론에 따르지 않은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당연하다, 반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투표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논란이 더이상 확산돼선 안 된다며 입단속에 나섰지만 당내에서조차 이번 징계가 헌법과 충돌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해영 최고위원은 이 대표 면전에서 “당론에 따르지 않은 국회의원의 직무상 투표 행위를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에 포함시켜 징계할 경우 헌법 및 국회법의 규정과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시민단체인 경실련도 “국회의원의 양심의 자유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헌법과 국회법이 부여한 권한을 위반한 것으로 철회되어야 마땅하다”고 했다.그 와중에 금태섭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입장문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지난 선거법 개정안이 잘못됐다는 점을 명확히 했고, 정치인은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을 이끌어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지난 선거법 개정안은 위성정당을 양산하고 우리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린 악법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당론에 따라서 찬성투표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금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또 공수처법의 경우 자신이 형사소송법과 검찰 문제의 전문가로서 공수처를 다루는 사개특위에서 토론기회를 달라고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고, 토론이 없는 결론에 무조건 따르는 것은 자신이 배운 모든 것에 어긋나기에 따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등에 대해서 당 지도부가 함구령을 내린 데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이미 총선 불출마로 국회를 떠난 금태섭, 그는 자신에 대한 징계결정과 당지도부의 함구령에 대해 “이게 과연 정상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또 묻는다. “우리 정치는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그의 건강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미 국민들 마음속에 있다.

2020-06-04

끝나지 않은 대통령의 비극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이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이들의 운명은 왜들 이럴까. 정치부 기자로 30여년을 지냈지만 이런 생각이 들때면 마냥 서글픈 마음이 든다.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 이후 11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교육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과 같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동시에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추구해 반발을 샀고,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돼 4·19 혁명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잠시 대통령을 맡았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관권·금권선거, 3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해 독재자의 길을 걸었으며,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생을 마감했다.최규하 대통령은 국무총리로 재직하다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케이스이고, 전두환 등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10·26 사태 이후 하나회를 통한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았고, 1980년에는 5·17 내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995년 후임인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구속 기소됐으며, 반란 수괴죄 및 살인, 뇌물 수수 등으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오랜 야당 생활끝에 정권을 잡은 김영삼 대통령도 차남 김현철이 구속되는 등 끝은 그리 좋지 못했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정권 말기에는‘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이 모두 권력형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구속되며 큰 곤욕을 치렀다.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한 뒤 고향 봉하마을에 귀향했으나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친형 노건평 등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사저 뒷산의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투신하는 비극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5년이 지난 2018년 뇌물수수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임기 중 탄핵된 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등 18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이리저리 따져보니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은 모두 옥고를 치렀거나 옥고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과 주변사람들의 비리를 캐는 데 권력의 힘을 투사한다면 어떤 사람이 버텨낼 수 있을까. 명백한 개인비리는 당연히 처벌대상이 돼야겠지만 정치판에서 벌어진 잘못은 정치적인 승부 자체로 마무리짓는 것이 좋다. 그래야 대통령마다 예외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을 끝낼 수 있다.현재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면주장도 아마 그런 배경에서 일게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2020-05-28

아쉬운 20대 국회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20일, 국회는 여야가 합의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비롯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법안, n번방 방지법, 공인인증서제도 폐지를 위한 전자서명법 개정안 등 100여 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이날 기준으로 계류된 20대 국회 법률안 1만5천262건은 20대 국회 임기만료일인 29일 기점으로 모두 폐기된다. 통과된 법안 가운데는 논란거리도 있고, 박수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민식이법이었다. 지난해 9월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초등학생 김민식 군 사건 이후 국민적 관심 속에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민식이법’은 기준 속도보다 천천히 달려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운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해 과잉 처벌이란 논란을 불렀다. 결국 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져 30만명이 넘게 동참했고, 청와대가 해명에 나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또 텔레그램 등의 메신저 앱으로 ‘스폰 알바 모집’같은 글을 게시해 중학생 등 미성년자들을 유인한 다음,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인 ‘n번방’사건을 막기위해 ‘n번방 방지법’역시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 국민의 사생활 영역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더구나 방송통신위원회의 해명처럼 이 법이 공개정보에만 적용된다면 텔레그램에서 발생된 n번방 사건도 막을 수 없어 n번방 방지법 자체가 의미 없다는 지적도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다만 이날 통과된 과거사법 개정안과 김관홍법은 때늦었지만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우선 과거사법으로 인해 2010년 임기만료로 해산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새로 출범하고, 형제복지원 사건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등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 발생한 국가 인권유린 사건들에 대해 진상을 조사할 수 있게 됐다. 4·16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에 나섰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민간 잠수사를 피해 구제 범위에 포함하는 법안인 ‘김관홍 잠수사법’ 역시 시대의 아픔을 보듬은 법안으로 평가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 잠수사들은 3개월여 사투를 벌여 희생자 235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으나 골괴사 등 잠수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지방의회 사무처 직원 인사권독립 및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충, 자치단체 부단체장 증원, 특례시 제도운영 등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자치경찰 보강을 통한 자치기능확대를 보장하는 통합경찰법개정안 등이 또 다시 폐기되고 말았다는 점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분권형 개헌’이 무산된 후 국가균형발전정책의 후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당초의 국정목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관심을 촉구한다.

2020-05-21

조국 방패론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힘써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을 둘러싼 공방이 정치권에서 뜨겁다. 심지어 윤미향 당선자는 페이스북에 “딸이 여러 언론의 취재를 받고 있다”면서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적어 ‘조국 방패’를 내세웠다. 조 전 장관 때처럼 해명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인데, 이런 의혹들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하기보다 일부 언론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양상이다.한마디로 정치적인 공세라는 주장으로 맞서겠다는 의도다. 이처럼 진보진영에서 위기에 처하면 조국 전 장관을 방패로 소환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해 1월 조국 전 장관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으로 편지글을 띄웠다. 진보 진영에서 목소리가 큰 조국 전 장관 지지자들의 지원을 기대한 것으로 분석된다.정치부 기자로서 오랜 세월 지내온 필자는 정치권이 서로 상대방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만 열을 낼때면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듯한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공금횡령이나 비리의혹이 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 지 방법이나 절차는 너무 뻔하다. 객관적인 3자의 검증을 거쳐 의혹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있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대로 처리하면 된다. 그게 상식이다. 다른 길로 빠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판에서 한쪽 당 구성원이 당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을 만한 사고를 쳤을 경우 상황은 확 달라진다. 구성원이 했다는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진상조사나 당사자의 사과 등의 조치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 오히려 잘못을 부인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예 여러 의원들이 함께 나서서 성명서 등을 통해 상대 당쪽의 주장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상대방이 잘못을 구체적으로 꼬집어 지적해도 거기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지 않고 그런 것은 추후 수사당국 등에서 조사하면 밝혀질 일이니 이러쿵저러쿵 뒤집어 씌우지 말라고 부르짖는다. 그런 공방 와중에 여론이 조금 수그러들면 슬그머니 사고친 당사자에게 가벼운 징계를 먹이고, 수습을 시도한다. 뜨겁던 비난열풍이 식었을 때 쯤이면 언론에서도 새삼스레 악을 쓰며 비난하기 쉽지않다는 걸 노리는 것이다. 이런 물타기 전략은 정치권에서 매우 흔한 반면 유용하다. 윤미향 당선인의 기부금 횡령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역시 이같은 도식에 너무 잘 들어맞는듯 보인다.14일에도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등 16명이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공세 중단을 촉구했다. 야당이 제기한 회계 부정 논란에 대해서는 ‘제도적 개선 대상’이라고 치부했다. 과반을 훨씬 넘어선 여당의 조국 방패가 너무 두껍고 단단해보인다.

2020-05-14

보수가 나아갈 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보수야당 미래통합당의 미래가 막막해 보인다. 더구나 4·15총선에서 과반의석도 지키지 못한 통합당을 전폭 지지한 대구·경북민들은 더욱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돈이 될 만한 4차산업 중점사업들은 모조리 호남지역이나 충청지역으로 배정되고 만다.차세대 다목적방사광 가속기 후보지로 신청한 포항지역이 탈락하고, 전남 나주와 충북 청주가 후보지로 선정된 것이 이같은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호남지역이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니 말할 게 없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처하는 충청권에도 그럴듯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실적으로 표심을 끌겠다는 복안이 깔려있어 보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방사광가속기와 관련, 경북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긴급 미팅을 갖고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힘써줄 것을 요청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경북지역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후보지 탈락 직후 이 지사가 밝힌 입장문에서도 잘 드러난다.우리 지역은 19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건립된 이후 25년간 가속기 운영에 필요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원 등 가속기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새롭게 유치된다면 명실공히 가속기 클러스터 구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었다. 정부에서도 오로지 국가 과학기술연구와 산업발전을 고려한다면 경북 포항이 최적지가 될 것이란 점엔 동의했으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러니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결과라는 심증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이 와중에 임기완료를 앞둔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7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당의 가장 큰 패인은 정권의 현금 살포였다고 주장했다. 심 원내대표는“선거 이틀 전부터 아동수당을 40만 원씩 뿌려댔고, 코로나 지원금을 4월 말부터 신청하라며 대통령부터 나서서 100만 원씩 준다고 했고, 기획재정부에서 50%로 잡았던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며 “앞으로는 모든 선거를 앞두고 정책과 제도의 이름으로 공식적인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어 어설픈 세대교체를 앞세운 공천 실패와 막말 파문, 황교안 전 대표의 리더십 등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지난 6일 무소속 윤상현 의원 주최로 열린‘4·15 총선 평가와 야권의 향후 과제’세미나에서 도 보수야권의 패인이 거론됐다.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자유’를 중요시하는 보수 세력이 왜 인권 자유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진보진영의 전유물인 것처럼 넘겨줬느냐고 질타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보수가 나아갈 길은 진보의 가치를 배격하는 게 아니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가 가야 할 제3의 길은 진보 우파라는 것이다.보수의 참패에는 이유가 있다. 해답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제시된 해답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게 보수의 가장 큰 딜레마다.

2020-05-07

사랑 따로 결혼 따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70년대 결혼 풍속도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고시공부를 하는 남자 애인을 위해 공장에 다니는 여자 애인이 열심히 돈을 벌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한다. 남자는 몇 번의 도전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고시에 합격한 남자 애인은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복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변심한다. 그는 많은 희생을 한 여자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뻔하디 뻔한 통속적인 스토리다. 이같은 출세지향적인 풍토가 만연해지자 이를 묘사한 말이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미래통합당이 바로 그 짝이다.대구·경북지역은 미래통합당의 본산이다. 지역구 25개 가운데 복당을 추진중인 대구 수성을 홍준표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24개 지역구에서 모두 통합당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통합당의 공천이 잘못됐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많았겠지만 지역민들은 통합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여당에 맞서 싸울 야당이 힘이 부족해서 되겠느냐는 심산에서였으리라. 문제는 지역민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통합당이 정작 자신의 운명을 정하는 비대위나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는 대구·경북지역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에게 나이 든 어르신들이 설득조로 내놓는 이 얘기에는 ‘사랑은 감성, 결혼은 이성(현실)’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데 과연 이 논리가 합당한가.통합당은 여당이 180석을 얻는 동안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간신히 넘긴 10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어떻게든 지지세를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구·경북에서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 참패한 통합당이 외연을 넓히려면 누가 당의 중심이 돼야 할까. 통합당 중진들은 대구·경북은 중심에서 빠지고,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올 만한 세력이 앞장서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한다. 당의 가장 핵심적인 지지기반은 대구·경북지역인 데,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뒤로 빠져 있으란 얘기다. 수도권의 민심을 끌어오기 위해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배제한 채 당권과 대권다툼에 혈안이 된 몇몇 이들에게 당의 운명을 맡기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통합당은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 대안을 갖춘 야당, 중도적 보수를 포용하는 폭넓은 보수가치의 채택 등 개혁과 쇄신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통합당은 오히려 자신들을 뜨겁게 지지하는 TK지역의 민심을 등에 업고, 수도권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개발과 보수가치의 확장에 힘쓰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수도권 민심을 공략할 수 있는, 젊고 참신한 대권 후보를 내세워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한다. 무엇보다 통합당이 바로 서려면, 우선 총선 직후부터 언론에 떠도는 ‘대구·경북지역 패싱론’이 현실화되는 걸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산토끼보다 집토끼가 우선이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순리다.

2020-04-30

홍준표의 선택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4·15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민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에 올랐던 게 바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보였다. 돌이켜보면 대구지역에서는 홍 전 대표의 총선 무소속 출마 자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홍 전 대표가 출마한 대구 수성을 지역구는 지난 대선 때 이인선 후보가 당원협의회장을 맡아 홍 전 대표에게 대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냈던 곳이다. 홍 전 대표가 이 지역에 출마할 결심을 굳힌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자신을 위해 뛰었던 후보가 공천을 받았는데, 당 대표와 대선후보까지 지낸 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니 홍 전 대표와 맞닥뜨린 이인선 후보 입장에선 배신감이 적지않았으리라. 그래서일까.양측의 선거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총선 하루 전날 선거전이 한창이었던 대구 두산오거리에서 양측 선거관계자들을 만났다. 홍 후보 측은 “홍 전 대표를 국회에 보내야 대구·경북도 차기 대통령 선거에 주자를 낼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통합당에서 무소속 출마한 후보의 복당을 절대 받아주지않을 텐데 대선후보로 뛸 수 있겠느냐”며 “전황이 어려운 수도권 등지에서 통합당 후보들을 지원함으로써 당에 기여한 뒤 대선에 출마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당시에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의 ‘탈당자 복당 영구 불허’선언이 나온 상황이었기에 이 후보 측에 무게가 실렸다. 어쨌든 홍 전 대표는 38.5%를 얻어 이인선 통합당 후보(35.7%)를 근소한 차이로 꺾었다.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 180석, 통합당 103석이란 충격적인 성적표가 나왔다. 그는 언론에서 통합당 참패 원인을 묻자 잘못된 공천과 선거메시지 부재 두 가지 때문이라고 신랄한 평가를 내놨다. 우선 당내 통합 공천이 안 되고, 당권 강화 공천을 했다는 것이다. 문 정권과 대적하는 선거인데 마치 당내 무소속하고 싸우는 선거로 변질을 시켰으니까 선거에서 이기기가 어려웠다는 비판이었다. 특히 선거메시지와 관련, “당 지도부가 갈팡질팡했고 오락가락하는 등 일관된 메시지가 없어 도대체 문재인 정권 심판 선거인지 야당을 거꾸로 심판하는 선거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은 통합당 지도부에게 뼈아픈 질책이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홍준표 당선자의 직설적인 화법에 강골 이미지를 좋아한다. 또 날카로운 정치감각과 상대방의 정곡을 찌르는 혜안, 정세분석능력 등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 많이 따르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의 단점도 명확하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쏟아내는 특유의 막말논평은 자제돼야 한다. 보수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 당선자는 앞으로 포용과 협치의 리더십을 새롭게 가다듬어 선보여야한다. 복당과정에서 당내 반발세력을 설득하고, 새로 구성될 지도체제와 원활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이미지 변신을 꾀해야 한다. 그래야만 홍준표를 지지한 대구·경북민의 염원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2020-04-23

미래통합당의 성공과 실패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성공했지만 전체 판도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에 참패했다. 원내의석 과반수를 넘어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허용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미래통합당은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비니트 데사이 교수팀이 우주왕복선 성공과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틀란티스호와 챌린저호를 비교·조사했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아틀란티스호는 2002년 발사 준비 당시 절연체가 고장 나고 대기권의 저항을 돌파하는데 필요한 증속 로켓의 왼쪽 부분이 손상됐어도 발사에는 성공했다. 그 결과 발사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후속 조사나 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챌린저호는 절연체가 분리돼 고장 나는 바람에 기체가 폭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다. 챌리저호 사건 이후 우주선들은 문제가 생기면 즉각 발사시간을 연기하게 됐으며, 철저한 후속조사로 우주선 발사 시스템에 29가지 보완 조치가 취해졌다. 미국 우주왕복선 개발의 역사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확실한 ‘반면교사’가 됐다는 것이다.미래통합당 역시 이번 총선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이같은 맥락에서 다시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대구·경북지역 25개 선거구에서는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한 대구 수성구을을 제외한 전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가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후보 역시 통합당 복당을 전제로 선거에 나섰으니 사실상 TK지역은 25개 의석 모두 통합당이 차지한 셈이니 부분적으로는 성공이다. 그러나 전체 판도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당과 함께 180석을 확보했으니 통합당 입장에선 너무나 뼈아픈 실패요, 패배다. 더구나 차기 대권경쟁에 나설 대다수의 통합당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흐드러진 벚꽃잎처럼 떨어져 내린 게 너무 아프다. 마땅한 대선주자 하나 제대로 국회에 입성시키지 못한 제1야당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 통합당이 이번 총선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을 만한 체질 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민주당에 빼앗긴 민심을 되돌리기 어렵다.흔히 어떤 사회를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나눈다면 6대4 정도로 나뉜다. 그럴 경우 보수당이 대체로 정권을 잡게되지만 큰 실책을 할 경우 실망한 보수표가 진보에 힘을 실으면서 보수와 진보 양진영을 오가는 권력교체가 이뤄진다. 그리 길지않은 민주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바로 이같은 양상으로 정권교체를 해내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이같은 양상의 정권교체와 함께 정치가 발전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욕심일까.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미래통합당에 조언한다. 오늘의 실패를 배울 수 있는 큰 기회로 삼고, 지금의 작은 실패를 통해 큰 실패를 예방하는 데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지친 이 나라에는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필요하다.

2020-04-16

조마조마한 포퓰리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포퓰리즘의 역사는 길다. 정치에서‘포퓰리즘’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890년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인민당(Populist Party)이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정책을 표방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 같은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정권이 대중을 위한 선심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시킨 사건 이후부터다.4·15총선을 며칠 앞두고 포퓰리즘 논란이 거세다. 정부여당이 국민들에게 어떤 방식이든 돈을 나눠준다면 포퓰리즘이 될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상권붕괴 등으로 인한 피해를 다소나마 보전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지급하자는 긴급재난지원금이 바로 논란의 대상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수혜자로 잡은‘소득하위 70%’선별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데 있다. 시민들은 본인의 소득이 어느 정도 순위인지 모른다. 재산은 많지만 소득이 작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에는 지원 규모가 너무 적다. 4인가구 기준 100만원이면 1인 단위로는 25만원에서 40만원 정도다. 이 정도면 천재지변으로 소득을 상실한 가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 결국 지원 대상을 선별하느라고 늦게 줘서 불만을 사기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빨리 지급해주고, 고소득자들로부터는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것이 지원금의 취지에 맞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같은 정부방침에 대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전국민에게 5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즉각 지원하자는 입장을 밝혀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포퓰리즘의 파괴력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반면에 미래통합당 유승민 의원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 의원은“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더니 이번에는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을 비난해왔던 우리 당의 대표가‘전 국민에게 50만원씩 주자’고 나왔다”면서“이건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질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 ‘기득권 양당의 포퓰리즘’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여론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재원을 뚜렷한 기준 없이 전국민에게 나눠주는‘묻지마’지원정책은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앞으로 정부여당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혈세로 마련한 재원을 배분하려면 좀더 신중하게 배분대상과 금액, 배분목적 등을 명확히 규정, 선택과 집중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2020-04-09

코로나 블랙홀 선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빌게이츠가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 화제다. ‘빌 게이츠의 아름다운 성찰’이란 제목으로 널리 전파된 이 글에서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되짚어보게 한다.그는 코로나19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 바이러스는 문화나 종교, 직업, 재정상태 혹은 얼마나 유명한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돼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세워놓은 가짜 국경선이 별 의미가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있다.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병에 걸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인생이 짧다는 것과 우리가 해야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서로 도우며, 노인이나 병자들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변했는 지, 가족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무시해왔는지를 가르치고 있다.아울러 코로나19는 모든 난관이 지나간 뒤에는 평온이 잇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이번 일도 거대한 주기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도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빌 게이츠의 글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너무도 크다. 당장 2주 앞으로 다가온 선거만 해도 그렇다.이런 선거는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모든 이슈나 화제가 사라지고, 정책논쟁도 사라진 ‘코로나 블랙홀’ 선거다. 국민들을 대변한 선량을 뽑는 선거에서 선거가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한 채 치러지는 사상 초유의 선거다.보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에서 유권자도, 후보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말았다. 비전과 정책이 실종된 탓에 유권자도, 후보자도 서로 할 말이 없어보인다. 유권자를 향한 치열한 공약대결도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가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 지 누가 무슨 정책을 펼지 판단할 근거를 찾기 어려운 선거다.그나마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규모와 지급 방식에서도 여야가 정치적 계산만 앞세우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권은 누구한테 지원금을 줄지 기준조차 정하지 않은채 총선을 앞두고 ‘지급방침’만 우선 발표했다. 이에 맞서 통합당은 총선용 현금살포는 안된다고 비판하면서 더 많은 재원을 동원해 240조원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2일, 선거열풍은 느끼기 힘들다. 유권자들에게 후보들을 판단할 기회가 주어지기나 할까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할 사람은 바로 유권자인 우리 자신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일수록 유권자 한사람 한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변화의 촛불을 높이 들고 나설 후보를 뽑아야 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로 빼앗긴 봄에 새로운 봄의 온기를 되살려야 할 때다.

2020-04-02

통합당의 개그공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미래통합당의 공천이 난장판이다. 가장 요지경인 곳이 바로 대구 수성갑과 수성을 지역구다. 대구 수성갑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이 여당 후보로 뛰고 있어 전국적인 관심이 쏠린 곳이다. 애초에 이 지역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구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크게 퇴조, 김 전 장관의 당선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문제는 김 전 장관의 여당 내에서의 영향력을 지역 득표력으로 과대평가한 통합당 지도부가 수성갑 지역구에서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을 컷오프하고, 그 자리에 수성을 지역구에서 4선을 한 주호영 의원을 단수공천한 데서 출발했다. 결국 이에 반발한 이 전 구청장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보수표심을 둘로 가르게 돼 수성갑 선거는 통합당 주호영 후보와 민주당 김부겸 후보, 무소속 이진훈 전 구청장의 3파전으로 번졌다. 1대1의 승부가 아니기에 김부겸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수성을 선거구는 더욱 우습게 됐다. 공관위는 느닷없이 수성갑 선거구 예비후보로 뛰고 있던 정상환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을 대구 수성을로 재공모해 옮긴 후 이인선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와 경선을 붙였다. 이 전 부지사가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이번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컷오프에 반발해 이 지역구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격전이 예상된다.경북 경주의 공천 역시 모양새가 우습다. 당초 현역인 김석기 의원이 컷오프되고, 박병훈 전 경북도의원과 김원길 서민경제분과위원장이 경선을 치러 박 전 의원이 공천을 확정짓는 듯 했다. 그러나 통합당 최고위원회가 경주 공천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고, 공관위는 고심끝에 원안을 고수했다. 그러자 최고위가 다음날 새벽 직권으로 박 전 의원의 공천을 무효로 결정했다. 공천결과를 보도한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이 오보를 내게 된 이유다. 이후 공관위는 논의 끝에 김원길 위원장을 단수추천하기로 했으나, 최고위원회는 25일 밤 늦게 이를 다시 뒤집어 컷오프 당한 김석기 의원과 김원길 서민경제분과위원장 두 사람의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키로 했다. 이런 과정에서 통합당 최고위는 당초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자로 결정됐던 박 전 의원의 공천을 무효로 돌린 이유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당사자의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관위가 컷오프한 김석기 의원을 다시 공천대상에 집어넣어 경선에 붙이게 된 이유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 역시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경선을 하게 된 김원길 위원장은 “역사상 최악의 선거판이 됐다”고 질타했다. 성주·고령·칠곡지역구 공천을 신청한 김현기 전 경북도 행정부지사 역시 경선에 배제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막장공천의 폐해를 질타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한 자신을 경선부터 아예 빼버렸고, 재심 청구 역시 거절당했다는 것이었다.개그공천으로 불리는 통합당의 공천,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며 유권자를 우습게 아는 통합당의 행태, 과연 이대로 좋은가.

2020-03-26

피장파장의 오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피장파장의 오류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인신공격의 오류’의 일종이다. 상대방의 특정 발언에 대해 ‘발언 자체의 내용에 하자가 없는지’를 안 따지고 갑작스럽게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위선을 논거로 꺼내 상대방의 적격성을 갖고 논점을 흐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의사가 말한다. “음주와 흡연은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할 수 있으니 조절하십시오.” 환자가 반박한다. “에이, 의사선생님도 술, 담배 하시잖아요.”환자는 의사가 주장하는 사실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지적했지만 이는 음주와 흡연이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반박이 아니므로 피장파장의 오류가 된다.정치판이 이같은 피장파장의 오류로 시끄럽다. 여야의 위성정당 창당을 둘러싼 논란이 거대양당을 속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 미래통합당의 경우 위성정당 창당을 옹호한 논리가 바로 ‘위성정당’존재의 정당성이 아니라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배제된 선거법 개정에 대한 비판뿐이었다. 쉽게 말해 ‘다른 당들이 먼저 도의를 어겼으니 자유한국당도 편법을 써도 된다’는 논리였다. 이는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다. 제도나 그 절차 문제는 차치하고 ‘미래한국당’은 선거에서 의석 추가 확보만을 위한 비정상적 위성정당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더구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모(母)정당의 뜻과 다른 후보를 공천하는 바람에 더욱 모양이 우스워졌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미래한국당을 향해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작심 발언해야 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곤혹스러웠으리라.황 대표가 그동안 법적으로 엄연히 별개인 미래한국당의 공천에 개입한다는 논란을 피하려 직설적 표현을 피해왔지만, 통합당 영입 인재를 외면한 공천을 접하고선 어떤식이든 제대로 손보지 않고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선 듯하다.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어떻게 둘러대더라도 꼼수정당이라는 도의적, 정치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범여권이 동의할 수 없는 잘못된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법의 허점을 드러내고, 추후 잘못된 선거법을 고치겠다는 게 미래통합당의 입장이다.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4+1협의체 역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을 배제하고 선거법을 뜯어고친 뒤 위성정당을 추진하면서 피장파장의 오류를 정당화의 논리로 차용해 쓰고 있다. 말 그대로‘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한 만큼 민의의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도 위성정당 창립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재미있는 것은 궁색한 핑계아래 추진되는 위성정당 창당과정이 순탄치 못하다는 것. 친문(친문재인)·친조국 성향의 ‘시민을 위하여’를 비례연합정당 플랫폼으로 선택해 신생 원외정당 등과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출범시켰지만 시민사회계 원로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 쉬운 게 없지만 사람들의 모임인 정당이 마음먹은 대로, 뜻한대로 움직일리 없다는 순리가 눈에 밟힌다.

202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