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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중지란 전성시대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요즘 정치권은 여야 모두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모양새다. 여당인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한국당대로 헤쳐 모이거나, 힘겨루기에 바빠 보인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벌써부터 권력투쟁 양상이 완연하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안-이-박-김의 가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른바 ‘대권 잠룡들의 수난사’로도 불리는 이 가설은 ‘안이박’ 즉,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이 잇따라 곤경에 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마지막의 김이 누구인지, 수난에 처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승자가 되는지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긴 하지만 김씨 성을 가진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 중 김부겸 장관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최근 행보를 두고 말들이 많다. 지난 28일 오후 김 장관은 전날 한 남성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투척한 사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을 찾아 고개숙여 사과했다. 이 자리엔 민갑룡 경찰청장도 동행했는데, 사법부 수장에 대한 경호·경비 책임을 맡은 행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에 공감하는 목소리보다 “정치인 출신 장관으로서 여론을 너무 의식한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평가가 더 많았다. 김 장관은 또 이날 오전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을 방문해 최근 개설한 남북 접속도로 사업 현장을 살펴봤다. 이 역시 얼마 전 선글라스를 낀 채 전방 군부대를 시찰했다가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닮은 꼴 행보다.이런 와중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업무영역도 아닌 경제문제와 노동문제에 대한 논평을 내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조 수석은 지난 2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문재인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났지만 경제 성장 동력 강화 및 소득 양극화 해결에 부족함이 많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나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정치·정책은 결과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답게 모든 비판을 감내·수용하면서 호시우보(虎視牛步·호랑이처럼 날카롭게 지켜보며 소처럼 신중하게 걷는다) 하겠다”고 적었다. 조 수석은 지난 22일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만의 정부도, 참여연대만의 정부도, 또한 민변만의 정부도 아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조 수석이 문재인 정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총대를 메고 여론전에 나선 것”이란 해석과 함께 일각에선 “조 수석 주변에서 대권으로의 꿈을 부추기는 바람에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경제문제에 비켜서 있으려는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이낙연 총리나 임종석 실장 등 현 정부의 주요 포스트를 맡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우 경제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노린 포석일 수 있다는 얘기다.반면에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12월 초에 있을 원내대표 선거를 두고 친박계 잔류파, 비박계 복당파 등 계파간 이합집산으로 분주해 효과적인 대여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한 당내 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전원책 전 조강특위위원장의 사퇴 등으로 당내 조직혁신에도 제동이 걸려 당내 개혁과 보수통합이란 상반된 주제의 방정식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방선거 참패 이후 외부 공식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보수의 재건’을 강조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눈길을 끌고 있는 정도다.부모 자식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라니 권력재편을 앞둔 여야의 자중지란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요즘이다.

2018-11-30

계륵이 된 민주노총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탄력근로제 확대를 계기로 민주노총이 지난 21일 전국에서 총파업을 벌이면서 정부여당과 날을 세우고 있다. 여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민노총을 수차례 설득해왔지만 응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대통령이)단단히 화가 난 상태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고 보면 정부여당과 민주노총의 힘겨루기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22일 민주노총 참여없이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출범시킨 것도 대화를 거부하는 민노총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돌고 있다. 최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민주노총을 향해 연거푸 비판적 발언을 쏟아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노동계와 너무 사이가 틀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무현 정부 때 노조와의 관계가 급랭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당선인 신분으로 양대 노총을 찾아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노동계와 손을 잡고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노 전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위법행위에는 법 집행을 엄정히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후 노동계는 노무현 정부에 등을 돌렸고, 대화 창구도 닫혔다.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를 잃게 되면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 1분기 국정 지지율은 60%였지만 4분기엔 22%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문 대통령이 과연 노동계와 정면 대결하는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당시와 지금 상황이 많이 다르다. 민주노총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의제별 협상은 진행 중이어서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충분하다. 청와대도 조심스러운지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노사 양측 모두 조금씩의 양보가 불가피하며, 대화마저 거부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대화 채널에 합류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촛불 청구서’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부채 의식은 비상식적인 프레임이라고 극력 부인하고 나섰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면 과거 어렵고 힘겨웠던 노동운동 현장을 기억하는 장년 세대에게 오늘날 ‘귀족노조’ 중심의 민주노총은‘야성잃은 북해도 오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요지는 이렇다.“북해도에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수 천 마리의 큰 오리 떼가 날아와서 월동을 하고 봄이 오면 도래지로 다시 날아간다. 그런데 몇 해 전 겨울에는 이상기온으로 호수가 꽁꽁 얼어붙었고,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된 오리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가엾이 여긴 주민들이 콩같은 먹이를 열심히 주기 시작했다. 어느덧 오리들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데 재미를 붙여, 봄이 왔는데도 도래지로 돌아갈 생각은 안하고 여기저기를 뒤뚱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수많은 오리들이 개나 고양이에게 물려 죽고 자동차에 치여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동물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미 야성을 잃어버린 큰 오리들은 봄이 왔건만 여전히 북해도 호수를 떠나지 않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만을 기다리며 지낸다.”야성을 잃은 오리들은 결국 종족보존마저 힘겨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이 연봉 1억원을 넘나드는 대기업노조를 중심으로 안주하며, 안으로는 고용세습 비리에 가담하고, 밖으로는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광주형일자리 사업’에 반대하는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된 민주노총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당연하다.지금의 민주노총은 야당에게 부패와 불법파업을 일삼는 강성노조로 찍힌 지 오래고, 정치적 동지였던 정부여당에게도 노동개혁을 막아서는 계륵이 되어가고 있다.

2018-11-23

법무부의 새 바람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전남 무안출신으로 연세대 법대 교수와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실무위원 등을 지냈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한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꽤나 상징적인 일일 수 있다. 현 정부가 판·검사출신이 아닌 학자출신의 장관으로 하여금 사법개혁에 시동걸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런 박 장관이 청와대 출입 지역기자들과의 간담회를 권역별로 개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지역기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온 행정부처 장관은 지방자치·분권 업무를 맡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유일했기에 그만큼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며칠 전 대구·경북지역 기자들이 이례적인 간담회 개최 이유를 묻자 박 장관 본인은 “나의 기획”이라고 간단하게 답한 반면, 강남일 기획조정실장이 말을 받아 “(장관님이) 현장위주의 행정을 좋아하는 소신을 갖고 있는데, 전국을 직접 돌아보기는 어려운만큼 지역기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역 실정들을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마련된 자리”라고 설명했다.행정부처 가운데 권위적으로 알려진 법무부의 자세 변화에는 학자출신인 박상기 장관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됐다. 어쨌든 처음에는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던 기자들도 그제서야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한 장관의 입장을 물어보며 환담을 나눴다.판·검사출신이 아닌 그의 발탁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장관은 “기존 검사들과 얽힌 게 전혀 없는 것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집권이후 대구·경북지역에 대한 인사차별 얘기가 있다’는 돌직구 질문에도 박 장관은 “인사는 소수의 만족과 다수의 불만족이 뒤따르는 것”이라는 일반론과 함께 “국회에서 만난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는 ‘언제적 검사가 아직도 영화를 누리느냐’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에두르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박 장관은 야당이 적극 반대하고 있는 공수처법에 대해서는 “야당이 ‘옥상옥이 된다’ ‘야당을 탄압하는 수사기관이 하나 더 늘게 된다’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잘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선 공무원 범죄만 따로 분리해서 수사하게 되는만큼 옥상옥 조직이 될 것이란 논리는 맞지 않고, 새로 출범하게 될 공수처 구성원들에게 명예라는 것이 있다면 공정하게 수사하려고 노력할 것이기에 ‘야당 탄압우려’도 섣부른 걱정”이라는 반응이었다.박 장관은 특히 최근 국회에서 한창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음주교통사고에 대해 가중처벌하자는 취지의 일명 ‘윤창호법’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음주교통사고나 성폭력범의 경우 법정최고형으로 엄벌할 경우 범죄 발생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오히려 연쇄살인범같은 경우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해도 처벌이 무서워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는다”면서 “따라서 음주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하는 동시에 이들이 상습범이 되지 않도록 자신이 낸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자의 상황을 가상현실로 보여주는 등 교육 프로그램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 장관은 또 웹하드 ‘위디스크’의 실소유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폭행 등 엽기적인 행각에 대해서는 “이런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 회장이 지난 2013년 A 교수를 부인의 내연남으로 의심해 집단폭행한 사건과 관련, 검찰이 제대로 수사도 않은 채 무혐의 처리한 것에 대해 경위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기존 검찰조직과 어떤 커넥션도 없는 학자출신 박 장관이 꿈꾸는 사법개혁이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하다. 박 장관이 불러온 새 바람이 지역 토호들과 유착한 부패검찰이나 ‘벤츠검사’로 대변되는 적폐검찰을 깨끗이 일소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2018-11-16

이름값 아쉬운 이름법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입법부인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할 때 특정 개인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정치적 투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법으로 평가받는 ‘오세훈법’이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오세훈 당시 최고위원이 발의한 오세훈법은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등 3법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다. 이 법은 정치자금 모금의 통로로 지적된 지구당을 폐지하고,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를 금지했다. 무엇보다 특정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모으는 행위를 막아 개인 후원을 통해서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게 했다. 부정부패를 낳는 금권선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 오세훈법이 우리 정치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적잖은 성과도 냈지만,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두른 울타리가 청렴한 정치 신인의 도전길을 막는 장벽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현역의원이 아닌 원외 지구당위원장에게 정치후원금 모금을 허용하는 이른바 ‘노회찬법’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원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은 2014년 총선 후보 시절,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회찬 전 의원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없게 하자는 취지에서 ‘노회찬법’으로 이름 붙여졌다. ‘오세훈법’이 ‘노회찬법’으로 진화하면서 수정·보완된 셈이다.얼마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름법으로는 ‘양진호 금지법’이 있다.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 실소유주로 알려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사무실에서 전직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때리며 무릎을 꿇게 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폭행과 강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통과시킨 근로기준법 개정안인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양진호 금지법’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법은 일부 야당 의원이 개정안 내용 중 ‘정서적 고통’의 개념이 모호하고 ‘업무 환경’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법사위에 발목을 잡혔다. 법률 전문가들이 “개정법률안은 징계 대상 행위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며, 프랑스·캐나다 등 해외 입법례와 비교해도 명확하다”고 설명해도 국회 법사위는 오불관언이다.최근에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윤창호법’이 핫이슈가 됐다.이 법은 지난 9월 22살의 청년 윤창호 군이 인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서 뇌사에 빠진 교통사고에서부터 비롯됐다. 윤창호 군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재발률이 2016년 50.59%로 매우 높고, 교통사고 치사의 경우에도 기본 징역 8개월~2년의 형량을 받고 있다”며 음주운전 처벌을 크게 강화해야한다는 요지의 국민청원을 올렸고, 불과 사흘만에 20만명의 동의를 받는 등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가중처벌과 음주 수치 기준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으로,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이 법을 발의한 윤 군의 친구들은 “이 법의 제정이 미래의 잠정적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를 줄이고, 국민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친구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을 통해서라도 제 친구가 잊히지 않고 사회에 기여한 것으로 명예롭게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많은 이름법들이 국회 입법단상에 떠올랐다 이유를 알기 힘든,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부딪혀 사라진다. 이처럼 이름값도 제대로 못한 채 스러지는 이름법이 허다하지만 한 젊은이의 억울한 희생이 바탕에 깔린 ‘윤창호법’은 ‘제 이름값 다하는’이름법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한다.

2018-11-09

대통령과의 산행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 지도자의 자리인 대통령에 앉은 이는 대체로 등산을 좋아한다. 산에 오르면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걸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대통령들은 대체로 산을 좋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 기자단과 자주 산을 올랐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도 산행을 즐겼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절친인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등산을 좋아한다고 밝힐만큼 산 오르는 걸 즐긴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만은 여성 대통령이어서 그런지 산행을 즐기지 않았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청와대 기자단과 함께 서울 북악산을 올랐다. 삼청각 옆을 지나 숙정문 안내소, 숙정문을 거쳐 북악산 성곽길을 따라 창의문까지 이르는 코스였다. 필자는 취임 직후 한 차례 있었던 산행에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갖고 있었기에 이번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300여 명에 이르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가운데 참석자는 펜 기자 100명과 영상기자 15명, 사진기자 6명, 외신기자 26명 등 총 147명의 기자가 참석했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비서관 26명도 함께 했다. 거의 2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등산로를 따라 줄지어 오르며, 이날 하루동안 북악산 등산가이드를 자처한 대통령의 북악산에 대한 유래와 남한산성 성곽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소 자주 보기 어려웠던 수석비서관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가외의 즐거움이었다.문 대통령은 이날도 등산애호론을 펼쳤다. “저는 아시다시피 등산을 좋아하는데, 등산도 등산이지만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습니다. 설악산, 지리산 그러면 그 꼭대기에 가보고 싶은 거예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이러면 꼭대기에 가보고 싶죠. 꼭대기에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고 높은 데까지는 가보고 싶은, 꼭 산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동학농민혁명 기념지에 우금치라든지, 황토현이라든지, 이런 것을 역사에서 배우면 그런 장소에 가보고 싶어요. 북악산도 당연히 청와대 뒷산이니까 보면 위에 올라가 보고 싶은 것이죠.”산에 오르고 싶은 이유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간명하고 알기 쉬운 이유였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산행지를 북악산으로 선택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원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할 때 여기 북악산을 주산, 진산으로 선택하고, 아래로 경복궁을 들어앉혔거든요. 그때 아시다시피 무학대사와 정도전 사이에 북악산을 주산으로 해야 된다, 아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해야 된다, 이런 식의 논쟁 끝에 이쪽이 선택됐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북악산, 인왕산 이런 데 꼭 와보고 싶은 거예요.”정상을 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산하다 우연찮게 문 대통령과 나란히 내려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됐다. 경북매일신문이 포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소개하자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의 민심을 궁금해했다. “대구·경북지역도 예전에 민주당을 배척하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최근에는 최저임금제도, 소득주도성장정책, 탈원전정책 등으로 지역 경제문제가 심각해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고 대구·경북지역 민심을 들려주자 문 대통령은 별다른 답변없이 묵묵히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한담을 주고 받는 중에도 산행을 하던 시민들과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악수로 인사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는 소탈하고 담백한 태도를 보여주는 문 대통령이지만 그의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공자가 말하기를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으니, 얼키고 설킨 이 나라의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산을 즐기는, 덕망있는 대통령에게 물을 즐기는 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짐작해보게 되는 하루였다.

2018-11-02

너무 늦은 씨뿌리기는 없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목월 선생의 수필집 ‘달과 고무신’ 제3부 ‘일상의 경이’편에 실린 ‘씨 뿌리기’란 제목의 글에 호주머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뿌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같아서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열매 달리는 것을 볼 수 있겠느냐”고 비웃자 “누가 따면 어떤가. 다 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하고 대답했다. 옛 말에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六十不種樹)”는 말이 있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일게다.조선 초기의 문신인 송유(宋愉)가 70세 고희연(古稀宴)에 감자(柑子)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는 10년 뒤 수확한 감자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육조의 판서를 두루 지낸 황흠(黃欽)이 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라고 묻자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러나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렸다. 그가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버렸군.” 씨 뿌리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다. 설사 내가 그 열매를 못 딴들 어떠랴.최근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이뤄내겠노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무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놓고 논란이 많다.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실망감을 표시하며 아예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치분권의 핵심인 재정 분권이, 정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자치분권 로드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자 이에 실망한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언론들의 날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종합계획’이 아니라 ‘재탕 계획’이란 혹평까지 나왔다.최근 청와대에서 자치분권 업무를 맡아 전국 권역별 기자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는 정무수석실 산하 민형배 지방자치발전비서관을 만났다. 민 비서관은 자치분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머지않아 자치분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이 분야별로 나올 것입니다. 이 정부의 자치분권 의지는 확고합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이기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치분권과 관련해서는 자치법 개정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재정분권과 관련한 실행방안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실행방안들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재정분권의 목표를 향후 2년동안 1단계, 그 후 2년을 2단계로 잡고, 우선 목표는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8대2에서 7대3으로 돌려놓는 것이라 했다.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긴장 완화와 평화 무드에 따른 시너지 효과, 그리고 지역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자치분권 실현”이라며 자치분권에 대한 문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그는 국회에서 지방자치와 관련한 법률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데, 그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아마 지난 23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을 가리키는 듯 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19개 중앙부처 소관 66개 법률의 571개 사무가 지방에 이양된다. 지방분권이라는 큰 걸음을 내딛기 위한 최초의 조치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씨뿌리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옛 교훈을 거듭 되뇌어 본다.

2018-10-26

사립유치원의 민낯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지적된 사안이 사회적인 물의를 빚는 일이 적지않다. 그중에서 지난 6년간 전국 교육청에서 실시한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결과 5천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며 명단까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최근 국정 감사현장에서 1천878개 유치원에서 6천건(평균 3.2건)에 이르는 비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유치원 교비로 원장이 핸드백을 사고, 노래방·숙박업소에서 사용하고 심지어 성인용품점에서 용품을 사기도 했다”며 “종교시설에 헌금하고 유치원 연합회에 수천만 원을 회비로 내고 원장 개인 차량의 기름 값과 차량 수리비, 자동차세, 아파트 관리비까지 낸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박 의원이 지적한 사례들은 일부 사립유치원에서 일어난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비리이자 적폐다. 그러나 사립유치원은 사인이 경영하는 학교로서 공립유치원이나 학교법인 형태의 초·중·고등학교와 동일한 재무회계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사립유치원에 적용할 사학재무회계규칙이 별도로 필요한데, 설립자의 지위와 사유재산권을 회계규칙상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그 결과 사립유치원이 유치원을 경영해 남은 이익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투자한 자금에 대한 이익으로 회수하는 문제와 관련, 정부와 사립유치원 간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치원생이 낸 원비의 일부를 설립자(원장)의 이익금으로 보고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상으로 볼 것인지 부정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르다. 특히 이런 문제는 누리과정이 시행되면서 더욱 크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사인이 경영하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교비회계와 설립자의 투자 및 경영활동을 위한 회계의 구분을 정부가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리과정을 실시하면서 사립유치원의 특수성을 감안한 사학재무회계규칙이 마련되지 못한 채 정부는 2013년경부터 기존의 재무회계규칙을 사립유치원에 적용해 감사를 실시했다. 사립유치원으로서는 이익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여러가지 편법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수십년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유치원 경영자의 이익 회수가 횡령 등의 범죄로 돌변했다.사립학교를 둘러싼 비리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사립학교는 태생적으로 자기 이익에 반하는 정책에 저항하며 따르지 않는다. 더구나 사립학교 이사장들이 국회와 정부에 상당수 진출해 있기 때문에 개혁을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않다.실제로 사립학교 재단에 불리한 입법현안이 생길 경우 해당되는 국회 상임위원이나 담당 공무원에게 절대로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학교시절 은사나 선배, 동료들의 전화가 들이닥친다고 한다. 이러니 사립학교 비리가 이제껏 근절되기는 커녕 점점 넓게 확산돼 이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나마 정부가 뒤늦게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8일 “2013년부터 누리과정이 전면 도입되면서 매년 사립유치원에 2조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됐는 데도 투명한 회계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했고 상시적인 감사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은 교육당국이 깊이 성찰해야 할 지점”이라면서 “지금부터라도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사립유치원의 투명성 강화와 비리근절을 위한 대책을 함께 수립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따라서 교육은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 공적영역이기 때문에 이익과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민영화됐던 교육을 점진적으로 공영화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 초·중·고등학교까지 공립유치원과 학교를 증설하고, 평가를 통해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유치원과 학교는 문을 닫게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유치원과 학교를 공립화해야 한다. 그래야 두번다시 사립유치원이 드러낸 민낯에 얼굴 붉히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2018-10-19

내로남불의 정치학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의 준말인 ‘내로남불’이란 신조어가 대세다. 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변명을 하면서까지 합리화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말로 ‘남에겐 엄격하나 자신에겐 자비로운 태도’(자기합리화)를 일컫는다. 특히 진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서로 주장이 옳다고 목청을 높여야만 주목받기 쉬운 정치판에서는 ‘내로남불’현상이 넘쳐난다.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된 10일 오후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었다. 국방부 국정감사에 나선 민홍철 민주당 의원이 남북군사합의서의 GP 철수와 국군 작전권에 관련, “과거 2005년 7월 박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GP 철수는 우리 군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현대 과학에 기반을 둔 한국군의 자신감에 기반한다. 또 논의의 핵심은 GP의 숫자가 아닌, DMZ 비무장화로서 논의의 시작이 상호 군비축소’라고 주장했다”며 “지금 야당의 지적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이런 내용”이냐며 비판하고 나섰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과거 정부의 군비통제계획서를 열람하고 이번 (남북군사)합의 사항과 너무나 똑같아 깜짝 놀랐다”며 “공중 충돌 예방과 방지 및 GP 철수 내용은 과거 남북군사합의서에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현 정부가 북측과 군사분야 합의를 한 데 대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처사라며 공세를 펴자 여당이 최근의 군사분야 합의가 과거 남북군사합의서를 근거로 한 것이라며 반격을 펼친 것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여당의 ‘내로남불’행태를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교육부 산하기관 기관장 및 상임감사 등 주요 보직 임명 현황 자료를 인용하면서 교육부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 고위직에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같이하는 이른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인사가 넘친다고 지적했다. 정부 산하기관장 등 고위직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구태가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었다. ‘내로남불’시비가 가장 뜨거웠던 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현장이었다. 유 부총리 자신이 위장전입 공방의 역사에 등장하기에 더욱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이었던 유 부총리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해 “위장전입 이유가 자녀 교육문제 때문이었다니 납득할 수 없고 기가 막힐 뿐”이라며 “부동산 투기가 아니니 괜찮다는 것처럼 해괴한 논리가 어디 있는가”라고 신랄한 논평을 낸 바 있다. 11년 전 논평은 그대로 부메랑이 돼 유 부총리를 때렸다. 유 부총리 역시 지난 1996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의 주소를 실거주지가 아닌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성당으로 이전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 부총리는 부동산 투기나 명문교 진학을 위한 부정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내로남불’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한 인사청문회 대상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전입 및 세금탈루 논란에 휩싸여 국회 인사청문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임명을 강행해야 했다. 유 부총리의 경우 ‘의원불패’의 오랜 관행조차 깨지는 참사를 당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초 고(故)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각 비서관실에 선물했다. 춘풍추상은 중국 채근담에 수록된 말로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의 준말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니 내로남불의 반대어로 쓰일 만한 사자성어다. ‘내로남불’의 정치풍토가 판을 치니 문 대통령의 ‘춘풍추상’이 맥을 못추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18-10-12

증오의 헤라클레스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어느 날 길을 걷다 흉물스럽게 생긴 주머니를 발견했다. 헤라클레스는 아무런 생각없이 흉물스런 주머니를 밟아버렸다. 그런데 주머니는 터지기는 커녕 조금 부풀어 올랐다. 이에 자극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발길질을 했다. 그런데 주머니는 종전보다 두 배 이상 부풀어 올랐다. 약이 바짝 오른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주머니를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주머니는 터지기는 커녕 때리면 때릴수록 부풀어 올라 마침내는 헤라클레스보다 몇 배의 크기로 커져 길을 막아버렸다. 화가 나서 씩씩대는 헤라클레스 앞에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화내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게나. 이것은 증오의 주머니라고 한다네. 그냥 내버려 두면 처음처럼 작아지지만 계속 건드리면 점점 커져 자네와 끝까지 맞설 것이네.” 원한과 증오의 감정은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출발한다. 나쁜 감정을 잘 해소하거나 모른 척 하고 지나면 금세 사라지거나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쁜 감정을 나쁜 감정으로 갚거나 막겠다고 하면 마침내 증오는 계속 커져 둘 다 손해를 볼 수 있다. 이것을 ‘헤라클레스 효과’라고 한다.여야의 대립과 신경전이 헤라클레스 효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급기야 국회 국정감사 일정조차 차질을 빚고 있다. 여야의 대립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정치권은 서로 다른 정당을 증오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이다. 지지자간에도 생각이 다르다. 그저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인 데 서로 상대방을 가리켜 “틀렸다”“적폐다”라고 목청높여 비판하며 죽기살기로 싸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여야의 논란이나 심재철 의원 비인가 행정정보 무단유출과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둘러싼 여야 대치 상황 역시 이같은 대립과 증오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실장으로 일했던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현 정부와 청와대를 겨냥한 비판에 나섰다. “두려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오만일까요?”라고 물으며 비판 메시지를 올렸다. 김 위원장은 교육부장관 임명과 관련,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이 일을 더 잘한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게 일반 국민의 여론이 아니다”라고 했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반응을 언급하며, “대통령 스스로 내세운 기준에 턱없이 미달하고 심지어 진보적 언론매체까지도 유감을 표하는 사람을 임명하면서 정말 꼭 이렇게 이야기해야 되겠습니까”라고 지적한 뒤 “하다 못해 ‘이런저런 지적이 많았던 것만큼 더 잘해서 국민들에게 보답을 하라’는 정도로 말할 수 없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심재철 의원이 밝힌 청와대의 부적절한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해서도 “밤늦게 간담회를 했느니, 회의를 했느니 하는데 그 장소가 과연 그런 일을 하기에 적당한 자리였을까”라며 “그냥 부적절했다고 하고, 바로 잡고,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정부는 어느 곳에서건 물러설 줄을 모른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최저임금 문제로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이를 ‘성장통’ 운운하며 묵살하고 있는 걸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현 정부는 경제에서는 무능이, 남북문제에서는 이번의 군사합의서에서 보듯 과속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보니 추석 한가위 달을 보며 노래한 이해인 시인의 작품 ‘달빛기도’에 나오는 시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너도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두손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 내마음에/ 고운달이 먼저 뜹니다/(후략)”여야 정치권 모두에 만연한 ‘증오의 헤라클레스’는 이 나라에서 반드시 떨쳐내야 할 병폐다.

2018-10-05

프레임의 법칙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어느 날 친구끼리 미사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친구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신부님께 한 번 여쭤보는 게 어떻겠나?”신부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신부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신부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지요.” 친구로부터 신부님의 답을 들은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 보겠네”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신부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네”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프레임(frame)의 법칙’을 설명하는 일화다. 프레임이란 ‘창틀’이란 의미지만, 여기서는 관점이나 생각의 틀을 말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면 어떤가.추석연휴 동안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를 되짚어보는 TV프로그램을 보노라니 ‘프레임의 법칙’이 재연되고 있었다.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측에서는 평양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갖가지 파격과 최초의 사건들이 한민족의 통일이 다가오는 듯한 감동으로 다가왔다며 야단법석이었다. 실제로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 부부를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경호원도 없이 직접 평양 순안공항까지 나와서 포옹과 안부인사로 반갑게 맞이한 것이나, 평양도심으로 향하는 연도에 꽃을 든 평양시민들이 나와서 열렬한 환영을 해 준 것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환영하는 평양시민들과 접촉도 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시민들과 악수를 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남북지도자의 영부인들이 두 정상의 사이를 더욱 친밀하게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 여사는 김정숙 여사를 평양 아동병원으로 안내하면서 “북한의 보건·의료분야가 매우 부족하다. 많이 관심가져 달라”고 했고, 행사장 이동 때나 백두산 천지연못을 내려갈 때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이동해 자매간 또는 모녀간 같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김정숙 여사가 백두산 천지의 물을 담을 때 리 여사가 옷이 젖지 않도록 옷자락을 잡아주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돼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측 인사는 추석 밥상에 평양남북정상회담이란 대형이슈가 올려진 게 못마땅한 듯 직접평가는 자제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는 인파들의 복장이 모두 한복일색이어서 아직도 북한이 사람을 동원하는 독재국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남북군사부문 합의의 급진성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다. 군사부문 합의가 너무 급진적이어서 위태롭고, 특히 육해공 적대행위 금지는 향후 우리의 안보태세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경고였다.어찌됐든 많은 국민들은 평양남북정상회담 기간동안 문 대통령이 지난 19일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평양시민들에게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라고 한 연설을 감동스럽게 기억한다. 그런 측면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부정적 프레임에 빠져 험담만 할 게 아니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낙관적 전망으로 안보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부분들을 꼼꼼이 채워주는 역할을 자임해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성숙한 야당이 맡아야 할 역할일 듯 싶다.

2018-09-28

정상회담을 보는 또 다른 시각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의 말이다. 정치권이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과 우려를 내놓는 걸 지켜보다 러스킨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볼 때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국방 전문가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백승주(구미 갑) 의원을 공동선언이 발표된 날 저녁에 만났다. 백 의원은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질문을 받자 “‘9월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실질적으로 북핵보유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가 비교우위를 차지해가고 있는 재래식 군사태세를 스스로 해체함으로써 북한이 한반도에서 절대우위의 군사력을 보장해 준 굴욕적 합의”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라고 밝혔는 데, 이는 1991년 12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1항 ‘남과 북한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약속보다 본질적으로 후퇴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과거 핵 폐기와 본질적 관련이 없는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 해체를 폐기하기로 했는 데, 이는 비핵화에서 큰 의미없는 조치라고 했다. 북핵의 전술적 사용수단인 미사일 발사대 역시 북한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군사적 의미가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해서도 매우 야박한(?) 평가를 내놨다.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금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다양한 분야 교류협력에 대한 군사적 보장,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 등을 합의했지만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상의 남북불가침 내용보다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지상 적대행위 중지(5㎞), 해상적대행위 중지(80㎞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 공중 적대행위 중지(서부 40㎞, 동부 80㎞) 등의 내용 역시 아군의 감시능력 무력화, 도발시 즉각적인 대응을 현저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 의원은 “북한은 2015년 8월 목함도발 지뢰 사고 직후에도 적대행위 중단을 약속했지만 몇 개월후에 전략적 도발을 했다”면서 “약속 이행을 담보할 조치로서 남북한 공동군사위원회 운영을 약속했지만 이행을 담보할 어떠한 조치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는 북핵보유를 기정사실화시켜주고 우리 군의 감시·대응능력만 크게 약화시킨 합의라는 최악의 평가를 내놨다.이에 반해 정부여당과 청와대는 호평일색이다. 청와대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관련국 모두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을 사흘 전에 받았다. 매우 좋은 소식이다.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고, 중국의 외교 대변인도 “새롭고 중요한 합의에 도달했다” , 러시아 대변인은 “실질적, 효율적인 행보를 당연히 지지하고 환영한다”, 일본 관방장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는 환영일색의 반응들을 소개했다.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은 이처럼 다른 생각과 걱정들을 헤쳐나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지극히 어렵고 고된 길이란 생각에 잠겨드는 요즘이다.

2018-09-21

통일비용 vs 분단비용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남북이 통일될 경우 남북통합에 드는 비용인 통일비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를 위해 정부가 제출한 비용추계가 구체적 산출근거나 세부적 설명이 생략돼 있고, 1년치 비용만 제출해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통일 비용을 최소 500억 달러(약 54조원)에서 최대 6천억 달러(약6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통일비용은 기관별로, 추산 근거와 시기, 반영 범위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지난 6월 금융위원회와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금융위는 남북 통합에 앞서 북한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재원 규모를 총 5천억 달러(약 540조원)로 추산했다. 이는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0년간 1만 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참고로 2016년 기준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46만원으로 남한의 1980년대 초반 수준이며, 2016년 남한의 1인당 GNI는 3천212만원을 기록해 북한의 22배에 달한다. 금융위는 특히 북한 내 인프라 육성에 1천400억달러(151조원)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구체적으로 철도에 773억 달러, 도로 374억 달러, 전력 104억 달러, 통신 96억 달러, 공항 30억 달러, 항만 15억 달러 등의 순이다. 통일부의 경우 2011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남북통일 시 초반 1년간 필요한 비용이 55조~24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예측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인당 소득 1만달러 목표시 10년에 800조원 이상 비용이 발생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회예산정책원은 45년간 통일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 비용이 10년 평균 2천300조원, 1년에 230조원의 통일비용을 예상했다. 통일연구원에서는 통일 직후 20년간 3천440조원의 통일비용을 예상했고, 한국개방연구원은 1년 113조원의 비용이 30년간 발생한다고 예상했다.여러 기관의 통일비용 추계를 보면 통일이 될 경우 북한의 사회간접자본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통일비용이 소요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이른바 ‘분단비용’이다. 2017년 기준 대한민국의 국방비는 매년 40조3천여억원에 이른다. 북한의 경우 국방비는 대략적으로 10조원 정도다. 남한과 북한의 국방비를 합치면 무려 50조원이 넘는다. 만약 통일이 되면 국방비는 당연히 감소한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통일 당시 서독의 국방비가 약 680억달러 정도였으며, 동독은 110억달러 정도로 총 790억달러 정도의 국방비를 지출했었으나, 통일이 된후 약 180억달러 정도로 국방비가 줄어들었다. 무려 610억달러 정도의 국방비가 절감된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이후 국방비 50조원에서 30%대로 줄어든다고 계산하면 무려 35조원 가까운 금액의 국방비가 매년 줄어든다. 거기다 남한과 북한의 육군수의 합계는 200만명 정도인 데, 만약 통일이 된다면 최소 150만명의 군인이 줄어든다. 이 젊은이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생기는 사회적·경제적 이익 역시 엄청나다. GDP가 올라가려면 생산요소가 올라가야 하는데, 바로 땅이 늘어나거나 노동력이 늘어나야 한다. 통일이 된다면 이 두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는 상황이 된다. 독일의 경우도 통일이 되면서 처음에는 많은 비용지출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생산요소의 증가와 내수시장의 활성화로 인해 현재는 유럽최고의 국가가 됐다. 이처럼 분단비용의 절감이 통일비용의 상당한 부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역사적 현실을 무시할 이유가 없다,다만 통일비용과 함께 분단비용의 절감이 적용되는 경우는 실제로 남북한이 통일이 될 경우에만 해당한다. 지금처럼 분단이 그대로 지속되는 가운데 비핵화와 종전선언으로 가는 길목에서 막대한 통일비용을 지출하자는 정부가 지나친 통일비용 지출은 곤란하다는 야당의 반발을 넘어서기란 쉽지않아 보인다.

2018-09-14

시장의 역습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모두 ‘시장의 역습’을 받고 있다. 현 정부는 ‘분배의 정의’를 내세워 ‘소득주도 성장’이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실험해왔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와 정부가 추진해온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계층에 혜택을 주기는커녕 이들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이들의 소득을 악화시켰다. 성장은 커녕 분배까지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임금 인상이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오게 된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봐야한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이 풍선효과로 시장의 역습을 받은 모양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기를 부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배 악화가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 없다고 강변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더 많은 시행착오로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기업 투자 의욕을 살려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집값안정을 바라는 서민들의 희망도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야심차게 시행한 8.2부동산 대책 1년동안 서울 강남 4구 아파트 값은 10.5%, 서울 평균은 6.6% 올랐고, 지방은 1.7% 떨어졌다. 수도권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지방주택 값은 다소 떨어졌다. 잡으려던 강남은 급등하고 집값 양극화만 심화된 셈이다.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갈팡질팡이다. 서울시장은 용산과 여의도 개발계획을 발표했다가 거둬들였다. 실수요자의 전세자금 대출을 제한하려다 하루만에 물러서더니, 임대사업자로 많이 등록하라며 내걸었던 세제 혜택 약속을 뒤집으려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그 와중에도 청와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장하성 정책실장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거주를 위한, 정말 국민들의 삶을 위한 주택은 시장이 (정부를)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대신 “국민의 실거주를 위한 수요는 반드시 시장에 맡겨야 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기본적인 주거 복지를 위해서는 ‘시장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시장 경제를 아주 정말 지독하게 하고 있는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도 국민주택 규모의 주택은 정부가 다 공급해버린다”고 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강남은 재테크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이니 정부가 관여할 수 없고, 대신 서민들을 위한 주택시장은 정부가 확실하게 투기세력을 제압할테니 믿어달라는 것이다. 여당 대표의 연설 한마디에 수도권 30만호 공급이라는 정책이 느닷없이 튀어 나왔다. 정부는 8·27대책에서 30만가구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30여개 공공택지를 개발하기로 했다.이같은 혼란은 집값은 자연스런 시장의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좋은 환경의 주택을 찾는다. 이 흐름을 막는 것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가로막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시장에 개입한다. 결과는 거꾸로 나타나고 있다. 중과세를 비롯해 대출·전매 억제 같은 규제가 강화될수록 주택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집값을 자극한다. 강남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억~5억원씩 뛴 아파트가 속출하고, 강북에도 10억원대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규제는 절대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경험했던 일이며, 경제의 기초원리다. 바로 시장의 역습이다.반드시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는 의지는 높게 평가할만 하지만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오기가 돼선 안된다.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에는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 산업경기가 악화된 지방에는 규제를 풀어주고, 생활편의시설 및 교통망 인프라를 늘려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동산만은 잡겠다고 공언했던 참여정부 5년동안 전국 집값 상승률이 무려 64%에 달했던 교훈을 잊어선 안된다.

2018-09-07

국가주의 vs 공화주의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정치권에서 국가주의와 공화주의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주의(Statism)는 정치학에서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 권력이 경제나 사회 정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조를 의미한다. 반면에 공화주의는 개인의 사적 권리보다는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을 강조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다. 사실 우리나라는 과거 국가주의적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민간부문을 진두지휘해 한국 경제의 근대화·현대화를 이끌었다. 경공업부터 중화학 공업과 첨단 IT산업까지 정부가 주도적으로 주력 산업을 키워냈다. 일상생활에서 머리와 치마 길이를 단속하는 등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한국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의식도 바뀌면서 민간 자율 영역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됐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맞춰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노무현 정부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하고, 한미FTA 협상에 나서는 등 개방과 자율의 큰 틀을 지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면서 과거의 국가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다. 경제성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득이 늘어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끌어낸다는 게 이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론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시장과 가격에 대한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인 개입에 나섰다. 최저 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해소 등 경제와 기업에 충격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자 이들을 보호한다며 임대료 통제와 신용카드 수수료, 프랜차이즈 가맹비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규제와 통제가 낳은 문제를 더 많은 규제와 통제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국가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는 게 틀림없다. 고용 참사가 벌어지고, 빈부 격차가 10년만에 최악으로 확대되고, 기업 투자가 얼어붙고,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했는 데도 정부와 청와대는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이에 반해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꺼내든 ‘공화주의’는 새로운 담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화주의는 시민들이 덕을 가지고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공공선에 대한 헌신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 의원은 “우파 정치는 헌법 정신을 준수하고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민주주의 못지않게 공화주의를 중시해야 한다”며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정치권이 국가주의와 공화주의로 갈려 사상적 논쟁을 벌이는 걸 보노라니 어느 일간지에 실린 김형석 명예교수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도산 안창호(1878~1938)의 강연을 듣고, 윤동주(1917~1945) 시인과 동문수학하고, 정진석(86) 추기경을 제자로 둔 그는 1920년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스물다섯살에 광복을 맞았지만 북한에서 공산주의를 경험하다 탈북했고, 서른살에 6·25 전쟁, 40대엔 4·19 혁명을 목격한, 100년의 우리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철학자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성 가운데 시급히 고쳐야 할 단점으로 절대주의 사고 방식을 뒷받침하는 흑백논리를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특정이념이 아닌‘경험주의’를 강조했다. “학문이나 사상은 합리주의가 앞설 때도 있지만 정치나 경제는 경험주의를 택해야 해요.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겁니다. 극성스럽게 반미(反美)를 외치던 중국도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상대방과 생각이 같으면 대화보다 행동이 필요하고, 생각이 다를 때는 상대방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노교수의 지혜어린 조언이 가슴에 울린다.

2018-08-31

동굴의 우상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을 놓고 ‘동굴의 우상’이란 지적이 늘고 있다. ‘동굴의 우상’이란 말은 베이컨이 플라톤의 ‘국가론’제7권의 소크라테스의 비유로부터 인용한 용어다.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않는 편견으로, 동굴에 묶여 있는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넓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베이컨에 따르면 동굴에 갇힌 인간은 동굴 속에 켜진 촛불로 인해 벽에 비추인 그림자를, 즉 실재 세계의 가상을 진리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지각이나 경험과 비교함으로써 정정될 수 있지만 사람의 편견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으니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핵심 경제이론으로 떠오른 소득주도성장론은 저임금노동자·가계의 임금·소득을 올려 소비를 증대하고, 그것이 기업 투자 및 생산확대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이전 정부들이 대기업의 성장으로 인한 임금 인상 등 ‘낙수효과’를 기대했던데 비해 근로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전략이 주가 된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청와대의 집착은 꽤나 강고하다.최근 ‘고용 지표’ 악화소식이 알려지자 문 대통령은 “고용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마음이 매우 무겁다”며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 모두가 어려운 고용상황에 정부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주고 결과에 직을 건다는 결의로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 직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의 방향 수정은 열려 있다”면서도 “소득주도성장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지만 소득주도성장의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은 유연하게 본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명시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폐지하지 않고 부작용 보완에 나서는 한편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겠다는 복안이다. 청와대나 정부가 아직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그 와중에 정부 여당은 지금의 나쁜 경제상황에 대한 원인을 모두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 청년 일자리가 준 것은 청년 인구가 줄어들어 취업한 청년이 적어서 그런 것이라며 몇 년 후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 취업률이 올라갈 거라고 태평스런 해명을 내놓는다. 고용률이 준 것은 장마철 영향이어서 일시적인 현상이고, 일자리가 준 것도 폭염 탓이라니 이만하면 몰염치한 책임회피다. 점입가경이라 해야 하나, 한 술 더 떠 지금의 고용부진은 지난 정권 때 잘못된 정책 탓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지난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성장 잠재력이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난 것이란 설명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해 다른 산업에 투입해야할 예산 26조원을 4대강 사업에 투입했기 때문에 제 때 인력을 양성하지 못해 지금의 고용부진사태를 초래했단다. 해도 해도 너무한 발뺌이자 구차스런 변명이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으로 지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송언석(김천) 의원은 최근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그는 “소득증대, 소비증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노동비용 상승, 기업 이윤 감소, 투자 위축, 실업증가라는 악순환 시나리오가 작동 중”이라며 “이는 결국 고용쇼크를 넘어 고용 지옥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소득분배가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양극화는 심화됐으며, 세계 경제가 호황인 속에 대한민국 홀로 암담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최후의 보루였던 수출마저 빠른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여러 말이 필요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청개구리 정책’을 버리고, 과감한 규제완화와 기업활동 자율성 보장 등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 언제까지 ‘동굴의 우상’과 같은 환상에 빠져있을 것인지 국민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2018-08-24

파격과 인내의 지혜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어느 세계적인 기업의 입사시험 면접에 나온 문제다. 폭풍우가 몰아쳐서 모든 사람들이 대피를 하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닐 때, 나는 승용차를 타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 이동중인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탈 수 있는 자리가 단 하나 남은 상태에서 차가 끊긴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데, 몇 사람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빨리 병원에 후송해야 할만큼 몸이 아파 보이는 할아버지, 내 인생에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형의 미녀, 내가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한 친구 등 3명이었다. 여기서 태울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 뿐이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차에 태울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사회통념상 몸이 편찮은 할아버지를 태우는 게 맞다는 대답도 옳고, 일생에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이상형 미녀를 안 태웠다가는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직장동료를 태우는 것도 틀리지 않는 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수 천명의 면접자 중에 이 질문에 만점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그가 내놓은 답은 사고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자동차 키를 자신이 은혜입은 직장동료에게 주어서 몸이 아픈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다 주게 하고, 자신은 이상형의 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고 답했다. 파격의 지혜는 세상 많은 문제에 무릎치는 답을 내놓는다. 대구·경북지역을 텃밭으로 삼아온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뒤 새롭게 당을 추스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당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씨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세우고 보수가치의 재정립을 기치로 내걸었고, 내분만 불러일으킬 당내 인적청산보다는 당내 통합에 힘쓰는 한편 민생입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 및 대안제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나름 최선의 선택이란 반응들이다. 어떻든 정반합이요, 궁즉통이라 했다. 한국당의 힘겨운 처지가 훗날에는 입에 쓴 약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노력들속에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도 있어야 겠고, 상당한 기간 공을 들이는 노력들이 전제돼야 할 게다.중국에는 모죽(毛竹)이란 대나무가 있는데 이 대나무는 제 아무리 기름진 땅에 심어도 5년이 지날 때까지 싹을 틔우지 않는다고 한다.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줘도 5년동안은 거의 성장을 멈춘 것처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하루에 70~80cm씩 자라기 시작해 불과 6주만에 30m까지 성장, 가장 굵고 우람한 대나무가 된다. 이 대나무가 놀라운 것은 5년내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땅을 파보면 5년간 대나무의 뿌리가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사방으로 10리가 넘게 퍼져 나가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대나무를 빠르게 자랄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요, 그 어떤 태풍에도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을만큼 튼튼한 대나무로 자리잡게 되는 이유라는 것이다. 우리들 눈에는 아주 작은 순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5년이라는 세월동안 모든 성장은 땅 밑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그렇게 5년을 숨죽인 듯 세상에 뻗어나갈 날 만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서 모죽은 그렇게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자태를 드러낸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 가운데서도 이 모죽이란 대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숲을 이루기 위해 뿌리내림과 넓힘에 필요한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된다.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빠른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밑에는 깊고 강건한 뿌리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야 한다. 그저 정치판에서의 형세나 역경 많은 인생에서의 굴곡을 헤쳐나갈 때 파격과 인내의 지혜가 우리에게 임하길 바랄 뿐이다.

2018-08-10

다시 뜨는 봉하마을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이 다시 뜨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찾으면서 한국 정치에서 갖는 상징성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봉하마을은 성지(聖地)와 같다. 총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거나 크고 작은 결단의 순간, 여권 인사들은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정신’을 기렸다. 노 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은 전대 컷오프 통과한 직후 첫 행보로 지난 28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도 지난 1일 오후 부산에서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한 뒤 곧장 봉하마을에 들러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김진표 의원도 조만간 봉하마을을 찾는다. 민주당 출신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에 취임한 뒤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마치고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된 정치가 되려나 봅니다”라고 했다. 바로 전날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봉하마을을 찾은 데 대한 소회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위원장은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김 위원장의 봉하마을 방문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않았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 위원장이 우리 사회의 통합과 당의 가치 재정립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고, 그에 걸맞는 행보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사실 과거에는 보수진영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방문하더라도 국민통합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일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 봉하마을을 찾았다. 어쨌든 정치권 일각에선 ‘봉하마을 성지화’ 현상이 소위 ‘촛불 혁명’ 이후 봉하마을이 갖는 정치·사회적 의미가 한층 달라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현 정신’이 진보·중도 지지층을 중심으로 시대정신으로 승화되면서 보수진영에서도 봉하마을의 상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친노(친노무현계) 그룹이 여야를 막론해 정치권 전면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에 친노진영의 핵심이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리잡고, 보수야당의 미래에 변화와 혁신, 가치재정립을 과제로 내걸고 있는 마당이다. 집권 당시 ‘대통령 답지 않은 대통령’으로 폄하되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필자에게는 잊지못할 대통령이다. 지난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서울 생활에 첫 발을 내디뎠던 필자가 직접 만나 얘기해본 첫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적지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필자는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하고 진솔한 표정과 말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노 전 대통령의 성향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 취임후 출입기자들과 처음으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나들이에 함께 나섰을 때의 헤프닝은 유명하다. 산을 오르다 능선부근에서 잠시 걸터앉아 소회를 나누던 대통령은 뭔가 해보려 해도 정치권의 제동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더라는 하소연 끝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털어놨다.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통령이 해선 안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으니 말이다.폭염속에 다시 뜨는 봉하마을 소식을 듣노라니 불현듯 봉하마을을 찾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거기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뇌했던 그의 향기를 음미해 보는 나들이라면 무더위가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

2018-08-03

서로 다른 죽음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포항 마린온 헬기사고로 숨진 군인들과 노회찬 국회의원의 죽음에 정부여당이 완연히 다른 의전과 예우를 취한 데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지난 17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군 6전단 내 활주로에서 정비후 시험비행 중이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 1대가 지상 10m 높이에서 추락했다. 헬기 탑승자 6명중 5명이 숨지고 1명은 크게 다쳤다. 사고 뒤 청와대나 군 당국의 해명이나 수습과정은 지역민들과 유족들에게 석연치 않고, 불쾌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사고 다음날이었던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순직 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부상자와 유족을 위로하기도 전에 “우리의 수리온(마린온 원형) 헬기의 성능과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마린온 기체결함이 논란이 될 것을 차단하는데 급급했다. 군 당국의 태도 역시 석연치 않았다. 군 당국과 순직 장병 유가족들은 추락사고 이틀 뒤인 19일 영결식 관련 사항을 논의했다. 유족들은 “추락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 후 영결식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군 당국은 ‘장례를 빨리 치르자’는 말만 반복했다. 유족들은 “사고 동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명백한 기체 결함인데, 청와대는 ‘수리온 성능은 최고’라는 말만 했다. 국민 안전보다 수리온 수출이 중요한 것이냐”고 개탄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백승주 의원은 “문 대통령은 작년 12월 21일 오후 3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발생시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오후 1시 현장을 전격적으로 방문했으나, 이번 국군 장병 순직사고에 대해서는 현장방문은 고사하고 사고발생 3일째가 돼서야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별도의 성명이 아닌 신임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진급 보직 신고를 받으면서 언급한 것이 전부”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청와대는 17일 사고 직후부터 영결식 전까지 조화만 보냈을 뿐 조문조차 하지 않았고, 23일 영결식때가 돼서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을 보내 조문했다. 유족들은 “낚싯배 사고가 났을 때는 긴급 성명을 내더니 군 장병이 순직했는데, 참 일찍도 조문객을 보냈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김 비서관의 조문을 거부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역시 그날까지 분향소나 영결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또 다른 죽음은 힘없고 외로운 약자를 위한 정치활동으로 이름이 높았던 노회찬 의원이 지난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등 정부 실세들이 잇따라 노 의원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일부 보수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을 영웅화한다’며 못마땅한 비판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의 의정활동을 높이 평가한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모습으로 이해된다.서로 다른 두 죽음을 지켜보며 적어도 국가와 정부는 저명한 진보 정치인의 죽음보다 이름도 빛도 없이 국가를 위해 일하다 스러져간 병사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하는 게 옳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노 의원이 국회에서 약자를 위한 수많은 입법활동으로 국민들이나 언론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해도 나라를 위해 일하다 숨진 병사들에 대한 의전과 너무 비교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은 명백한 실책이다.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5일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을 초청해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대대손손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게 보훈정책을 더욱 꼼꼼히 살피겠다”면서 “보훈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강한 국가를 만드는 주춧돌”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정부가 국방의 의무를 하다 사고로 숨진 병사들의 죽음에 대해 왜 그리 가볍고 소홀하게 대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로 다른 죽음에 대한 서로 다른 의전과 예우가 지역민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2018-07-27

걱정스런 J노믹스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J노믹스’가 걱정스럽다. J노믹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니셜 중 가운데 글자인 ‘J’와 경제학을 뜻하는‘이코노믹스(Econo mics)’를 합성한 용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위원회를 통한 정부주도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통한 4차 산업혁명 대비 △중소ㆍ벤처기업 육성 △대기업 지주회사 요건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세제 개편을 통한 소득 재분배 등을 주요 경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문제는 J노믹스의 뿌리가 되는 ‘소득주도성장론’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데 있다. 정부는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여기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낮췄다. 30만명대였던 취업자 증가폭 전망은 20만명 밑으로 떨어졌고설비투자 증가율 목표치도 지난해말 전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1년여만에 성장·분배에서 후퇴한 것을 자인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근로장려세로 334만가구에 3조8천억원을 확대 지원하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5.0%에서 3.5%로 낮추고 기초연금은 30만원으로 올린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1년간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이 고용·투자·내수활성화는 커녕 최악의 고용절벽을 초래한 셈인데 기재부는 인구구조 변화와 내수가 부진한 구조·경기적 요인이 겹친 결과로 진단하고 소득주도성장 추진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것이다.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해 추경 11조원을 포함해 무려 17조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정부’의 고용목표가 반토막 난 것은 심각한 일이다. 또 최저임금 인상으로 민간부문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드는 등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비 증대가 전체 경기를 부양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분수 효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등 잘못된 진단이 정책과 처방의 오류를 낳았고, 경제정책 전반의 대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4차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혁신성장 대책은 구체성이 없고 과거 방안의 재탕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가 하면 일자리 증대를 위한 대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이런 와중에 정부는 기금 3조원, 공기업 6천억원 등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돈을 동원해 포퓰리즘적인 재정정책만 양산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경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 집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국민혈세로 경기부양을 떠받치고, 공무원 고용확대로 취업률을 높이려는 시도들은 악순환을 되풀이하기 십상이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복지확대와 소득분배 개선을 통해 성장을 이루려고 한다면 결국 증세라는 카드를 활용하지 않고는 해법이 없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증세는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준다. 지난 1년여의 정책집행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의 한계를 엿본 만큼 국가 경제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진단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나라 살림살이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으로서 지난 6·13보궐선거에서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송언석(김천) 의원은 복지확대와 소득분배 개선을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포퓰리즘적 경제정책으로 규정하면서 한국당이 정부여당의 잘못된 정책을 제대로 맞받아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일례로 정부여당이 현재 만 65세 이상·소득하위 70% 노인에 약 20만원씩 지급되고 있는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자고 하는 데, 야당이 나라살림살이를 걱정해 반대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의 무서움은 끝장을 봐야 후회하게 된다는 데 있다. J노믹스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2018-07-20

보수의 나아갈 길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의 몸부림이 한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로 인해 정권을 잃은 뒤 1년만에 치른 지방선거에서 대참패한 자유한국당이다. 예상밖의 큰 패배는 구성원들을 ‘멘붕’에 빠뜨렸고,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을 잃은 모양새다. 비상대책위 준비위를 발족하고도 비대위원장 역할을 놓고 논란만 계속되고 있다. 계속된 의원총회에서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중이지만 서로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는 수준이다. 답답함을 느낀 몇몇 의원들은 옆에서 지켜보는 정치부 기자들과의 대화속에서 묘방찾기에 나서기도 한다. 며칠 전 경북지역 3선의원인 강석호(영양·영덕·울진·봉화) 의원이 대구·경북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자유한국당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하면 타개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구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도 자유한국당이 보수당으로서 국민들에게 준 실망스런 모습을 어떻게 불식할 수 있을까에 논의가 집중됐다. 이제까지처럼 비대위 구성-인적청산-전당대회로 새 지도부 구성으로 이어지는 해법으로 자유한국당호의 표류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관건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니 무슨 결론이 나올 수 있겠는가. 다만 지금 자유한국당이 해야한다고 믿는 인적청산이 현실적으로는 추진하기 매우 곤란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국민이 뽑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과거의 정치적 성향과 행보를 이유로 탈당이나 사퇴 등을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설령 그럴 수 있다해도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내몰 것이냐는 문제에 이르면 답이 없다. 결국 실행할 방법도 없는 인적 청산을 고집해 분란을 키우기보다는 당내 화합을 강조하며 수습해나가는 방안이 차선이 아니냐는 의견이었다.6·13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치열한 접전끝에 당선된,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송언석(김천) 의원은 당의 진로에 대해 현실적인 제안을 내놨다. 지금이라도 자유한국당이 역량을 모아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경제정책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강력한 대여공세, 대정부공세를 펼치자는 것이다. 인적청산이란 철지난 화두에 매달리기보다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으로서 소임을 다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나가는 게 훨씬 낫다는 견해였다.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의 견해였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6·13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에 당선돼 지난 2일 취임한 이철우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쇄신행보는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이 지사는 최근 청와대를 찾았다가 청와대에 출입하는 대구·경북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경북도정을 혁신적으로 바꿔나가겠다는 각오와 포부를 밝혔다. 취임식을 정례 조회로 대신하고, 외부행사 때 수행원을 대폭 줄여 의전을 간소화했다. 이번 간담회 때도 수행원은 비서 한 명이 전부였다. 도지사 집무실을 찾은 손님에게 여직원이 차를 나르는 것도 없앴다. 실국장들과의 업무연락이나 소통도 SNS망인 카카오톡 단톡방을 개설해 간편하고, 신속하게 바꿨단다. 언론에 보도된 자료를 출력해 왔다갔다할 필요없이 단톡방을 통해 공유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게 이 지사의 얘기였다. 여직원 출산휴가가 3개월에 불과한 것을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최대 1년까지 늘려서 재택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안도 연구중이라고 했다. 이 지사의 파격 의전과 파격 행보는 공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몸짓으로 읽혔다. 그러면서 그는 끝으로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20~40대 젊은 층이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아 참패한 상황에서, 당을 젊게 바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지사의 행보와 주장은 그가 몸담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보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201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