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 지도자의 자리인 대통령에 앉은 이는 대체로 등산을 좋아한다. 산에 오르면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걸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대통령들은 대체로 산을 좋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 기자단과 자주 산을 올랐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도 산행을 즐겼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절친인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등산을 좋아한다고 밝힐만큼 산 오르는 걸 즐긴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만은 여성 대통령이어서 그런지 산행을 즐기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청와대 기자단과 함께 서울 북악산을 올랐다. 삼청각 옆을 지나 숙정문 안내소, 숙정문을 거쳐 북악산 성곽길을 따라 창의문까지 이르는 코스였다. 필자는 취임 직후 한 차례 있었던 산행에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갖고 있었기에 이번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300여 명에 이르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가운데 참석자는 펜 기자 100명과 영상기자 15명, 사진기자 6명, 외신기자 26명 등 총 147명의 기자가 참석했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비서관 26명도 함께 했다. 거의 2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등산로를 따라 줄지어 오르며, 이날 하루동안 북악산 등산가이드를 자처한 대통령의 북악산에 대한 유래와 남한산성 성곽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소 자주 보기 어려웠던 수석비서관들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가외의 즐거움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등산애호론을 펼쳤다. “저는 아시다시피 등산을 좋아하는데, 등산도 등산이지만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습니다. 설악산, 지리산 그러면 그 꼭대기에 가보고 싶은 거예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이러면 꼭대기에 가보고 싶죠. 꼭대기에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고 높은 데까지는 가보고 싶은, 꼭 산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동학농민혁명 기념지에 우금치라든지, 황토현이라든지, 이런 것을 역사에서 배우면 그런 장소에 가보고 싶어요. 북악산도 당연히 청와대 뒷산이니까 보면 위에 올라가 보고 싶은 것이죠.”
산에 오르고 싶은 이유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간명하고 알기 쉬운 이유였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산행지를 북악산으로 선택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할 때 여기 북악산을 주산, 진산으로 선택하고, 아래로 경복궁을 들어앉혔거든요. 그때 아시다시피 무학대사와 정도전 사이에 북악산을 주산으로 해야 된다, 아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해야 된다, 이런 식의 논쟁 끝에 이쪽이 선택됐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북악산, 인왕산 이런 데 꼭 와보고 싶은 거예요.”
정상을 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산하다 우연찮게 문 대통령과 나란히 내려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됐다. 경북매일신문이 포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소개하자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의 민심을 궁금해했다. “대구·경북지역도 예전에 민주당을 배척하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최근에는 최저임금제도, 소득주도성장정책, 탈원전정책 등으로 지역 경제문제가 심각해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고 대구·경북지역 민심을 들려주자 문 대통령은 별다른 답변없이 묵묵히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한담을 주고 받는 중에도 산행을 하던 시민들과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악수로 인사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는 소탈하고 담백한 태도를 보여주는 문 대통령이지만 그의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공자가 말하기를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으니, 얼키고 설킨 이 나라의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산을 즐기는, 덕망있는 대통령에게 물을 즐기는 자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짐작해보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