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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씨뿌리기는 없다

등록일 2018-10-26 20:21 게재일 2018-10-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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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박목월 선생의 수필집 ‘달과 고무신’ 제3부 ‘일상의 경이’편에 실린 ‘씨 뿌리기’란 제목의 글에 호주머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뿌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같아서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열매 달리는 것을 볼 수 있겠느냐”고 비웃자 “누가 따면 어떤가. 다 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하고 대답했다. 옛 말에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六十不種樹)”는 말이 있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일게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송유(宋愉)가 70세 고희연(古稀宴)에 감자(柑子)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는 10년 뒤 수확한 감자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육조의 판서를 두루 지낸 황흠(黃欽)이 80세에 고향에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라고 묻자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러나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렸다. 그가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되어버렸군.” 씨 뿌리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다. 설사 내가 그 열매를 못 딴들 어떠랴.

최근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이뤄내겠노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무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놓고 논란이 많다.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실망감을 표시하며 아예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치분권의 핵심인 재정 분권이, 정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자치분권 로드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자 이에 실망한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언론들의 날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종합계획’이 아니라 ‘재탕 계획’이란 혹평까지 나왔다.

최근 청와대에서 자치분권 업무를 맡아 전국 권역별 기자간담회를 이어가고 있는 정무수석실 산하 민형배 지방자치발전비서관을 만났다. 민 비서관은 자치분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머지않아 자치분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이 분야별로 나올 것입니다. 이 정부의 자치분권 의지는 확고합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이기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치분권과 관련해서는 자치법 개정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재정분권과 관련한 실행방안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실행방안들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재정분권의 목표를 향후 2년동안 1단계, 그 후 2년을 2단계로 잡고, 우선 목표는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8대2에서 7대3으로 돌려놓는 것이라 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긴장 완화와 평화 무드에 따른 시너지 효과, 그리고 지역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자치분권 실현”이라며 자치분권에 대한 문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그는 국회에서 지방자치와 관련한 법률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데, 그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아마 지난 23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을 가리키는 듯 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19개 중앙부처 소관 66개 법률의 571개 사무가 지방에 이양된다. 지방분권이라는 큰 걸음을 내딛기 위한 최초의 조치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씨뿌리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옛 교훈을 거듭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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