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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천, 그리고 낙화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대구·경북 지역의 미래통합당 현역의원에 대한 공천 칼날이 피를 뿌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3선의 친박계 핵심 출신 김재원 의원, 비박계 3선 강석호 의원, 초선인 곽대훈·김석기·백승주·정태옥 의원과 재선의 박명재 의원까지 컷오프돼 지역구 의원 20명 중 7명이 낙마했다. 이로써 대구·경북지역에서는 20명의 현역의원 중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5명을 포함해 12명이 물갈이 됐다. 특히 지역에서 중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던 3선이상 정치인 5명 중 주호영 의원을 제외한 4명이 공천에서 모두 교체된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선수를 우선시하는 국회의 관례를 생각하면 21대 국회에서 TK지역은 단 한명의 상임위원장도 배출할 수 없는 진용으로 짜여진 셈이다. 3선 이상 정치내공을 쌓아 온 이들 마저 공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컷오프의 수모를 견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텃밭에서 현역의원들을 대거 교체하지 않으면 쇄신이란 모양새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다 지금 이대로는 정권교체를 이루기 힘들다는 당내 절박감이 컸기 때문일게다. 또한 텃밭에 안주한 정치인의 경쟁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홍준표 전 대표는 수도권 험지출마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컷오프된 후 대구에 무소속 출마하겠다며 선언해 또 다른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홍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선언을 계기로 곽대훈(달서갑) ,정태옥(북구갑), 강효상(달서병) 의원 등이 무소속 출마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TK발 무소속연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재선의 포항남·울릉 지역구 박명재 의원이 컷오프이후 무소속 불출마 선언을 해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지난 9일 포항KTX역에서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 “이번 공천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당과 포항, 대한민국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천결과 수용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의 첫 구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로 말을 맺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 아름다운 시를 진흙탕 싸움이기 쉬운 정치적 현실에 대입하는 일은 무척 민망스럽다. 그러나 봄 한철 격정같던 사랑은 어디 갔을까 자문해보자. 이 계절이 지나면 무성한 녹음과 열매맺는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누군들 모르랴.그렇다해도 꽃잎이 지는 낙화의 아픔은 좀처럼 덜어지지 않는 듯 싶다.

2020-03-12

박근혜 옥중메시지 파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총선을 한달여 앞둔 시점에 터져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메시지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보수통합을 추진해온 범야권, 친박세력끼리 헤쳐모여 하던 태극기세력, 그리고 보수통합을 견제해온 범여권 세 당사자 모두에게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거대야당을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힘을 모아 현 정권을 심판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졸지에 보수대통합세력을 대적하게 된 범여권은‘선동정치’라며 날선 비판을 내놨다. 반면 보수통합을 추진해온 야당에서는 ‘애국심에 감동했다’는 반응이다.미래통합당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반가운 선물로 표현하면서, 내용대로 보수 통합을 마무리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황교안 대표는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 앞에 분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는 통합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줬다”며 “천금과 같은 말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자유공화당에서 요구한 공천 작업 중단 요구에 대해선 선을 그어 추후 논란이 예상된다. 어쨌든 통합당과 합류할 것을 요청받은 태극기 세력은 박 전 대통령의 요청에 공감했다. 실제로 옥중메시지 발표직후 자유공화당 김문수, 조원진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태극기 우파 세력과 미래통합당 등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탄핵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수대통합에 힘을 보탬으로써 미래통합당 의석확보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태극기부대의 합류로 ‘도로새누리당’이 됐다는 비판과 함께 중도세력의 이탈이 점쳐져 일방적인 긍정효과는 이르다.옥중 메시지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뭘까 곰곰이 가늠해본다. 우선 미래통합당을 보수통합의 주체로 추인하고, 탄핵 찬성세력에 대해 용서하겠다는 뜻이 읽힌다. 박 전 대통령이나 태극기 부대는 지금까지 탄핵을 부정하며 탄핵에 참여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 김무성계, 유승민계 등등에 대해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이제는‘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는 미래통합당의 텃밭인 대구, 경북(TK)·부산 경남(PK)지역 공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에 힘을 실어주고, 향후 자신의 사면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미래통합당은 최근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지역 후보들에 대한 면접은 마쳤지만 아직 공천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컷오프 되는 후보들의 집단 이탈 우려 때문이다. 공천탈락자들이 친박신당 등 새로운 세력을 만들면 야권 분열로 필패국면이 된다.그러나 이번 옥중메시지가 친박진영들의 공천탈락후 반발 등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결과가 돼 공관위의 개혁공천에 힘을 실어주고있다. 어쨌든 보수대통합에 추동력을 보태준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 지는 총선 성적표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는 데서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2020-03-05

시험무대 된 코로나 사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 사태가 정치권의 리더십 시험무대가 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코로나19로 초토화된 대구를 찾아가 특별대책회의를 갖고, 코로나19 전담의료기관인 대구의료원과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가 된 신천지교회가 소재한 대구남구청 등을 찾아 관계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코로나19로 흉흉해진 대구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행보였다. 문 대통령의 뒤를 이어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역시 27일 대구시청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민심을 헤아려야 할 정치 리더로서 당연한 행보로 읽혔다.반면 대구·경북지역 자치단체장인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혹독한 리더십 시험무대를 맞고있다. 특히 코로나확진 환자의 과반이상이 쏟아져 나온 대구를 책임진 권영진 대구시장은 코로나19 방역 대응에서 허술하고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대표적인 것이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권 시장이 대구 신천지 교인들에 대해 유증상자만 검사가 가능하고, 교인들 전부를 검사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일주일이 지난 26일에야 전체 신천지 신도 대상 전수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번복한 사실이다. 또 대구시 공무원 내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신천지 교인인 대구 서구보건소 감염예방 총괄팀장에 대한 허술한 조치도 구설수에 올랐다. 보건소 감염예방 총괄팀장인 그는 지난 20일 오후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대구시에 통보한 신천지 교인 2차 명단에 포함돼 자가격리를 권고받았고, 다음 날인 21일에야 자신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도 권 시장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그분이 해당 직무를 맡고 있었던 것은 결과이고, 이에 앞서 그 분이‘신천지 신도’였을 뿐인데 이를 문제삼기 어렵다”고 사실과 다르게 비호하려했다. 이처럼 초기 신천지 내 감염 위험성을 심각하게 보지 않은 까닭에 ‘늑장’ ‘뒷북’ 대응이 이뤄지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다.코로나19 확진자수 300명을 돌파한 경북도의 수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역시 리더십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6일 이 지사가 도청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대응 현황에 발표에 이어 ‘신천지 신도들에게 전하는 협조 말씀’이라는 공개 서한을 발표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 지사는 호소문을 통해 코로나 방역과 관련해 신천지 신도들의 참여와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를 비롯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전국의 신천지교회 신자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지역감염을 막기 위해 강제력까지 동원해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황당한 ‘뒷북’당부였다는 비판이 이어졌다.실제로 서울시는 서울 전 지역에서 신천지 집회와 제례 등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행정명령을 발동했고, 경기도도 신천지 집회, 모임을 전면 금지하고 시설을 강제 폐쇄하는 내용의 긴급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25일 과천 신천지 총회본부에 진입해 교인 명단을 확보하는 강수를 뒀다.위기에 처했을 때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다르게 표출되는 지를 잘 보여주는 듯해 씁쓸했다.

2020-02-27

총선과 코로나19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대거 발생해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감염성 높은 신종 코로나 창궐은 선거운동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 악수하거나 명함을 건네는 것은 고사하고 마스크를 쓴 채 눈인사만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려야 하는 정치신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선거를 앞둔 예비후보들은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들었다. 또 얼굴을 마주보는 대면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된 만큼 SNS, 블로그 등을 통한 사어버 선거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 예방법을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예비후보도 있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검색량 자체를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주자도 있다. 또 핫이슈 패러디 등 재치있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로 내보내는 등으로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구·경북지역의 공포분위기를 의식한 일부 후보는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하거나 대면선거운동 중단을 외치고 있다. 대구 달서갑에 출마준비 중인 더불어민주당 권택흥 예비후보는 긴급 성명을 통해 선거운동 잠정 중단과 함께, 시민접촉이 없는 출·퇴근 인사와 더불어 SNS·미디어로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영천·청도 선거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정우동 후보 역시 대면접촉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예방수칙 홍보, 피켓 인사하기, 전화 및 SNS 활용 등으로 선거운동을 대체한다고 했다. 안동지역에 출마준비 중인 권택기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도 대면·방문 형식의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급기야 선거운동 기간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이 대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정당별 이해득실은 어떻게 될까 짚어보자. 먼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책임론은 여당에 부담이 될 것이 확실하다. 어떻든 현재 정권을 잡은 쪽이 전염병확산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코로나19 발병초기부터 꾸준히 중국인 및 중국을 방문한 외국입국제한조치를 주장했고, 대구 경북지역에서 코로나 환자가 추가발생하자 이를 정권심판론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해도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참고로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1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선‘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5%,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3%이었다.정권심판론과 국정지지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맞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경우 총선에서 야권의‘정권 심판론’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란 주장과 오히려 증폭될 것이란 주장 어느 쪽이 들어맞을까. 이는 정부여당이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 확산방지 대책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2020-02-20

2등이 1등이 되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참신한 인물의 영입·공천에 힘을 쏟고 있다. 여야 막론하고 새로운 얼굴을 영입하고, 구태의연한 인물은 물갈이하겠다는 열의로 넘친다.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면 자신들의 맘대로 국회를 끌고 갈 수 있고, 차기 대권확보에도 월등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상황이니 어느 누가 용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정권을 잃은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재탈환을 향한 갈증이 더욱 심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2등이 1등되기란 참으로 힘겨운 노력과 실행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판에서도,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차원에서 화장품 업계에서 2등에서 1등 브랜드로 올라선 사례를 살펴 타산지석으로 삼아보면 어떨까.화제의 브랜드는 ‘대한민국 최초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로 소개하는 ‘이니스프리’다. 이전까지 만년 2위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이니스프리는 2016년 더페이스샵을 넘어 이미지, 매출, 영업이익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 화장품 브랜드 1위에 올랐다. 설화수에 이어 아모레퍼시픽그룹에서 두 번째 ‘1조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이니스프리의 1위 원동력은 브랜드 이미지에서 나온다. 자연주의를 콘셉트로 내세운 화장품들은 많았지만 이니스프리는 추상적인 자연주의가 아닌 ‘제주’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했다. 제주산 자연원료를 강조한 마케팅을 통해 이니스프리 하면 곧바로 제주가 떠오르게 했다. 제주도 산 녹차와 화산송이를 활용한 ‘더 그린티 씨드 세럼’과 ‘제주 화산송이 모공 마스크’는 밀리언 셀러에 올랐다. 이를 통해 제주가 가진 자연환경과 청정 섬이라는 이미지를 브랜드에 그대로 녹여낼 수 있었다. 또 제주도를 신비의 섬으로 여기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니스프리는 브랜드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2013년 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를 오픈, 공간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업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뒤따랐다. ‘아무 말 아이디어 대잔치’ 콘셉트로 연 2~4회 사내행사인 ‘그린비어파티’를 여는데, 음료와 음식을 자유롭게 즐기며 기획이나 제품 관련 아이디어를 내면 행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같은 일관성 있는 브랜드 철학과 유연한 업무 환경 등이 2등 브랜드를 압도적인 1등으로 만드는 열쇠가 됐다고 한다.이쯤되면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1등 정당이 되기 위한 해법도 제법 선명해진다. 이니스프리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일관성있게 ‘개혁보수’로 맞추고, 콘셉트에 맞는 참신한 인물들을 영입해 밀리언 셀러로 만들자. 곁들여 새 아이디어나 쓴 소리도 잘 소통될 수 있는 유연한 정당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쇄신이나 통합이 산뜻하게 진행되지도 못하고, 인재영입 실적도 마땅찮아 대박제품을 기대하기 어려워보이고, 이런저런 제안에도 피드백없는 자유한국당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눈에 거슬려 해보는 혼잣말이다.

2020-02-13

황교안 일병구하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의 수도권 공성전략이 초장부터 꼬이고 있다. 통상 총선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국회의원 당락이 걸린 수도권 공략을 위해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대표주자끼리 건곤일척의 승부와 천번지복의 한판대결을 벌이는 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4·15총선에서는 ‘서울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지역구가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런데 이같은 대결구도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제1야당 대표가 오히려 여당 후보로 나설 이낙연 전 총리와의 대결을 피하는 모양새로 비쳐 지역 정치권에서도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망신살이 뻗치려나. 황 대표가 우물쭈물 결단을 미루는 동안 호남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돼 ‘지역정서 타파의 선두주자’란 명예로 당 대표까지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전격적으로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이왕 호남지역에서 힘을 잃은 이 전 대표야 격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해도 밑질 일없다는 계산이니, 그의 정치적 순발력은 상당하다 평가할 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주자로 뛸 황교안 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총선 출마 지역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이리 와라’ 그러면 이리 가고,‘인재 발표해라’ 그러면 발표하고, 그렇게 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면서 자신의 행보는 자신의 판단, 자신의 스케줄로 해야하고, 이번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큰 전략 하에 자신의 스케줄을 짜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종로 출마는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란 말이 나온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황 대표의 행보는 이같은 공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중진의원들의 험지출마론을 설파해온 황 대표가 수도권에서 여권의 대권후보로 가장 유력한 이낙연 전 총리가 출마한 종로지역을 피해 다른 수도권의 험지에 출마하겠다면 어떤 의원들이 납득할까 싶다. 자신의 출마지역을 결정하기 위해 서울 용산, 양천구, 마포 등지에서 지지도 여론조사를 통해 승산을 점치느라 북새통을 벌이고도 공천신청이 끝난 오늘까지도 출마지역을 결정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는 모습은 당 안팎의 비판을 자초한다.이런 마당에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대표나 총리 물망에 올랐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각각 자신의 고향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한들 무슨 염치로 험지출마를 강권할 수 있을까. 무릇 지도자는 타인의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원외 당대표로서 겪어온 불편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대권가도에 진력하기 위해서 이같은 무리수를 서슴치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짐작은 되지만 총사령관이어야 할 당 대표의 구차한 행보는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전체 사기에도 나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감행하고 있는 ‘황교안 일병 구하기’작전은 실속없고, 볼품없는 최악의 작전으로 기록될 듯 하다.

2020-02-06

뿌리깊은 대나무 키우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구·경북(TK)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한국당의 물갈이론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형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4·15 총선에서 공천 가산점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원외 인사도 컷오프(공천배제)를 적용하는 방안 등을 밝혔다. 그동안 한국당 공관위가 발표한 안대로라면 최고로 많이 받는 게 50%의 청년 가산점이었다. 여기서 가산점은 절대점수가 아니라 자기가 받은 점수의 50%를 가산하는 방식이다. 가산비율을 받은 점수에서 올릴 게 아니라 절대적인 점수를 올려주는 방식을 채택할 필요성이 있다.정치권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대목은 바로 권역별 컷오프 비율이다. 총선기획단이 현역 의원의 30%를 컷오프해 전체 50%를 물갈이하겠다는 기준을 발표한 바 있는 만큼 현역의원이 많은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은 컷오프 우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무엇보다 컷오프 기준 지역구 여론조사 방식이 대국민 조사와 당원조사로 정해지면서 집단적인 반발움직임도 보인다. 당 지지율이 50%를 훨씬 상회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개별 의원들의 지지율이 이에 못 미친다고 해서 컷오프시킨다면 지역 민심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이렇듯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에 대한 컷오프기준은 어떻게 결정하든 군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다가오는 총선 결과를 미리 예측할 때 쇄신과 보수통합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전국적으로는 그리 신통한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렇다면 전국 각 지역에서 젊고 참신한 인재들을 적극 공천해 새 일꾼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씨를 뿌려 향후 다가올 대선, 또 그다음의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중국 어느 마을에 새로 이사온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마을 농부들의 대나무 키우는 방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농부들이 심은 대나무는 다른 곳과 달리 싹도 나지 않고, 제대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사꾼이 농부들에게 잘 자라지도 않는 대나무를 왜 심는 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두 해가 지나고, 4년이 되었지만 대나무는 여전히 순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농부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5년째가 되자 대나무 밭에서 갑자기 죽순이 돋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자 대나무는 무려 15m이상 자라서 빽빽한 숲을 이뤘다. 농부들은 그제서야 대나무를 베어냈다. 깜짝 놀라는 그에게 한 노인이 이렇게 답했다.“모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대나무는 순을 내기 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에서 멀리까지 자란다네. 그리고 일단 순이 돋으면 길게 뻗은 그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양분을 얻어 순식간에 키가 자라네. 부질없어 보인 4년이란 시간은 대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준비기간이라네.”우리 정치판에서 민심의 양분을 충분히 받아들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싶다면 이처럼 묵묵히 대나무를 심고 가꾸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해답없는 컷오프 기준에 큰 깨달음을 던져주는 일화다.

2020-01-30

서로 다른 경제지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고,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회견이 끝난 뒤 참석한 기자들 상당수는 왠지 현 정부에 우호적이거나 온건한 성향의 기자들이 많이 지명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털어놨다. 또 질문자로 지명된 기자들이 거의 대부분 회견장 앞 첫째 줄과 둘째 줄에 포진해 있었던 사실 또한 우연한 일이었을까 의심스러웠다. 기자회견 시작하기 약 1시간 전에 영빈관에 입장해보니 이미 회견장 앞 둘째줄까지 꽉 차 있었던 점도 이상했다. 당시에는 “무척 부지런한 기자들이 많구나” 하고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청와대측의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살아있는 답변을 통해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국민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질문자 지명 이벤트는 지난 해에 이어 재연했지만 청와대측은 지난 해 생방송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수 있다. 지난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한 지역 방송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 데 무슨 자신감으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공격적인 질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더구나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 이어 이날도 우리 경제지표 개선을 이유로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명 증가해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도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수출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세계 경기 하강 속에서도 수출 세계 7위를 지켰고,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 11년 연속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취업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세금으로 늘린 노인 공공 일자리가 크게 반영됐고, 40대 이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고, 초단시간 취업자가 급증하는 등 일자리 질은 오히려 급속히 나빠졌다. 수출상황도 마찬가지다. 순위나 수출액은 맞지만 지난 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10.3% 감소해 세계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무역 흑자는 372억달러로 전년에 비하면 반 토막이 됐다. 이런 부정적인 지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년사에서) 긍정적인 지표를 많이 말하고, 부정적인 지표를 말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말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고 했다. 신년사 이후 언론의 따가운 비판이 잇따랐던 걸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대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다고 인정해야 새로운 개선책이 나올 것 아닌가. 영세자영업자들을 포함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데,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을 보이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2020-01-16

꼼수 없는 정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꼼수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정의된다. 바둑에서 꼼수는 정수와는 달리 상대가 욕심을 내는 것을 노려 함정에 빠뜨리는 수를 말한다. 최근 정치판에서 꼼수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바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자유한국당이 반발하며 창당준비를 하고 있는 ‘비례자유한국당’이 꼼수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한다. 자유한국당의 위성 정당인‘비례자유한국당’의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가 지난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고됐다. 사무소 소재지는 ‘서울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73번지 우성빌딩 3층’이니 한국당 중앙당사와 같은 주소다. 창준위는 발기 취지문을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동형 선거제가 많은 독소조항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야욕에 눈먼 자들의 야합으로 졸속 날치기로 처리된바, 꼼수는 묘수로, 졸속 날치기에는 정정당당과 준법으로 맞서 반드시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의 선거법 개정을 꼼수로, 비례정당 창당을 묘수로 재해석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비례정당 창당 자체에 대해 한국당 스스로도 꼼수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하다. 비례자유한국당이 출범하면 4·15 총선에서 한국당은 지역구 후보만,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낼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 의원 30여명을 비례자유한국당에 배치해 원내 3당으로 만드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당은 지역구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을,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두 번째 칸’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청문보고서 채택을 않겠다는 자유한국당 때문에 난항이다. 자유한국당은 정 후보자를 상대로 동탄 개발과정에서의 개입 의혹이나 채무 관계, 기부금 등을 쟁점화하며 전방위적으로 추궁했으나 ‘결정적 한 방’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9일 “입법부 수장을 한 분이 총리가 되는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한 것이라 처음부터 부적격이었고, 도덕성 등 관련 의혹이 여러 개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며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사실 정세균 후보자는 1년에 한 번 기자들의 투표로 당마다 1명씩 가장 신사적인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신사상을 12번이나 탄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신사적인 의원으로 유명하다. 보수성향 야당의원들과도 친하고, ‘스마일 정’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온화한 성품에다 6선 관록에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을 지냈으니 국무총리 후보로는 오히려 분에 넘친다고 해야할 인물이다. 이런데도 전직 국회의장이 국무총리를 맡는다고 삼권분립 훼손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오는 16일 이전까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 총선에 출마할 이낙연 국무총리의 행보에 흠집을 내기 위한 꼼수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이 나라 정치가 어려운 것은 정정당당한 정수가 아닌 꼼수의 횡행 때문은 아닌가. 꼼수 없는 정치가 못내 아쉽다.

2020-01-09

다수의 독재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다수의 독재’가 우리 국회를 점령했다는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다수의 독재’란 말은 지난 1993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빌 클린턴이 법무부의 시민권담당자로 지명했다가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지명철회했던 흑인 여성법학자인 라니 귀니에르가 강조했던 개념이다. 급진적 진보주의자로 자처한 귀니에르는 “다수에 의한 통치가 실제로는 공정하지도 않으며,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 뿐 더러 오히려 ‘다수의 독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제임스 메디슨 역시 51%가 강요하는 ‘다수의 독재’는 모두가 피를 흘리며 저항했던 왕정독재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혹자는 다수결의 원칙인 의회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다수의 독재란 말은 지나치다고 말한다.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측이 자신들의 뜻대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리다. 원칙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게 맞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다.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소수라고 해서 결코 무시돼선 안되는 이유다. 특히 국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거나 바꿀 때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과반수가 안되는 여당이 군소야당을 규합해 4+1협의체를 구성, 법안과 예산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조리 통과시킨 행위는 나머지 100여명이 넘는 선량을 지지한 국민의 뜻을 모조리 무시하는 짓이다. 다수결 원칙의 공정성에 대한 신념이 지나쳐 ‘승자독식’의 오만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이면 ‘다수의 독재’란 비판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특히 지난 연말 여야 4+1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없이 통과시킨 것은 다수의 독재가 불러온 최대 참사라는 지적이 많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도 선거법은 총선이라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일이란 점에서 합의를 통해 바꿔왔기 때문이다. 이어 여야 4+1협의체가 공수처법까지 통과시키자 자유한국당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것도 필연적인 수순이다. 야당으로서 국회 내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선언이자 여당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뜻일게다. 현실적으로 총사퇴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지만 합의정치는 실종되고 말았다.여야의 강대강 대치에 대해 경북의 한 재선의원은 “여당은 야당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볼 뿐 대화나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젊고 유능한 스타급 정치인으로 평가받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이철희 의원은 최근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386세대 용퇴론을 넘어 정당개혁, 국회 개혁, 개헌 등 정치개혁을 통해 국민과 같이 가는 정치가 작동하도록 판갈이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수의 독재는 여야 모두에게 정치실종의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2020-01-02

옥상옥 권력기관, 공수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공수처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공소유지권을 공수처에 넘겨 검찰의 정치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취지다.공수처가 설립 취지대로만 운영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무슨 이견이 있으랴. 보수야당의 반대는 더할 나위없이 거세다. 야당으로선 검찰로도 충분히 공직사회 기강을 잡을 수 있는 데, 새로 공수처를 세우는 것은 옥상옥이자 야당정치인을 탄압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방편이 아니냐며 반대해왔다.더구나 지금껏 공수처 설치를 묵인하는 듯 했던 검찰이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듯 하다. 검찰은 여야‘4+1’협의체가 합의한 공수처 설치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당초 법안에 없던 독소조항이 협의과정에서 슬며시 추가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조항은‘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하여야 한다’는 제24조 제2항 규정이다.설령 공수처의 필요성을 백번 인정한다해도 압수수색 전 단계인 수사착수부터 검경이 공수처에 사전보고하도록 규정한 것은 사실 지나친 처사다. 공수처가 검경으로부터 입맛에 맞는 사건을 이첩해 과잉수사를 하거나, 반대로 사건을 가로채 뭉개거나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통상 검찰은 수사착수 단계에서는 법무부나 청와대에도 사전보고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에 사건의 수사착수 통보 의무화 규정은 수사검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가 헌법기관인 검찰에 대해 상위기관으로서 지휘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위헌성이 짙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더 큰 문제는 공수처와 검찰간 갈등이 수사를 통해 표면화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검찰이 공수처 검사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반대로 공수처가 해당검사를 비리혐의로 수사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공수처법이 현실이 되면 현재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수사와 재판 경력 없이 ‘조사업무 실무’ 5년 이상 경력으로 가능한 공수처 수사관 자격조항도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는 세월호특조위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들을 합류시키기 위한 규정이라는 비판이 많다.야당이 검찰을 권력의 주구로 만들기 위헤 공수처를 만들려고 한다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야당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듯한 독소조항을 슬쩍 끼워넣은 여당의 처사는 한마디로 안하무인격이다. 여당은 이합집산을 통해 국회운영을 독재적으로 끌고가선 안된다. 공수처법을 두고 벌어진, 민심을 두려워않는 여당의 행태는 국민적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2019-12-26

제4의 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역대 국회의장이 퇴임을 하면 흔히 세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첫째가 정계원로의 길을 걷는 경우다. 황낙주·박관용·임채정·김형오·박희태·강창희 전 의장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둘째는 퇴임후 다시 총선에 출마해 선수를 더한 경우다. 박준규·이만섭·김원기 전 의장이 그랬다. 셋째는 국회의장을 지낸 뒤 대권에 도전한 경우다. 초대의장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신익희 전 의장이 그랬다. 이번에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모 중앙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가지 길 중 어느 길을 걷고 싶으냐”는 질문에“제4의 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됐을까. 정 전 의장은 자신이 한 답변 그대로‘제4의 길’을 걷고 있다. “정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변화무쌍한 생물”이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19일까지 나흘째 패스트트랙 규탄대회를 열고, 여당의 공수처법과 선거법 날치기를 저지하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회내에 한국당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최근의 한국당 집회에는‘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단체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국회 로텐더홀 밤샘농성에 이어 국회앞 규탄대회 개최 등 장외투쟁으로 번져가면서 급속히 극우성향으로 치닫는 데 대한 우려다.여당이 새해 예산을 일방적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후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장외투쟁으로 치달은 한국당의 입장을 이해못할 바 아니지만 정치권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야당으로서 집권여당과 싸우는 방법이 빗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저지에 올인하면서 장외투쟁으로 뛰쳐나가는 것은 오히려 논점을 흐리는 것이란 비판이다. 사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야당의 협의체인 ‘4+1협의체’가 힘을 합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서면 한국당이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다. 협의체가 과반수를 확보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법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며칠째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을 동원해 규탄대회를 여는 이유가 뭘까. 추측컨대 여당과 협의할 명분, 즉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공수처 법안만 해도 한국당 일각에선 일부 독소조항을 바꾸면 통과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골자인 선거법 개편안은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의 이해관계가 거의 일치한다. 그러니 이제라도 여당과의 물밑대화로 꼬인 정국을 푸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청와대 하명수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사건, 우리들병원 특혜 부정사건 등 ‘친문3대 게이트’를 대여공세의 지렛대로 하고, 민생경제 침체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정당의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참신한 인물을 적극 영입해 쇄신바람을 일으키고, 보수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보수통합을 이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당이 가야할 제4의 길이다.

2019-12-19

위기의 한국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이 위기를 맞고 있다. 새해 예산안 협의를 놓고 여당과 밀고당기며 버티다가 패싱당했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붙여진 선거제개편안과 공수처법안 저지를 위해 국회 로텐터홀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마저 날치기 처리를 강행하려 할 것이다. 좌파독재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다”면서 국회 로텐터홀에 ‘나를 밟고가라’는 현수막을 바닥에 설치하고, 무기한농성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로텐터홀에서 잠을 자며 24시간 머무르겠다는 계획이다. 현역의원들도 10∼15명씩 돌아가며 취침하기로 했다. 한국당은 지난 11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상임위 소속 의원별로 조를 짜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해 본회의 개의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민주당이 본회의를 취소하자 농성을 풀었다.문제는 한국당이 여당에 맞서 강경투쟁을 하려해도 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범여권이 ‘4+1(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협의체’로 수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상임고문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황 대표와 오찬을 하면서 “정치는 투쟁이고 싸우는 것”이라며 강경투쟁을 주문해 이에 부합하는 모양새를 내고싶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다. 우선 국회의장이 의사진행을 못하게 막는 것은 국회선진화법 위반이 우려돼 의원들을 마냥 몸싸움에 내몰 수 없다. 추가 고소와 고발 위험이 있으니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할 현역 의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필리버스터로 맞선다해도 여당이 임시국회를 쪼개기로 대응하면 법안처리를 다소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기대하기 어렵다.비공개 회의에서는 의원직 총사퇴 주장도 나왔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이 어렵다. 회기중 의원직 총사퇴가 본회의 표결에서 과반으로 가결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 국회의장의 재가가 필요한 데, 재가해줄 리가 없다. 설령 의원직 총사퇴가 실현된다해도 사퇴 이후에는 대정부비판이나 견제 기능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 선 셈이다.자유한국당이 이같은 곤경에 빠진 것은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으로 예산이나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않으리란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패스트트랙 자체도 국회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입법의지를 존중하자는 취지로 만든 강행처리 입법절차다. 의회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한다. 여당이 군소야당과 손을 잡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행위를 ‘의회쿠데타’라고 목청높여 비난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합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14일 다시 장외집회에 나서기로 한 것도 바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법처리를 막을 방법이 없고, 협상도 쉽지 않은 처지를 반영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다. 소수당의 설움이 분하면 다수당이 되는 수 밖에 없다.

2019-12-12

협상 없는 정치 끝내려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강대강 대치가 우려스럽다. 정기국회 폐회일인 10일이 다가오고 있는 데도 내년도 예산안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더욱 격화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은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의 일방 처리 수순에 들어갔고, 자유한국당은 강력 저지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청와대 하명 수사 및 감찰 무마 의혹이 계속 확산하면서 여야는 물론 여권과 검찰 간 대립마저 심화하고 있다.현재 민주당은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한국당에 최후통첩을 했다. 지난 3일 한국당에 민생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사전에 철회할 것을 요청한 데 이어 이날 다시 한국당의 협상 참여 전제조건으로 필리버스터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입장 변화를 압박하는 동시에 최악의 경우 패스트트랙 법안 및 예산안을 일방 처리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위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한국당이 민생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카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면 한국당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다.다만 민주당은 한국당과의 협상이 최종 불발될 경우에 대비, 4+1 협의체 논의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공수처법의 경우 본회의 의결정족수 확보가 가능한 안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거법은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을 기준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 의석 규모와 연동률 등을 놓고 막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이른바 ‘2대 악법 저지 및 3대 청와대 게이트’를 연결고리로 대여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및 공수처에 대한 원천 반대 입장을 기조로 하명 수사 의혹, 감찰 무마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의혹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파상공세다.어쨌든 여야가 제대로 대화 한번 하지못한 채 강대강 대치로만 치닫고 있는 것은 국회 정상화를 고대하는 국민들에게 매우 실망스런 모습이다. 그나마 여당이 선거법은 한국당의 원내사령탑이 새로 선출될 때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은 여야간 협상의 물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한다. 현재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강석호·유기준 의원 등이 모두 협상력 복원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삭발과 단식투쟁으로 한국당을 강경노선으로 이끌고 있는 황교안 대표도 패스트트랙 법안과 선거제개편안을 무조건 반대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연장을 막은 것 역시 새로운 원내지도부의 협상력 복원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화와 협상에 나서서 민생법안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성숙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대통령중심제란 권력구조가 협상없는 정치를 촉발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볼 때다.

2019-12-05

황교안의 단식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8일째인 27일 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감으로써 끝났다. 목숨을 걸고 시작한 단식이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청와대측의 반응은 그저 의례적인 수준이었다. 청와대는 정무수석을 보내 단식을 만류하는 수준에 그쳤고, 여당도 이해찬 대표가 찾아와 단식을 풀고 대화를 하자는 제의를 하고는 돌아갔다. 진정성이 없는 단식 만류에 황 대표로서는 단식을 풀기 어려웠으리란 짐작이 든다.황 대표가 단식중에 쓴 글을 보면 단식에 임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황 대표는 지난 25일 단식 엿새째 페이스북을 통해 “고통은 고마운 동반자다. 육신의 고통을 통해 나라의 고통을 떠올린다. 저와 저희 당의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 길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찾는다”며 “중단하지 않겠다.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비로소 살아 숨 쉴 미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밤 성난 비바람이 차가운 어둠을 두드린다. 잎을 떨어뜨려도 나무 둥지를 꺾을 수는 없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며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적었다. 그랬던 황 대표가 끝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가자 정미경·신보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밤을 새운 뒤 황교안 대표의 뒤를 이어 동반 단식에 들어갔다. 정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로서 황 대표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신 최고위원과 함께 단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선거법개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자유한국당 황 대표와 의원들이 벌이는 단식 투쟁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현대적인 의미의 단식투쟁은 국가입장에서 국민이 한 명이라도 아사를 하게 되면 곤란하게 된 시점부터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투쟁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3주간이나 단식을 했다. 단식 투쟁은 본래 부당한 권력에 구금된 수감자들이 주로 행한 투쟁방식이다. 사회에서 존경받거나 인지도가 있는 사람일수록, 단식 투쟁을 하면 여파가 크다.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7년 진주교도소에서 면회 및 변호사 접견 제한에 항의하며 6일간의 단식 투쟁을 했고, 1990년에는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간 단식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가택연금 당시 언론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무려 23일간 단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월호 특별법 지정을 놓고 단식 투쟁을 하는 김영오를 말리려다 같이 9일간 단식 투쟁을 한 바 있다.목숨을 건 단식투쟁 속에 황교안 대표가 찾아낸 정국해법은 무엇일까, 패스트트랙 철회를 향한 야당의 강대강 대응이 한 겨울 이 나라 정치를 꽁꽁 얼리고 있다.

2019-11-28

김세연의 절대반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가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절대반지는 소유자의 힘을 증대시키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반지다. 하지만 이 반지는 소유자의 마음을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변질시켜버리는 어두운 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사우론처럼 이 반지를 차지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의 소유자가 등장하는 가 하면 프로도를 위시한 반지원정대처럼 이 반지를 용암의 불 속에 던져 넣어 영구히 파괴해버리려는 측도 있다.이 영화속의 반지가 현실속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한국사회에서 절대반지에 해당하는 것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률을 제·개정하는 정치권력이 절대반지 첫번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을 외치고 있는 검찰권력 역시 또 하나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지난 17일 부산지역 3선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총선 불출마 입장을 밝히면서 절대반지를 언급해 화제가 됐다. 영남지역 3선퇴진론으로 쇄신론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의원은 선언문에서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절대반지를 끼는 순간 이성을 잃게 된다”며 “공적 책무감으로 철저히 정신무장을 해야 그것을 담당할 자격이 주어짐에도, 아무리 크든 아무리 작든 현실 정치권력을 맡은 사람이 그 권력을 사유물로 인식하는 순간 공동체의 불행이 시작된다”고 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이 불출마의 원인이 됐음을 언급했다. 김 의원이 가리키는 절대반지는 문맥으로 보아 현실 정치권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쇄신과 통합으로 새바람을 일으켜야 할 자유한국당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표현이란 해석도 있다.이 와중에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느닷없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철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과 선거제개편안 처리 철회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서 당내외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우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다른 야당들은 일제히 냉담한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없음을 넘어 민폐”라고 비판했고,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도 “자신의 리더십 위기에 정부를 걸고 넘어져서 해결하려는 심산”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 지도부와 의원직 총사퇴를 주장한 김세연 의원 역시 “단식투쟁 취지의 순수성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하다. (한국당은)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라고 거듭 당쇄신을 요구했다.22일 자정 지소미아가 종료되고, 12월 2일 패스트트랙 법안 본회의 상정을 앞둔 시점에 제1야당 대표인 황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서야 했던 정황을 이해못할 바 아니다. 다만 누군가 절대반지를 끼고 이성을 잃는 사태까지 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걱정이 앞설 뿐이다.

2019-11-21

한국당의 딜레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쇄신과 통합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자유한국당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참 딱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한 친박의원들과 탄핵에 찬성한 비박계 의원들이 한지붕 아래 같이 지내고 있다.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하며 탈당했다가 다시 입당한 의원들이고, 친박의원들은 탄핵에 반대하며 한국당에 남았던 의원들이다. 특히 친박 의원들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거쳐 황교안 당대표체제가 될 때까지 자칫 인적쇄신의 대상이 될까 납작 엎드려왔다. 그러다 이제 수적 우세를 무기로 파워게임을 벌여야 할 때라는 생각일까. 충청 출신의 친박계 재선의원인 김태흠 의원이 영남 3선 퇴진론으로 선방을 치고 나왔다. 영남권 비박계 의원들을 몰아세우는 발언이었지만 욕만 얻어먹고 말았다. 친박인 자신들은 쏙 빼놓고 영남권 3선 퇴진론을 주장했다가 염치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래도 몸조심하느라 엎드려 있던 친박의원들과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쇄신바람을 앞장서 일으켜주니 싫지만은 않았으리라.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초선의원으로 활발히 의정활동을 하던 표창원·이철희 의원 등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인재영입으로 혁신공천을 하겠다고 북새통인 걸 생각하면 한국당의 쇄신바람은 너무 미약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수감 등으로 갑자기 치러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긴 직후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의원 하나 없었던 한국당이다. 당 지도부조차 은근슬쩍 몸을 뺀 마당에 이제 와서 누가 책임을 지려할까. 이런 상황이면 황교안 대표가 당무감사를 통한 의정활동 평가와 탄핵에 따른 도의적 책임 등을 따져 과감한 인적쇄신을 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을 실망시킨 한국당이 표를 달라고 하려면 확연히 달라진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상당수 친박의원들을 교체하는 획기적 인적쇄신 없이는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외연을 넓히는 보수대통합도 가는 길이 험난해 보인다. 쇄신 후 가능한 일이지만 황 대표는 상대측과 협의가 끝나지 않아 설익은 보수대통합론을 내놨다. 그래선지 바른미래당이나 대한애국당 양측 모두 시큰둥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대한애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정하는 이들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뻗대고 있는 데다 바른미래당 역시 신당창당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당대당 통합이란 게 의석수를 보장해줘야 하는 문제가 있고, 지역구 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흡수통합되는 당 의원들에게 험지로 나가라고 한다면 통합에 임할 의원들이 있을 리 없다. 이래저래 쇄신과 통합은 자유한국당의 딜레마다. 이 모든 난국을 풀 비책은 없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모든 게 내 책임이다. 한국당을 중심으로 대통합해 나라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라고 한마디하면 어떨까. 그러나 어쩌랴. 박 전 대통령은 오늘도 별다른 말씀이 없다.

2019-11-14

총선물갈이론의 맹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정치권에 총선 물갈이론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겨냥한 물갈이론은 지역의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역 출신 대통령을 수차례 배출한 대구·경북지역이지만 총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물갈이론에 시달리는 지역의원들의 처지가 안쓰럽고 딱하게 여겨질 정도다.지난 5일 충청출신의 재선의원인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은 “영남권, 서울 강남 3구 중진은 용퇴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며 ‘중진 용퇴론’을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동안 인위적 물갈이보다는 통합을 강조하던 황교안 대표에게 당 운영 방식을 당장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김 의원이 지목한 영남권과 강남 3구의 3선 이상 의원을 꼽아보면 총 16명에 이른다. 6선 김무성 의원을 시작으로 △5선 이주영 정갑윤 △4선 김재경 김정훈 유기준 조경태 주호영 △3선 강석호 김광림 김세연 김재원 여상규 유재중 이종구 이진복 의원 등이다. 이중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김무성 의원뿐이다. 특히 김 의원이 거론한 ‘원외 지도자’에는 내년 총선에서 영남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등 한국당 대권후보들이 포함돼 실제 지목한 대상은 20여 명까지 늘어난다.대상 의원들의 반발 역시 거세다. 부산의 4선인 김정훈 의원은 즉각 기자회견을 통해 “기준 없이 특정지역만 거론한 것은 문제”라며 “게다가 3선이상 중진들은 정치를 10년 이상 한 사람들인데, 누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고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올 사람들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대구의 4선인 주호영 의원도 “현재 TK지역 한국당 의원들 가운데 초선 비율이 국회 평균 37.2%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63%인 이유도 우리 지역이 물갈이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기조가 계속된다면 지역의 정치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대로 따른다면 향후 대구·경북의 경우 원내대표, 국회부의장, 당대표는 맡을 생각 말라는 얘기가 된다는 설명이다.정치권에선 특정지역을 겨냥한 무차별 물갈이론은 형평성이 없고, 당내 분열을 자초할 뿐 아니라 현실적인 실현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만약 한국당이 영남권 중진의원을 모두 공천에서 제외할 경우 초·재선의원만 남게 될 텐데 누가 당을 이끌고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더구나 정치의 난맥상은 총선 물갈이율과 관련없어 보인다. 16대 국회 이래 역대 총선의 물갈이 비율은 평균 46%였고, 17대 총선에서는 물갈이 비율이 무려 72.5%로 초선의원이 187명에 달했다. 20대 국회 역시 절반 가까운 49.3%가 물갈이됐다. 오히려 과감한(?)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되짚어봐야 한다. 바로 자신만이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태도, 서로 타협치않는 좌우 진영논리 등이 더욱 큰 문제다. 이러니 물갈이론이 자칫 각 당의 당리당략이나 지도부의 편가르기에 악용되지나 않을까 걱정만 앞선다.

2019-11-07

오십보백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인재영입과 당내 쇄신에 한창이다. 조국 사태가 조 장관의 자진사퇴로 끝난 직후인지라 여야의 행보는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행보를 지켜보노라면 중국 고사에 나오는 ‘오십보백보’를 보는 듯하다.먼저 조국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조 전 장관 지키기’에 올인했던 더불어민주당의 한발늦은 사과 기자회견이 구설수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30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주당이 검찰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보니, 국민,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며 “이 점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번 일은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오만한 권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검찰개혁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열망도 절감하게 됐다”고 궁색한 해명도 함께 내놨다. 이 대표가 조 전 장관 사퇴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사과한 것은 당 지도부가 조 전 장관 옹호로 일관해 민심과 괴리된 길을 갔다는 일부 초선 의원들의 책임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의원은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무기력해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해찬 당대표에게 있다”며 이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민주당내 더 이상 다른 메아리나 반향은 없었다. 민심이나 여론에 무신경한 민주당 내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다.광화문 촛불시위와 국정지지도에 반영된 민심탓에 조국 사태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자유한국당 사정도 녹록치 않다. 조국 사태가 마무리된 직후 조 전 장관 공격에 앞장섰던 유공자를 표창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자유한국당이 이번에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인재영입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았다. ‘공관병 갑질’논란이 있었던 박찬주 전 대장 영입이 적절치 않다는 여론의 반대에 부딪친 것. 박 전 대장 영입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조경태·김광림 의원 등 최고위원들이 민심의 동요를 이유로 보류를 건의했고, 황교안 대표가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영입이 보류됐다. 내년 총선에서 외연확장이 절실한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20, 30대 젊은 청년들의 반감을 산 박 전 대장을 고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가 뒤늦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장은 지난 2013∼2017년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텃밭관리를 시키는 등 가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은 바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당의 내부 비판 기능은 살아있다는 평가는 다행이지만 당 분위기 쇄신에 앞장설 만한 인재에 목마른 데다 당내 여론수렴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한국당의 사정이 딱하다는 생각이다. 이러니 다음 선거땐 오십보백보의 행보를 보이는 두 정당 가운데 어느 당을 지지해야 하나 그저 고민스런 요즘이다.

2019-10-31

사색의 산책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초선 국회의원은 국회내 다니는 길을 알고 나면 임기가 끝난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이같은 우스갯소리가 나온 데는 국회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국회의원회관과 국회 본관, 그리고 국회도서관을 잇는 지하통로의 존재여부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고, 출입도 안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방공호를 겸한 듯 보이는 이 통로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해 ‘사색의 산책길’로 일컬어져도 좋을 법하다. 이 지하통로 가운데 국회 본관과 국회의원회관을 잇는 길은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 및 당무관계로 의원회관 사무실과 본청을 오가는 국회의원들과 보좌진, 그리고 취재진들이 주로 지나다닌다.며칠 전 국회에 들렀다가 이 통로를 지나다보니 한쪽 벽에는 우리 국토 최동단인 독도의 전경, 일출과 일몰때의 신비한 풍경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바로 그 맞은 편 벽에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서예작품들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작품을 내건 주체들도 다양하다.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6선의 중진 의원으로부터 19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재선 의원까지, 선수(選數)와 당색(黨色)을 달리하는 의원들의 작품이 다채로운 개성을 뽐내고 있다.장경순 전 의원이 쓴 매월당 김시습의 글귀에서는 불운한 시대의 천재가 내뱉은 시대의 탄식을 되새기게 한다. 바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어찌 봄이 다스리랴 구름이 가고 오더라도 산은 다투지 않는다(화개화사춘하관 운거운래산부쟁/花開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이란 대목이다. 김시습은 학식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으나 벼슬은 하지 않았다. 그가 잘못된 고관 인사를 보고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사람이 이런 자리를 맡게 되었나’하고 탄식하며 지은 한시다. 지금의 국회 역시 국민들로 하여금 김시습의 한탄을 자아내고 있다.4선의 바른미래당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서산대사의 한시인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후세의 경계를 삼았다. 전문은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내린 들판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딛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이다.산민(山民) 문희상 국회의장의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라는 글귀도 의미심장하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꺼리지 않고, 강과 바다는 실개천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큰 당과 큰 나라는 인재의 출신과 성분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무엇보다 현 시점에선 청강(靑江)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임오년(2002년)에 쓴 ‘대도재중화(大道在中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큰 도는 중용과 화합에 있다는 뜻이다.여당에 있었을 때도 정부에 쓴소리를 하며 치우치지 않았고, 야당에 있었을 때도 무작정 발목잡는 반대만 하지 않고 중용의 처신을 보여주려 노력했던 그의 처신이 새삼 아쉬운 요즘이다. 이러고 보니 극한대립의 조국 정국을 지나 ‘포스트 조국’ 해법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사색의 산책길에 걸린 지혜가 우리 정치판에 넘쳐 흐르기를 소망한다.

201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