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이 다시 뜨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찾으면서 한국 정치에서 갖는 상징성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봉하마을은 성지(聖地)와 같다. 총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거나 크고 작은 결단의 순간, 여권 인사들은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정신’을 기렸다. 노 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은 전대 컷오프 통과한 직후 첫 행보로 지난 28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도 지난 1일 오후 부산에서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한 뒤 곧장 봉하마을에 들러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김진표 의원도 조만간 봉하마을을 찾는다. 민주당 출신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에 취임한 뒤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마치고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된 정치가 되려나 봅니다”라고 했다. 바로 전날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봉하마을을 찾은 데 대한 소회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위원장은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김 위원장의 봉하마을 방문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않았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 위원장이 우리 사회의 통합과 당의 가치 재정립을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고, 그에 걸맞는 행보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사실 과거에는 보수진영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방문하더라도 국민통합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일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 봉하마을을 찾았다.
어쨌든 정치권 일각에선 ‘봉하마을 성지화’ 현상이 소위 ‘촛불 혁명’ 이후 봉하마을이 갖는 정치·사회적 의미가 한층 달라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현 정신’이 진보·중도 지지층을 중심으로 시대정신으로 승화되면서 보수진영에서도 봉하마을의 상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친노(친노무현계) 그룹이 여야를 막론해 정치권 전면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에 친노진영의 핵심이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리잡고, 보수야당의 미래에 변화와 혁신, 가치재정립을 과제로 내걸고 있는 마당이다. 집권 당시 ‘대통령 답지 않은 대통령’으로 폄하되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필자에게는 잊지못할 대통령이다. 지난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서울 생활에 첫 발을 내디뎠던 필자가 직접 만나 얘기해본 첫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적지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필자는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하고 진솔한 표정과 말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노 전 대통령의 성향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 취임후 출입기자들과 처음으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나들이에 함께 나섰을 때의 헤프닝은 유명하다. 산을 오르다 능선부근에서 잠시 걸터앉아 소회를 나누던 대통령은 뭔가 해보려 해도 정치권의 제동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더라는 하소연 끝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털어놨다.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통령이 해선 안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폭염속에 다시 뜨는 봉하마을 소식을 듣노라니 불현듯 봉하마을을 찾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거기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뇌했던 그의 향기를 음미해 보는 나들이라면 무더위가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