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어느 날 길을 걷다 흉물스럽게 생긴 주머니를 발견했다. 헤라클레스는 아무런 생각없이 흉물스런 주머니를 밟아버렸다. 그런데 주머니는 터지기는 커녕 조금 부풀어 올랐다. 이에 자극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발길질을 했다. 그런데 주머니는 종전보다 두 배 이상 부풀어 올랐다. 약이 바짝 오른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주머니를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주머니는 터지기는 커녕 때리면 때릴수록 부풀어 올라 마침내는 헤라클레스보다 몇 배의 크기로 커져 길을 막아버렸다. 화가 나서 씩씩대는 헤라클레스 앞에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화내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게나. 이것은 증오의 주머니라고 한다네. 그냥 내버려 두면 처음처럼 작아지지만 계속 건드리면 점점 커져 자네와 끝까지 맞설 것이네.” 원한과 증오의 감정은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출발한다. 나쁜 감정을 잘 해소하거나 모른 척 하고 지나면 금세 사라지거나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쁜 감정을 나쁜 감정으로 갚거나 막겠다고 하면 마침내 증오는 계속 커져 둘 다 손해를 볼 수 있다. 이것을 ‘헤라클레스 효과’라고 한다.
여야의 대립과 신경전이 헤라클레스 효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급기야 국회 국정감사 일정조차 차질을 빚고 있다. 여야의 대립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정치권은 서로 다른 정당을 증오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이다. 지지자간에도 생각이 다르다. 그저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인 데 서로 상대방을 가리켜 “틀렸다”“적폐다”라고 목청높여 비판하며 죽기살기로 싸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여야의 논란이나 심재철 의원 비인가 행정정보 무단유출과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둘러싼 여야 대치 상황 역시 이같은 대립과 증오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실장으로 일했던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현 정부와 청와대를 겨냥한 비판에 나섰다. “두려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오만일까요?”라고 물으며 비판 메시지를 올렸다. 김 위원장은 교육부장관 임명과 관련,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이 일을 더 잘한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게 일반 국민의 여론이 아니다”라고 했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반응을 언급하며, “대통령 스스로 내세운 기준에 턱없이 미달하고 심지어 진보적 언론매체까지도 유감을 표하는 사람을 임명하면서 정말 꼭 이렇게 이야기해야 되겠습니까”라고 지적한 뒤 “하다 못해 ‘이런저런 지적이 많았던 것만큼 더 잘해서 국민들에게 보답을 하라’는 정도로 말할 수 없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심재철 의원이 밝힌 청와대의 부적절한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해서도 “밤늦게 간담회를 했느니, 회의를 했느니 하는데 그 장소가 과연 그런 일을 하기에 적당한 자리였을까”라며 “그냥 부적절했다고 하고, 바로 잡고,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정부는 어느 곳에서건 물러설 줄을 모른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최저임금 문제로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이를 ‘성장통’ 운운하며 묵살하고 있는 걸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현 정부는 경제에서는 무능이, 남북문제에서는 이번의 군사합의서에서 보듯 과속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보니 추석 한가위 달을 보며 노래한 이해인 시인의 작품 ‘달빛기도’에 나오는 시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너도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두손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 내마음에/ 고운달이 먼저 뜹니다/(후략)”
여야 정치권 모두에 만연한 ‘증오의 헤라클레스’는 이 나라에서 반드시 떨쳐내야 할 병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