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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각의 기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미터 직진하시면 됩니다.” 신부님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저기 성당 보이시죠? 네, 그 성당을 지나서 100미터 가셔서 그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고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대답한다. 신부님은 `십자가`라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 한다.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사물을 볼 때 생각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예화다.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 대통령 선거 한 가운데서 사상 처음으로 자유토론방식의 TV토론회가 열려 장안의 화제가 됐다. 후보들간 현안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이들 후보들에 대한 평가가 쏟아졌다. 우선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각본을 짜놓고 하는 토론이 아닌 자유토론 방식의 토론이 이뤄진데 대해서는 신선했다는 평가가 많다. 후보들 각각에 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린다. 대체적으로 보면 공세적이었던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다소 앞섰고,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홍준표 후보는 평균작, 문재인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집중공세에 수세로 몰리며 다소 손해를 본 게 아니냐는 평가다.실제로 이번 토론회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여론조사상 지지율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나머지 4명의 후보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는 모양새가 연출됐다는 점이다. 주요 의제는 북한과의 인권결의안 기권 사전협의 논란, 주적 규정여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이었다.가장 먼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 후보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유 후보는 “작년 10월에는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했고, 지난 2월 JTBC `썰전`에서는 국정원을 통해 북한에 물어봤다고 하고, 지난 13일 토론에서는 물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추궁했다. 이와 관련, 홍 후보도 “문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청와대 회의록을 보면 된다. 거짓말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겠냐”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문 후보가“국정원을 통해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파악해 봤다. 북한에 물었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자, 유 후보는 “그게 물어본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문 후보가 사드배치와 관련해 당초 반대하다가 조건부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입장을 표명한 것도 논란이 됐다. 유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까지는 사드배치를 반대하다가 6차 핵실험을 하면 사드배치에 찬성한다고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따졌다. 문 후보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중국이 제어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배치할 수도 있다`라고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심 후보가 “그것은 평론가의 언어이지 정치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꼬집자 문 후보는 “전략적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으냐, 이 고도의 외교·안보 사안에…”라고 얼버무렸다. 북한을 겨냥한 `주적`(主敵)논란도 있었다. 먼저 유 후보가 문 후보에게“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문 후보가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하자, 유 후보는 “아직 대통령이 안 됐지 않느냐”라고 꼬집었다. 이어 유 후보가 “우리 국방백서에는 `주적`이라고 나온다”라고 말하자 문 후보는 “국방부는 할 일이지만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고, 유 후보가 또다시 “대통령이 됐는가”라고 따지자 “그렇게 강요하지 말라”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후보에 대한 집중공격, 그리고 방어와 궁색한 변명으로 이어진 토론회가 지지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생각의 기준이 달라질만한 충격이 없는 한 급격한 판세변화는 일어나기 힘들다. 정치가 서서히 발전하는, 또 다른 이유다.

2017-04-21

범보수의 민낯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2 재·보궐선거가 범보수의 민낯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선거결과는 자유한국당 승리, 민주당·국민의당 선전, 바른정당 참패였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고,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섰다. 우선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치러진 재보선 당선자를 싹쓸이한 결과에 한껏 고무됐다. 전국적으로도 유일한 국회의원 선거구(경상북도 상주·군위·의성·청송)에서 압승한 것을 비롯해 기초자치단체장(경기도 포천시장)과 광역·기초의회 의원 등 후보를 낸 23곳 가운데 12곳에서 이겼다. 이러니 표류하던 보수표심이 5·9 대선을 앞두고 재결집하고 있다며 흥분할 만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처음 치러진 선거이니 민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한국당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이나 홍준표 후보도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새롭게 도약하자고 다시 힘을 내는 분위기다. 특히 보수당의 텃밭으로 여겨져온 TK에서의 지지기반을 다시 확인했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그동안 TK지역 대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홍 후보를 크게 앞섰다는 점에서 텃밭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당은 이번 선거에서의 여세를 몰아 보수우파 세력의 결집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갈이 찢겨진 중도·보수세력을 끌어모으기보다 정통보수 세력결집을 우선하고 있다. 그래선지 이제 더이상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 얘기를 꺼내들지 않는다. 정통 보수를 자임하는 박근혜 지지세력이 등돌릴 것을 우려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바야흐로 `집토끼 최우선전략`으로 돌아선 보수 한국당이다.이번 재보궐선거에서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든 범보수진영의 또 다른 축인 바른정당의 고심은 더 깊다. 바른정당은 창당 79일 만에 치른 이번 재보선에서 경남 창녕과 충남 천안에서 기초의회 의원 각 1명씩 당선시키는데 그쳤다. 유일하게 국회의원을 뽑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선거구에 후보를 냈으나 5.22%란 실망스런 득표율을 올렸다. 또 주호영 원내대표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 제3선거구 시의원 선거, 그리고 대구 달서구사선거구 구의원 선거에도 후보를 냈으나, 두 곳 모두 한국당 후보에 패했다. 특히 유승민 대선후보는 후보 선출 이후 대부분의 지역일정을 대구·경북 지원유세로 잡아 TK 표심잡기에 총력전을 폈으나 참패해 한국당과의 보수적통 경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한마디로 당의 존폐위기다. 당 내부 기류도 심상치 않다. 이른바 유승민계를 제외한 의원들은 당의 생존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고 한다.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부터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혀온 유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현상을 빚는 것은 왜일까. 우선 유 후보가 대구·경북(TK)지역에서 `배신의 프레임`에 갇히는 바람에 정통보수라는 집토끼를 놓친 것이 가장 컸다. 본인으로선 `나라를 위해 바른 소리를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만 봐도 향후 TK지역 민심은 탈당파인 바른정당이 아니라 한국당 쪽으로 쏠릴 것이 확실해 보인다. 또 수도권이나 강원·충청 등의 중도보수층들은 `반문정서`에 영향을 받아 국민의당 안철수 지지로 돌아섰다. 이러니 지지율 1~2%로는 대선을 완주해봐야 의미가 없으니 이달 말까지 지지율 반등이 없으면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유 후보 측도 13일부터 시작되는 TV토론에서 반드시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며 결의를 다지고있다. 사면초가 속에 최후의 반전을 노리는 바른정당이다.대한민국을 떠받쳐온 보수의 신화는 세 가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때부터 내려오는 경제의 신화, 북한과 대치하는 남북분단이 불러온 안보의 신화, 그리고 사회질서의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안정의 신화다. 부패했지만 능력은 있다던, `보수의 신화`는 어느덧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범보수의 민낯은 왜 이리 쓸쓸해보이나.

2017-04-14

홍준표의 전략적 실책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동차 왕 헨리 포드와 당시 전기 분야 전문가였던 스타인 맥스의 이야기다. 스타인 맥스는 미시간주에 있는 헨리 포드의 첫 번째 공장에 큰 발전기를 설치했다. 어느날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공장 전체의 가동이 중단됐다. 수많은 수리공과 전기공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고칠 수가 없었다. 결국 포드는 스타인 맥스를 불렀다. 그는 도착하자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리고 몇 군데를 두드리며 확인을 하고 수리했고, 공장은 재가동이 됐다. 며칠 뒤 포드는 스타인 맥스로부터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금인 `1만 달러`의 수리비청구서를 받았다. 대충 몇 군데 두드려 보고 고친 비용이라기에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포드는 청구서에 이런 요지의 메모를 붙여서 돌려보냈다.“이 청구서의 금액은 당신이 몇 시간 모터를 두드리면서 고친 것에 비해 너무 비싼 것이 아닙니까?” 스타인 맥스로부터의 답장은 이랬다. “모터를 두드리며 고친 임금이 10달러, 어디를 두드리고 고쳐야 할지를 알아내는데 든 임금이 9천990달러, 합계 1만 달러입니다.”답장을 받은 포드는 흔쾌히 수락하고 그 금액을 다 지불했다.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아내고 진단하는게 핵심이란 교훈을 주는 예화다. 기계수리에만 이런 교훈이 통용되는 게 아니다. 정치판에서도 마찬가지다.지난해 말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및 구속기소에 이르기까지 1천만 촛불민심은 보수가 우세하던 이 나라의 정치풍향을 바꿔놨다.보수정권에 대한 실망감은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6일 현재 국회 원내 5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예상보다 더 큰 차이가 나는 결과로 나타났다. 특히 대구·경북(TK)지역을 텃밭으로 여기고 있는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0% 남짓한 지지율에 그친데 대해 실망감을 느끼는 지역민들이 많은 듯하다. 홍 후보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 될만큼 극적인 검사생활을 거쳤고, 4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냈다. 경남도지사로서도 남달리 눈에 띄는 실적을 쌓았다. 잦은 파업으로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는 등 강도높은 재정개혁을 실시해 경남도 부채제로시대를 열었고, 관급공사 하청업체를 도에서 추천하던 관례를 전격 폐지해 공무원 사회에 청렴분위기를 조성, 부임당시 기관청렴도 15위이던 경남도를 청렴도 1위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처럼 홍 후보는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나 국정운영 경험에서 평가받을만한 경륜을 갖추고 있어 상당한 파괴력을 기대했던 사람이 많았기에 더욱 의외였다. 경남 창녕출신으로 대구에서 영남중·고등학교를 나왔으니 TK후보이자 영남권 후보로 볼 수 있는 홍 후보의 낮은 지지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우선 홍 후보가 기존 보수층들이 지지해온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지나치게 낮은 평가를 내놓았던 게 컸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홍 지사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춘향이인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였다”고 비판했다. 홍 후보는 이어 “우파의 대표를 뽑아 대통령을 만들어놨더니 허접하고 단순한 여자였다”며 “탄핵 당해도 싸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별다른 책임이 없는 홍 후보 입장에선 굳이 박 전 대통령을 심하게 깎아내려 집토끼를 쫓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탄핵에 유감을 표명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정도였으면 좋았다. 큰 전략적 실책이었다.또 하나 꼽는다면 홍 후보가 방송 인터뷰에서 소탈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거친 반말투는 자제해야 한다. 자칫 무례하거나 품위 없는 후보로 비칠 수 있다. 좀 더 절제된 표현으로 자신의 정치철학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전해줄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능력, 인품, 안정감 등을 모두 갖춘 대통령 다운 대통령을 뽑고 싶기 때문이다.

2017-04-07

마음을 움직이는 말 한마디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한 식당 앞에 걸인이 조그마한 피켓을 세워놓고 누워 있었다.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배가 고픕니다. 도와주세요!” 하지만, 걸인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나가던 한 남자가 걸인이 든 피켓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고쳐 써주었다. “배고파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잠시 후,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걸인의 깡통에 돈을 던지기 시작했다. 걸인 앞을 지나던 남자는 마케팅 전문가인 `패트릭 랑보아제`였다. 사람들은 그냥 호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공감해야만 기꺼이 지갑을 연다.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브르통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어느날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는 맹인을 만났다. 그가 들고있는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저는 앞을 못보는 맹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초라하고 불쌍한 맹인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브르통이 피켓의 문구를 이렇게 바꿔주었다.“봄이 왔지만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습니다.” 걸인 앞을 지나다 팻말의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열어 깡통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마음을 울리는 말 한 마디는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린 그 소중한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오히려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때다.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인 정치권에서도 상대방을 비판하고 꼬집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을 텃밭으로 하는 자유한국당 유력 대선주자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선후보가 보수 진영 후보로서의 단일화를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유 후보가 선제공격을 펼쳤다. 그는 지난 28일 후보선출 직후 홍 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 재판을 앞둔 것을 거론하며 “홍 지사 출마를 당초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공격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홍 지사 역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유 의원이 TK(대구·경북)에서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게 TK 정서”라고 꼬집었다.무엇보다 최근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말 한마디를 꼽으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꼽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관저에서 떠날 때 국민들에게 아무런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본인의 잘잘못을 떠나 온나라를 뒤집어 놓은 듯 혼란에 빠뜨리고,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고도 본인 스스로 뭘 잘못했는 지 모르는 듯한 태도였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강남구 삼성동 사저 앞에 모인 친박계 의원들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한 뒤 민경욱 의원을 통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놔 논란을 빚었다. 누가 들어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대한 불복의 뜻으로 풀이됐기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을 때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한발 물러난 듯한 발언을 했다.그러나 자신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둔 30일 박 전 대통령은 침묵했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리는 피의자 심문 출석을 위해 법원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를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심어린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진리다. 이제라도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실정(失政)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는 대국민메시지를 남긴다면 어떨까. 때늦은 감은 있지만 위기때마다 의연한 자세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내놓던 `정치인 박근혜`를 만나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017-03-31

박근혜의 7시간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똑같은 시간이라도 1분1초가 전혀 의미가 다를 때가 있다. 사고나 위기의 순간, 1분1초는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골든타임이란 말도 생겨났다. 특히 기록경기인 육상단거리 경주에서 1초는 어마어마한 기록상의 격차를 의미한다. 마라톤 경기라 해도 1초의 차이는 우승여부를 가르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물며 7시간이라면 꽤 긴 시간이다. 420분이고, 2만5천200초에 해당한다. 흔히 7시간을 거론하면 수면 시간을 연상하게 된다. 수면시간은 생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이 잔다고 건강에 좋지는 않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정신과 대니얼 크립케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면 시간이 짧거나 반대로 너무 길면 사망률이 높아진다. 가장 이상적인 수면시간은 6~7시간이며 4시간 이하로 자거나 8시간 이상 자면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진다. 수면시간 4시간 이하인 사람의 사망률은 7시간인 사람에 비해 남자는 62%, 여자는 60%나 높다. 수면시간이 10시간 이상인 사람도 7시간인 사람에 비해 각각 73%, 92% 높았다. 7시간 정도는 잠을 자야 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나와있다. 을지대학교에서는 7시간 이하로 자는 청소년이 그 이상 잠자는 경우보다 자살 생각과 우울한 감정 모두 1.4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하루평균 5시간 이하를 자는 청소년이 7시간 이상을 자는 아이들보다 비만 위험이 2.3배나 높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약 3년, 1천73일만에 세월호 인양이 시작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며 분노를 터뜨리거나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세월호 7시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을 처음 보고받은 이후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불명확해서 생긴 논란을 가리킨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에 대한 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청와대가 밝히는 것을 거부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근혜의 7시간 행적이 최순실과 어떤식으로든 관련있지 않느냐는 인식이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동안 세월호 관련된 직무 수행에 소홀한 혐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발의 사유에 포함됐다.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보툴리눔 독소(보톡스)를 맞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고발뉴스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소개로 청와대에서 고체 실 형태의 폴리디옥사논을 피부에 넣는 시술을 정기적으로 받았으며, 이 시술은 흔히 `연예인 보톡스`나 `매선침`으로 불리며, 보톡스를 넣는 시술과 함께 병행 실시되는 일이 많다고 보도했다. 고발뉴스와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세월호 침몰 당일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 때나 2014년 4월18일 진도 체육관 방문 때 박 전 대통령 사진에 붓기나 멍자국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굿판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미용시술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미용시술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7시간의 진실은 아직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언론에 공개된 박 전 대통령의 대책본부 방문때의 사진에서 발견된 멍자국 등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해명없이 그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인했을 뿐이다.그랬던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14시간여에 걸친 조사를 받은 뒤 7시간 동안 자신의 진술을 기록한 피의자신문조서를 하나하나 검토했다고 해서 국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세월호 7시간`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위기대응능력 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낸 키워드로 기억된다면 `박근혜의 7시간`은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새겨질까 궁금하다.

2017-03-24

불통(不通)의 폐해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중국 한(漢)나라 원년 유방이 진(秦)의 수도였던 함양으로 들어갔을 때 일이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장대한 진나라의 아방궁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장막, 수많은 보석과 재물, 거기다 수천명의 아리따운 궁녀에 마음이 끌려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유방의 마음을 알아차린 번쾌와 장량은 유방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애당초 진(秦)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만 해서 인심이 떠났기 때문에 주군께서 이렇듯 진의 영지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천하를 위해서 적을 제거했다면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 진의 땅으로 들어오자 마자 환락에 젖는다면 그야말로 저 호화로왔던 하(夏)의 걸왕을 도와 잔혹한 짓을 따르는 결과가 됩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고, 좋은 약이 입에 쓰나 병에는 잘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디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의 양약고구(良藥苦口)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이를 한낱 옛 이야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의 잘못을 꼬집는 충언은 귀에 거슬릴 수 밖에 없다. 남달리 바른 말이나 충언을 듣는 것을 불편해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적 배경은 성장환경에서 짐작된다. 어린 시절을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지냈고,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저격으로 서거한 후에는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전 대통령이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부터 공주로 살아왔다.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선거의 여왕`이란 평가를 받으며 떠받들어지는 생활에 익숙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듣는 것을 매우 불편해 했다고 한다. 그 앞에서 충언을 하는 사람은 차츰 사라져 갔다. 지금은 국회를 떠난 친박계의 한 의원은 “박근혜는 대표 시절에도 회의에서 듣기에 불편한 얘기를 하는 의원이 있으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대곤 했다”고 전했다. 이러니 대통령제 국가에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된 후, 어느 누가 그 앞에서 듣기 불편한 충언을 할 수 있을까. 오직 `문고리 3인방`의 맹종과 일방통행식 지시하달이 박 전 대통령의 소통방식이었고, 이같은 불통이 그의 몰락을 불러온 셈이다. 때늦은 이야기지만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검찰이나 특검은 물론 헌법재판소와 언론에 나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에 대해 억울함과 결백함을 호소했으면 어땠을까.`역사에 이프(if)는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탄핵이 기각됐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최근 만난 판사출신의 한 국회의원 역시 “변호사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될 금기(禁忌)제1조가 바로 판결을 맡은 법관을 공격하거나 모욕하는 일인데,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헌법재판소와 재판관들을 공격하고, 모욕하는 행태로 일관했다”면서 “박 전 대통령 파면은 본인 잘못도 크지만 대리인단 변호사들의 잘못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판결 하루 전날까지도 탄핵 기각을 확신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이없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모 인사가 판결 전날 박 전 대통령에게 4(인용):3(기각):1(각하)이나 5(인용):2(기각):1(각하)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야권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헌재 판결 승복`을 촉구하던 날, 대통령 박근혜는 대통령직 복귀에 대비해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민정·정무수석의 교체 등 정국 전환의 밑그림 구상에 바빴다는 것이다. 가히 `불통의 완결판`이다.불통의 가장 큰 폐해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다. 진실과는 상관없다. 귀에 달콤한 얘기만 듣는다. 중국 황제 정치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룬 당 태종은 충신 위징의 불편한 간언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이제 다가오는 대선에선 꼭 소통의 리더십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2017-03-17

시끄러운 민주주의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시끄러운 민주주의가 조용한 독재보다 낫다”지난 2008년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던 때 한국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외교통상부 청사 주변에서 벌어진 `미국규탄` 피켓시위와 관련,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로 규정하며 털어놓은 말이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란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아무리 시끄럽더라도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한동안 조용했던 광화문 광장은 최근 몇달동안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인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로 또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후에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일명 `태극기집회`가 점점 몸피를 불리더니 광화문 광장을 두쪽으로 갈랐다. 이런 상황에서 광장으로 나온 일부 정치인과 대통령측 대리인단 변호사들의 언행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론을 선동해 자신들이 바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불복을 부추기는 것은 민주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특히 대통령측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는 한 집회에서 “헌재에서 판결을 내리면 무조건 승복하자고…. 여러분 우리가 노예입니까”라며 불복을 부추기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10일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갔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60일내 조기대선이 치러지게 된다. 반대로 기각 또는 각하되면 즉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되고, 벚꽃대선은 없는 일이 된다. 대선행보에 나섰던 야권주자들은 오는 12월로 미뤄진 대선에 맞춰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심판선고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포스트 탄핵` 정국이 자칫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갈이 찢겨 대선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 정치권이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과 각 당의 대선주자들에게 “헌재결정을 승복하겠다는 선언을 하라”는 주장이다.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이라도 (헌재 결정에 대해) 승복을(승복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면서 박 대통령의 승복을 촉구했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역시 “오늘 정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결정이 나와도 승복하겠다고 선언해 주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통합을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정치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묵시적으로 불복을 선동하듯 아무런 입장표명을 않고 침묵했다.일부 대선주자들 역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수용하고 존중하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탄핵 인용이 된 이후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다며 불복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하고있는 데 대해선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진행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불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옳지않다. 자가당착이며,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오죽하면 국내정치 현안에 대해 일체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과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홈페이지에 “정당과 시민사회가 찬반을 표시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방법이 지나쳐 국론분열로 치닫게 되면 자칫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는 당부의 글을 실었을까.어떻든 `조용한` 군부독재에 이어 `시끄러운`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도 견뎌온 우리다. 그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오로지 헌법질서에 기초한 민주주의다.명심할 것은 시끄러워도 민주주의이기에 소중한 것이란 사실이다.

2017-03-10

갈라진 광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광장(廣場)은 도시의 중심부에 세워져서 공동체 모임에 쓰이는 열린 공간이다. 개방된 공간으로 설계되고 대체로 직사각형의 모양을 띠고 있다. 광장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군사적 퍼레이드와 함께 통치자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시청광장, 시민광장, 도시광장, 공공광장, 플라자 등의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기능적으로는 시장, 콘서트, 기념, 정치적 집회, 종교모임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몇몇 도시의 광장은 `국가적 광장`으로 불릴 정도로 거대하다.특히 세계적으로 이름난 광장은 그 나라 고유의 정치·경제·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상업지역인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광장, 1805년에 있었던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해서 만든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중국 공산당의 퍼레이드가 이뤄지는 장소이고, 1989년에 있었던 민주화 시위인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던 베이징의 텐안먼 광장, 야외 시장에서 기원했지만 소비에트 연방의 군사 퍼레이드와 노동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항상 개방된 대중 공간으로서 기능을 해왔다. 그 기능은 점차 확대돼 (특정한 인물에 대한) 숭배의 장소일 수도 있고, 영구적 혹은 일시적인 시장으로 쓰이기도 하며, 혁명이나 반혁명의 선구자들에 대한 중요한 기념 장소이기도 하다.광장의 숙명이 그래서일까. 서울의 광화문 광장 역시 어느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장이 됐다. 98주년 3·1절을 맞은 지난 1일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네거리는 일본 제국주의 압제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온 민족이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한의 자주독립을 만천하에 알렸던 기미년의 그 날처럼 인파로 가득찼다.그 날과 확연히 달랐던 것은 광장이 반토막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최종 결정을 열흘 남짓 앞두고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극명히 갈라져 상반된 구호를 외치며 세 대결을 벌였다. 민족 대동단결의 역사적 상징과 같은 3·1절에 경찰`차벽`을 사이에 두고 국론분열 양상을 드러낸 우리의 민낯은 때마침 내린 봄비 속에 촉촉히 젖어들었다.이날로 18번째 촛불집회를 주도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은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또 한켠에서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가 이날로 15번째 `태극기 집회`를 열고, 대통령 탄핵기각을 외쳤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미 소속 의원들의 집회 참석여부를 의원들의 자율에 맡긴 분위기여서 대구·경북지역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태극기 집회에 대거 참석했다.그러나 촛불집회든 태극기 집회든 정치인이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대중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실제로 여당 일각에서는 정치인들의 집회 참석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바른정당 역시 정치인들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에 앞장서선 안 된다며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집회 참석을 비판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도 정치인들의 집회 참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많은 군중들이 모인 장외집회에서 정치인들은 늘상 과격하고 급진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며 수습하기 어려운 정치적 파국으로 달려가곤 하기 때문이다.어쨌든 헌법재판소가 오는 13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결정하거나 기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국론분열 양상은 매우 걱정스럽다. 따라서 이제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이 어느 쪽으로 나더라도 그 결과를 존중하며, 찢어지고 갈라진 민심을 추스를 준비에 나서야 할 때다. 행여 정치권이 헌재의 결정 이후 특정 집회를 부추기는 모양새가 된다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갈라진 광장, 이제는 아름답게 봉합할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2017-03-03

샤이 보수의 한계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샤이 토리(shy tory)`란 말이 있다. `수줍은 보수당 지지자들`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1992년 영국 총선 전 마지막 여론 조사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에 1% 뒤졌으나 실제 투표 결과는 보수당이 7.6% 승리한 데서 비롯된 용어다. 보수당이 여론 조사보다 더 많이 득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보수당 지지자들이 여론 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하는 바람에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그 이후 영국 여론 조사 업계에선 이같은 요소를 반영해 조사 결과를 보정하는 방안을 강구해 왔다.얼마 전 미국에서 치러진 대선에서도`샤이 트럼프현상`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표심을 숨겨 왔던 `샤이 트럼프`들의 몰표로 대역전극을 펼치며 당선된 것이다. 수줍은 보수층들의 숨겨진 표가 선거에서 역전의 원동력이 됐다.우리 정치권에서도 요즘 보수당 대권 후보의 지지도를 놓고 `샤이 보수현상`이 화제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가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의원들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샤이 보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기울어진 운동장` 주제의 토론회에서 `샤이 보수현상`을 반영한 대선주자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 42.3%, 황교안 30.0%, 안철수 19.1%`로 나타났다고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올 경우, 안희정 45.1%, 황교안 26.9%, 안철수 18.8% △문재인-안철수 양자 구도에서는 문재인 43.6%, 안철수 35.6%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맞붙을 경우 문재인 53.6%, 황교안 33.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이는 리얼미터가 13~14일 전국 성인 유권자 1천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3.1%p) 결과에다 지난 대선 득표율 가중치를 적용한 가공치라고 한다.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당 의원들은 샤이 보수층을 매우 두텁게 평가하고 싶은 듯 너도나도 현재 여론조사 결과가 국민의 의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홍문종 의원은 “우익 세력은 커밍아웃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고 했고, 유기준 의원은 “야권 주자의 지지율 합계는 60%대, 여권은 20%대로 나타나는데, 보수·진보 유권자 지형을 봤을 때 이것은 왜곡된 여론조사”라고 했다.그럼 실제 `샤이 보수층`은 얼마나 될까. 이 대표의 대답은 약 10~15%였다.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로 마감된 반면 탄핵 반대 여론이 20%에 달했으니, 15%가 표심을 숨기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의 지난 대선 득표율이 51.6%인데 지금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사람은 37.3% 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약 10~15%의 샤이보수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샤이 보수층의 사이즈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을까.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표 역시 “탄핵 인용여부와 대선시기, 탄핵이 인용된다면 박 대통령의 구속 여부, 대선 구도 등 앞으로의 정국변화에 따라 샤이 보수의 사이즈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는 생물(生物)이라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져 급변할 지 모른다.그래서일까. 골수 보수 지지층들의 무조건적인 나라사랑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반대 및 지지로 이어지고,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표가 태극기 집회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샤이 보수에 대한 보수정당의 기대가 크게 부풀고 있다. 하지만 `샤이 보수`는 타인에게 자신의 정치적 지지 성향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됐다.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들은 하루빨리 `샤이 보수`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해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결의와 자세로 당을 추슬러야 한다. `샤이 보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017-02-24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참뜻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14일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2월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야당이 여당의 동의 없이 청문회를 통과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데 대해 전체 상임위원회 보이콧을 결정하는 등 대응책 마련을 위한 회의였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정우택 의원은 “정말 2월 국회는 일하는 국회, 생산적 국회로 만들자고 정세균 의장과 4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합의를 하고 발표했는데도 오늘 국회 상임위원회를 잠시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씁쓸한 심경을 털어놨다. 문제의 발단은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시작된 야당의 파상공세에서 비롯됐다. 야당은 얼마전 여야간사 협의없이 교육문화위원회에서 국정교과서의 사용을 중단 또는 폐기하는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MBC노조와 이랜드 등을 겨냥한 3개의 청문회를 여당과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결국 여당이 더 이상 참지못하고 상임위 보이콧이란 초강경카드를 던진 것이다.그러나 이같은 상임위 보이콧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여당의 고민이다. 야당과의 실질적인 협상을 맡아온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한국당이 처한 실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과반을 넘기는 의석을 갖고 출범한 여당이 재적 3분의1이 안 되는 의석으로 쪼그라들면서 처하게 된 궁핍한 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김 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제2교섭단체, 의석 94석의 당이 처해있는 현 주소가 어떤 것인지를 막연히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소속 동료의원 여러분들께 상황의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말씀을 좀 드려야 할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자유한국당은 지금 국회에서 제2교섭단체이자 94석의 의석을 가진 당으로서 정국운영을 하기에는 현 주소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본회의장에서 주요안건에 대해서 주요한 방어수단의 하나로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라는 제도가 도입됐으나 자유한국당은 3분의 1의 의석이 안 되는 94석이기에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또 상임위에서 법안을 우선상정하도록 결정하는 `상임위 안건 조정위` 역시 야당의 공세수단이 되어버렸다.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상임위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구성할 수 있는데, 국회 제1 교섭단체가 정원 6명 중 3명, 나머지는 그 외 교섭단체 추천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안건조정위 역시 야당 추천인사가 과반으로 장악하고 있다. 더구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고도 불리는 일명 `안건신속 처리제도`역시 전 상임위원회에서 지정 동의요건, 5분의 3을 오히려 야당이 확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전 상임위에서 핵심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여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이처럼 자유한국당의 어려운 처지를 속속들이 알린 김 수석부대표는 “상생과 협치의 의회운영의 좋은 관행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으로 20대 국회 동안 계속 야당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위기상황”이라고 거듭 의원들이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이같은 해프닝을 보노라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아직도 여당의원 노릇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헌재에 의해 인용되는 순간 조기대선이 실시되고, 그럴 경우 야당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난리들인데, 여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든 연말부터 시작된 `최순실 국정농단게이트`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만큼 정치판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선구도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닌, 진보 대 진보의 대결구도로 달려가는 징조 또한 상전벽해다.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처지가 어렵다고 비관하거나 웅크리지 말자. 인생사 새옹지마라, 상전벽해 될 날 있을지니….

2017-02-17

대한민국이 어려운 이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보수진영의 대선 역전 시나리오가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역전 시나리오의 핵심은 바로 `헌재 탄핵 심판의 지연``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대선 구도 새롭게 짜기` 등 세 가지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진행과정이 심상치 않다는 징후가 적지 않다. 탄핵 심판은 지난해 12월 9일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어 지난 1월 5일부터 2월 7일까지 8차례에 걸쳐서 18명에 대한 증인 심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는 22일까지 5차례에 걸쳐서 17명에 대한 증인 심문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오는 22일 변론을 종결하고 평의를 거쳐서 이정미 재판소장 직무대행이 그만두는 3월 14일 이전에 탄핵 결정을 할 수 있을까다.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추가증인을 신청할 수 있고, 대통령이 출석해서 진술하겠다고 할 수도 있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모두 사퇴해 국선변호인 선임절차를 밟으라고 해서 3월 14일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평의를 마친 이후 재판관 중 1명이라도 변론을 재개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변론이 재개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3월 14일 이후까지 탄핵 심판이 종결되지 않고 계속되도록 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다.게다가 탄핵 소추를 기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재판관들이 있다는 얘기도 솔솔 흘러나온다. 구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두 명의 재판관과 공안검사 출신 재판관, 그리고 TK출신 재판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헌법재판관의 입장에서는 그간의 심판 과정과 제출된 기록검토 등을 통해 소추사실을 인정할 만한 심증 형성이 안됐다고 의견을 낼 수 있다. 찬성 반대 여부 이전에 소추사실 인정을 못하겠다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탄핵심판이 기각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에도 탄핵 인용의견을 밝힌 재판관이 9명 중 3명이었다. 탄핵이 기각된 사안에서 3명이 탄핵 인용 의견이었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이번 탄핵 심판 사건에서 탄핵 기각의견이 2~3명 있을 수 있다는 얘기와 직결된다.물론 탄핵 심판이 기각된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통령에게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지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핵 심판 기각 결정 이후 적절한 시간에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를 통해 여론의 반전을 꾀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대선은 자연스레 늦춰지면서 10월 이후 치러질 공산이 크다. 그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범여권후보 단일화를 통해 보수진영의 재결집을 이뤄냄으로써 궁극적으로 대선 역전승을 이뤄낸다는 것이 그 골자다.만에 하나라도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경우 1천만 촛불민심이 2천만, 3천만 촛불민심으로 폭발 지경에 이를 것이니 걱정스럽다. 헌법재판소나 정치권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감도 만연할 터이니 민심이 어디로 어떻게 쏠릴 지 예단하기조차 어렵다.중도보수, 개혁적 보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온 학자이자 정치인인 박세일 전 의원은 지난 13일 별세하면서 남긴 유작`지도자의 길`이란 글을 통해 정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4가지 능력과 덕목으로 △애민(愛民)과 수기(修己) △비전과 방략(方略) △구현(求賢)과 선청(善聽)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을 꼽았다. 애민정신과 자기수양,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비전과 정책능력, 인재를 구하고 경청하는 자세, 차세대 인재를 육성하고 자신의 성과를 역사와 국민에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이 지도자학에 대한 기초적 이해조차 없이 정치와 나라 운영의 큰 책무를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치열한 준비나 고민 없이 지도자의 위치를 탐해서는 안 되며, 이는 역사와 국민에 무례한 죄악”이라고 꼬집었다. 가슴 깊이 와닿는 지적이다.올해 대선에 나설 주자들은 스스로 역사와 국민에 대해 무례나 죄악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2017-02-10

반기문의 선택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왜 그랬을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 귀국해 출사표를 던진지 20일 만이다. 이해는 간다. 신사적인 외교무대와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정치무대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자신을 향해 쏟아진 정치권의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 였을 것이다. 우선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그는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며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야권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동생과 조카의 사기 혐의와 관련해서도 “나는 전혀 몰랐고 무관하다”고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의혹제기는 계속됐다. `퇴주잔 논란` 역시 반 전 총장 측이 꼽는 대표적인 `가짜뉴스`사례다. 선친 묘소에 성묘하는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유포돼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한다.또 반 전 총장은 자신이 귀국 후 정치인들로부터 `소모품` 내지 `불쏘시개` 취급을 받은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치 성향은 보수지만,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는 포부를 갖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호소했으나 반응이 너무 싸늘했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면서 “이는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해석했다.한때 보수진영 후보 중 1위를 달렸던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빠지기 시작해 10%대에 머물렀던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니 지지율이 반등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니 세가 형성되지 않는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결국 반 전 총장이 함께 하자고 요청한 야권 인사들은 물론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합류를 망설이는 지경이 됐으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게다.결과적으론 반 전 총장의 자충수 탓이 컸다. 10년간 외국생활을 하며 국내 실정에 어두웠고, 조직이나 정책, 자금 등 선거 준비도 미흡했다. 언론 대응도 서툴렀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몇몇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나쁜 X들”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나 귀국 후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이 없다 보니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 어떤 정당이든 함께해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속을 털어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아쉬움이 많다. 정치교체의 수단을 개헌으로 봤던 그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개헌연대`를 설파했다. 불출마 선언 전날까지도 정치권을 향해 `개헌추진협의체` 구성과 `대선 전 개헌`을 제안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이 제안한 분권형 개헌과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제안에 대해 시큰둥했다. 검증되지 않은 제3지대에 머물며 손짓하는 반 전 총장에게 정치권이 선뜻 호응하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순진했다고 해야 할까. 만약에 반 전 총장이 귀국 직후 바른정당 입당을 결행한 뒤 분권형 개헌론을 고리로 보수대연합을 주도해 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보수진영의 세력결집은 조금 더 쉽게 이뤘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 됐지만.어떻든 보수진영 내 유력 대선후보의 중도 낙마는 대선 구도의 급변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가뜩이나 대선주자 기근에 허덕여온 보수진영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최순실 사태`로 외통수에 몰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보수진영이 내심 기대를 걸어온 `제3지대론` 혹은 반문(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통한 전세 역전 시나리오도 힘을 잃게 됐다. 헌재의 판결에 달렸지만 곧 다가올 `벚꽃 대선`에 대구·경북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고심에 빠져드는 요즘이다.

2017-02-03

콜럼버스의 달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사드의 한국배치를 놓고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그룹의 중국 내 사업장에 대해 정국 정부가 위생·소방점검과 세무조사에 나섰고, 한국 전세기 운항과 화장품 수입을 불허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사드배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핑계를 대지만 `눈가리고 아웅` 일뿐이다. 중국의 속셈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은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다. WSJ는 최근 한미 양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과 관련해 한국을 압박하는 중국의 태도를 사설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예정대로 (사드 배치를) 하지 못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북한 공격에 더 취약해지고 이는 중국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한 데 보답을 받는 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태도는 짜증스럽다(galling)”고 평한 뒤 “중국의 북한 지원이 한국에 더 나은 방위가 필요한 주요한 이유지만, 중국은 한국인들을 괴롭혀 (위협에) 노출된 상태로 남게 하기를 원한다”고 꼬집었다.WSJ는 또 중국이 한반도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사드 레이더가 중국 북동부의 핵미사일 지대를 감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점을 꼽았다. 이 때문에 중국은 사드 배치 가능성이 거론됐을 때부터 관영매체와 한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경고했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이를 감행하자 여러 조처에 나섰다는 것이다.문제는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박근혜 정부가 탄핵정국에 휩싸여 수습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공은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대권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드와 관련해 명확한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여 걱정이다. 문 전 대표는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졸속 일방적이었으니 차기 정부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에는 탄핵 위기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사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차기 정부에서 미국과 재협상하겠다는 의도를 보였고, 올해 초부터는 `현실적 한계`를 언급하며 “뒤집기는 쉽지않을 것”이라며 사드배치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대선을 앞둔 정치인이라는 입장을 생각하면 일견 이해가 간다. 자신의 정책을 분명하게 밝히고 거기에 대해서 국민적 평가를 받기보다 여론의 추이가 어떻게 되는지, 중도나 보수 표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정치적 수사나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애매모호하게 하자”고 결론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안보위기에 처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로서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하는 것은 무척 실망스렵다. 안보문제는 여러 사람의 뜻을 모으는 일보다 결단이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탐험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자신의 공로를 시기한 사람들에게 냈다는 `달걀 세우기` 퀴즈의 해답은 달걀 모서리를 깨서 세우는 `발상의 전환`이 해답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는 `콜럼버스의 달걀`과 유사한 문제다.한걸음 물러나 생각해보자. 사드 한국배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오바마 정부가 더이상 중국과 러시아의 태평양 확산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정치적·경제적 강자인 중국을 마냥 좋은 말로 달래려 해선 해법이 없다. 오히려 중국에 북핵폐기와 미사일 개발동결조치 등에 앞장서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 한반도 사드는 언제라도 철수하겠다고 제안하자. 그럴 경우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반면에 대선후보 지지도 2위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반 전 총장은 “경제, 사회 등의 정책들은 하다 안 되면 바꿀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놓치면 끝”이라고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또 “(사드문제는) 얼마든지 외교로 관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한·중·미 3국이 얽힌 3차 방정식을 풀어야 할 지금, 많은 이들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2017-01-20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수개월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심판대에 오르게 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지난 대선때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한 말을 믿었다. 부모는 각각 최측근과 북한 간첩의 총에 맞아 숨졌고, 결혼도 하지 않았기에 자식도 없는 박 대통령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집권하면 나라를 운영하는 데만 집중해 힘을 쏟을 것이고, 명예롭게 대통령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현실은 달랐다. 박근혜 정부 출범직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위기대처를 제대로 못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 여파가 가까스로 가라앉고 임기 후반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또 다시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1천만 촛불민심으로 번졌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도 다시 불거졌다.나라를 위해 몸바치겠다는 단호한 결의에 찼던 박 대통령이 왜 최순실이란 개인을 위해 대기업을 압박해 재단에 수십억원의 돈을 출연하게 하고, 정부 고위직 인사에 개입하도록 방치하는 잘못을 저질렀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이인자를 용납치 않는 `박근혜표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봤다.`박근혜표 정치`의 유래는 박 대통령의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박 전 대통령은 이인자를 키우지 않는 정치로 유명하다. 그는 군사쿠데타로 잡은 독재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이인자가 있으면 아예 싹을 잘라버렸다. 그런 후계자 불용의 정치패턴을 딸인 박 대통령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얘기다.그래서그런지 새누리당에서 대권주자로 클 만한 인물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견제는 심하다 못해 가혹했다. 김무성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전 대표가 새누리당에서 나름 세를 모아 원내대표에 나서려 하자 못나오게 막은 것은 약과다. 어느 순간 김 전 대표가 친박계 좌장으로 부상하자 박 대통령은 공개적으로“친박계 좌장은 없다”고 면박을 주고, 그후 공천에서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백의종군하던 김 전 대표는 18대 대선에서 총괄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뒤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새누리당에 복귀, 당 대표까지 지냈지만 박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대통령 집권에 힘쓴 죄(?)로 대선불출마 선언을 해야 했다. 그러고도 새누리당을 탈당해 신당인 바른정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아 원조친박으로 불렸던 유승민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당내에서도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유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돼 박 대통령의 공약인 `증세없는 복지`를 비판한 데 이어 국회법 파동을 일으키며 정가의 주목을 받자 갑자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유 의원을 가리켜 `배신의 정치`라며 낙인을 찍어 원내대표에서 끌어내렸다. 총선에서 공천도 주지않았다. 원조 친박의원이 어느새 비박계로 바뀌었다. 유 의원 역시 새누리당을 떠나 바른정당에서 새 살림을 차려야했다.이렇게 이인자를 키우지 않는 박 대통령이다보니 대체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뒤 공적인 관계로, 또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만난 인사들로 구성된 보좌진이나 각료들보다 야인시절부터 정을 나누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준 최순실이 훨씬 믿음직스러웠을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의존한 정황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 대통령으로서는 `국정농단을 자초`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책무를 홀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면 대통령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또 다시 대선이 다가온다. 스스로 `위기의 이 나라를 구할 경륜과 비전, 그리고 신념이 있다`는 후보들만 나서주길 바랄 뿐이다.

2017-01-13

와각지쟁(蝸角之爭)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말이 있다. 명분없고 부질없는 싸움이나 별 성과가 없는 전쟁을 비유하는 말로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의 준말로, 와각상쟁(蝸角相爭), 와우지쟁(蝸牛之爭)으로도 쓰인다. 장자 칙양(則陽)편에 나오는 글로, 춘추전국 시대 때 제후들의 패권다툼을 대도(大道)의 입장에서 풍자하고 있다.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이 제나라 위왕과의 맹약을 했으나 위왕이 배반하자 혜왕은 노여워하여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했다. 이에 대해 공손연은 만승의 군주가 필부를 보내 원수를 갚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군사를 일으켜 정당하게 공격하라고 했다. 계자라는 자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손연의 의견에 반대했다. 또 다른 신하인 화자는 공손연과 계자의 의견이 모두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이들의 논쟁이 이어지며 결말이 나지 않자 혜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재상 혜자가 현자로서 이름높은 대진인(戴眞人)이라는 도인을 천거하여 혜왕과 만나게 했다. 대진인은 “달팽이를 아느냐”는 질문을 한 뒤 이렇게 말했다.“달팽이 왼쪽 뿔엔 촉씨(觸氏)가, 오른쪽 뿔엔 만씨(蠻氏)가 나라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영토를 뺏으려고 싸웠는데, 죽은 자가 수만이었으며 도주하는 적을 추적한지 15일 만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오.” “좋습니다. 그럼 현실의 이야기로 말씀드리죠. 왕께서는 이 우주의 사방과 상하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소이다.”“그럼, 그 끝이 없는 우주에서 노니는 사람에겐 오히려 사람이 왕래하는 나라들이 있는 듯 없는 듯 하겠습니다.” “그렇소.” “사람이 왕래하는 나라 중에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속에 양나라가 있고, 양나라 안에 왕이 계십니다. 우주의 무궁함에 비한다면, 왕과 달팽이 뿔 위의 만씨 사이에 대체 얼마나 다른 점이 있겠습니까?” 대진인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은 혜자에게 힘없이 말했다.“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부질없는 싸움 이야기는 이어진다. 전국시대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연나라에서는 조나라 혜왕을 설득하기 위하여 소대를 보냈다. 소대는 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조나라로 오던 중 강변에서 조개와 도요새를 보았다. 입을 벌리고 있던 조개를 도요새가 찍어대자 깜짝 놀란 조개는 얼른 벌렸던 입을 꽉 다물어 도요새의 부리를 물고 늘어졌다. 도요새는 `조개야 놔라. 오늘과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넌 말라 죽는다.`라고 위협했고, 조개는 `도요새야 까불지 말고 물은 내 속살을 먼저 놔라. 오늘 내일 내가 입을 벌리지 않으면 넌 죽는다.`면서 아옹다옹 싸우다 지쳐 쓰러졌다. 이때 강가를 지나던 어부가 기진맥진한 도요새와 조개를 그물에 씌워 잡아가 가족과 함께 새고기와 조개를 맛있게 먹었다. 연나라와 조나라가 현재처럼 대치하고 있다면 언젠가 진나라가 두나라 모두를 집어삼킬 것이다.” 조왕은 이 말을 듣고 연나라에 대한 공격을 취소했다. 이처럼 서로 양보 없이 죽기 살기로 미련하게 싸우는 걸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이라고 해 방휼지쟁(蚌鷸之爭), 또 재수있게 생각지도 않은 이익을 거두는 어부지리(漁夫之利)란 속담이 여기에서 나왔다.새누리당 비박계가 집단탈당한 뒤 당내 쇄신에 들어간 새누리당이 친박계 핵심인사들의 `인적청산`을 놓고 2차 내전이 뜨겁다. 쇄신의 중책을 맡은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핵심 인사들을 겨냥해 “악성종양의 핵”“일본이라면 할복할 것”이라는 표현으로 공격하자 서 의원은 인 위원장을 “거짓말쟁이 성직자”라고 비난하면서 인 위원장의 탈당과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했다. 새누리당이 처절한 자기반성과 개혁과 쇄신의 몸짓으로 거듭나야 할 이 때 와각지쟁과 방휼지쟁을 거듭하고 있다. 정녕 1천만 촛불민심과 대구·경북민들이 새누리당에 무엇을 바라는 지 모르는가.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17-01-06

박근혜의 변명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최순실 게이트`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게 된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가 최근 공개됐다. 플라톤의 명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빗대 `진실이되 진실이 아닌``박근혜의 변명`이란 평가가 무성하다.답변서의 요지는 국회 탄핵소추안에 적시된 내용들이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순실씨 행위를 박 대통령의 책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 “이번 탄핵의 논리대로라면 측근 비리가 발생한 역대 정권 대통령은 모두 탄핵 대상”이라며 반박했다. 즉, `봉하대군`이라고 불린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나 `만사형통`으로 불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사례를 들며, 전임 대통령도 다양한 방법으로 인사에 관한 의견 민원 등을 청취했다고 했다. 물론 이상득 전 의원이 최근 포스코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의 중형을 구형받은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최순실씨 관계 회사 등에 박 대통령이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과거 `신정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변양균 전 정책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서 사기업의 영업 활동은 공무원 직권 범위 밖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당시 변 전 실장은 신씨의 부탁으로 대기업들에 후원을 요청했으나, 직무로 인정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의 역할과 위상을 똑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박근혜 대통령은 또 최씨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 사업 등에 대해서도 “최씨의 국정 관여는 사실이 아니고 입증된 바 없고, 국정수행 총량 대비 관여 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라고 말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최근 JTBC `썰전` 방송에서 전원책은 “예산으로 따지면 국가예산이 약 400조다. 1%면 약 4조”라며 “0.01%라도 사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당연한 탄핵사유”라고 비판했다. 유시민 역시 “예를 들어 1년에 1천건이면 그중 10건 정도는 괜찮다는 이야기다. 1년이 365일이면 그 중 3일은 도둑질해도 된다는 이야기냐”라고 비꼬았다. 참으로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얘기다.세월호 참사 대응 미흡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문을 인용해 “헌재는 대통령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하면 노 전 대통령도 책임을 물어야하는 게 아니냐는 `물귀신작전`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답변서에서 최씨와의 관계를 인정한 것은 딱 하나다. 유출된 연설문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도 “통상 정치인들은 연설문이 국민의 눈높이에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에 대해 주변의 자문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면서 “최씨의 의견을 물은 것도 같은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 대통령과의 식사에 초청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일종의 사설 고문단)`이란 용어까지 인용했다.답변서를 접한 법조계의 반응은 신중하다. 법적 형식논리로는 답변서의 주장도 일정부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 탄핵심판이 형사소송법에 준용해 진행되는 만큼 엄격한 법논리가 적용될 경우 대통령의 범죄를 특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헌재가 탄핵심판을 인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않다.그러나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헌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박 대통령이 평화롭게 임기를 마치고 나올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이란 것 역시 명백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박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하야를 선택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랬다면 현직 대통령이 이런 구차스런 법적 공방끝에 강제퇴진 또는 자진퇴진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다.오늘 날의 법정이 소크라테스의 법정보다 더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박 대통령은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2016-12-30

산불의 생태학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연말 송년회 자리에 함께 한 고위공무원의 건배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공무원 연수프로그램으로 미국의 국립자연공원에 갔을 때 들은 얘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는 산불도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뢰나 나무의 마찰 등 자연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산불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산불의 원인은 주로 사람에 의한 것이 80%이상을 차지한다는 게 산림청의 통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비해 산림이 잘 보호돼 있는 미국에서는 자연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산불이 적지 않고, 그런 산불은 생태적인 이유에서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산림이 지나치게 우거진 지역에 산불이 나지 않으면 숲이 양지식물이 아니라 고사리 등 음지식물 위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숲이 무성해진 뒤 산불이 나면 다시 양지식물이 새롭게 숲을 이루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그 숲의 번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속담으로 얘기하면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이런 에피소드를 듣고보니 요즘 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어쩌면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숲에 일어난 산불과 같은 재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건국 이래 고수해온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고착되면서 얼마나 많은 권력형 비리를 일으켰나 되돌아 보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정부장의 총격으로 숨진 12·12사태 이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으로 근무할 때 공금 76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으며, 형 기환씨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 혐의로, 사촌형 순환씨는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비자금조성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는 1997년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여 원을 받고 12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는 2003년 기업체로부터 이권 청탁 명목으로 25억여 원과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3남 홍걸씨는 2001년 체육복권 사업자 선정 로비와 공사수주 대가 등으로 36억9천여 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전직 대통령과 친인척 비리는 끝이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도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매각비리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상득씨도 제3자뇌물수수혐의로 처벌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결혼도 않고, 친인척도 남녀 동생 각 1명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아 잘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랬던 것이 `친인척도 아닌 최순실이 권력 1순위`란 비아냥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대통령이란 권력의 그늘이 그만큼 크고, 음습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쨌든 `최순실 게이트`란 이름의 산불로 가장 큰 홍역을 앓고 있는 곳은 역시 여당인 새누리당일게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는 `보수가 분열로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새누리당은 27일을 기점으로 친박계와 비박계 신당으로 갈라서면서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고, 새누리당은 원내 제2당, 새롭게 창당될 비박계 신당은 38석의 국민의당에 이어 원내 제4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대구·경북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여론이나 촛불민심과 궤를 달리하는 지역구 민심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적 이익에 연연해선 안 된다. `최순실 게이트`란 큰 산불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음습한 권력지형을 싸그리 불태우고, 환한 햇살 아래 새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숲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주길 바랄 뿐이다.

2016-12-23

황교안 권한대행의 `권한 논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되자마자 불거진 논란의 화두다.우리 헌법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의 한계에 대해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 제4장 제1절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고, 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권을 갖는다. 또 헌법 제7조는`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은 안된다는 제한이 전혀 없다.물론 권한대행은 선출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권력의 성격을 바꾸거나 새로운 국가이념을 설정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히 권한 밖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각부 장관의 권한으로 위임돼 있는 것들은 당연히 집행할 수 있다. 임기가 된 공공기관장 임명도 각부 장관의 제청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정당한 업무라고 봐야 한다.외교정책도 국회가 비준권 등 제어할 수단이 있기 때문에 제한할 필요가 별로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한반도 사드 배치 등 이미 결정된 정책 역시 계속 추진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장관 교체가 필요한 개각이나 적극적인 통치행위 등은 권한대행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옳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의견이다.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마치 정권을 틀어쥔 것처럼 권한대행을 상대로 갑질을 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 역시 온당치 않다.야당은 황 권한대행이 대정부질문 출석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마치 탄핵가결을 기다린 사람처럼 대통령 행세부터 하고있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얌전히 국회의 뜻을 받들라”(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황 총리님, 대통령 된 것 아니거든요”(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라는 비아냥섞인 논평을 내놨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야 3당이 먼저 대통령 대행의 권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황 권한대행 및 원내정당 대표들간 정치협상을 통해 확정지어야 한다”는 탈법적 제안까지 했다.야권이 황 권한대행에 대해 심한 견제구를 던지는 데는 애초에 황 총리도 `박근혜의 남자`란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책임총리를 추천하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제안을 내놨을 때 야당이 거부한 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이제와서 황 권한대행 체제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국정 발목잡기에 나서선 안 된다.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에 들어간 이상 야권도 이제 더이상 `촛불민심`에 기댈 생각을 접어야 한다. 경제와 안보가 모두 위기국면에 빠진 나라형편을 봐서라도 탄핵정국의 국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여야정협의체 발동에 적극 협조하는 게 옳다. 현 정부가 더 많은 헛발질을 해야 야권이 정권을 잡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협치를 통한 국정 안정이다. 황 권한대행이 야당에서 제의한 야 3당 대표와의 면담을 전격 수용키로 한 것은 이런 차원에서 환영할 만 하다. 20일과 21일 예정된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 요구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옳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국회와의 협치를 거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전례를 만들며 국회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좋지 않나.야권도 황 대행 체제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이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 이후 국정공백 상태에 빠져 경제는 침체되고,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 권한대행도 중립적인 국정 운영으로 불필요한 정쟁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도 친박 2선 후퇴를 포함한 체제정비를 서둘러 하루라도 빨리 여야정 협의체가 정상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6-12-16

청문회 유감(有感)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뜬금 없는 `노빠` 얘기가 아니다. 6·7일 열렸던 `최순실 게이트`국정조사 청문회를 지켜본 상당수 국민들의 소회였다. `울화통 청문회` 때문이었다.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과거 `청문회 스타`로 큰 활약을 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의 정경유착 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열린 5공 청문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노무현 당시 의원은 행동은 조금 거칠었을지 몰라도 정확한 팩트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논리로 상대를 제압했다. 증인 신문을 통해 궁지로 몰아넣은 뒤 속시원한 답변을 이끌어내면서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노 전 대통령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을 상대로 날카롭고 거침없는 질문을 날렸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칼 든 강도한테 빼앗겼다”는 답을 받아내는 등 맹활약했다. 이같은 초선의원의 패기는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고, 그는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스타 국회의원`으로 급부상했다. 노무현 당시 의원은 정주영 회장의 증인신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여기 서 있는 노무현은 증인석에 앉아있는 증인(정주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현대라는 거대기업을 일궈놓은 정주영 회장에 비해 고졸 출신의 변호사이자 초선의원인 노무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부분을 부각시켰다.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명확하게 규정 지은 후 심문을 시작한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윗을 응원하게 되어 있다.이번 청문회는 어땠나.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수 역할을 한 안민석·박영선 의원 역시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 공손함이 없었다. 사실관계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오히려 원하는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답이 나오지 않으면 인신공격으로 답을 얻으려 했다. 국조특위 간사인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맥빠진 질문으로 일관, “왜 국정조사특위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국회의원들의 모습 자체가 또 다른 울화통의 원인이 됐다.청문회 첫째날 의원들은 9명의 대기업 총수들에게 기업들이 권력의 요구에 돈을 바쳤는지를 놓고 온종일 추궁했다. 대기업 총수 중 한 명이라도 대가성이 인정될 만한 증언을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겐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고, 출연 기업들 역시 뇌물공여죄가 적용된다. 그러나 총수들은 “청와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며 재단 출연의 강제성은 시인했지만 대가성은 모두 부인했다. 이래서 대기업 총수들의 `모르쇠 벽`을 넘지 못했다.7일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씨 등 4명이 참석한 가운데 2차 청문회가 열렸다.그러나 국회가 요청한 증인 27명 가운데 14명이 불출석했다. 특히 국정농단 주범인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그리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핵심 증인이 모두 불참했다. 국조특위가 최순실·우병우 등 불출석 증인 11명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으나 장시호씨 한 명만 오후 뒤늦게 청문회에 출석했을 뿐이다. 따라서 `최순실 청문회`라고 하면서도 최순실이 빠진 이번 청문회를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며`붕어빵 청문회`라는 비웃음까지 샀다.이처럼 이틀간 열린 청문회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국정농단 인물들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자들인지 그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 자리로 자리매김했다.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청문회로 적지않은 실망을 안겨준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에서는 `촛불민심`에 부응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해주길 바란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헌법기관이 아닌가.

2016-12-09

죽느냐 사느냐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 작품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의 독백중 가장 잘 알려진 대사다. 배경은 이렇다. 햄릿의 아버지는 덴마크의 왕이었는데, 동생 클로디우스에 의해 수면 중 독살당하고 만다. 심지어 그의 아내 거트루드는 자신을 독살한 동생과 결혼까지 한다. 독일 유학중이던 햄릿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귀국했으나 삼촌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후 야밤에 유령으로 등장한 아버지가 햄릿에게 복수를 요청한다.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에 모욕감을 느끼지만, 복수를 하는 것이 옳은지, 차라리 이 모든 상황을 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망설이는 대목이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는 인간의 여린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명대사다.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촛불민심 정국은 `하야냐 탄핵이냐`기로에 서있다. 박 대통령이 3차담화에서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를 국회의 결정에 맡긴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단난 것은 탄핵 찬반으로 입장이 갈려있던 새누리당이다. 탄핵을 주장해온 새누리당 비주류 일부에서 “대통령이 국회결정에 따라 퇴진하겠다는데, 탄핵절차를 강행하는게 맞느냐”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새누리당은 1일 열린 의총에서 `4월 대통령 퇴진, 6월 대통령 선거`를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했다. 반면 야 3당 대표들은 “임기 단축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며 “9일 탄핵을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어쨌든 촛불민심을 해소할 방안은 두 갈래 길 중 하나로 좁혀졌다. 우선 `4월 하야, 6월 대선` 방안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의 구체안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가 정하는 방안에 따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야당과의 협상만 남은 셈이다.여당이 제안한 퇴진안이 야당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탄핵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야당과 여당 비박(非朴)계가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해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의 진퇴를 맡기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르면 내년 3월, 늦어지면 내년 8월쯤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된다. 문제는 국회에서 부결되거나 헌재가 기각할 경우 박 대통령은 그대로 임기를 계속하게 된다는 점이다.그런 위험부담을 감안해서인지 여당과 비박계, 야당 일부 의원들은 탄핵보다는 정치권 합의에 따른 `질서 있는 퇴진`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여야 협상으로 대통령 퇴진을 합의해 `하야`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고, 안 되면 `탄핵`으로 가자는 것이다. 다만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 방안에는 비박계도 반대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현행 헌법에 비춰 가장 헌법합치적인 대통령 퇴진 방식은 `탄핵`이다. 탄핵제도는 고위공직자에 의한 하향식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야가 합의에 성공하면 대통령은 하야하게 된다.하야는 그 절차 등이 헌법이나 기타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하야`가 초헌법적인 퇴진방식은 아니다. 대한민국 현행법 어디에도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이 없고,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헌법위반은 아니기 때문이다.여야 합의로 퇴진, 즉 하야할 경우와 탄핵으로 물러날 경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크게 달라진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서 연금 등 각종 혜택을 받는다.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고, 사무실 등이 제공된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난다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탄핵 결정을 받아 물러나면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모든 예우를 받을 수 없게된다. 물론 하야해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탄핵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호를 제외한 모든 혜택이 사라진다.촛불민심에 불타오르는 한달여의 밤을`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망설여왔을 박 대통령의 처지가 마냥 안쓰러울뿐이다.

2016-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