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漢)나라 원년 유방이 진(秦)의 수도였던 함양으로 들어갔을 때 일이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장대한 진나라의 아방궁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장막, 수많은 보석과 재물, 거기다 수천명의 아리따운 궁녀에 마음이 끌려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유방의 마음을 알아차린 번쾌와 장량은 유방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애당초 진(秦)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만 해서 인심이 떠났기 때문에 주군께서 이렇듯 진의 영지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천하를 위해서 적을 제거했다면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 진의 땅으로 들어오자 마자 환락에 젖는다면 그야말로 저 호화로왔던 하(夏)의 걸왕을 도와 잔혹한 짓을 따르는 결과가 됩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고, 좋은 약이 입에 쓰나 병에는 잘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디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의 양약고구(良藥苦口)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이를 한낱 옛 이야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의 잘못을 꼬집는 충언은 귀에 거슬릴 수 밖에 없다. 남달리 바른 말이나 충언을 듣는 것을 불편해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적 배경은 성장환경에서 짐작된다. 어린 시절을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지냈고,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저격으로 서거한 후에는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전 대통령이다. 한마디로 어린 시절부터 공주로 살아왔다.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선거의 여왕`이란 평가를 받으며 떠받들어지는 생활에 익숙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듣는 것을 매우 불편해 했다고 한다. 그 앞에서 충언을 하는 사람은 차츰 사라져 갔다. 지금은 국회를 떠난 친박계의 한 의원은 “박근혜는 대표 시절에도 회의에서 듣기에 불편한 얘기를 하는 의원이 있으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대곤 했다”고 전했다. 이러니 대통령제 국가에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된 후, 어느 누가 그 앞에서 듣기 불편한 충언을 할 수 있을까. 오직 `문고리 3인방`의 맹종과 일방통행식 지시하달이 박 전 대통령의 소통방식이었고, 이같은 불통이 그의 몰락을 불러온 셈이다. 때늦은 이야기지만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검찰이나 특검은 물론 헌법재판소와 언론에 나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에 대해 억울함과 결백함을 호소했으면 어땠을까.
`역사에 이프(if)는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탄핵이 기각됐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최근 만난 판사출신의 한 국회의원 역시 “변호사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될 금기(禁忌)제1조가 바로 판결을 맡은 법관을 공격하거나 모욕하는 일인데,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헌법재판소와 재판관들을 공격하고, 모욕하는 행태로 일관했다”면서 “박 전 대통령 파면은 본인 잘못도 크지만 대리인단 변호사들의 잘못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판결 하루 전날까지도 탄핵 기각을 확신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이없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모 인사가 판결 전날 박 전 대통령에게 4(인용):3(기각):1(각하)이나 5(인용):2(기각):1(각하)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야권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헌재 판결 승복`을 촉구하던 날, 대통령 박근혜는 대통령직 복귀에 대비해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민정·정무수석의 교체 등 정국 전환의 밑그림 구상에 바빴다는 것이다. 가히 `불통의 완결판`이다.
불통의 가장 큰 폐해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다. 진실과는 상관없다. 귀에 달콤한 얘기만 듣는다. 중국 황제 정치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룬 당 태종은 충신 위징의 불편한 간언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이제 다가오는 대선에선 꼭 소통의 리더십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