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
뜬금 없는 `노빠` 얘기가 아니다. 6·7일 열렸던 `최순실 게이트`국정조사 청문회를 지켜본 상당수 국민들의 소회였다. `울화통 청문회` 때문이었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과거 `청문회 스타`로 큰 활약을 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의 정경유착 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열린 5공 청문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노무현 당시 의원은 행동은 조금 거칠었을지 몰라도 정확한 팩트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논리로 상대를 제압했다. 증인 신문을 통해 궁지로 몰아넣은 뒤 속시원한 답변을 이끌어내면서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노 전 대통령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을 상대로 날카롭고 거침없는 질문을 날렸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칼 든 강도한테 빼앗겼다”는 답을 받아내는 등 맹활약했다. 이같은 초선의원의 패기는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고, 그는 전국적인 지지를 받는 `스타 국회의원`으로 급부상했다. 노무현 당시 의원은 정주영 회장의 증인신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여기 서 있는 노무현은 증인석에 앉아있는 증인(정주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현대라는 거대기업을 일궈놓은 정주영 회장에 비해 고졸 출신의 변호사이자 초선의원인 노무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부분을 부각시켰다.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명확하게 규정 지은 후 심문을 시작한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윗을 응원하게 되어 있다.
이번 청문회는 어땠나.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수 역할을 한 안민석·박영선 의원 역시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 공손함이 없었다. 사실관계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오히려 원하는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답이 나오지 않으면 인신공격으로 답을 얻으려 했다. 국조특위 간사인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맥빠진 질문으로 일관, “왜 국정조사특위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국회의원들의 모습 자체가 또 다른 울화통의 원인이 됐다.
청문회 첫째날 의원들은 9명의 대기업 총수들에게 기업들이 권력의 요구에 돈을 바쳤는지를 놓고 온종일 추궁했다. 대기업 총수 중 한 명이라도 대가성이 인정될 만한 증언을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겐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고, 출연 기업들 역시 뇌물공여죄가 적용된다. 그러나 총수들은 “청와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며 재단 출연의 강제성은 시인했지만 대가성은 모두 부인했다. 이래서 대기업 총수들의 `모르쇠 벽`을 넘지 못했다.
7일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씨 등 4명이 참석한 가운데 2차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국회가 요청한 증인 27명 가운데 14명이 불출석했다. 특히 국정농단 주범인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그리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핵심 증인이 모두 불참했다. 국조특위가 최순실·우병우 등 불출석 증인 11명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으나 장시호씨 한 명만 오후 뒤늦게 청문회에 출석했을 뿐이다. 따라서 `최순실 청문회`라고 하면서도 최순실이 빠진 이번 청문회를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며`붕어빵 청문회`라는 비웃음까지 샀다.
이처럼 이틀간 열린 청문회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국정농단 인물들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자들인지 그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 자리로 자리매김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청문회로 적지않은 실망을 안겨준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에서는 `촛불민심`에 부응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해주길 바란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헌법기관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