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 귀국해 출사표를 던진지 20일 만이다.
이해는 간다. 신사적인 외교무대와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정치무대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자신을 향해 쏟아진 정치권의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 였을 것이다. 우선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그는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며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야권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동생과 조카의 사기 혐의와 관련해서도 “나는 전혀 몰랐고 무관하다”고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의혹제기는 계속됐다. `퇴주잔 논란` 역시 반 전 총장 측이 꼽는 대표적인 `가짜뉴스`사례다. 선친 묘소에 성묘하는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유포돼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한다.
또 반 전 총장은 자신이 귀국 후 정치인들로부터 `소모품` 내지 `불쏘시개` 취급을 받은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치 성향은 보수지만,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는 포부를 갖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호소했으나 반응이 너무 싸늘했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면서 “이는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해석했다.
한때 보수진영 후보 중 1위를 달렸던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빠지기 시작해 10%대에 머물렀던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니 지지율이 반등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니 세가 형성되지 않는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결국 반 전 총장이 함께 하자고 요청한 야권 인사들은 물론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합류를 망설이는 지경이 됐으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게다.
결과적으론 반 전 총장의 자충수 탓이 컸다. 10년간 외국생활을 하며 국내 실정에 어두웠고, 조직이나 정책, 자금 등 선거 준비도 미흡했다. 언론 대응도 서툴렀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몇몇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나쁜 X들”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나 귀국 후 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이 없다 보니 내 사비로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다. 어떤 정당이든 함께해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속을 털어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아쉬움이 많다. 정치교체의 수단을 개헌으로 봤던 그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개헌연대`를 설파했다. 불출마 선언 전날까지도 정치권을 향해 `개헌추진협의체` 구성과 `대선 전 개헌`을 제안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이 제안한 분권형 개헌과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제안에 대해 시큰둥했다. 검증되지 않은 제3지대에 머물며 손짓하는 반 전 총장에게 정치권이 선뜻 호응하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순진했다고 해야 할까. 만약에 반 전 총장이 귀국 직후 바른정당 입당을 결행한 뒤 분권형 개헌론을 고리로 보수대연합을 주도해 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보수진영의 세력결집은 조금 더 쉽게 이뤘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 됐지만.
어떻든 보수진영 내 유력 대선후보의 중도 낙마는 대선 구도의 급변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가뜩이나 대선주자 기근에 허덕여온 보수진영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최순실 사태`로 외통수에 몰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보수진영이 내심 기대를 걸어온 `제3지대론` 혹은 반문(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통한 전세 역전 시나리오도 힘을 잃게 됐다. 헌재의 판결에 달렸지만 곧 다가올 `벚꽃 대선`에 대구·경북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고심에 빠져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