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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문고 vs 청와대의 청원게시판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신문고는 조선 태종 1년(1401년)에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이다. 최후의 항고(抗告)·직접고발 시설의 하나로 설치된 신문고는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 당직청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조선에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신문고를 울려 상소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었다. 이서(吏胥)·복례(僕隷)가 그의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품관(品官)·향리(鄕吏)·백성 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 또는 타인을 매수·사주해 고발하게 하는 자는 벌을 주었으며, 오직 종사(宗社)에 관계된 억울한 사정이나 목숨에 관계되는 범죄·누명 및 자기에게 관계된 억울함을 고발하는 자에 한해 상소 내용을 접수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제한조건에도 불구하고, 신문고에 의한 사건해결의 신속성을 얻기 위해 사소한 사건에도 신문고를 이용하는 무질서한 현상을 초래했다. 그만큼 조선 초기에 관리들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일반 백성들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청와대의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이 뜨겁다. 하루 수백 건의 청원 글이 올라오고, 청원 목록도 한달이 채 못된 14일 현재 벌써 1만3천700건을 넘어섰다. 조선시대 신문고가 무색할 지경이다.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홈페이지(www1.president.go.kr)를 개편하면서 청와대에서 운영하던 게시판 기능을 강화해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을 지난달 19일 신설했다. 국민 누구나 청원할 내용이 있으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고, 청원이 접수 완료되면 청와대의 각 수석실별로 할당이 된다. 청와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추천을 받고 국정 현안으로 분류된 청원에 대해, 가장 책임있는 정부 및 청와대 당국자(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등)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문도 게시했다. 이렇게 되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 신문고`를 능가하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특히 사회적 갈등 소지가 있는 청원의 경우 동의하는 시민들이 게시판에 있는`동의`버튼을 눌러 지지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행동을 적극 촉구하고 나섰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일종의 새로운 정치 참여 공간, 직접 민주주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현재 게시판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동의를 많이 얻은 청원은 38만8천580명이 지지한 `청소년보호법 폐지`, 그 다음은 12만3천204명이 동의한 `여성 군복무 도입`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이견이 첨예한 갈등 사안이다.문재인 대통령도 큰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원 및 게시판`에서 이슈가 된 `청소년법 폐지청원`과 관련, “소년법 폐지라는 말로 (청원이) 시작이 됐지만 사실 바라는 것은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 폭력 대책들도 함께 폭넓게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소년법을 사례로 해서 토론회를 기획해보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또 “몇 명 이상 추천이 있으면 답변할 것인지 기준도 빨리 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주문했다. 미국 백악관의 경우 1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청원에 대해선 백악관이 직접 대답을 해주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 업무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거나 청와대가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청원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에 어린 딸만 내린 상황에서 미처 하차하지 못한 어머니를 태운 채 그대로 출발한 사건과 관련해 해당 240번 버스 운전기사를 해임시켜달라는 게 대표적이다.어쨌든 청와대의 `청원 및 게시판`이 국민의 억울한 심정을 헤아리고, 다독여주는 `이 시대의 신문고` 역할을 다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017-09-15

`진퇴양난` 대북정책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졌다. 올들어 수차례의 탄도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화기조의 대북정책을 유지해오던 문재인 정부였다. 그러던 것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는 강경기조로 돌아섰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이견으로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 지경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는데, 두 정상의`북핵 처방전`이 확연히 달랐다. 두 정상 모두 `북핵 불용`이라는 기본 원칙에 공감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했으나, 북한을 어떻게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것이냐에 대해서는 뚜렷한 견해차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대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안보리 제재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며 “이번에는 적어도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부득이한 만큼 러시아도 적극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안 되고 냉정하게 긴장 고조 조치를 피해야 한다”면서 “`정치·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유엔안보리에서의 대북 추가제재 조치 결의안에 대해 거부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제시한 `한반도 긴장완화 로드맵`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푸틴이 언급한 로드맵은 중국의 `쌍중단`(북한의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 제안에 기초한 것으로, 총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는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고 핵과 미사일의 비확산을 공약하면 한미 양국도 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한다는 것이다. 2단계는 남·북과 북·미, 북·일 간 평화공존 및 군사력 불사용과 관련한 협정을 체결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한반도 평화 문제는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제외하는 데 합의한다는 것이다. 3단계는 동북아 지역의 안보체제 수립을 위한 다자협정을 통해 비핵화와 제재 해제, 군비 통제, 주한미군 등 복합적 이슈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북핵 문제해결에 중요한 키를 쥐고있는 중국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힘을 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중국 측은 한반도 비핵화와 국제 핵 비확산 체제 유지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동시에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새 정부 출범 이후 수 차례의 탄도미사일 도발에도 끈기있게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었다. 그러던 문 대통령으로서도 6차 핵실험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권 3당이 일제히 현행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전면 재검토롤 촉구했고, 국민들의 안보불안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해외에서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해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을 `유화책(appeasement)`이라고 비판하며 `대북 대화 일변도` 정책에 대해 우회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결국 문 대통령이 대화기조에서 강경·압박으로 입장을 선회했지만 이제는 러시아와 중국이 앞길을 막아섰다. 그동안 문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가까운 로드맵을 종용하니 마뜩찮다. 대화제의는 들은 척도 않고, 추가제재도 실현이 어렵다. 이 상황에서 탄도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몸값 불리기에 바쁜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힐 방법은 뭘까. 야당이 주장하는 전술핵 재배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미국의 전략적 자산 상시배치 등 `공포의 균형`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북한에게 아무리 탄도미사일과 핵 실험을 감행해도 더 이상 몸값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쳐줄 수 있다.

2017-09-08

일본에서 본 북한 미사일 위기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늦은 여름휴가차 지난 27일부터 일본여행에 나선 필자는 도쿄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처하는 일본의 대응태세가 한국과는 자못 다른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북한이 지난 29일 새벽 평양 순안공항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 본토를 가로질러 북태평양 해상에 설정된 목표수역을 타격하자 일본 전역에서 난리가 났다. 이날 발사된 화성-12미사일은 일본 홋카이도, 오시마 반도와 에리모갑 상공을 가로질러 북태평양 해상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던 게 분명해 보인다. 이는 필자가 일본에 도착한 다음날인 지난 28일자 요미우리 신문 부설 `The Japan News`가 `괌 겨냥은 또 다른 헛된위협`이란 제하의 5면 기사에서 북한의 괌 위협은 미국과 남한의 군사훈련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비롯됐다면서 괌포위사격의 실행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한 기사를 실은 것만 봐도 그렇다. 요미우리신문 타츠야 후쿠모토 선임기자는 이 기사에서“미국령인 괌근처 수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북한의 위협 이후에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고, 만약 이 위협이 실행되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갈등을 촉발하거나 보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부정될 수 없다”면서 “북한은 정말로 괌 주위에 미사일을 발사할까. 그리고 만약 그럴 경우 미국은 어떻게 반응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북한이 8월 8일 북한 국영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괌주위에 대한 포위사격을 실행하는 군사적인 계획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긴 했지만 실행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괌섬에는 미국의 전략무기인 B-1폭격기가 머물고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와 핵잠수함기지가 있는 아프라항이 있고, 한반도에서 비상사태가 일어날 시에 사용될 엄청난 양의 연료와 탄약 비축창고가 있어서 자칫 미국에 무력행사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괌 주위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한 이유를 8월 21일에 시작한 미국과 남한의 연합군사훈련을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진단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 남한이 군사훈련을 할 때마다 계속 위협을 해왔다. 실제로 예전 방위성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북한노동당 의장인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미국-남한 연합군사훈련”이라며 “그는 미군이 전격적으로 타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최근의 위협들은 군사훈련이 있을 때마다 그가 똑같이 반복해온 신경질적인 반응”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이처럼 일본이 북한의 괌 포격의 실행가능성을 낮게 보자 북한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29일 일본 본토 상공 너머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일본열도에 큰 충격을 줬다. 이날 NHK는 일본 홋카이도 등 12개 지역 주민들에게 즉각 피난하라고 방송하는 등 비상사태를 알려 일본 국민들을 놀라게 했고, 상황이 종료된 직후 TV에서는 하루종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속보가 잇따랐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공조대응체제를 확인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면서 대응태세가 다소 느슨해진 국내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새벽 발사체 보고를 받고, “강력한 대북응징능력을 과시하라”고 지시했으나 군은 공군 전투기를 출격시켜 폭탄 투하훈련을 실시했을 뿐이다. 더구나 투하된 폭탄도 유도탄이 아니어서 `대북응징능력` 운운 하기는 미흡했다. 또 청와대는 지난 26일 북한에서 발사한 발사체를 처음 방사포로 추정했다가 이틀만에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정정해 대북정보 부재라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도발위험을 축소하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국가안보와 관련한 군통수권자의 조그만 실수나 판단착오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얼마나 위험에 빠뜨리는 일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다.도쿄에서

2017-09-01

북핵위기, 다른 해법 없나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남짓이 지나는 동안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취임이후 처음으로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직자들에게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지킨다`는 자세와 철저한 주인 의식, 국익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즉, 현재 안보 위기를 `평화 유지`의 관점에서 관리하고, 그 최종 목표는 대북 관계 개선과 경제 협력이라는 문 대통령의 기본 대북 구상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북핵문제와 관해서는 대북제재·압박과 대화의 병행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7일 바른정당은 `문재인 정부 불안한 외교·안보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김세연 정책위의장은 이 자리에서 “(북핵 위기 속에) 정부는 평창올림픽 단일팀, 대화 제안 등을 연달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무응답으로 일관해 정부의 무력함을 드러냈다”며 “외교적으로 북핵문제에 대해 아무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해 대선 전 우려했던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됐다”고 우려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효과적인 억제력이 없으면 북한에 대해 인질이 될 수 밖에 없어 스톡홀름 신드롬처럼 북한의 주장에 동조해 평화만 주창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미·일이 공동으로 동해에 핵잠수함을 배치하고 미사일 방어망을 중층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아예 “비핵화 전략수정이 필요하다”며 “핵을 공유, 중층적 미사일 방어, 군비 확장레이스를 할 수밖에 없다”고 자체 핵무장론까지 언급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최고위원도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실상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며 “사드 배치를 놓고 보인 갈지자 행보에 중국과 미국 모두 멀어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강도와 위력을 더해가고 있고, ICBM 실험 등으로 북핵무기 체계는 완성에 다다르고 있는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은 운전석에 앉아 한반도 문제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과 미국의 대응에 있어 과연 우리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여야 정치권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놓다 보니 국민들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어쨌든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고는 북한이 쳤는데 왜 한미동맹이 흔들려야 하나. 왜 중국은 우리에게 경제 보복을 하고 있나. 왜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을 제쳐놓고 북한과 직접 대화와 협상을 모색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퍼진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북핵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결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코리아패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막연히 `한반도 운전자론`만 외칠 일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과 제재가 중국의 비협조로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하거나 침공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북한이 요구하고 제안해온 대로 불가침조약이나 종전협정 또는 평화협정을 맺거나 국교정상화를 이루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수순이다.제안하건대 단계적 접근은 어떨까 싶다.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면 잘 살게 해주겠다는 식의 대북 정책이 아니라 북한이 핵확산을 않는 조건으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을 맺고, 북한과 미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으로 한반도가 안정되고 남북 사이와 북미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남북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맞춰나가며,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하는 단계적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2017-08-25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표 정책이 하나둘씩 펼쳐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동산 투기를 막는 8·2부동산대책, 최저임금 상향조정, 부자증세 등이다.우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지정,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축소, 청약가점제 확대 등 부동산시장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실행가능한 규제가 총동원된 8·2부동산 대책에 대한 반응은 매우 뜨겁다. 당장 부동산 시장의 충격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수도권의 집값 폭등지역의 아파트 값은 하향추세로 접어들었으니 일단은 성공으로 자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다수 아파트 실수요자들이나 세입자들은 내집마련 길이 도리어 막혔다며 볼멘 소리를 내놓고 있다.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행의지는 강경해보인다. `8·2 대책`의 핵심 설계자로 알려진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은 지난 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물러서지 않겠다. 적어도 내년 봄 이사 철까지 (집을) 팔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집을 투기수단으로 삼아 빚을 내서 여러 채를 사고 수억대 차익을 내는 다주택자를 겨냥한 것이다.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일제히 “투기수요 억제 위주의 정책으로는 집값 폭등을 막을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규제 강화가 아닌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김광림 정책위의장 권한 대행은 “8·2 부동산 대책은 수요 쪽에만 치중한 대책”이라며 “수요만 억제해서는 (정책은)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 차관출신으로 경제전문가인 그는“공급 확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택지개발과 짜투리 (용지) 활용 그리고 재개발·재건축으로 용적률을 높여서 집 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그는“문재인 정부는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내놓은 총 12번의 부동산 관련 대책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대책을 발표한 것”이라며“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거듭 지적했다.최저임금제로 인한 불만도 상당하다. 최근 경남지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조카가 여름휴가차 서울에 왔다가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이 조카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최근 처음으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최저임금을 갑자기 이렇게 한꺼번에 올리면 직원을 고용하는 자영업이나 편의점, 한의원 등은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점진적인 개선이 변화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데, 정부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내달리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부자증세` 역시 논란이 한창이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늘리는 반면 서민과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분야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증세 효과도 크지 않으면서 근로 의욕을 떨어트리고 조세 저항을 불러온다는 반론이 많다.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라면서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세금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정부가 제안한 부자증세만으로는 급증하는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비판도 외면할 수 없다.현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이 사실상 `중부담 중복지`라는 측면에서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특정계층이나 특정부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고통을 분담하는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새 정부의 의욕에 찬 정책이 잘 되길 바란다. 그러나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는 교훈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바로 민심이 천심이기 때문이다.

2017-08-11

부자증세안을 둘러싼 논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항상 그렇다. 정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서로의 주장이 확연히 다르다. 정부여당은 정책의 순기능을, 야당은 정책의 역기능을 경쟁하듯 외쳐댄다. 국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하다. 서로 전문가들을 내세워 찬반입장을 떠들어대니 그 속사정을 누가 알랴. 문재인 정부가 집권 이후 내놓은 최초의 세제개편안도 마찬가지다. 초고소득자와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일자리 창출과 소득재분배에 활용하는 `부자증세안`이라는데, 야당의 반응이 신통찮다. 소득재분배 차원에서야 반대할 일 없는 정책이다. 하지만 경제적 파급효과는 간단치 않기에 논란이 일고있다. 지난 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소득세법, 법인세법, 상속·증여세법 등 13개 세법 개정안의 골자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인상 △대주주 주식의 양도차익 과세 강화 △상속·증여세 신고세액 공제 단계적 축소 △대기업의 각종 세액공제 축소로 요약된다. 고용증대 세제 신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시 세액공제 확대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제 혜택도 대폭 늘었다. 근로 장려금 지급액을 최대 250만 원으로 확대하고, 월세 세액공제율도 12%로 인상해 서민·중산층에 대한 세제 혜택 역시 강화됐다. 개정안은 8월 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 정기 국회에 제출되며, 국회 통과시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금이 연간 6조3천억 원 가량 증가하는 반면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세금은 8천억 원 가량 감소해 연간 5조5천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현 정부 임기 5년으로 계산하면 추가 세입이 24조 원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필요한 재원 178조원에 비하면 13.5%에 불과하다. 따라서 적정 수준의 세금 인상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국민부담을 늘리는 세제개편안의 국회통과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데 있다. 여소야대의 국회가 더욱 곤혹스럽다.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경제활성화에 역행하는 `기업발목잡기 증세` `내수위축 증세`란다.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추경예산 편성을 강행하더니, 민간부문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는 6조원 이상의 증세방안을 담은 세제개편안을 내놓은 것은 정부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다.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격이란다. 그러면서 증세 논의에 앞서 △재정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재정지출의 효율화·비과세·감면 정비·지하경제 양성화 등 재정구조개혁과 세입기반 확충 △그래도 부족할 때 국민적 공론화를 통한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국민의당도 “생색내기용 세제개편”이라고 비판했다. 일자리·복지 공약에만 120조 원이 소요되지만,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 명목의 세수효과는 5년간 18조 5천억 원에 불과하고, 세출절감을 통한 재원 조달은 한계가 있다는 요지다. 이들은 정부가 결국 국가부채를 늘리거나 공약을 내팽개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바른정당 역시 `부자증세`는 필요하지만 “지속가능한 복지 수준에 합의를 이룬 다음 필수적인 예산 규모를 산정하고 증세 논의를 해야 한다”며 앞뒤 바뀐 정책결정 과정을 지적했다. 이례적인 것은 야권이 세제개편안에 대한 일부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는 점이다. 한국당은 △정규직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중소기업 세제지원 확대 △창업벤처기업·자영업 및 농어민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 등은 방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도 일자리 창출과 소득 양극화 개선 차원의 세법 개정안, 그리고 부자증세와 법인세 인상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성에 대해 동의했고, 기업환류세제 개편과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강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새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마냥 몹쓸 정책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갈길은 멀다. 야권의 반대를 뚫어낼 논리가 정부여당에 있는 지 궁금하다. 자칫하면 또 무리수를 둬야한다. 나라 살림살이가 그래서 어렵다.

2017-08-04

부자의 품격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슈퍼리치 증세`란 이름의 부자증세론을 내놨다. 사실 부자증세론의 원조는 미국 부자랭킹 3위(2017년 현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그는 2011년 8월 뉴욕타임스 `슈퍼리치 애지중지, 이제 그만`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 3위 부자인 자신에게 2010년 적용된 세율은 고작 17.4%로, 자기 사무실의 어떤 직원보다 낮았다고 공개했다.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 직원들이 30~40% 세율로 세금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세금을 더 내게 해 달라고 정부와 의회에 촉구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 해도 좋을 그의 제안은 바로 `버핏세`란 이름으로, 부자증세론의 씨앗이 됐다. 버핏 회장의 이같은 제안이 알려진 몇년 뒤 2016년 3월, 뉴욕주에 사는 50여 명의 백만장자들이 뉴욕주지사에게 청원문을 보냈다. 청원문의 골자는 “우리는 얼마든지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낼 수 있습니다”란 내용이었다.100년째 맨해튼 시민들의 수도요금을 대신 내고 있는 록펠러 가문의 스티븐 록펠러와 디즈니 가문의 에비게일 디즈니 등이 포함된 51명의 갑부가 서명한 청원의 제목은 `부유한 뉴욕주민들은 누진 과세를 지지합니다`란 것이었다.“우리는 뉴욕주의 삶의 질을 소중히 여기는 뉴욕의 고소득자들입니다….”로 시작된 청원문은 “뉴욕주의 아동빈곤이 도심 일부지역에서 50%를 넘어서는 등 기록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입니다….”라고 적시하면서 “더 많이 낼 수 있는 우리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우리는 공정한 몫을 부담할 능력도 있고,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지금의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낼 수 있습니다.”라고 끝맺었다. 그야말로 `부자의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대목이다.이런 얘기들이 잘사는 선진국인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얘기로 치부할 게 아니다. 28일과 29일 이틀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의 간담회가 진행되는 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KT, 두산, 한진, CJ 등 총 15개의 쟁쟁한 국내기업들이 참여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 바로 오뚜기다. 오뚜기가 중견기업 중 유일하게 청와대 초청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유가 뭘까. 우선 오뚜기는 정규직 비율이 10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체 직원 가운데 비정규직이 단 1.16% 뿐이다.특히 1천800명에 달하는 대형마트 시식코너 직원도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2008년 이후 라면가격을 인상하지 않아 많은 소비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청업체와 상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칭찬을 받기도 했다.오뚜기의 사회공헌 기부활동이나 심장병 어린이 지원, 장애인 자립지원 등은 바로 창업자인 고 함태호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함 회장은 1992년 부터 4천242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했다. 2015년에는 300억원의 사재를 밀알재단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어떤 편법도 쓰지 않고 장남에게 오뚜기 주식을 정식 증여하며 1천700억원의 세금을 냈다. 편법상속으로 말썽을 빚고있는 대다수의 재벌기업들과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행보다. 이런 모범적인 행보가 `슈퍼리치 증세`를 염두에 둔 문 대통령의 관심을 끌게 했으리라 추측된다.뉴욕의 51인 부자들, 대한민국의 오뚜기그룹, 이들이라고 더 많이 갖고싶다는 욕심이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이들은 다함께 잘사는 사회를 위해 자신이 좀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일 게다.`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에도 이제 `부자의 품격`을 갖춘 진정한 부자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2017-07-28

문재인표 `증세 없는 복지`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된 19일, 언론들은 저마다 다른 논조로 계획안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주로 대선 당시의 공약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나가겠다는 방향을 정리한 계획안이지만, 향후 국정의 설계도인지라 많은 관심을 모은 게 사실이다.국정운영 계획안에서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기치로 100대 국정과제와 487개 실천과제, 4대 복합혁신과제를 제시했다. 권력기관들은 개혁에 맞닥뜨리게 됐고, 대기업과 초고소득자 등은 사회적 책임을 지게됐다. 사회 경제적 약자를 위한 국가지원은 대거 확충되고, 범정부적 사정작업은 상설화하기로 했다.지역민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많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관련한 제안도 담겼다. 100대 국정과제를 다섯개의 국정목표로 나눴는데, 이중 4번째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란 분류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치분권`, `골고루 잘사는 균형발전`,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이라는 3개의 소분류하에 11개 국정과제가 묶였다.지방분권 방안에 대해 획기적인 자치분권추진과 주민참여의 실질화, 지방재정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 교육민주주의 회복 및 교육자치 강화, 세종특별자치시 및 제주특별자치도분권모델의 완성 등 4개 과제가 제시됐다. 특히 국정기획위는 “2017년 하반기 제2국무회의 시범운영후 제도화추진(하겠다)”라며 2018년 헌법개정을 통해 실질적 자치분권의 기반을 조성하고, 행정·재정 등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2018년부터 포괄적 사무이양을 위한 지방이양일괄법을 단계적으로 제정하고, 같은 해까지 주민투표 확대와 주민소환 요건 완화 등 주민직접참여제도를 확대하며, 국세·지방세 비율을 장기적으로 6대 4수준까지 개선해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 제시됐다.무엇보다 국정운영 계획의 실효성을 결정하는 것은 이를 위한 재원마련 대책의 현실성과 맞물려 있다.복지정책 강화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국정운영 계획안의 실현을 위해 쓰일 돈은 178조원으로 추산됐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무분별하게 깎아주던 세금 등을 정비해 재원을 마련하다는 계획이다. 소득주도성장에 약 42조원, 복지국가실현에 약 77조원, 지역균형발전에 7조원, 남북관계 및 국방에 약 8조원 등을 투자할 계획이다.문제는 증세를 해법없이 조달하기에는 재원규모가 너무 크다. 국정기획자문위는 재원마련을 위한 방안으로 나랏돈 들어가는 지출을 줄여 95조4천억원을 확보하고, 세수 등 수입을 늘려 82조6천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세수 자연증가분 60조5천억원, 비과세 감면정비 11조4천억원, 탈루세금 징수강화 5조7천억원, 세외수입 확충 5조원 등이다. 그러나 이는 세금이 지금처럼 계속 잘 걷힌다는 전제아래 세워진 계획이다. 한해라도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못한다면 계획 전체가 어그러질 소지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60조여 원을 세수자연증가분으로 조달하겠다는 것은 장밋빛 계획이 될 공산이 크다.특히 박근혜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가 허구라고 공격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증세 해법없이 문재인표 `증세없는 복지`를 시행하려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또 5년간 178조원을 투자하겠다지만 정부 스스로 60조원은 지출을 줄이겠다니 실제 재정지출 효과는 5년간 120조원에 그친다. 이 정도 수준이면 이전 정부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니 소득재분배를 통한 조세정의 실현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뭔가 미진하고 부족하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아가면 된다.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어떤 기회가 찾아와도 어려움만 보고, 낙관론자는 어떤 난관이 찾아와도 기회를 바라본다”고 했다.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려는 문재인 정부의 꿈이 어려운 난관을 넘어서서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2017-07-21

지방분권으로 가는 길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실천 의지는 매우 강력하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추진할 의사를 밝히면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이미 대선열기가 뜨거운 지난 4월에도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은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고 협력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국가발전전략”이라고 강조해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문 대통령이 당선 직후 총리로 지명한 이낙연 국무총리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며칠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총리는 지방분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를 총리로 지명발표할 때 3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가 일상적인 국정은 총리가 책임져달라, 둘째가 국회, 특히 야당과 잘 소통해달라는 것이었고, 세번째가 지방과 소통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무엇보다 지방분권이나 지역균형발전이 개헌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관련 법률개정이 되지 않더라도 가시화될 수 있도록 하려한다. 그래서 법제처장에게 지방분권에 저해될 가능성이 있는 법령의 정비를 서둘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또 불필요한 규제, 특히 상위법을 잘못해석하거나 과잉해석해서 이뤄지는 규제를 정비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지방분권을 추진할 실무 부서장관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지방분권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 12일 전북 완주군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특강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지방분권형 개헌은 자치입법, 자치행정, 자치재정, 자치복지 등 4대 지방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국가발전 전략이라는 철학에 변함이 없고, 내년 개헌을 통해 이같은 소망이 실현될 것이다.”김 장관의 이날 특강자료에는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구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우선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제2국무회의 도입이 머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행자부는 중앙 권한의 획기적인 지방 이양을 통해 현행 32% 수준인 지자체 사무비율을 40%까지 늘리고, 자치경찰제 등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자치단체 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지방의회 구성을 다양화하고, 지방의원·공무원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인다는 전략도 들어 있다. 지방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방세 이양을 통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 대 2에서 6 대 4로 단계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자체 공공일자리 확충 재원 보전대책도 추진한다. 특히 지방소비세율과 지방소득세율, 지방교부세율을 인상하고 지자체의 공공일자리 확충 재원을 보전하는 대책도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풀뿌리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으로는 주민발의·주민소환·주민투표 등 주민 직접참여 제도 활성화, 주민 참여 확대를 위한 지방 행정·재정 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안이 제시됐다. 재정이 열악한 자치단체에 기부할 경우 세액공제를 해주는 `고향사랑 기부제` 도입도 지방분권 강화 방안에 담겼다.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가균형발전 거버넌스 및 지원체계를 개편하고, 혁신도시 중심 신지역성장 거점 구축, 산업단지 혁신, 그리고 인구급감지역, 접경지역·도서지역 등 특수상황지역에서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서는 방안도 포함됐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인 대통령제 국가에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목표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노력해야 이 나라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데카르트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다. 결국 그런 생각으로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다”고 했다.마음먹기 나름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어떻게든 해내고 만다.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을 응원한다.

2017-07-14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한 조언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국회가 인사청문회와 추경예산안으로 씨름을 한지 벌써 한달 여를 넘겼다. 인사청문회로 따지면 지난 5월 24일 이낙연 총리 인사청문회를 기점으로 40여 일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여야간 줄다리기를 보며 국민들의 답답증은 커져만 갔을 듯 싶다. 인사청문회와 함께 추경예산안 심사도 지지부진이다. 문 대통령이 국회까지 와서 추경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일자리 골든타임을 강조하며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는데도 국회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그나마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예산안 심사에 참여할 뜻을 비춰 추경예산안 심사가 정상화할 조짐을 보이다가 지난 5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김상곤 교육부 장관 임명에 반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보이콧을 선언하는 바람에 또 다시 난항에 부딪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추경에 협조적인 국민의당, 정의당 등의 의석을 합치면 추경안 처리를 위한 과반수 확보가 무난하지만, 보수야당을 배제한 추경예산 심사 자체가 큰 정치적 부담이니 마냥 밀어붙이기도 여의치않다.특히 국회에 제출돼 있는 일자리 추경안에 대한 여야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며칠 전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정책을 총괄하는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야당이`공무원 증원은 국가재정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추경예산안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만큼 거기에 대한 정부의 해명이나 설명이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이 부위원장의 설명은 이랬다. 현재 우리나라 199만명 공무원에 35만명의 공공기관 근무자가 있으니 총 234만명의 공직자가 있다(2015년 통계청 통계기준). 이는 취업자 전체의 8.9%에 해당한다. 그러나 OECD 국가들의 공무원 숫자는 취업자 전체의 21.3%에 해당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삶의 질을 더 낫게 하는데 봉사하는 게 기본적인 책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공무원 수로는 국민들을 제대로 모시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공무원 수가 많으냐 적으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많이 쓰이는 인구 1천명당 공무원 수를 따져봐도 OECD국가는 83명 수준이고, 우리나라는 33명이라는 설명이었다. 또 일자리를 민간에 맡기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민간에 맡겼으나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시장의 실패`다. 정부가 이를 보정하기 위해 직접 일자리를 늘려야 하며, 복지국가에서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적정수준의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이에 반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공무원 증원이란 방법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추경예산안을 통해 당장 올 하반기에만 공무원 1만2천명을 늘리고, 앞으로 5년간 공무원 17만명을 더 뽑는다는 대통령의 공약대로라면 향후 5년 간 공무원 수는 연평균 4%씩 급증해 2013년 100만명, 2022년엔 120만명에 이르리란 분석이다.이에 따라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공무원 17만명을 증원할 경우 앞으로 30년 동안 약 24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또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공무원 증원 예산을 감당해야 하는데, 지방정부의 부담액에 대한 충분한 협의와 재원 마련 대책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우리 국회가 일자리추경안과 같은 중요한 국가정책에 대해 이처럼 찬반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반대라 해도 무작정 반대해선 안 된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내놔야한다. 찬성하는 측도 무조건 내 말을 따르라고 하면 안 된다. 반대 이유를 충분히 듣고, 거기에 상응하는 논리로 조근조근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누구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할 게 아닌가. 이런 건전한 토론문화가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든다. 국민들은 `다수결의 독재`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닫는 `소수의 횡포`도 혐오한다. 국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2017-07-07

진주(眞珠)의 교훈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서양에서는 결혼할 때,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때의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딸이 시집살이 하다가 속상해 할 때, 조개가 자기 안으로 들어온 모래로 인해 받는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가 된 것처럼, 잘 참고 견뎌 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보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쩌다 모래가 조개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깔깔한 모래알이 부드러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되는데, 그때 조개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렇다고 조갯살에 박힌 모래가 모두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래알이 조개의 부드러운 살에 박히게 되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우선 모래알을 무시하는 경우인데,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살이 썩기 시작하고, 얼마 가지 않아 그 모래알 때문에 조개가 죽어버린다. 또 다른 경우는 조개가 모래알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조개는 `진주층(nacre)`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어 자기 몸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계속해서 덮어씌우고, 또 덮어씌운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일년, 이년 동안 계속해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싼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진주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런저런 모래알이 들어 올 때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시련`이라고 부른다. 그걸 이겨낼 때 아름다운 진주를 만날 것이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지난 26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6월 3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74.2%를 기록했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검증과 관련된 외교인사 논란으로 다소 내렸지만 정권초기의 높은 기대감이 반영된 지지도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한 모든 지역, 연령, 이념성향, 정당 지지층에서 긍정평가가 여전히 크게 높거나 50%를 상회했다.`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18.6%(매우 잘못함 8.1%, 잘못하는 편 10.5%)에 그쳤다.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의 회고담이다. 그는 지난 2014년 12월, 서울 마포의 한 식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그 다음해의 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당대표에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그 때 문 대통령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개탄했다고 한다. “옛날 민주당이라고 하면 욕도 하고 했는데, (민주당의 행보에) 국민들의 관심이 없다. 정말 심각하다.” 문 대통령 자신이 `비판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이란 위기에 처해있음을 자인하는 말이었다. 그 이후 한동안 민심의 밑바닥을 치던 더불어민주당은 2년여 만에 완전히 탈바꿈했다. `최순실 국정농단게이트` 이후 대통령 탄핵과 5·9장미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뀌었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개혁이네 혁신이네 부산을 떨었지만 야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지도 역시 폭락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TK지역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었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 데, 보수는 부패와 분열을 함께 선보이며 무너졌다. 보수세력이 겪어야 할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 얼마나 이어질지 짐작키 어렵다.다만 오늘을 만든 게 민주당의 변화나 개혁이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보수가 무너진 것은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정치발전이나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와 진보가 상생하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보수가 새롭게 출발하기를 응원한다. 새로운 모래알을 품고, 아름다운 진주를 빚어주길 바란다. 시련이 진주를 빚는다.

2017-06-30

진인사대천명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우리 아들 이름은 ○○○, 우리 집은 ○○○”지난 19일 오후 7시 52분께 충북 충주에 있는 한 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입대를 앞둔 아들의 애절한 글이 올라왔다. 이 학교 2학년 학생으로 추정되는 게시자는 얼마 남지 않은 군 입대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놨다. 아버지를 오래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게시자는 최근 대학 기말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밤새 울었다는 게시자는 어머니가 평소 작성해 놓은 공책을 뒤적이던 중 또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고 설명했다. 그 공책에는 치매로 인해 기억력이 떨어져 아들 이름과 주소를 잊지 않기 위해 “아들 이름은 ○○○, 우리 집은 ○○○” 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게시자는 “한 달 후에 군대에 가야 하는 데 어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나 맘이 아프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해당 글에 대해 커뮤니티에서 공감하는 글이 순식간에 수백 개가 달렸다.치매는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주변인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주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는 72만5천명으로 추산된다. 노인 10명 중 1명(유병률 10.2%)이 치매 환자인 셈이다. 치매 환자 실종 및 사망사고 등 치매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치매 국가 책임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치매 관리 인프라 확충, 환자와 가족의 경제부담 완화, 경증 환자 등 관리 대상 확대 등을 축으로 하반기부터 예방, 관리, 처방, 돌봄 등 치매 원스톱 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복지국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정책이다.치매란 뇌가 손상돼 정상적인 뇌기능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나타난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다발성 인지장애, 즉 언어능력·판단력·시공간 지각력·계산력·추론능력 중 한 가지 이상의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나 업무에 큰 지장을 일으킨다. 치매는 크게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로 나뉜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이 치료되지 않아 혈관에 병이 생겨 뇌조직이 손상돼 치매로 발전되는 병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서구사회에 많이 생기는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선 혈관성 치매가 더 흔한 편이다.치매는 젊은 나이에 행동이 이상해지기도 하고 단어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 등 다양하게 증상이 나타난다. 루이소체 치매처럼 파킨슨 증상을 보이거나 환각을 보는 증상을 먼저 호소하기도 한다. 성격이나 행동이 변하거나 평생 늘 하던 일이 어려워지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예컨대 평생 부엌살림을 해온 주부가 요리 솜씨가 변하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치매는 어떤 사람에게 오는 것일까. 젊어서부터 지나치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나이들수록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치매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교사, 안정적이며 수동적인 샐러리맨,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치매에 잘 걸린다.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운동을 하는 게 좋다. 가벼운 운동은 나이가 들면서 뇌가 축소되는 현상을 막아 준다.최근 노인성치매임상연구센터는 6가지 치매 예방 건강수칙을 발표했다. △규칙적인 운동 △금연 △활발한 사회활동 △적극적인 두뇌활동 △절주 △올바른 식습관이다. 한 교수는 이 수칙의 앞글자를 따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표현했다. “진땀나게 운동하고, 인정사정없이 담배 끊고, 사회활동과 대뇌활동을 많이 하고,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 명을 연장하는 식사하기”의 줄임말이란다. 줄임말 아닌 줄임말이다. 이 말대로 생활할 수 있다면 치매 예방이 문제겠는가. 험난한 세상속 마음의 평화도 보장되는 마법의 문구다. `진인사대천명`.

2017-06-23

그 꽃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두고 작심발언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저는 강 후보자에 대한 야당들의 반대가 우리 정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를 넘어서 대통령이 그를 임명하면 더는 협치는 없다거나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말하며 압박하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거듭된 설득 노력에도 야당이 좀처럼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자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과 국민의 지지 여론을 토대로 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내세워 장관 임명에 대한 대통령과 국회의 역할과 권한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문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의 임명은 국회 동의를 받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 뒤 “장관 등 그밖의 정부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국회가 정해진 기간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또 “과거에는 인사청문 절차 자체가 없었지만 검증 수준을 높이려 참여정부 때 마련했다. 청문회에서 후보자를 강도 높게 검증하고 반대하는 것은 야당의 역할이며 본분일 수도 있다”면서도 “대통령은 국민 판단을 보면서 적절한 인선인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헌법과 법률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데도 강 후보자 사례처럼 국회가 마치 자신들의 의견을 100%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야당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자유한국당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야3당에 대한 사실상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문 대통령의 밀어붙이기가 현실화된다면 국회 차원의 협치가 사실상 끝난 것은 물론이고, 우리 야당으로서도 보다 강경한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임명 강행시) 협치 구도가 깨져버리기 때문에 당분간은 의회의 작동과 기능이 상당히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인사청문 제도가 무슨 필요가 있나. 제도 자체를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정부·여당과 야당의 극한 대치상황을 보노라니 고은 시인이 쓴 시 가운데 `그 꽃`이란 시가 입에 맴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못한/ 그 꽃.” 짧디 짧은 이 시가 문득 생각난 것은 인사청문회 정국으로 대통령과 야당이 정면충돌하는 우려스런 양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라갈 때는 꽃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정상에 오르겠다는 생각에 미처 볼 겨를도 없었고, 숨이 차고 힘들어서 볼 여유도 없었으리라. 참 아쉽다. 올라갈 때 그 꽃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시 멈춰서서 바라보고,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어떤 모양인지 무슨 색깔인지 자세히 보면서 그 꽃들과 대화도 나눴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려올 때에야 비로소 보았다. 목표를 다 이루고 난 후 천천히 내려오니 그때서야 보였다. 내려올 때 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인데, 여전히 꽃들과의 대화는 어려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그냥 스쳐지나가고 마는 순간이다.성취만을 위해서 일만 바라보고 부지런히 올라갈 때는 주위에 무엇이 있는 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이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난 이후에 내려갈 때에야 사람들은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꽃은 그대로 일지 모르지만 그때는 이미 화합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게된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하면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일들이 많다. 올라갈 때 보자. 올라갈 때 만나자. 올라갈 때 챙기자. 올라갈 때 보살피고 쓰다듬어주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고은 시인의 인생을 망라하는 지혜가 가슴에 젖어드는 요즘이다.

2017-06-16

문재인의 탈권위 리더십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취임 후 한 달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탈권위 행보`로 호평을 받고 있다.예전 대통령들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매우 중요시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론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인출신인지라 상명하복의 군사문화 때문에라도 더욱 그랬다. 문민정부였던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도 나라를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으로서의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신비주의`로 포장한 `권위주의`로 특징지어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소통에 관심이 없었고, 권위적인 행보로 일관했다. 국무회의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에 거슬리는 발언을 하는 장관에게는 싸늘한 표정으로 `레이저`를 쏴댔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전임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탈권위적인 행보를 보인 대통령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하며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필자가 지난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로 첫 발령 받았을 때 만났던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않은 소탈한 말투와 허심탄회한 태도로 이전의 대통령과는 자못 다른 탈권위적인 리더십을 선보였다. 그해 5월 초,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산행을 하다 잠시 쉬는 자리에서 넋두리하듯 털어놓은 “대통령 못해 묵겠다”는 발언에 당시 야당과 언론은 대통령 자질을 운운하며 비판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참으로 인간적인 대통령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대통령을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던 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탈권위 리더십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해 선보이고 있는 듯하다. 전임 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는 취임 당일부터 화제가 됐다.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마친 뒤 차에 오르기 전 여야 지도부와 당직자는 물론 일반 시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관저가 정비되기 전까지 홍은동 사저에서 출근할 때도 주민의 `셀카`요구에 일일이 응하는가 하면 청와대에 견학 온 어린이들을 보고 차에서 내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받을 노트를 가방에서 꺼내는 어린이를 가만히 기다려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이 연출된 데는 `친근한 경호, 열린 경호, 낮은 경호`를 특별히 당부한 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고 한다.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행사의 의전도 바뀌었다. 그동안은 장관 등 내빈이 대통령을 맞이했지만, 이제는 대통령과 해당 행사에서 상징성을 띤 분들이 나란히 입장하도록 했다.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고, 해당 행사를 여는 것도 상징성을 띠는 분들의 뜻을 기리고 축하·애도하는 자리라는 이유에서란다. 이에 따라 올해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행사를 주관하는 국가보훈처장과 김영관 애국지사, 문영조 전몰군경 유족, 최경례·이금향 순직군경 유족, 목함지뢰 부상병사인 하재헌·김정원씨 등 8명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행사장으로 함께 입장했다.문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관계에서도 격식보다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점심식사 후 재킷을 입지 않은 채로 한 손에는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담소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언론과의 소통도 적극적이다. 문 대통령은 인선 발표차 한 달동안 춘추관을 세 번 찾았고, 그 중 한 번은 `사전 각본` 없이 질문을 받기도 했다.이같은 탈권위 리더십에 많은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박수만 믿고 `밀어붙이기식` 국정행보로 일삼아선 안 된다고 걱정하는 국민들도 적지않다. 한 예를 들면 4대강 보 수문개방을 일방적으로 지시한 것은 해당 지역민들의 걱정을 사는 대목이다. 수문개방 조치는 가뜩이나 가뭄으로 힘든 낙동강 인근 지역의 농업용수 부족과 관광레포츠 단지 조성사업 무산 등의 후유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더욱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로 이 나라 국민들을 잘 섬겨주기를 바란다.

2017-06-09

명마(名馬)를 구하는 법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고대 중국에 명마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나라를 모두 뒤져서라도 뛰어난 명마를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전국의 모든 지역에 수소문을 해봤지만 백성들은 왕이 정말 말 한 마리에 엄청난 돈을 줄까 싶어 누구도 자신의 말을 선뜻 보내주지 않았다.참다못한 왕은 가장 총명한 신하를 불러 명마를 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신하는 왕의 부탁을 받고 다음 날 한 마을에 가서 죽어버린 말을 많은 돈을 주고 샀다. 그리고 요란한 치장을 한 다음 궁궐까지 행렬을 만들어 보냈다.왕은 명마는 고사하고 죽은 말을 사온 신하에게 무척 화가 났지만 신하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 소식이 백성들에게 알려지자 백성들 사이에서 왕이 명마라면 죽은 말까지도 비싸게 사들인다는 소문이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에서 뛰어난 말이란 말은 모두 궁궐로 몰려들었다. 백성들은 왕이 하는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직접 자신의 말을 몰고 왔던 것이다.인간관계에서 최고의 가치는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 역시 무너진다. 누구라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법이다.최근 국방부의 사드발사대 추가도입 보고누락 사실을 듣고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에 필자는 의아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국내에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도입돼 있다는 사실은 지난 3월 발사대 2기가 성주 골프장에 배치될 때 이미 일부 언론에서 보도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국방부가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바로 뒤따라온 의문은 `탈권위` 행보를 계속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왜 격노했을까였다. 대통령이 화를 낸 게 사실이라면 그만큼 이번 보고누락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권위를 손상시킨 `국기문란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문 대통령은 전 정부에 맹종해온 국방부가 문재인 정부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항명`을 한 것이라고 판단한 듯 싶었다.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진상조사도 전광석화처럼 실행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에 따르면 국방부 정책실장 등 군 관계자 수 명을 불러 보고누락 과정을 집중 조사한 결과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명기돼 있었으나 수차례 강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도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전개됐다`고 기재됐다. 심지어 국방 최고책임자인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까지 소환해 사드배치 전반에 대한 내용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방부의 보고 누락사태는 사드배치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따지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한편 정부 조직의 기강 세우기 차원일 수 있다.다만 이를 지켜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각은 우리 정부의 생각과 다를 수 있으니 걱정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확인하는 바로미터의 하나로 사드를 바라보고 있고, 중국은 한국 새 정부로부터 사드 철회를 받아내겠다는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사건이 말 그대로 국방부의 보고태만이 문제라면 따갑게 질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전 정부의 안이한 안보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믿었다면 이같은 `할리우드 액션`이 필요했을 법하다. 지난 정권 때 일어난 방산비리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목표로 삼고있는, 적폐청산의 적확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출범 초기 국정 지지도 80%를 넘나드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나가길 바란다.더욱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계산이 섞인 술책을 쓰다가는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를 한순간 잃어버릴 수 있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쉽다.

2017-06-02

비정상의 정상화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정상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력, 정상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특별한 일처럼 됐습니다. 정상을 위한 노력이 특별한 일이 될 만큼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심각하게 비정상이었다는 뜻입니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렇게 선언했다.정치권에서는 이미 전날인 22일 문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 감사를 지시해 파문이 일고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보수 진영에 대해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외적으로 외적을 제압함)` 전략으로, 야권 내 친이·친박 간 갈등 구조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간 정책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사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부가 사회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겠다며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덕목이다.지난 2014년 우리 사회에 잘못된 관행으로 굳어진 비정상적인 행태들을 뜯어고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는데, 요란했던 시작과는 달리 지금은 사실상 폐기되고 말았다. 시행 초기에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해 중앙부처 평가 항목으로 25%를 반영하며 공직 사회를 독려했지만, 2015년과 2016년에는 평가 비중이 10%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평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발굴이 추상적인데다, 국정 과제임에도 제대로 된 국정 철학이 담겨있지 않아 공무원 사이에 공유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화두가 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4대강 사업 보다는 `불통` 대신 `소통`, `권위` 대신 `탈권위`가 자리잡은 청와대 분위기에서 우러나온다.특히 전임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청와대의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우선 대통령이 매일 아침 집무실로 출근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엔 하루 종일 관저에 머물렀다. 오전에 공식 회의나 행사 등에 참석하더라도 시간은 항상 오전 10시 이후였다.반면 문 대통령은 매일 오전 9시 집무실로 출근해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박수현 대변인 등과 회의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매일 오전 당시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 핵심 비서관들과 일일상황점검 회의를 가졌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은 출근 전 관저에서 회의를 했다는 게 문 대통령과의 차이점이다.대통령이 참모들이 일하는 비서동에서 함께 근무하는 것도 색다른 풍경이다. 문 대통령은 매일 아침 비서동인 여민1관의 3층 집무실로 출근한다. 비서동에서 500m 떨어진 본관 2층에 머물 경우 참모들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비서동 집무실을 이용하곤 했지만 문 대통령처럼 매일 출근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비서동 집무실에 머물기 때문에 참모들의 대면보고도 잦아졌다. 문 대통령은 수시로 참모들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궁금한 것을 묻고, 지시를 내린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얼굴을 1주일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전임 정부와 확연히 대조적이다.비서관 인선을 공식 발표하는 것도 달라졌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선 실장·수석급의 임명 사실만 알릴 뿐 비서관 이하의 인선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변인을 임명하는 경우만 예외였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40여 명에 달하는 대통령 비서실 소속 비서관들의 임명이나 교체 사실을 비공식적 경로로 취재해 보도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역대 모든 정부가 청와대가 출입기자들에게 제공했던 비서관 리스트와 연락처마저 박근혜정부에선 제공되지 않았다.여성인데다 배우자가 없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문 대통령에겐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있다는 사실도 `사람냄새 나는 청와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고 대통령의 24시간을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기대된다.

2017-05-26

`임을 위한 행진곡`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임을 위한 행진곡`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던 민중가요다.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음악인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뮤지컬인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된 곡으로, 1980년 5월 27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중 전라남도청을 점거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다.김종률이 곡을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이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다. 이 곡이 대중에 처음 공개된 것은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였다.이 노래는 그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서 빠르게 유포됐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잡았다. 필자도 대학 시절 시위현장에서 이 노래를 친구들과 함께 부르며,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결심을 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군사정권 하에서는 유포와 가창이 금지됐던 이 곡은 주로 구전의 방식으로 전파됐다. 그러다보니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가사나 가락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사와 대한민국의 공식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념식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젊은 날의 감동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이처럼 따라 읽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뭔가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13년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별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공식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렇게 되자 5·18 관련 단체는 2010년부터 정부 주관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고, 별도의 기념식을 여는 등 크게 반발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있는 와중에 5월 9일 조기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정치권에서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여야 3당은 5·18 민주화운동 37주년인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기념곡 지정 문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도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니 조만간 여야 협의에 따라 기념곡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이번 5·18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에 일어서서 옆에 있던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 노래를 작곡한 김종률씨의 손을 잡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방식으로 부른 것은 9년 만의 일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결단이 사회적 갈등을 얼마나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2017-05-19

소풍 전날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어린시절, 5월 이맘때면 학교에서는 봄소풍을 떠나곤 했다. 다정한 급우들과 함께 유원지나 명승지를 찾아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여행하는 소풍은 가슴 두근대는 기다림과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렇게 즐겁고 가슴설레던 기쁨의 순간은 소풍 전날에만 해당된다. 정작 소풍 당일은 그리 기쁘거나 즐거울 새가 없다. 그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설레는 마음을 추스리느라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자마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에 바쁘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김밥 도시락과 맛있는 과자, 음료수로 채운 소풍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로 향한다. 관광버스를 이용해 떠나는 소풍길은 왜 그리 짧을까.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기대에 부푼 마음이 그 순간들을 짧게 느껴지게 하나보다. 대개 명승지나 유원지에서 치러지는 소풍행사는 보물찾기와 점심식사로 정점을 찍는다.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가 되면 아쉽기만 한 소풍이 어느덧 파장이다. 그때부터 귀가채비에 바쁘다. 만약 소풍날 비가 오면 어떻게 되나. 전날 즐거웠던 마음은 천리만리 사라지고 만다.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생각에 부푼 꿈은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 나무그늘 시원한 잔디밭에서의 식사도 언감생심이다. 궁여지책으로 빌린 어느 시골 체육관 한 귀퉁이에서 신문지를 깔고 해결해야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난 날, 문득 문 대통령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소풍 전날 같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근심걱정없이 대선 승리의 기쁨을 동지들과 함께, 지지자들과 함께 온전히 기뻐하는 이날, 문 대통령의 얼굴은 아무 근심 걱정없이 빛이 나는 듯 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정신없이 몰아 닥칠 일정에 허덕이겠지만 꿈과 희망에 벅찬 어린 시절의 소풍 전날은 얼마나 아름답고, 그리운가. 그런 취임 첫날 문재인 대통령은 화합과 소통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며 합격점을 받을 만한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지명함으로써 호남인사를 총리로 삼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50대 초반의 젊은 임종석 전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삼아 권위적인 청와대 문화의 변화를 기대한 것도 신선했다.그러나 소풍전날 같았던 취임 첫날의 가뿐함은 그리 길지 않을 게 분명하다. 지금 문 대통령 앞에는 풀기 어려운 국정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관계 재확인,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 사드 배치 논란 해소, 경제난 타개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내 조선·건설산업의 침체로 인한 국내 경기침체가 심각한데다 청년실업으로 인한 민심이반이 해결해야 할 첫번째 과제다. 문 대통령이 첫번째 결재한 업무가 `일자리위원회 신설`에 대한 것이었으니 능히 짐작이 간다. 북한 핵·미사일로 인한 안보위기도 빠른 시일내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마찰도 조속히 손쓰지 않으면 안 된다.국내 정치분야 현안도 무엇하나 쉽지않다. 대선이 막 끝난 상황이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원내 정당들이 대선 패배의 충격을 삭이기 위해 지도부 재편 등의 절차를 밟게 되는 동안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나갈 협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러 정부와 청와대 진용을 갖춰야 한다. 협치의 첫 시험대가 이낙연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문 대통령은 조속한 인사청문 절차를 야당들에 `정중히` 요청했다. 여당에서 원내 제1야당으로 내려앉은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이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와 언론이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면서도“첫날부터 총리 인선 문제로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치판에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어쨌든 악의적인 발목잡기식 검증은 않겠다니 새 정부의 출발은 아직 소풍 전날의 부푼 꿈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2017-05-12

황사현상

황사현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는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타클라마칸, 바다인자단, 텐겔, 오르도스, 고비지역, 만주)와 황하중류의 황토지대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서북 건조지역은 연강수량이 400㎜ 이하로, 우리나라의 연강수량 약 1천100~1천700㎜보다 크게 낮고, 사막이 대부분이어서 모래먼지가 많이 발생한다. 이 먼지 중 약 30%가 그 자리에 다시 가라앉고, 20%는 주변지역으로 옮겨지며, 50%는 멀리까지 날아가 한국, 일본, 태평양 등지에 내려앉게 된다.황사가 생기는 원인은 지구의 4계절과 대기순환 때문이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비와 식물의 뿌리가 흙에 포함된 모래를 붙잡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봄에는 겨울 내내 얼어있던 토양이 녹으면서 잘게 부서져 크기 20㎛ 이하의 작은 모래먼지가 발생한다. 이 모래먼지가 강한 상승기류에 의해 3천~5천m의 높은 상공으로 올라가게 되고, 초속 30m 정도의 편서풍과 제트기류를 타고 이동 후 풍속이 느려지는 한국과 일본에서 내려오게 된다. 중국발 황사가 한반도까지 오는 데 2~3일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 사막지대의 황사에는 큰 모래가 많지만, 황토지대의 황사는 크기가 매우 작다. 20㎛보다 큰 입자는 구르거나 조금 상승하다가 부근에 떨어지고, 그보다 작은 입자는 공기중에 떠다니다가 상층까지 올라간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관측되는 황사의 크기는 1~10㎛정도이다. 1㎛ 입자는 수 년 동안, 10㎛ 입자는 수 시간~수 일 정도 공중에 부유할 수 있다.바로 이 미세한 황사가 최근 우리나라 수도권과 경기도 지역을 뒤덮은 미세먼지 주의보의 원흉인 셈이다.기상청은 어버이날인 8일 오전 경기 중부권, 북부권, 남부권 등 모두 24개 시·군에 미세먼지(PM 10) 주의보를 발령했다. 미세먼지 주의보는 권역별 미세먼지가 시간당 평균 150㎍/㎥를 넘을 때 발령된다.황사로 인한 호흡기 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마스크를 꼭 챙기고, 평소보다 손과 발을 자주 씻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5-09

경주에서 이기는 법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한비자(韓非子)에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옛날 진(晉)나라 대부인 조양자(趙襄子)가 왕자기(王子期)라는 명인에게서 승마법을 배웠다. 승마법 전수가 끝나고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조양자는 어느 날 왕자기와 달리기 경주를 했다. 그러나 조양자가 세 번이나 말을 바꾸면서 도전해도 세 번 다 왕자기를 당할 수 없었다. 그러자 조양자는 “가장 심오한 비법은 아예 가르쳐주지 않은 것 아니냐”고 원망했다. 왕자기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비법은 모두 전수했습니다. 다만 배우신 것의 활용법이 틀렸습니다. 말을 탈 때, 말과 기수가 하나가 되고, 말과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멀리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보니 뒤떨어지면 따라 잡으려 하고, 앞서 나가면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데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둘이서 경쟁하면 앞서가거나 뒤처지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앞서가든 뒤처지든 마음은 늘 상대편에게 가 있습니다. 이래서야 말과 일심동체가 될 턱이 없습니다. 경주에서 이기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말을 타는 승마경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승부에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을 다한 다음에는 평상심으로 일관해 무아의 경지에서 담담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5·9장미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TV토론에서 뜨거운 공방을 벌이는 대선후보들을 봐도 이같은 이치가 적용되는 듯 싶다.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보다 지지율에서 앞선 후보나 뒤따라 오는 후보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정책공약을 설명하는 후보에게 더 많은 표심이 쏠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이와 같은 달리기 경주로 비유되는 대선에서 승부를 가늠해보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좋을까. 아마 선거 판도를 규정하는 틀, 달리 말해 `대선 프레임(Frame)`이 어떻게 짜였느냐를 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게다. 예를 들면 지난 2007년 대선은 `경제 살리기` 선거구도가 주효했다. 이런 프레임이 짜여지면서 기업가 출신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낙승을 거뒀다. 2012년 대선때는 `경제민주화`가 대선 프레임으로 등장했다. 국내에선 `저축은행 사태`, 국제적으로는 `월가 점령시위` 등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는 시기였다. 이런 국내외적 상황속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린 김종인씨를 캠프에 전격 영입,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했다.이번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됨에 따라 조기대선으로 치러지는 만큼 `정권교체론`이란 프레임이 견고하다. 일부 후보들이 `정치교체`나 `세대교체`등을 들고 나섰지만 `정권교체론`이란 대세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것이 정권교체론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높은 지지율을 받는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구(舊) 여권 출신 후보들의 지지율이 맥을 못 추는 근본적인 이유다.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후보는 TV 토론과 유세를 통해 “`촛불 혁명`도 정권을 교체하지 못하면 또 다시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만다”며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정권교체론의 기수로 나섰다. 국민의당 안 후보 역시 기존 보수와 진보를 모두 수구세력이라고 규정한 뒤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정치인, 미래를 이끌어나갈 능력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면서 `더 좋은 정권교체론`이란 프레임을 내걸었다.최근 범보수 성향의 바른정당에서 국민의당 안철수·자유한국당 홍준표·바른정당 유승민 `3자 단일화`로 마지막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으나 유 후보의 부정적 태도 등을 미뤄볼 때 실현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어떻든 이번 대선은 모든 후보들이 앞·뒤를 신경쓰거나 타 후보들을 깎아내리는 데 힘쓰기 보다 후보 자신의 소신과 경륜, 국가운영 철학 등을 내놓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선거로 마무리 되길 바랄 뿐이다.

201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