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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 vs 청와대의 청원게시판

등록일 2017-09-15 20:45 게재일 2017-09-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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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신문고는 조선 태종 1년(1401년)에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이다. 최후의 항고(抗告)·직접고발 시설의 하나로 설치된 신문고는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 당직청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조선에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신문고를 울려 상소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었다. 이서(吏胥)·복례(僕隷)가 그의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품관(品官)·향리(鄕吏)·백성 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 또는 타인을 매수·사주해 고발하게 하는 자는 벌을 주었으며, 오직 종사(宗社)에 관계된 억울한 사정이나 목숨에 관계되는 범죄·누명 및 자기에게 관계된 억울함을 고발하는 자에 한해 상소 내용을 접수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제한조건에도 불구하고, 신문고에 의한 사건해결의 신속성을 얻기 위해 사소한 사건에도 신문고를 이용하는 무질서한 현상을 초래했다. 그만큼 조선 초기에 관리들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일반 백성들의 고통이 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청와대의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이 뜨겁다. 하루 수백 건의 청원 글이 올라오고, 청원 목록도 한달이 채 못된 14일 현재 벌써 1만3천700건을 넘어섰다. 조선시대 신문고가 무색할 지경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홈페이지(www1.president.go.kr)를 개편하면서 청와대에서 운영하던 게시판 기능을 강화해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을 지난달 19일 신설했다. 국민 누구나 청원할 내용이 있으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고, 청원이 접수 완료되면 청와대의 각 수석실별로 할당이 된다. 청와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추천을 받고 국정 현안으로 분류된 청원에 대해, 가장 책임있는 정부 및 청와대 당국자(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등)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문도 게시했다. 이렇게 되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 신문고`를 능가하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갈등 소지가 있는 청원의 경우 동의하는 시민들이 게시판에 있는`동의`버튼을 눌러 지지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행동을 적극 촉구하고 나섰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일종의 새로운 정치 참여 공간, 직접 민주주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게시판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동의를 많이 얻은 청원은 38만8천580명이 지지한 `청소년보호법 폐지`, 그 다음은 12만3천204명이 동의한 `여성 군복무 도입`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이견이 첨예한 갈등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큰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원 및 게시판`에서 이슈가 된 `청소년법 폐지청원`과 관련, “소년법 폐지라는 말로 (청원이) 시작이 됐지만 사실 바라는 것은 학교 폭력을 근절하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 폭력 대책들도 함께 폭넓게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소년법을 사례로 해서 토론회를 기획해보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또 “몇 명 이상 추천이 있으면 답변할 것인지 기준도 빨리 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주문했다. 미국 백악관의 경우 1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청원에 대해선 백악관이 직접 대답을 해주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 업무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거나 청와대가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청원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에 어린 딸만 내린 상황에서 미처 하차하지 못한 어머니를 태운 채 그대로 출발한 사건과 관련해 해당 240번 버스 운전기사를 해임시켜달라는 게 대표적이다.

어쨌든 청와대의 `청원 및 게시판`이 국민의 억울한 심정을 헤아리고, 다독여주는 `이 시대의 신문고` 역할을 다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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