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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마(名馬)를 구하는 법

등록일 2017-06-02 02:01 게재일 2017-06-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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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고대 중국에 명마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나라를 모두 뒤져서라도 뛰어난 명마를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전국의 모든 지역에 수소문을 해봤지만 백성들은 왕이 정말 말 한 마리에 엄청난 돈을 줄까 싶어 누구도 자신의 말을 선뜻 보내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왕은 가장 총명한 신하를 불러 명마를 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신하는 왕의 부탁을 받고 다음 날 한 마을에 가서 죽어버린 말을 많은 돈을 주고 샀다. 그리고 요란한 치장을 한 다음 궁궐까지 행렬을 만들어 보냈다.

왕은 명마는 고사하고 죽은 말을 사온 신하에게 무척 화가 났지만 신하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 소식이 백성들에게 알려지자 백성들 사이에서 왕이 명마라면 죽은 말까지도 비싸게 사들인다는 소문이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에서 뛰어난 말이란 말은 모두 궁궐로 몰려들었다. 백성들은 왕이 하는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직접 자신의 말을 몰고 왔던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최고의 가치는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 역시 무너진다. 누구라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법이다.

최근 국방부의 사드발사대 추가도입 보고누락 사실을 듣고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에 필자는 의아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국내에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도입돼 있다는 사실은 지난 3월 발사대 2기가 성주 골프장에 배치될 때 이미 일부 언론에서 보도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국방부가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바로 뒤따라온 의문은 `탈권위` 행보를 계속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왜 격노했을까였다. 대통령이 화를 낸 게 사실이라면 그만큼 이번 보고누락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권위를 손상시킨 `국기문란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문 대통령은 전 정부에 맹종해온 국방부가 문재인 정부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항명`을 한 것이라고 판단한 듯 싶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진상조사도 전광석화처럼 실행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에 따르면 국방부 정책실장 등 군 관계자 수 명을 불러 보고누락 과정을 집중 조사한 결과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명기돼 있었으나 수차례 강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도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전개됐다`고 기재됐다. 심지어 국방 최고책임자인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까지 소환해 사드배치 전반에 대한 내용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방부의 보고 누락사태는 사드배치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따지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한편 정부 조직의 기강 세우기 차원일 수 있다.

다만 이를 지켜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각은 우리 정부의 생각과 다를 수 있으니 걱정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확인하는 바로미터의 하나로 사드를 바라보고 있고, 중국은 한국 새 정부로부터 사드 철회를 받아내겠다는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사건이 말 그대로 국방부의 보고태만이 문제라면 따갑게 질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전 정부의 안이한 안보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믿었다면 이같은 `할리우드 액션`이 필요했을 법하다. 지난 정권 때 일어난 방산비리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목표로 삼고있는, 적폐청산의 적확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출범 초기 국정 지지도 80%를 넘나드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나가길 바란다.

더욱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계산이 섞인 술책을 쓰다가는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를 한순간 잃어버릴 수 있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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