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슈퍼리치 증세`란 이름의 부자증세론을 내놨다. 사실 부자증세론의 원조는 미국 부자랭킹 3위(2017년 현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그는 2011년 8월 뉴욕타임스 `슈퍼리치 애지중지, 이제 그만`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 3위 부자인 자신에게 2010년 적용된 세율은 고작 17.4%로, 자기 사무실의 어떤 직원보다 낮았다고 공개했다.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 직원들이 30~40% 세율로 세금을 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세금을 더 내게 해 달라고 정부와 의회에 촉구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 해도 좋을 그의 제안은 바로 `버핏세`란 이름으로, 부자증세론의 씨앗이 됐다. 버핏 회장의 이같은 제안이 알려진 몇년 뒤 2016년 3월, 뉴욕주에 사는 50여 명의 백만장자들이 뉴욕주지사에게 청원문을 보냈다. 청원문의 골자는 “우리는 얼마든지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낼 수 있습니다”란 내용이었다.
100년째 맨해튼 시민들의 수도요금을 대신 내고 있는 록펠러 가문의 스티븐 록펠러와 디즈니 가문의 에비게일 디즈니 등이 포함된 51명의 갑부가 서명한 청원의 제목은 `부유한 뉴욕주민들은 누진 과세를 지지합니다`란 것이었다.
“우리는 뉴욕주의 삶의 질을 소중히 여기는 뉴욕의 고소득자들입니다….”로 시작된 청원문은 “뉴욕주의 아동빈곤이 도심 일부지역에서 50%를 넘어서는 등 기록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입니다….”라고 적시하면서 “더 많이 낼 수 있는 우리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우리는 공정한 몫을 부담할 능력도 있고,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지금의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낼 수 있습니다.”라고 끝맺었다. 그야말로 `부자의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얘기들이 잘사는 선진국인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얘기로 치부할 게 아니다. 28일과 29일 이틀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의 간담회가 진행되는 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KT, 두산, 한진, CJ 등 총 15개의 쟁쟁한 국내기업들이 참여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 바로 오뚜기다. 오뚜기가 중견기업 중 유일하게 청와대 초청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유가 뭘까. 우선 오뚜기는 정규직 비율이 10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체 직원 가운데 비정규직이 단 1.16% 뿐이다.
특히 1천800명에 달하는 대형마트 시식코너 직원도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2008년 이후 라면가격을 인상하지 않아 많은 소비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청업체와 상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칭찬을 받기도 했다.
오뚜기의 사회공헌 기부활동이나 심장병 어린이 지원, 장애인 자립지원 등은 바로 창업자인 고 함태호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함 회장은 1992년 부터 4천242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했다. 2015년에는 300억원의 사재를 밀알재단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어떤 편법도 쓰지 않고 장남에게 오뚜기 주식을 정식 증여하며 1천700억원의 세금을 냈다. 편법상속으로 말썽을 빚고있는 대다수의 재벌기업들과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행보다. 이런 모범적인 행보가 `슈퍼리치 증세`를 염두에 둔 문 대통령의 관심을 끌게 했으리라 추측된다.
뉴욕의 51인 부자들, 대한민국의 오뚜기그룹, 이들이라고 더 많이 갖고싶다는 욕심이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이들은 다함께 잘사는 사회를 위해 자신이 좀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일 게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에도 이제 `부자의 품격`을 갖춘 진정한 부자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