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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전날

등록일 2017-05-12 02:01 게재일 2017-05-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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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어린시절, 5월 이맘때면 학교에서는 봄소풍을 떠나곤 했다. 다정한 급우들과 함께 유원지나 명승지를 찾아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여행하는 소풍은 가슴 두근대는 기다림과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렇게 즐겁고 가슴설레던 기쁨의 순간은 소풍 전날에만 해당된다. 정작 소풍 당일은 그리 기쁘거나 즐거울 새가 없다. 그저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설레는 마음을 추스리느라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자마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에 바쁘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김밥 도시락과 맛있는 과자, 음료수로 채운 소풍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로 향한다. 관광버스를 이용해 떠나는 소풍길은 왜 그리 짧을까.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기대에 부푼 마음이 그 순간들을 짧게 느껴지게 하나보다. 대개 명승지나 유원지에서 치러지는 소풍행사는 보물찾기와 점심식사로 정점을 찍는다.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가 되면 아쉽기만 한 소풍이 어느덧 파장이다. 그때부터 귀가채비에 바쁘다. 만약 소풍날 비가 오면 어떻게 되나. 전날 즐거웠던 마음은 천리만리 사라지고 만다.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생각에 부푼 꿈은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 나무그늘 시원한 잔디밭에서의 식사도 언감생심이다. 궁여지책으로 빌린 어느 시골 체육관 한 귀퉁이에서 신문지를 깔고 해결해야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난 날, 문득 문 대통령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소풍 전날 같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근심걱정없이 대선 승리의 기쁨을 동지들과 함께, 지지자들과 함께 온전히 기뻐하는 이날, 문 대통령의 얼굴은 아무 근심 걱정없이 빛이 나는 듯 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정신없이 몰아 닥칠 일정에 허덕이겠지만 꿈과 희망에 벅찬 어린 시절의 소풍 전날은 얼마나 아름답고, 그리운가. 그런 취임 첫날 문재인 대통령은 화합과 소통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며 합격점을 받을 만한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지명함으로써 호남인사를 총리로 삼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50대 초반의 젊은 임종석 전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삼아 권위적인 청와대 문화의 변화를 기대한 것도 신선했다.

그러나 소풍전날 같았던 취임 첫날의 가뿐함은 그리 길지 않을 게 분명하다. 지금 문 대통령 앞에는 풀기 어려운 국정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관계 재확인,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 사드 배치 논란 해소, 경제난 타개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내 조선·건설산업의 침체로 인한 국내 경기침체가 심각한데다 청년실업으로 인한 민심이반이 해결해야 할 첫번째 과제다. 문 대통령이 첫번째 결재한 업무가 `일자리위원회 신설`에 대한 것이었으니 능히 짐작이 간다. 북한 핵·미사일로 인한 안보위기도 빠른 시일내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마찰도 조속히 손쓰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 정치분야 현안도 무엇하나 쉽지않다. 대선이 막 끝난 상황이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원내 정당들이 대선 패배의 충격을 삭이기 위해 지도부 재편 등의 절차를 밟게 되는 동안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나갈 협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러 정부와 청와대 진용을 갖춰야 한다. 협치의 첫 시험대가 이낙연 총리 후보 인사청문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조속한 인사청문 절차를 야당들에 `정중히` 요청했다. 여당에서 원내 제1야당으로 내려앉은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이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와 언론이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면서도“첫날부터 총리 인선 문제로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치판에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어쨌든 악의적인 발목잡기식 검증은 않겠다니 새 정부의 출발은 아직 소풍 전날의 부푼 꿈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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