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당 앞에 걸인이 조그마한 피켓을 세워놓고 누워 있었다.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배가 고픕니다. 도와주세요!” 하지만, 걸인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나가던 한 남자가 걸인이 든 피켓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고쳐 써주었다. “배고파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잠시 후,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걸인의 깡통에 돈을 던지기 시작했다. 걸인 앞을 지나던 남자는 마케팅 전문가인 `패트릭 랑보아제`였다.
사람들은 그냥 호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공감해야만 기꺼이 지갑을 연다.
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브르통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어느날 그는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는 맹인을 만났다. 그가 들고있는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저는 앞을 못보는 맹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초라하고 불쌍한 맹인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브르통이 피켓의 문구를 이렇게 바꿔주었다.
“봄이 왔지만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습니다.” 걸인 앞을 지나다 팻말의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열어 깡통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마음을 울리는 말 한 마디는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린 그 소중한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오히려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때다.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인 정치권에서도 상대방을 비판하고 꼬집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을 텃밭으로 하는 자유한국당 유력 대선주자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선후보가 보수 진영 후보로서의 단일화를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유 후보가 선제공격을 펼쳤다. 그는 지난 28일 후보선출 직후 홍 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 재판을 앞둔 것을 거론하며 “홍 지사 출마를 당초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공격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홍 지사 역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유 의원이 TK(대구·경북)에서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게 TK 정서”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최근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말 한마디를 꼽으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꼽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관저에서 떠날 때 국민들에게 아무런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본인의 잘잘못을 떠나 온나라를 뒤집어 놓은 듯 혼란에 빠뜨리고,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고도 본인 스스로 뭘 잘못했는 지 모르는 듯한 태도였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강남구 삼성동 사저 앞에 모인 친박계 의원들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한 뒤 민경욱 의원을 통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놔 논란을 빚었다. 누가 들어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대한 불복의 뜻으로 풀이됐기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을 때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한발 물러난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둔 30일 박 전 대통령은 침묵했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리는 피의자 심문 출석을 위해 법원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를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심어린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진리다. 이제라도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실정(失政)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법의 심판을 기다린다는 대국민메시지를 남긴다면 어떨까. 때늦은 감은 있지만 위기때마다 의연한 자세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내놓던 `정치인 박근혜`를 만나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