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2월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야당이 여당의 동의 없이 청문회를 통과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데 대해 전체 상임위원회 보이콧을 결정하는 등 대응책 마련을 위한 회의였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정우택 의원은 “정말 2월 국회는 일하는 국회, 생산적 국회로 만들자고 정세균 의장과 4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합의를 하고 발표했는데도 오늘 국회 상임위원회를 잠시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씁쓸한 심경을 털어놨다. 문제의 발단은 임시국회가 열리자마자 시작된 야당의 파상공세에서 비롯됐다. 야당은 얼마전 여야간사 협의없이 교육문화위원회에서 국정교과서의 사용을 중단 또는 폐기하는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MBC노조와 이랜드 등을 겨냥한 3개의 청문회를 여당과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결국 여당이 더 이상 참지못하고 상임위 보이콧이란 초강경카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임위 보이콧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여당의 고민이다. 야당과의 실질적인 협상을 맡아온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한국당이 처한 실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과반을 넘기는 의석을 갖고 출범한 여당이 재적 3분의1이 안 되는 의석으로 쪼그라들면서 처하게 된 궁핍한 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김 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제2교섭단체, 의석 94석의 당이 처해있는 현 주소가 어떤 것인지를 막연히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소속 동료의원 여러분들께 상황의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말씀을 좀 드려야 할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자유한국당은 지금 국회에서 제2교섭단체이자 94석의 의석을 가진 당으로서 정국운영을 하기에는 현 주소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본회의장에서 주요안건에 대해서 주요한 방어수단의 하나로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라는 제도가 도입됐으나 자유한국당은 3분의 1의 의석이 안 되는 94석이기에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또 상임위에서 법안을 우선상정하도록 결정하는 `상임위 안건 조정위` 역시 야당의 공세수단이 되어버렸다.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상임위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구성할 수 있는데, 국회 제1 교섭단체가 정원 6명 중 3명, 나머지는 그 외 교섭단체 추천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안건조정위 역시 야당 추천인사가 과반으로 장악하고 있다. 더구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고도 불리는 일명 `안건신속 처리제도`역시 전 상임위원회에서 지정 동의요건, 5분의 3을 오히려 야당이 확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전 상임위에서 핵심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여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한국당의 어려운 처지를 속속들이 알린 김 수석부대표는 “상생과 협치의 의회운영의 좋은 관행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으로 20대 국회 동안 계속 야당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위기상황”이라고 거듭 의원들이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같은 해프닝을 보노라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아직도 여당의원 노릇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헌재에 의해 인용되는 순간 조기대선이 실시되고, 그럴 경우 야당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난리들인데, 여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든 연말부터 시작된 `최순실 국정농단게이트`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만큼 정치판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선구도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닌, 진보 대 진보의 대결구도로 달려가는 징조 또한 상전벽해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처지가 어렵다고 비관하거나 웅크리지 말자. 인생사 새옹지마라, 상전벽해 될 날 있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