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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민주주의

등록일 2017-03-10 02:01 게재일 2017-03-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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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조용한 독재보다 낫다”

지난 2008년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던 때 한국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외교통상부 청사 주변에서 벌어진 `미국규탄` 피켓시위와 관련,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로 규정하며 털어놓은 말이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란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아무리 시끄럽더라도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동안 조용했던 광화문 광장은 최근 몇달동안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인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로 또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후에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일명 `태극기집회`가 점점 몸피를 불리더니 광화문 광장을 두쪽으로 갈랐다. 이런 상황에서 광장으로 나온 일부 정치인과 대통령측 대리인단 변호사들의 언행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론을 선동해 자신들이 바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불복을 부추기는 것은 민주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특히 대통령측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는 한 집회에서 “헌재에서 판결을 내리면 무조건 승복하자고…. 여러분 우리가 노예입니까”라며 불복을 부추기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10일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비상대기상태에 들어갔다.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60일내 조기대선이 치러지게 된다. 반대로 기각 또는 각하되면 즉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되고, 벚꽃대선은 없는 일이 된다. 대선행보에 나섰던 야권주자들은 오는 12월로 미뤄진 대선에 맞춰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심판선고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포스트 탄핵` 정국이 자칫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갈이 찢겨 대선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 정치권이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과 각 당의 대선주자들에게 “헌재결정을 승복하겠다는 선언을 하라”는 주장이다.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이라도 (헌재 결정에 대해) 승복을(승복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면서 박 대통령의 승복을 촉구했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역시 “오늘 정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결정이 나와도 승복하겠다고 선언해 주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통합을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정치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묵시적으로 불복을 선동하듯 아무런 입장표명을 않고 침묵했다.

일부 대선주자들 역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수용하고 존중하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탄핵 인용이 된 이후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다며 불복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하고있는 데 대해선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진행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불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옳지않다. 자가당착이며,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오죽하면 국내정치 현안에 대해 일체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과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홈페이지에 “정당과 시민사회가 찬반을 표시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방법이 지나쳐 국론분열로 치닫게 되면 자칫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는 당부의 글을 실었을까.

어떻든 `조용한` 군부독재에 이어 `시끄러운`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도 견뎌온 우리다. 그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오로지 헌법질서에 기초한 민주주의다.

명심할 것은 시끄러워도 민주주의이기에 소중한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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