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보수진영의 대선 역전 시나리오가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역전 시나리오의 핵심은 바로 `헌재 탄핵 심판의 지연``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대선 구도 새롭게 짜기` 등 세 가지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진행과정이 심상치 않다는 징후가 적지 않다. 탄핵 심판은 지난해 12월 9일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어 지난 1월 5일부터 2월 7일까지 8차례에 걸쳐서 18명에 대한 증인 심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는 22일까지 5차례에 걸쳐서 17명에 대한 증인 심문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오는 22일 변론을 종결하고 평의를 거쳐서 이정미 재판소장 직무대행이 그만두는 3월 14일 이전에 탄핵 결정을 할 수 있을까다.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추가증인을 신청할 수 있고, 대통령이 출석해서 진술하겠다고 할 수도 있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모두 사퇴해 국선변호인 선임절차를 밟으라고 해서 3월 14일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평의를 마친 이후 재판관 중 1명이라도 변론을 재개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변론이 재개되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3월 14일 이후까지 탄핵 심판이 종결되지 않고 계속되도록 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다.
게다가 탄핵 소추를 기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재판관들이 있다는 얘기도 솔솔 흘러나온다. 구체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두 명의 재판관과 공안검사 출신 재판관, 그리고 TK출신 재판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헌법재판관의 입장에서는 그간의 심판 과정과 제출된 기록검토 등을 통해 소추사실을 인정할 만한 심증 형성이 안됐다고 의견을 낼 수 있다. 찬성 반대 여부 이전에 소추사실 인정을 못하겠다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탄핵심판이 기각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에도 탄핵 인용의견을 밝힌 재판관이 9명 중 3명이었다. 탄핵이 기각된 사안에서 3명이 탄핵 인용 의견이었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이번 탄핵 심판 사건에서 탄핵 기각의견이 2~3명 있을 수 있다는 얘기와 직결된다.
물론 탄핵 심판이 기각된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통령에게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지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핵 심판 기각 결정 이후 적절한 시간에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를 통해 여론의 반전을 꾀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대선은 자연스레 늦춰지면서 10월 이후 치러질 공산이 크다. 그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범여권후보 단일화를 통해 보수진영의 재결집을 이뤄냄으로써 궁극적으로 대선 역전승을 이뤄낸다는 것이 그 골자다.
만에 하나라도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경우 1천만 촛불민심이 2천만, 3천만 촛불민심으로 폭발 지경에 이를 것이니 걱정스럽다. 헌법재판소나 정치권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감도 만연할 터이니 민심이 어디로 어떻게 쏠릴 지 예단하기조차 어렵다.
중도보수, 개혁적 보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온 학자이자 정치인인 박세일 전 의원은 지난 13일 별세하면서 남긴 유작`지도자의 길`이란 글을 통해 정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4가지 능력과 덕목으로 △애민(愛民)과 수기(修己) △비전과 방략(方略) △구현(求賢)과 선청(善聽) △후사(後史)와 회향(回向)을 꼽았다. 애민정신과 자기수양,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비전과 정책능력, 인재를 구하고 경청하는 자세, 차세대 인재를 육성하고 자신의 성과를 역사와 국민에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이 지도자학에 대한 기초적 이해조차 없이 정치와 나라 운영의 큰 책무를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치열한 준비나 고민 없이 지도자의 위치를 탐해서는 안 되며, 이는 역사와 국민에 무례한 죄악”이라고 꼬집었다. 가슴 깊이 와닿는 지적이다.
올해 대선에 나설 주자들은 스스로 역사와 국민에 대해 무례나 죄악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