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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공화국의 민낯

등록일 2016-07-22 02:01 게재일 2016-07-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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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이명박 정부 초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들은 얘기중 가장 충격적인 얘기였다. 우리나라 최고권력기관이자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나서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조직이 있다고 했다.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돼 정권의 사정칼날이 서슬 퍼렇게 빛날 때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민정수석실 관계자와 점심을 같이 한 뒤 춘추관으로 돌아오면서 `공무원사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나온 얘기였다. 그는 “청와대라도 검찰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더니 “우리나라가 검찰공화국이 된 지 오래됐다”며 시니컬하게 웃었다.

놀랍게 여겨졌던 이런 현실이 현재진행형인가 보다. 새누리당 비박계 4선 의원으로서 당 대표선거에 출마한 판사 출신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다니 하는 말이다. 주 의원은 21일 한 방송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검찰권이 비대한 나라가 없다”며 “그런 반면에 검찰을 견제할 기구나 조직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상명하복의 조직특성을 가진 검찰이 국민의 권한위임을 받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통제에 제대로 따르지 않을 정도로 비대해졌다는 것은 가슴 서늘한 얘기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행하는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는 말 그대로 최고권력기관이다. 그런 청와대가 검찰권력을 확실히 제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검찰공화국이 출현할 판이다.

뜬금없이 `검찰공화국`의 신화(?)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현직검사장 구속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현직인 진경준 검사장이 이금로 특임검사팀에 의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제3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특임검사팀이 밝힌 진 검사장의 혐의내용은 낯뜨겁다.

진 검사장은 2005년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에게 4억 2천500만원 상당의 비상장 넥슨 주식 1만주를 받았으며, 다음 해 이를 되팔고 넥슨재팬 주식 8억 5천370주를 샀다. 그는 2015년 이를 전량 매도해 126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는 또 2008년 넥슨 측에게 넥슨 법인 제네시스 차량을 받았으며, 한진그룹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처남 명의로 된 청소용역업체가 일감을 몰아받은 의혹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진경준 검사장은 넥슨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차량과 돈을 스폰서 받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걸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박나는 바람에 도리어 쪽박차는 `희귀한` 케이스가 됐다.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자 검찰조직에 비상이 걸렸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은 대국민사과를 해야만 했다. 누구보다 청렴하고 모범이 되어야 할 고위직 검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공직을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했으니 입이 열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실 현직 검사의 비리사건은 그동안에도 적지 않게 있었다. 다만 검사가 비리로 물의를 빚을 경우 사표를 낸 후 처벌을 받았기에 현직으로서 처벌받은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일 뿐이다. 실제로 2010년 그랜저검사, 2012년 벤츠여검사, 조희팔 뇌물 검사, 2013년 검찰 성접대 의혹, 2016년 홍만표·정운호 법조비리 등이 잇따랐고, 그때마다 검찰은 재발방지대책과 함께 자정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허사였다. 한술 더 떠 장관이나 고위공무원 인사를 위해 인사검증작업을 맡은 검찰출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처가 부동산거래에 관련됐다는 의혹과 함께 말썽이 된 진경준 검사장에 대해 부실검증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모양새는 사납기 그지없다. 이쯤 되자 국회에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여부가 논란거리다.

새누리당은 “비리 한 두건 터졌다고 수사제도 바꾸는 건 안 된다”는 소극적인 입장인 반면 더민주당은 “검찰의 자정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라며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공수처 도입이든 뭐든 무슨 상관일까. 다시는 검찰공화국의 적나라한 민낯을 마주 대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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