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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만 잡는 지혜

등록일 2016-09-02 02:01 게재일 2016-09-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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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인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사립학교 교원들과 기자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잘 모르는 눈치다. 고위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정부 부처별로 시행되는 김영란법 교육에 참석해 귀를 기울인다. 진풍경이다. 우리나라 권력의 중추인 청와대에서도 지난 달 29·30일 김영란법에 대한 교육이 진행됐다. 국민권익위 관계자가 김영란법의 주요 내용과 일반적인 적용 사례 등을 설명했다. 청와대 직원끼리라고 해도 인사수석실 등 특정분야 업무 담당자와 식사할 경우 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의 설명도 있었다. 청와대는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3만원(식사), 5만원(선물), 10만원(경조사비) 등으로 규정된 가액기준을 충실히 지킨다는 입장이다. 특히 업무특성상 언론 또는 여의도 정치권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홍보·정무라인과 관련 정부 부처 직원들을 만날 일이 많은 정책관련 수석실 직원들은 걱정이 많다. 한 직원은 “해당 비서관실에서 업무 협의를 위해 장·차관을 만나더라도 김영란법이 적용된다고 들었다”며 “앞으로 업무협의를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주한 외교공관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김영란법은 속지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외국인도 대상이란다. 원칙적으로 주한 외국대사관 직원이 한국 정부 관계자나 국회의원에게 가액기준인 3만원 이상의 식사를 사거나 5만원 이상의 선물을 하면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은 통상적 외교 활동으로 인식되던 식사 대접이나 선물 교환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어쩌나 걱정들이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대구시와 경북도 역시 지난달 말부터 소속 공무원들과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교육에 나섰다. 이쯤되니 국회 의원회관 어느 방에 가도 김영란법이 `뜨거운 감자`다. 김천 인근지역인 성주 사드배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이철우 의원실도 마찬가지였다. 방에 들렀더니 포항 북구 지역구인 김정재 의원과 김영란법을 화제로 두런두런 얘기 중이었다. 두 의원이 전하는 국회 분위기는 김영란법의 부작용이 사회 전반에 너무 커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은 알지만 국민여론이 김영란법을 찬성하는 마당에 시행전 개정은 불가한 상황이란 입장이었다. 실제로 새누리당이 김영란법 개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국민의 약 70%가 김영란법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총선에 참패한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국민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할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도가 되든 모가 되든` 시행을 해보고,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김영란법의 부작용이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심각할 것이란 예측에 있다. 무엇보다 국내 농축수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지역언론에 몸담고 있다가 얼마전 바이오사료 및 탈취제 생산업에 뛰어든 A씨도 그 자리에 동석해 있다가 흥분한 듯 “사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고쳐야 하지만 차선책으로 시행 직후 빠른 시일내에 개정하지 않으면 국내 농축수산업 종사자들과 요식업 종사자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도 `국내 농축수산물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토록 하자`는 의견에 서명을 받으러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김영란법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행위가 사라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부작용이 국민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면 어떡해야 할 것인가.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온 식구가 오손도손 살아가야 할 초가삼간은 태우지 않고, 빈대만 잡아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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