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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사회 만드는 지혜

등록일 2016-10-07 02:01 게재일 2016-10-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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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당초 우려했던 것과 같은 대혼란은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앉은 자리마다 화제가 되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은 국감이 한창인 국회에서도 보좌관과 비서관들이 외부 민원인들과 식사자리를 피하고, 구내식당을 애용하게 됐다거나 기업들도 영업 또는 대관업무를 맡은 부서에서 상대방이 식사를 하지 않으려해 법인카드 사용액이 크게 줄었다는`애교` 수준의 부작용 정도에 그치고 있다. 다소 걱정할 만한 부작용도 있다. 한 예로 학교 운동회 날 선생님들은 따로 교무실에서 자비로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는 가족과 함께 하는 축제였고, 파티였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행사인 운동회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따로따로 식사를 하는 살풍경으로 바뀌었단다. 청렴한 운동회를 넘어 이상하고 어색한 운동회가 되고 말았다.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김영란법의 입법취지에 대해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 법의 적용대상이나 내용을 보면 너무 어설픈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적용대상을 너무 폭넓게 잡은 데서 비롯된다. 대상자가 400만명을 넘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법의 저촉을 받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온 나라 경찰을 김영란법 대상자를 단속하는데 동원해도 부족할 판이다. 누구나 지켜야 할 교통법규를 예로 들어보자. 교통법규는 위반 여부를 가리는 게 간단하다. 그래서 CCTV, 블랙박스, 스마트폰에 의해 현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위반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경찰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사람들을 모두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량 운전자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단 한 번도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고 다닌 날이 한달에 며칠이나 되는지 말이다. 아마 적지 않은 날, 사소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김영란법 역시 이와 비슷한 법감정으로 정착돼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적용대상을 좀 더 축소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게 위반인지를 알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내용을 쉽고 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가권익위에서 내 논 해설집이 이미 두꺼운 책이 됐다. 법이 이렇게 복잡해서는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설사 위반했다고 해도 승복하기 어렵다. 단속하는 사람도, 단속당한 사람도 알쏭달쏭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권익위원회는 최종적인 `유죄`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사안이라 말한다. 법원 판례가 최종 정답인데, 판례가 축적되려면 그만큼 누군가가 김영란법 위반으로 기소돼 `전과자`가 돼야 한다. 전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모두들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고 있다. `시범케이스`로 걸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김영란법이 `직무연관성`이란 애매한 용어를 통해 단속대상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용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 `법은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라 했으니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법 시행 이후 공무원들은 `낯선` 민원인들은 피하고 있다. 복지부동이다. 교사들도 학부모들을 안 만나려 든다.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피곤하게 이사람 저사람 만나지 않아도 될 핑계가 생겼다. 문제는 이럴 경우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불편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을`의 위치에 있는 대다수의 서민이나 중소기업, 민원인들이다. 이들은 이제 누구에게 억울하고, 힘든 사연을 하소연할 수 있을까.

부정부패 없는 청렴사회 건설을 위한 법이 제대로 정착되길 바란다. 그렇다해도 지금처럼 헷갈리는 법을 그대로 둬서는 안된다. 청렴과 공정의 분위기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국민모두가 지킬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국민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기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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