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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주한미군정책

등록일 2018-05-04 21:35 게재일 2018-05-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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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지고, 앞으로 한반도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이 급진전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과연 어떤 것일까.

가장 먼저 해답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다. 문 특보는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포린어페어즈에 기고문을 통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와 관련해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야당 등 정치권에서 반발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이례적으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야권의 문 특보 경질 요구는 거부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문 특보와 문 대통령이 핑퐁게임을 통해 주한미군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를 가늠해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간 문 특보가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을 대신 언급, 여론을 떠보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 정부 당국자들도 주한미군 정책에 대해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심상치않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맺은 뒤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선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북한과도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전까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두고 “미치광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하다가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는“꽤 똑똑한 녀석”이라며 정상회담을 “영광스럽다”고 표현했다. 트럼프가 종잡을 수 없는 언동을 하는 데는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북핵을 억제하며, 일본은 더욱 끌어안아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읽힌다. 한국에 대해서는 사드 운영비용 전가나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미 FTA 재협상 등 여러 현안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둬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트럼프 입장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들고나오면 협상이 결렬될 것이니 조심스러울 것은 분명하다. 현재 북미정상회담 진전상황을 보면 북한이 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미국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하지 않는 것은 선대의 유훈에 해당하기 때문이란 주장도 나와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두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1992년 1월 당시 김일성 주석이 노동당 국제비서 김용순을 미국 뉴욕으로 보내서 미 국무부 차관 아놀드 캔터를 만난 자리에서 “북미 수교만 해 주면 앞으로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통일된 뒤에도 미국은 남쪽에 또는 조선반도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또 첫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 6월 14일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한테 “미군에 대한 우리 생각은 바뀌었다. 냉전 끝나고 난 뒤에도 요동칠 수 있는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미군이 있는 조건 하에서 남과 북이 왕래하고 교류하고 협력해도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즉,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교만 해달라는 얘기는 선대의 유훈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정인 특보의 핑퐁전을 보노라면 왠지 한 사람은 협박하고, 다른 사람은 어르는 역할을 나눠 맡는 ‘굿 캅, 배드 캅(good cop, bad cop)’을 연상케 한다. 한 사람은 협박하고, 한 사람은 어르는 역할을 맡아 사람을 설득하는 이 협상기법이 주한미군 철수란 ‘뜨거운 감자’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묘방으로 활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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